‘4연타’ 세풍 부는 이수그룹 막전막후

우연이라기엔…칼끝은 회장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이수그룹이 올 한 해만 벌써 4개 계열사를 상대로 세무조사를 받게 됐다. 이 중 3개사는 국세청 중수부로 불리는 조사4국의 특별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룹 측은 별다른 입장을 드러내지 않은 상황. 그룹을 둘러싼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이수그룹은 이수화학을 모체로 하는 중견그룹이다. 창업주는 고 김준성 명예회장. 5공화국 당시 경제부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이수그룹은 계열사를 늘리며 사세를 확장한 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됐다. 현재 오너 2세 김상범 회장이 그룹을 전면서 이끌고 있다.

오너 2세
경영 승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수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이수엑사켐’이라는 회사가 있다. 김 회장은 이곳의 지분 100%를 쥐고 있다. 사실상 김 회장은 개인 회사를 통해 그룹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룹 지배구조는 ‘김 회장→이수엑사켐→㈜이수→이수화학→이수건설’ 등으로 분석된다. 세부적으로 이수엑사켐은 ▲㈜이수(73.4%) ▲이수창업투자(79.1%) ▲토다이수(40.00%) ▲이수C&E(100%)의 최대주주다.

㈜이수는 다시 ▲이수화학(35.2%) ▲이수페타시스(22.9%) ▲이수시스템(100%) ▲이수에이엠씨(100%)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중 이수화학은 ▲이수건설(75.2%) ▲ 한가람포닉스(51.0%) ▲이수앱지스(31.9%)로, 이수페타시스는 ▲이수엑사보드(100%)로 이어진다.
 

▲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세무조사는 올해 초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 및 조사4국은 각각 이수건설과 ㈜이수·이수화학·이수페타시스 등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수건설의 경우, 조사1국인만큼 정기세무조사(4~5년 주기)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수건설은 지난해 3000억원대 매출에 55억원 영업손실, 200억원대 당기순손실을 냈다. 직전년도 4000억원대 매출과 146억원의 영업이익, 9억원의 당기순이익에 비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1국·4국 연속 세무조사…이유는?
올 한 해만 벌써 4개 계열사 털려 

㈜이수와 이수화학, 이수페타시스 세무조사는 국세청 중수부로 불리는 조사4국이 담당했다. 업계 등에 따르면 조사4국은 ㈜이수 등에 요원 100여명을 사전예고 없이 투입, 세무와 회계 자료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수건설의 세무조사와 다소 결이 달랐다.

이수화학은 올해 상반기 별도 기준 매출 6308억원과 영업이익 138억원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34억원, 14억원 증가했다. 이수페타시스는 1700억원 매출과 95억원 영업이익을 냈다. 직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101억원, 31억원씩 증가했다.

조사4국은 비정기 세무조사를 담당한다. 주로 대기업 탈세나 비자금 관련 첩보를 바탕으로 조사에 나선다. 조사 배경을 예단할 수 없지만, 일각에선 그룹 내 ‘일감 몰아주기’와 ‘특수관계자 거래’를 지목한다. 특히 김 회장의 개인회사 이수엑사켐에 관심이 몰렸다.

이수엑사켐은 석유화학·정밀화학 제품 판매 회사다. 제품을 매입해 판매하는 단순 유통법인이다. 그러나 이수엑사켐의 지난해 매출액은 무려 2000억원대에 달한다.


눈길이 가는 건 이수엑사켐의 제품 매입처. 당시 이수엑사켐은 특수관계자로 분류되는 이수화학으로부터 1100억원대 제품을 사들여 매출을 올렸다. 이수화학으로부터 매입한 제품은 이수엑사켐 전체 매출원가(1886억원)의 60%를 넘었다. 이른바 ‘통행세’를 거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개인회사
관심↑

통행세는 두 회사의 거래 중간에 끼어 수수료를 챙기는 행위를 뜻한다. 총수 일가 소유 회사가 거래 중간 과정에 개입해 부당한 지원을 받는 것으로도 통한다. 이수엑사켐은 특별한 생산이나 공정 없이 계열사 제품을 사들여 그대로 판매하고 있다.

통행세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5년간(2014∼2018) 이수엑사켐의 ‘특수관계자 매입량과 전체 매출액’을 살펴보면, 이수엑사켐은 2014년 1309억원어치의 물량을 매입해 153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15년과 2016년 매입량은 900억원대서 800억원대로 감소하면서 매출은 1340억원대 보합세를 이뤘다. 이듬해인 2017년 매입량은 900억원대로 다시 회복됐고, 매출은 1600억원대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제품 매입량을 1151억원으로 크게 늘렸고, 매출 역시 2068억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설립 이후 최대 매출이었다. 이수화학의 제품 매출과 이수엑사켐의 수익이 맞물리는 셈이다.  오너 개인회사의 수익이 그룹 주력 자회사와의 내부거래에서 비롯된다는 해석이다.

같은 기간 이수화학이 이수엑사켐의 매출원가를 차지하는 비율은 2014∼2016년 90%, 80%, 70%대로 하락하다가 2017년과 2018년 60%대로 내려앉았다. 감소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까지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이수엑사켐은 이수화학 외에도 그룹 계열사 ㈜이수와 그 종속기업인 이수시스템서 10억원가량의 제품을 구입하고 있다.

단순 구조
통행세?

이수화학은 이수엑사켐의 재무적 상황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수엑사켐은 지난해에만 이수화학에 254억원의 외상값을 지고 있다. 지난해 400억원대의 매입채무에 비해 절반가량 줄어들었지만 적지 않은 규모다.

이수엑사켐은 금융기관 차입금 275억원에 대해 이수화학으로부터 지급보증을 받고 있다. 이수화학은 직전년도 이수엑사켐의 차입금 129억원에도 지급보증을 서줬다.

이수엑사켐은 눈총을 받고 있는 매출 구조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매년 배당을 실시하고 있다. 배당금은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김 회장에게 돌아간다.
 

▲ 김상범 이수화학

최근 이수엑사켐의 배당금 총합은 모두 70억원에 근접한다. 세부적으로 배당금과 당시 당기순이익, 배당성향 등을 살펴보면 ▲2011년 9억6000만원(17억원, 60%) ▲2013년 9억6000만원(51억원, 18.80%) ▲2015년 11억2000만원(57억원, 19.65%) ▲2016년 20억8000만원(71억원, 29.18%) ▲2018년 17억6000만원(42억원, 41.34%) 등이다.

이수그룹 세무조사 전후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중견기업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문제를 적극 들여다보겠다고 언급해 귀추가 주목된다.

김상범 회장 개인회사로 ‘그룹 꼭대기’
통행세 논란 꾸준히 지적…쏠리는 이목

조 위원장은 지난달 22일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조찬 강연서 “자산 규모 5조원 미만 기업에 대해서도 과거보다 많은 자료를 통해 부당지원 행위 등을 모니터링하고, 부당한 내부 지원이 있는 경우 법 집행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 위원장은 “국내 기업들은 공정위 제재에 별 관심이 없다”며 “벌칙금과 과징금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공정위가 제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과징금 규모를 이전보다 늘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라 계열사 간 부당지원 행위나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총수 일가 사익편취 행위를 조사해 제재한다. 조 위원장은 지난 9월 취임식서도 “중견기업 집단의 부당한 거래 행태도 꾸준히 감시하고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공정위 언급
중견 주목

<일요시사>는 세무조사에 대한 이수그룹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그룹 측 관계자는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며 “메모를 남겨주면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재차 연락을 시도했지만 “담당자가 외부 출장 중인 관계로 이전 질문에 대한 담당자의 답변을 전달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세무조사에 대한 그룹 측 입장은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수엑사켐 통행세 논란과 관련해 추가 취재에 들어갔지만 그룹 측에선 “담당자가 외부 출장을 나갔다. 추가 질문을 받아도 답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질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공정위 사정권, 첫 중견기업은?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전임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어 중견기업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 역시 재임 시절 감시 폭을 중견기업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공정위는 중견기업 KPX그룹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KPX그룹은 공정위 조사 이전부터 통행세와 관련해 꾸준히 지적을 받았다.

공정위는 양준영 부회장 등 오너 일가 개인회사인 ‘씨케이엔터프라이즈’가 그룹 주력사 ‘KPX케미칼’의 물품을 구입해 다른 계열사에 판매, 통행세를 챙긴 것이 아닌지 조사에 착수했다.

관련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씨케이엔터프라이즈’는 부동산임대업과 도매업을 영위하는 사업체로 지난해 KPX케미칼로부터 52억2000여만원의 물품을 구입했다. 씨케이엔터프라이즈는 그룹 베트남 현지법인 ‘VINA FOAM’에 67억9000여만원의 제품을 판매, 특수관계자 거래를 맺으며 15억여원의 수익을 남겼다.

씨케이엔터프라이즈가 거래의 실질적 역할 없이 중간에 끼어들어 통행세를 걷은 것 아니냐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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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