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화 프로가 만난 사람> 김보은 프로

시니어 무대서 인생 2막을 열다

‘김보은’이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마추어 자격으로 오픈 대회에서 종합 우승과 서울 여자 오픈 3위를 차지한,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였다. 우리는 모두 옛 추억이 있다. 잊고 싶은 기억보다 행복했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사소하든 거대하든 그 기억을 가진 당사자에게는 큰 의미인 것이다. 내 안에서 과거와 현재가 서로 어우러져, 나는 나의 무대였던 골프장 티그라운드에 골프 클럽을 잡은 채로 지금도 서 있다.
 

김= 이기화 프로님, 저 김보은 프로입니다.

이= 제주도 서산 여자 오픈 때 마지막 조에서 함께 쳤던….

 

순간 어떤 강렬한 기운이 몸속으로 훅 들어오는 느낌 받는다. 우리의 시계는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1990년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0년 만에 만난 후배다.

 

김= 저는 그때 고등학교 2학년이고 프로님은 ‘프로’였어요. 제가 그때 종합우승을 하고 박민혜 프로님이 프로부 우승하셨고요.

이= 아~ 아, 그랬었구나.

 


함께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 제주도 아라CC에서 열렸던 서산 여자 오픈 때 우리 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대회 날 선배님은 핑크 모자에 핑크 반바지 흰색 티셔츠를 입으셨죠! 그때도 젠틀하셨죠!

 

잊고 있던 기억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후배의 이야기로 ‘내가 과연 젠틀한가’나를 한번 돌아본다. HUG(허그) 우승했을 때 기쁨을 서로 주고받는 당시의 HUG(허그)가 재현되었다.

 

이= 저는 너무 그동안 힘들게 살았어요. 그 뒤로 골프를 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김보은 프로의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 그곳은 산과 들이 겹겹이 포개진 ‘블랙밸리CC’로 지난 9월2일부터 이틀간 경기가 펼쳐진 챔피언스 대회 장소다. 블랙밸리CC는 인간에게 유익한 생체 리듬의 효과를 제공해주는 해발 450~550m의 태백 도화산 자락에 자리를 잡아 원시림 피톤치드 효과까지 만끽하며 골프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카메라를 들고 시간 여행을 간 필자는 첫 번째 날 경기를 하는 후배와 꼭 한 번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태백산의 구불구불한 옛길을 운전하며 “많은 고생을 했어요”라는 김보은 프로의 말을 되새기면서. 누가 어린 선수의 꿈을 무참히 짓밟았는가?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다는 것이 삶의 전부였던 김보은 프로는 충분히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하고도 남을 만한 성적이 있었지만 그해 선수 선발과정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이후 충격을 크게 받은 그녀는 골프가 싫어졌고 상처만 안고 골프를 떠났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공정한 평가였는가? 필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후 몇 년 후 KL PGA 1995년 106번 고유 넘버를 받고 프로 데뷔를 한다. 그 후 골프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고 있을 즈음 결혼을 하게 된다. 생활고와 여러 어려움으로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녹록치 않은 결혼 생활로 자신의 개인 생활 또는 여가를 보낼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남편의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서 두 아이의 엄마로 아내로 챔피언스 투어에 출전했다. 김 프로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 신민수와 신혜린은 저의 아들과 딸입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이들에게 골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무엇보다 남편한테 고마움을 느끼죠. 아이들과 나의 목표를 향해 성실히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 골프 선수로 다시 성장하는 것 같아 요즘은 너무 행복합니다. 힘들게 지나갔던 모든 시간들조차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나의 삶 일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2 아마추어 자격으로 오픈 대회 우승
서울오픈 3위 등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

시합이 끝나고 2주 후, 우리는 청담동 카페 그롬에서 다시 만나 따뜻한 차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김= 내성적인 성격에 친화력이 없는 저는 선배 프로님들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요즘은 시니어투어하면서 마음도 편해지고 선배 동료들과 친숙하게 지내며 즐겁게 대회에 참여합니다.

이= 2막 인생을 시니어투어 무대 위에 다시 올려놓으셨군요?

김= 저는 투어에 출전하는 선수이자 민수와 혜린이의 골프 코치입니다. 레슨비 지출이 없으니까 아직은 경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아 좋기도 하구요.

이= 부모가 직접 나서서 키운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닌 것 같은데…

김= 기본기만 제가 단단하게 알려주면 능력과 열정으로 본인들이 각자 스스로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엄마의 DNA 운동 기질과 운동 감각을 갖고 태어났을 것입니다. 프로가 되기도 전에 고2 때 이미 아마추어 신분으로 프로 오픈 대회에서 석권하셨잖아요.

김= 1992년 6월 ‘서산 여자오픈 아라CC’에서 종합우승을 했습니다.

이= 아~당시에는 프로 오픈 대회에서 프로선수들을 제치고 아마추어가 우승을 종종 했던 시기입니다.

김= 그렇습니다. 프로 대회보다 주니어들은 대회가 많아 경기력이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있는 시기였죠.


이= 주니어 시합이 활성화되면서 기업인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속에 우리 골프계가 이만큼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김= 그렇습니다. 서산 여자 오픈에서 종합우승을 했는데 그 대회가 지금까지 이어지지 못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이= 함께 같은 조에서 박민혜 프로, 김보은 프로와 함께 쳤던 기억이 나요. 두 선수가 퍼터만 잡으면 거리에 관계 없이 볼이 홀로 빨려 들어가더군요.

김= 그랬었죠. 그 날 버디를 8개 했습니다.

이= 30년에서 3년 모자를 때 저는 핀 가까이 붙여 놓고 퍼터만 잡으면 쩔쩔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김= 제가 인터뷰 중에 선배님들이 편하게 해주셔서 최고의 성적을 냈다고 우승 소감을 말했습니다.


이= 하하하 그랬었군요. 골프 이전에는 어떤 운동을 했었나요?
 

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한 테니스는 중3 때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소년체전 테니스 대회에서 개인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 부모님이 운동선수였나요?

김= 레슬링협회 강화 위원장이셨는데, 소년체전이 끝나는 다음날 골프 연습장으로 저를 데리고 가 바로 전향시키셨습니다.

이= 딸의 운동 소질을 파악한 아버지가 딸의 운동선수 라이프를 구상하셨네요.

김= 골프가 테니스보다 힘들지 않고 재미있었습니다. 테니스는 온종일 뛰고 또 뛰고 쉬는 날도 없어서 힘들었고, 선배들의 엄격한 훈계도 힘들었는데, 골프는 저 혼자 스스로 훈련하고 참견하는 사람이 없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이= 골프는 스스로 노력해서 나만의 것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다시 한 번 정리해 주시죠.

김= 골프는 잘 맞다가도 안 맞을 경우, 코스 안에서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하는 운동입니다.

이= 골프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대목입니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셨는지요?

국가대표 상비군 발탁 충분
탈락 충격받고 골프채 놔

김= 남보다 멀리 정확하게 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스윙이 흐트러집니다. 상대 플레이어가 핀 가까이 붙였을 때 나는 더 가깝게 붙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을 때가 그러합니다.

이= 나만의 신념과 나만의 매끄러운 기술이 있어야 남을 이길 수 있겠죠.

이= 요즘 시니어대회에 출전하는 소감은 어떠신지요?

김= 대회 결과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본선만 들어가도 행복합니다.

이= 남편께서 적극 지원을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김= 저의 남편은 꿈과 야망이 식지 않는 남자입니다. 자기 일에 열정을 가지며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모습을 저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남편으로, 아이 아빠로는 점수를 많이 줄 수가 없네요. 

그러나 의리 있는 남자 중의 남자입니다. 주말 부부이기 때문에 항상 보고 싶습니다. 거의 20년 동안 집안일에 아이들만 키우며 살다가 챔피언스 대회에 참가하면서 바깥세상을 구경하게 되어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듭니다. 예전엔 부모님이 시켜서 재미도 모르고 선수 생활을 해왔지만, 챔피언스 대회는 나 스스로가 간절히 원해서 참여하기 때문에 너무 재미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골프 세계에 입문하게 해주신 부모님께 참회와 감사함을 갖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근육으로 첫날 베스트 스코어를 치고도 본선 경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몇 번 반복했습니다. 지금은 마음도 몸도 많이 안정을 찾았고 선배 동료들, 아름다운 골프 스토리가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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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