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울대학 발전기금 강요 의혹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10.28 11:28:39
  • 호수 12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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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 값 학교에 기부하라고?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대학교 입학정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에 비수도권 지방대학들은 각기 다른 생존전략을 펼치고 있다. 남서울대학교는 ‘만원의 행복’ 캠페인을 진행했다. 학교 측은 재학생들에게 해당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는 메일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메일을 받은 재학생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남서울대학교 전경

최근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구조 조정’이라는 칼바람을 맞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수년 내 대학 입학생은 12만명 이상 급감하기 때문에 각 대학교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이 추세라면 조만간 비수도권 대학의 40%가 향후 5년 이후 문을 닫거나 아니면 40%에 이르는 학생정원 감축을 감수해야 한다. 

대학발전기금 
강제후원 논란

지난 18일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는 “2019년 현재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을 포함한 대학 입학정원은 49만명이지만, 교육부가 8월6일 대학혁신지원방안 발표서 언급한 바와 같이 5년 뒤인 2024년에는 지금보다 입학정원이 12만4000명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2019년 기준으로 수도권 입학정원이 19만명(서울 8만8000명 포함)이고 비수도권 입학정원은 30만명”이라며 “우리나라 대학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중심으로 입학 지원을 수직적으로 서열화하고 있어 비수도권 대학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조는 “2024년 입학생 12만4000명 감소가 주로 비수도권에 일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이는 비수도권 대학 전체 정원의 41%에 해당한다”며 “지금도 재정이 어려운 상황서 학생 수가 급감하면, 주로 등록금에 재정을 의존하는 사립대학 중에 견딜 수 있는 대학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단순히 표현하면 최소한 지방대학 40%가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 지방대학과 지역 고등교육 기반, 더 나아가 해당 지역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재앙 수준의 위기가 수년 뒤에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총체적인 대학과 고등교육의 위기상황이지만 정부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전국 고등교육의 13%를 담당하고 있는 부산과 경남지역 대학의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 상황을 타파하고자 충남 천안에 위치한 남서울대학교(이하 남서울대)는 캠페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달 18일 남서울대 도약을 위한 학교발전 자문위원회 출범식을 개최, 모교사랑 ‘만원의 행복’ 캠페인을 진행했다.

수도권 입학정원 떨어져 지방대 직격탄
학생·교직원 등에 ‘만원 캠페인’ 메일

만원의 행복 캠페인이란 모교를 사랑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최소 1만원 이상 해당 계좌로 입금하면 매달 학교 발전기금이라는 명목 하에 후원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날 윤승용 남서울대 총장은 “재학생·동문·교수로 이루어진 대학구성원의 지혜를 모아 수개월 동안 산고 끝에 새로운 도약을 위한 학교발전 자문위원회 출범식을 갖게 됐다”며 “모두 힘을 모아 대학 발전이라는 비전을 앞당겨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 달 뒤 남서울대학은 공격적으로 기부금 후원 모집에 나섰다. 10월17일부터 재학생을 비롯해 교직원 등을 대상으로 메일로 만원의 행복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는 메일을 전송한 것이다.

메일은 ‘NSU 만원의 행복에 동참해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전송됐다.


해당 메일에는 ‘남서울대학은 이러한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남서울 가족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상생발전 할 수 있는 남서울인 만원의 행복 동생 프로그램을 시행하고자 한다. 지금까지도 많은 분께서 학교발전기금 출연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시고 있으나, 지난달 남서울대 발전자문위원회 출범식을 계기로 온라인뱅킹을 활용해 1만원 이상을 자동이체 방식으로 모금하는 방안을 추진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 윤승용 남서울대 총장

이어 ‘휴대폰이나 컴퓨터서 해당 주소를 입력하면 후원금 자동이체를 할 수 있는 사이트가 열리며 여기에 인적사항과 계좌번호만 입력하면 1분여 만에 절차가 완료된다. 여러분의 정성은 남서울대 발전을 위해 소중하게 사용될 것이다. 또 연말정산 시 소득공제혜택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느닷없이
캠페인 카드

말미에는 ‘1만원은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정도의 비용이다. 남서울대 발전을 매월 커피  한 잔을 후배들에게 사준다는 마음으로 적극 참가해주시기 바란다. 학교 발전을 위해 불철주야 애써주시는 동문회, 교직원, 학생, 학부모님들에게 두 손 모아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늘 하나님의 은혜가 각 가정에 충만하길 기원한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남서울대는 해당 메일을 재학생 전체에게 전송한 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재학생에게는 메일이 전송되지도 않았으며, 다른 재학생에게는 하루 걸러서 똑같은 메일이 2번 이상 전송된 것으로 드러났다.

남서울대 관계자는 “학교에 등록된 메일이 정확하지 않아 전송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 그 점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메일을 다시 한 번 확인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메일은 페이스북 전국 대학생 대나무숲 페이지에 공유되어 남서울대 재학생들에게 퍼졌다. 제보자도 “남서울대는 얼마나 비리를 저질렀길래 총장이 메일로 기부해달라고 난리를 치나요? 만원 정도면 커피값이니 내달라는데”라며 해당 메일을 공유했다. 

남서울대 재학생 A씨는 “해당 메일을 읽어보니 커피 한 잔 하는 돈이니 학교에 기부 좀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학교 비리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렇게 빼돌린 학교 돈 채워서 누구의 배를 불리려나 싶어서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총 76건 적발…대전·충남 사립대 중 최다 건수
아무렇지 않은 듯 “커피값 표현은 비유에 불과”

이어 “비리도 없고 쓸모없는 돈을 쓰지 않았으면 이런 메일을 보낼 일이나 있었을까, 이런 이런 생각도 든다. 많은 학생의 등록금을 받아 가고 학생들은 나라에 빚을 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해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 와중에 커피 한 잔 할 돈을 학교에 기부하면 소득공제도 된다고 말하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학 임직원)본인들 월급서 차감해서 기부했으면 좋겠다”며 “이메일을 받고 기부할 생각도 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현재 자금 상황이나 해결방안은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대뜸 돈을 달라고 하니 강도 같다는 느낌도 든다”고 분노했다. 

재학생 B씨는 “학교 감사 내용을 보면 비정상적인 곳에 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이런 상황서 저희에게 돈을 내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국가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 월 1만원씩 내라고 하는 건 고통을 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또 1만원을 고작 커피 한 잔 값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불쾌했다. 친구들 사이서도 이 표현으로 말이 많았다”고 말했다.
 

▲ 최근 커피 한 잔 값 논란에 휩싸인 남서울대학교

재학생들은 감사결과 비리가 적발됐음에도 불구하고 기부를 요구하는 것 같아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또 1만원을 커피 한 잔 값이라고 표현하는 데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공개한 2008∼2019년 현재까지 사립대학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339개 사립대학에 회계부정 등으로 적발된 건수가 4528건이고 비위 금액은 4177억원에 달했다. 

충남에서는 남서울대학가 76건이나 적발돼 대전·충남 사립대 중 최다 건수를 기록했다. 남서울대는 지난해 2월 종합감사서 ▲수익용 기본재산 관리 부적정 ▲장기 미등기 부동산 과징금 등 교비회계 집행 ▲교수협의회 창립식 방해 등 34건이 적발돼 이 중 14건, 3억400만원의 재정조치를 받았다. 

‘만원의 행복에
동참해주세요!’

대표적으로 남서울대는 지난 2015년 8월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천안시청으로부터 학교법인 성암학원에 부과된 ‘충남 **시 **읍 **리 65-2’ 등 33필지 부동산 장기 미등기에 따른 과징금 합계 13억2200여만원을 교비회계(등록금회계)서 집행하는 등 2015년 8월17일부터 2017년 10월17일까지 법인 귀책 사유가 있고 학교 교육에 직접 필요한 경비가 아닌 부동산 장기 미등기에 따른 과징금 및 관련 행정 소송 수행경비 등 13억4500여만원을 교비회계서 집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서울대 재학생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해당 메일과 게시글에 관해 재학생들의 불만이 커지기 시작하자, 하루 뒤인 18일 페이스북 남서울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지에 추종호 대외 국제교류처 교수가 글을 올렸다. 

이 글은 “10월17일 전송된 총장님의 레터로 인해 학우분들의 많은 당황스러움을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 이에 대해 학우분들이 문의를 하셨고, 학생회 측에서 이글과 관련해 담당부서 및 담당자분께 이 상황에 대해 설명드렸다”고 게시했다. 이어 “저는 본교 대외국제교류처부처장 스포츠비즈니스학과 추종효 교수이다. 본교에 재직중이며, 스포츠비즈니스학과 95학번 동문이기도 하다.
 


이번 NSU만원의 행복 동행과 관련해 우리 학생들의 우려 목소리가 많아 글을 남긴다. 이 행사는 남서울대학교 총동문회와 대외 국제교류처서 학교 발전과 학생들의 복지증진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소액 기부 행사”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달 18일 ‘남서울대학교 발전을 위한 자문위원회 출범식’에 이사장님, 총장님, 이하 지역사회 인사들께서도 함께 참여해 첫 출발을 했다. 행사 당일 총동문회장님께 1000만원이라는 거금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기탁해주셨으며, 총동문회서도 500만원, 그 이외에 많은 분이 남서울대 발전을 위해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타대학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소액기부 발전기금 모금을 우리 남서울대가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재학생 여러분께서 걱정하고 있는 우려하는 부분들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모금  된 발전기금들은 우리 남서울대 진일보 발전을 위한 디딤돌로의 역할 수행과 더불어 온전히 학생들의 복지와 장학기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NSU 만원의 행복 동행은 어디까지나 당사자 자율 의사에 진행되는 것이며 학생들에게 부담을 느끼게 한 점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우리 남서울대학교와 총동문회에서는 학교의 발전을 위해 일만 학우들과 동반성장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남서울대 관계자는 “요즘 국내뿐 아니라 외국대학교들이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달 발전기금을 모으기 시작했지만 큰 기대만큼 많이 모이지는 않았다. 물론 후원해주신 분도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캠페인을 지속했고 메일로도 전송했다”고 말했다.

“강요 아니다”
학교 측 일축

이어 “절대 강요로 하는 게 아니라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분들이라면 재학생, 교직원, 졸업생 등 다양하게 후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액수는 아직 초기단계기 때문에 후원금이 많이 모이지는 않았다. 또 재학생들이 ‘커피 한 잔’이라는 표현에 대해 굉장히 불편해한 걸로 아는데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서민적인 음식으로 ‘짜장면 가격’이라는 표현을 쓴 것처럼 지금은 시대가 바뀐 만큼 커피 한 잔이라고 비유를 한 것이다. 사전적 의미가 아닌 이류적 표현으로 뜻을 전한 것이라고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동양대 발전기금 의혹
교직원에 강제징수? 제출된 내역도 허위

학교발전기금을 교직원들에게 강제징수했다는 의혹을 받은 동양대학교가 ‘발전기금 내역을 제출하라’는 국정감사 위원의 요청에 허위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기금 내역에 허위사실이 확인되면 현장조사 등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4∼2018년 동양대 학교발전기금 모금 현황’ 자료를 보면 2017년의 경우 교직원들이 낸 기금은 1139만2000원으로 명시됐다.

박 위원의 요청을 받은 교육부가 동양대에 공문을 보내 제출받은 뒤 재차 의원실에 전달한 것이다. 자료에 적힌 연도별 기금 규모와 내역 등은 동양대가 직접 작성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발전기금의 경우 사립학교가 교육부에 내역 등을 보고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양대가 제출한 자료는 허위였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동양대의 2013∼2017년 사이 발전기금 내역을 살펴볼 때, 2017년의 경우 2월에만 190건이 넘는 발전기금으로 들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발전기금 납부자 명단 중 A 교수(1000만원), B 교수(2000만원), C 교수(1000만원) 등이 낸 금액만 4000만원이 넘는다. 표창장 위조 의혹을 받는 정경심 교수도 당시 1000만원을 납부한 것으로 돼있으며 최성해 총장도 2억8000만원을 낸 것으로 나와 있다. 

교수들이 낸 금액이 무려…
회계처리 달리 했을 가능성

전직 동양대 직원 증언에 따르면 학교 측은 2016년 말∼2017년 초 사이 “교수는 1000만원, 일반 교직원은 500만원의 발전기금을 내라”고 종용했다. 2017년 기준 동양대 교수 및 정규직 숫자는 200명이 훌쩍 넘었다. 전직 동양대 일부 교수 등은 “기금을 내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 등을 당하는게 두려워 모든 교직원이 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살펴보면 2017년 2월 1000만원의 기부금을 낸 납부자는 총 126명으로, 금액만 합산해도 10억이 훌쩍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동양대가 기금 규모를 많이 축소해 허위 제출한 배경으로는 당시 회계처리 문제 탓으로 추측된다.

학교발전기금은 엄연히 ‘기부금’에 속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회계 절차를 통해 납부됐다면 납부자들이 세액공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동양대의 경우 기금을 걷을 때 세액공제가 안  되는 것으로 확인돼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일었다.

동양대가 2017년에 명목상으로는 발전기금을 걷으면서 실제로는 회계처리를 다른 항목으로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박찬대 의원은 “최성해 총장의 가짜학위 행사 의혹과 재정운영 문제, 허위 기부금 자료 제출 등 대학의 총체적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교육부는 학교운영 전반에 대해 종합감사 등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동양대가 허위 자료를 제출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실제 걷은 기금 규모와 학교 공시정보에 기재된 기금 내역이 맞지 않는 등 문제가 보인다면 현장조사 등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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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