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잡는’ 열차 사망사고 백태

그냥 죽게 내버려 둘 건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전사고는 아차하는 순간 일어난다. 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수칙을 만들고 이를 준수하도록 법으로 강제한다. 그럼에도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보수작업을 하던 인부가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지난 22일 오전 1014분경 경남 밀양시 밀양역 200m 부근 하행선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3명이 열차에 치였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들은 철도궤도 수평작업을 하던 중 서울발 부산행 새마을호 열차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고현장 600m 앞에서 신호원이 노동자들에게 열차가 온다는 신호를 주고 무전도 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드릴작업의 소음으로 인해 미처 듣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코레일과 부산지방철도경찰대는 노동자들의 안전 매뉴얼 준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수칙 있어도

밀양역 사고 말고도 선로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다치거나 죽는 사고는 자주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2일에도 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역 선로서 점검 업무를 하던 노동자 A씨가 열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516분께 금천구청역서 천안 방면으로 하행하던 열차에 치인 A씨는 끝내 숨졌다.

A씨는 외주업체 소속으로 사고 당시 선로 옆에서 광케이블 공사를 위한 사전조사 작업 중이었다. 코레일은 경부선 금천구청역과 수원역 사이의 모든 구간에 대해 공사를 해달라고 A씨가 소속된 외주업체에 사업을 발주했다.


광케이블 작업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 밤 시간대에 하는 게 일반적인데 A씨는 낮 시간대에 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다.

2017년에는 수도권 지하철서만 3건의 유사 사고가 발생했다. 201712월 지하철 1호선 온수역서 선로 작업을 하던 30대 노동자 B씨가 열차에 치여 숨졌다. 사고 당시 그는 동료 2명과 함께 배수로 칸막이 작업 중이었다. B씨는 오전 830분부터 오후 5시까지로 예정된 작업시간보다 30분가량 먼저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출근 3일 만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앞서 9월에는 지하철 4호선 한대앞역 당고개행 선로서 청소근로자 1명이 승강장에 진입하는 열차에 치여 숨졌다. 사고 당시 C씨는 코레일의 청소용역 위탁업체 소속이었는데 승강장을 이동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하다가 미처 못보고 ‘쾅’
외주노동자 사상사고 많아

국토부는 지난해 8월 이 사고와 관련해 행정처분심의위원회를 열어 코레일에 과징금 1억원을 부과했다. C씨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통로를 설치하는 등 위험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은 근로자에 대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C씨가 소속돼있던 위탁업체와 현장소장에 대해 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바 있다.

철도안전법의 안전관리 체계는 철도운영자 등이 업무를 위탁한 경우에도 위탁자의 안전관리 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위원회는 코레일이 위탁업체의 위법 행위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20176월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서 선로 보수작업 중이던 50대 노동자 D씨가 동묘앞역행 열차에 충돌해 사망했다. D씨는 열차의 선로 진입 여부를 확인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자정께부터 새벽 4시까지 진행 예정이던 공사 안내 표지판을 세우기 위해 선로를 걷다가 사고를 당했다.
 


20169KTX가 지진으로 연착됐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노동자들이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등 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사고 당일 자정이 넘은 시각, KTX 경부선 부근 선로서 자갈 교체 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노동자 2명이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이 구간은 평소 자정 이후에는 열차가 달리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사고 전날인 912일 경주서 일어난 지진 때문에 열차가 연착되면서 밤늦게까지 열차가 운행됐다. 당시 경주 지진은 규모 5.8,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한반도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열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됐다.

2016년에는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19세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 2016528일 오후 6시경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서 E군이 열차에 치였다. 당시 용역업체에 소속돼있던 E군은 열차와 승강장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 사고는 그가 작업을 시작한 지 2분 만에 일어났다.

구의·강남·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 사고 ‘판박이’

작업 매뉴얼대로라면 21조로 수리했어야 하지만 또 다른 역에서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가 접수돼 E군은 혼자 작업을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사고 이후 E군의 소지품서 육개장 사발면이 나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작업 현장서 반복되는 외주업체 직원의 사고 소식에 죽음의 외주화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재 이정원 전 서울메트로 대표와 E군이 소속돼있던 외주업체 대표는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사고를 유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이 전 대표와 외주업체 대표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바 있다. 두 사람은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앞서 2013년 성수역, 2015년 강남역서도 스크린도어 사고가 있었다. 20131월 성수역서 일어난 사고도 똑같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가 들어오는 열차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했다.

20158월에는 강남역 교대 방면 스크린도어 고장접수를 받은 외주업체 직원 F씨가 수리작업을 하던 중 선로로 진입하는 전동차 사이에 끼여 그 자리서 숨졌다. 지하철 운행중 수리를 하지 않아야 하고, 21조로 작업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회부의장 주승용 의원이 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산업재해 사상자 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부상자 558, 사망자 25명 등 총 58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25명 중 외주공사 산재 사망자는 9명으로 36%였다.

끊이지 않아

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 공공기관 발주공사 재해현황에 따르면 22개 주요 공공기관 중 코레일의 재해율(근로자 100명당 재해자)3.4%로 가장 높았다. 1만명당 사망률도 7.5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작업현장에 투입된 노동자 100명 중 3명이 재해를 입고, 1만명당 7명이 사망했다는 뜻이다.

주 부의장은 코레일 내 산재사고, 발주공사 산재사고가 매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코레일은 외부노동자들에게 업무에 필요한 물품도 지급하지 않는 등 위험한 상황 속에 노동자들을 방치하고 있다코레일은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의식을 높여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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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