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잡는’ 열차 사망사고 백태

그냥 죽게 내버려 둘 건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전사고는 아차하는 순간 일어난다. 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수칙을 만들고 이를 준수하도록 법으로 강제한다. 그럼에도 안전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보수작업을 하던 인부가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지난 22일 오전 1014분경 경남 밀양시 밀양역 200m 부근 하행선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3명이 열차에 치였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들은 철도궤도 수평작업을 하던 중 서울발 부산행 새마을호 열차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고현장 600m 앞에서 신호원이 노동자들에게 열차가 온다는 신호를 주고 무전도 한 것으로 파악됐지만 드릴작업의 소음으로 인해 미처 듣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코레일과 부산지방철도경찰대는 노동자들의 안전 매뉴얼 준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수칙 있어도

밀양역 사고 말고도 선로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다치거나 죽는 사고는 자주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2일에도 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역 선로서 점검 업무를 하던 노동자 A씨가 열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오후 516분께 금천구청역서 천안 방면으로 하행하던 열차에 치인 A씨는 끝내 숨졌다.

A씨는 외주업체 소속으로 사고 당시 선로 옆에서 광케이블 공사를 위한 사전조사 작업 중이었다. 코레일은 경부선 금천구청역과 수원역 사이의 모든 구간에 대해 공사를 해달라고 A씨가 소속된 외주업체에 사업을 발주했다.


광케이블 작업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 밤 시간대에 하는 게 일반적인데 A씨는 낮 시간대에 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다.

2017년에는 수도권 지하철서만 3건의 유사 사고가 발생했다. 201712월 지하철 1호선 온수역서 선로 작업을 하던 30대 노동자 B씨가 열차에 치여 숨졌다. 사고 당시 그는 동료 2명과 함께 배수로 칸막이 작업 중이었다. B씨는 오전 830분부터 오후 5시까지로 예정된 작업시간보다 30분가량 먼저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출근 3일 만에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앞서 9월에는 지하철 4호선 한대앞역 당고개행 선로서 청소근로자 1명이 승강장에 진입하는 열차에 치여 숨졌다. 사고 당시 C씨는 코레일의 청소용역 위탁업체 소속이었는데 승강장을 이동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하다가 미처 못보고 ‘쾅’
외주노동자 사상사고 많아

국토부는 지난해 8월 이 사고와 관련해 행정처분심의위원회를 열어 코레일에 과징금 1억원을 부과했다. C씨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통로를 설치하는 등 위험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은 근로자에 대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C씨가 소속돼있던 위탁업체와 현장소장에 대해 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바 있다.

철도안전법의 안전관리 체계는 철도운영자 등이 업무를 위탁한 경우에도 위탁자의 안전관리 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위원회는 코레일이 위탁업체의 위법 행위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20176월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서 선로 보수작업 중이던 50대 노동자 D씨가 동묘앞역행 열차에 충돌해 사망했다. D씨는 열차의 선로 진입 여부를 확인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자정께부터 새벽 4시까지 진행 예정이던 공사 안내 표지판을 세우기 위해 선로를 걷다가 사고를 당했다.
 


20169KTX가 지진으로 연착됐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노동자들이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등 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사고 당일 자정이 넘은 시각, KTX 경부선 부근 선로서 자갈 교체 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노동자 2명이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이 구간은 평소 자정 이후에는 열차가 달리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사고 전날인 912일 경주서 일어난 지진 때문에 열차가 연착되면서 밤늦게까지 열차가 운행됐다. 당시 경주 지진은 규모 5.8,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한반도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사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열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됐다.

2016년에는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19세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 2016528일 오후 6시경 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서 E군이 열차에 치였다. 당시 용역업체에 소속돼있던 E군은 열차와 승강장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사망했다. 사고는 그가 작업을 시작한 지 2분 만에 일어났다.

구의·강남·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 사고 ‘판박이’

작업 매뉴얼대로라면 21조로 수리했어야 하지만 또 다른 역에서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가 접수돼 E군은 혼자 작업을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사고 이후 E군의 소지품서 육개장 사발면이 나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작업 현장서 반복되는 외주업체 직원의 사고 소식에 죽음의 외주화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재 이정원 전 서울메트로 대표와 E군이 소속돼있던 외주업체 대표는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사고를 유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이 전 대표와 외주업체 대표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바 있다. 두 사람은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앞서 2013년 성수역, 2015년 강남역서도 스크린도어 사고가 있었다. 20131월 성수역서 일어난 사고도 똑같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가 들어오는 열차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했다.

20158월에는 강남역 교대 방면 스크린도어 고장접수를 받은 외주업체 직원 F씨가 수리작업을 하던 중 선로로 진입하는 전동차 사이에 끼여 그 자리서 숨졌다. 지하철 운행중 수리를 하지 않아야 하고, 21조로 작업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국회부의장 주승용 의원이 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산업재해 사상자 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부상자 558, 사망자 25명 등 총 58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25명 중 외주공사 산재 사망자는 9명으로 36%였다.

끊이지 않아

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 공공기관 발주공사 재해현황에 따르면 22개 주요 공공기관 중 코레일의 재해율(근로자 100명당 재해자)3.4%로 가장 높았다. 1만명당 사망률도 7.5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작업현장에 투입된 노동자 100명 중 3명이 재해를 입고, 1만명당 7명이 사망했다는 뜻이다.

주 부의장은 코레일 내 산재사고, 발주공사 산재사고가 매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코레일은 외부노동자들에게 업무에 필요한 물품도 지급하지 않는 등 위험한 상황 속에 노동자들을 방치하고 있다코레일은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의식을 높여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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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