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톡스 vs 대웅제약’ 피 튀는 보톡스 전쟁 막전막후

둘 중 하나는 거짓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톡스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양사는 균주 도용 여부를 두고 그야말로 혈전을 벌이고 있다. 결과에 따라 어느 한 쪽은 ‘거짓말을 했다’는 치명상을 입게 될 전망이다.
 

▲ 윤재승 대웅제약 회장과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

메디톡스는 지난 2006년 보툴리눔 톡신 제품 ‘메디톡신’을 출시했다. 보툴리눔 톡신은 흔히들 알고 있는 미용 성형 시술용 의약품 ‘보톡스’를 일컫는다. 대웅제약은 그보다 늦은 2014년 ‘나보타’를 선보인 후발주자다.

균 출처
물음표

발단은 지난 2016년 국정감사서 비롯됐다.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기동민 의원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2010년 국내서 보툴리눔 독소 균주를 발견해 신고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역학조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보툴리눔 독소는 1g의 소량으로 100만명을 살상할 수 있다. 기 의원의 요지는 보툴리눔 독소의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국정감사를 통해 대웅제약의 균 출처가 드러났다. 대웅제약은 회사 근처 마구간 흙에서 보툴리눔 독소를 발견했다.

메디톡스는 이른바 ‘균주 기원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보톡스 원료인 균주의 출처를 명확히 규정하자는 것이었다. 대웅제약의 ‘나보타’가 그 대상이었다.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가 직접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 대표는 자사 보톡스 제품의 균주 370만개 염기서열을 모두 공개했다.

정 대표는 “보톡스 균은 발생 지역에 따라 유전정보에 차이를 보인다”며 “미국서 들여온 메디톡스 균과 회사 근처 마구간서 발견했다는 대웅제약 균 정보가 일치하는 것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웅제약 등도 똑같이 염기서열을 공개하라는 압박이었다.

정 대표는 대웅제약 균주에 ‘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을 지목했다. 정 대표는 “홀은 미국 위스콘신대, 엘러간, 메디톡스만이 보유하고 있는 균주”라며 대웅제약의 균 출처에 물음표를 찍었다.

설전이 법적 분쟁으로…수년간 제자리
“뺐어갔다” vs “찾아냈다”한치 양보 없어 

대웅제약은 반박에 나섰다. 보툴리눔 균주는 자연계에 널리 존재하는 토양미생물이라는 것. 보톨리눔 균을 토양서 분리 동정한 사례에 관한 논문이 그 근거였다. 식품의약처(이하 식약처)가 중재에 나섰지만 매듭짓지 못했다.

메디톡스는 보툴리눔 균주의 출처가 의심된다며 경찰에게 대웅제약 수사를 의뢰했지만 모두 무혐의로 내사 종결됐다. 겉으로 보기에 ‘보톡스 갈등’은 가라앉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오히려 양사 간 신경전이 대결 구도로 치달았다.

2016년 12월 메디톡스는 한 광고를 제작했다. 광고에는 ‘진짜는 말(馬)이 필요없다’ ‘보툴리눔 균주 전체 유전체 염기 서열 업계 최초 공개’라는 문구가 강조됐다. 앞서 대웅제약이 균의 출처를 마구간으로 밝혀둔 상황이었다. 사실상 대웅제약을 겨냥한 광고로 여겨졌다.
 


메디톡스 측은 광고 제작에 대해 국내 보툴리눔 톡신 업계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염기서열 공개가 가장 빠르고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메디톡스는 해당 광고를 신문과 TV, 라디오, 온라인 포털 등에 내보냈다.

메디톡스는 식약처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았다. 식약처는 메디톡스의 TV광고가 약사법과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을 위반했다고 봤다. 식약처는 관련 제품에 1개월 광고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일각에선 메디톡스 측의 광고 제작이 진흙탕 싸움을 부추겼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광고 공격

2017년 5월 대웅제약은 나보타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 허가를 신청했다. 메디톡스는 다음달인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터 법원에 대웅제약과 알페온(대웅제약의 미국 파트너사)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이 자사 보툴리눔 균주를 도용, 수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는 주장이었다.

대웅제약 측은 메디톡스의 ‘발목 잡기’로 일축했다. 대웅제약 측은 “나보타는 알페온을 통해 미국 FDA 허가신청을 완료한 상태”라며 “메디톡스는 미국서 임상 3상 시험도 시작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업계 후발주자 대웅제약이 메디톡스보다 먼저 미국에 진출할 가능성이 소송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미국 법원은 “이번 사건은 미국서 다툴 일이 아니므로 한국 법원서 다루는 것이 적합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법원 판결을 가지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놨다.

대웅제약은 법원 결정을 두고 “민사소송은 부적합하다는 판단”이라며 “소송으로 위협받았던 나보타의 선진국 진출도 힘을 받게 됐다”고 강조했다.

메디톡스 입장은 정반대였다. 메디톡스는 “명령문 어디에도 ‘부적합’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미 법원 판결은 한국서의 소송을 주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 법원은 명령문을 통해 한국서 진행하는 소송을 지켜본 뒤 소송을 받아들일지 결정한다는 입장이었다.

메디톡스는 국내 소송이 불가피하다고 판단, 2017년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메디톡스는 공시를 통해 ‘영업비밀 침해금지 등 청구의 소 제기’라는 제목으로 보툴리눔 균주 및 독소제제 제조기술정보의 사용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에 관한 내용을 게재했다. 보툴리눔 균주 관련 정보가 담긴 문서와 파일을 삭제하고, 나보타 제품과 반제품을 폐기하라는 요구였다.

대웅제약 측은 ‘자사 균주 출처가 이미 여러 차례 정부기관의 실사를 통과한 점’ ‘수사기관 조사에서 무혐의 내사 종결된 점’ 등을 강조했다. 또 소송 진행 시 법정에서 메디톡스의 주장이 허구라는 것을 밝히겠다고 날을 세웠다.
 


지난해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미국 법원은 각기 다른 결정을 내렸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소송은 ‘각하’, 메디톡스와 알페온 등은 ‘유지’였다. 대웅제약 소송은 한국서, 알페온 등의 소송은 미국서 진행하라는 것이다.

메디톡스는 올해 1월 대웅제약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이하 ITC)에 제소했다. 보툴리눔 톡신 균주 도용이 이유였다. 새해부터 양사 갈등에 불이 지펴진 셈이다.

메디톡스는 영업비밀 침해를 주장했다. 전직 직원이 대웅제약에 메디톡스 보툴리눔 균주와 보툴리눔 톡신 제조공정을 넘겼다는 것. 대웅제약은 나보타의 미국 진출을 방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2월 대웅제약의 나보타는 미국시장서 판매될 조짐을 보였다. 나보타가 FDA로부터 최종 품목허가 승인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앞서 메디톡스는 2017년 12월 메디톡스는 FDA에 시민청원서를 제출했다. 나보타의 보툴리눔균 출처가 확인되지 전까지 허가를 보류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FDA는 이를 거부했다.

나보타 심사 과정서 부정행위가 발견되지 못했고, 보툴리눔균 전체 유전자 정보를 공개할 필요성이 없었다는 점이 청원 거부로 이어졌다.


해외 소송
국내 소송

같은 해 3월 ITC는 공식 조사 실시를 의결했다. 양사는 자신감을 보였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지적재산권을 탈취해 나보타를 개발했다는 것이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웅제약은 시장방어 전략을 재차 강조하며 “ITC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미국서 기업들이 경쟁 제품이 출시될 때 통상적으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대웅제약은 “근거 없는 주장에 무고의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고 덧붙였다.

조사에 착수한 ITC는 지난 5월 대웅제약에 나보타 균주 등을 메디톡스 지정 전문가에게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ITC는 ‘증거개시 절차’를 두고 있다. 증거 개시 절차란 소송 관련 자료를 상대방이 요구할 경우, 제출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핵심쟁점인 균주의 실체가 드러날 조짐을 보이자 양사의 공방전은 여느 때보다 치열해졌다. 지난달 15일 공개된 ITC 소송보고서는 결정적이었다.

지난 7월 ITC 결정에 따라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전문가를 통해 각각의 균주에 대한 감정시험을 진행했다. 이후 메디톡스 균주 감정 결과 보고서와 대웅제약 반박 보고서가 ITC 재판부에 제출됐다. 해당 보고서는 양사 대리인들의 합의를 통해 결론 부분이 공개됐다.

대웅제약 측은 균부 분석 결과, 유전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입증했다고 자신했다. 반면 메디톡스 측은 돌연변이라고 반박했다.

대웅제약 측 전문가 데이비드 셔먼 박사는 전체 유전자 서열분석의 직접 비교를 통해 양사 균주가 여러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밝혔다. 셔먼 박사는 메드톡스 측 분석 방법이 부분적 결과만 도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는 게 대웅제약의 설명이다. 반면 메디톡스 측 전문가인 폴 카임 박사는 일부 차이는 균주 증식 과정에서 나타난 돌연변이 때문이라고 봤다.

무대 가리지 않고 해외서도 소송전
첨예한 입장차 여전…후폭풍 불가피

포자 형성 시험결과에 대해서도 뚜렷한 입장차가 감지됐다. 메디톡스 측 앤드류 피켓 박사의 보고서는 대웅제약 측 감정시험과 동일 조건서 포자감정을 시행, 메디톡스 균주도 포자를 형성한다고 밝혔다.

대웅제약은 “그간 메디톡스가 주장한 사실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메디톡스 균주가 당초 주장한 균주가 아닌 다른 균주였거나 감정에 사용된 균주가 메디톡스가 사용하던 균주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메디톡스는 자사 균주가 어떠한 조건서도 포자를 형성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메디톡스가 대웅제약 균주를 가리켜 토양 분리 동정을 불가능하다고 강조한 까닭이다. 그러나 메디톡스 측 전문가 보고서에 따르면, 대웅제약 측 전문가 감정시험과 동일한 조건에서 메디톡스 균주도 포자를 형성했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의 균주 도용을 주장했다. 메디톡스 측 전문가 폴 카임 교수는 “대웅제약 균이 한국 자연환경에서 분리 동정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밝혔다. 메디톡스는 이를 근거로 “대웅제약 보툴리눔 균주가 메디톡스 보툴리눔 균주서 유래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 대웅제약 본사

메디톡스 측은 “대웅제약의 반박보고서는 한국토양서 균주를 분리 동정했다는 대웅제약 주장을 전혀 뒷받침하지 못하는 자료”라고 꼬집었다. 특히 메디톡스 측은 대웅제약이 유리한 정보만 공개한다고 비판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대웅제약은 규제기관에 자사 균주가 포자를 형성하지 않는다고 제출하고,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이례적인 실험 조건서 포자가 형성됐다는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 공개한다”며 “대웅제약이 시행한 이례적 실험조건으로 메디톡스의 균주도 포자가 형성됐다는 결과를 ITC에 제출했음에도 정작 제소과정에서는 어떤 반박도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맞다”
“아니다”

한편 ITC는 재판 결과에 따라 보툴리눔 톡신의 수입과 유통 금지 등의 조치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업계 안팎에선 재판 결과에 따라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툴리눔 균주를 훔쳤다는 메디톡스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대웅제약은 도덕성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국내 토양서 균주를 발견했다는 대웅제약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메디톡스의 경쟁사 발목 잡기가 수면 위로 부상, 논란을 야기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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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범죄 신흥시장 라오스는 지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라오스가 동남아의 마지막 프런티어이자 신흥 투자처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국제 범죄자들의 주요 거점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수력발전과 광물, 인프라 개발을 앞세운 투자시장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반면, 불법 콜센터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 범죄 산업도 동시에 팽창하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투자와 범죄가 교차하는 이 구조는 라오스를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국제 금융·사이버 범죄의 회색지대로 바라보게 만든다. 최근까지 라오스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과거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식해 온 단순 전화 사기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대거 이동 범죄 온상 라오스 스스로도 더 이상 ‘내륙 봉쇄국’이 아니라 ‘육상 연결국’을 자임하며 철도와 도로, 에너지, 도시 인프라를 국가 도약의 기반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 밝은 전면 뒤에는 국제 범죄도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지고 있다. 투자시장과 범죄 산업이 동시에 팽창하는 이중 구조다. 라오스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투자사기는 전화와 메신저, SNS를 결합한 다층적 구조가 정착됐다. 가짜 투자 플랫폼과 암호화폐, 외환(FX) 거래를 미끼로 한 고도화된 금융사기가 핵심 수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범죄는 국경 지대와 특별경제구역을 거점으로 운영된다. 미얀마·태국과 맞닿은 북부지역 경제특구 일대는 외국 자본과 외국 인력이 밀집한 구조를 악용하기 쉬운 환경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겉으로는 카지노나 리조트, 개발사업사무소로 위장하지만, 내부에서는 각국 언어를 담당하는 인력이 분업 형태로 사기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발송한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내 대규모 범죄조직들이 현지 단속을 피해 라오스 등 인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도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양기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라오스에 체류 중인 한국인 민간봉사단체 관계자는 국제 통화에서 “라오스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캄보디아 범죄조직의 라오스 이동 가능성을 물었지만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태국발 마약 범죄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캄보디아발 범죄조직까지 유입되면 감당이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후임 대사를 조속히 임명하고 경찰·영사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 범죄들이 ‘라오스 현지 범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전역, 유럽과 북미까지 확산돼있다. 라오스는 범죄가 실행되는 물리적 공간일 뿐, 자금은 국제 금융망과 가상자산을 통해 순식간에 국경을 넘는다. 캄 ‘프린스그룹’ 라 ‘킹스 로만스’ 해외투자 뒤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가짜 투자 수익 인증 화면과 조작된 거래 내역을 제시해 신뢰를 쌓고, 일정 금액 이상이 입금되면 추가 투자나 긴급 송금을 요구한 뒤 출금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반복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라오스 광산 개발, 에너지 프로젝트, 부동산 사업을 사기 시나리오에 끼워 넣어 ‘현지 실물 투자’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범죄 구조가 인신매매와 강제노동과 결합돼있다는 점이다. 고수익 IT·마케팅 일자리를 제안받고 라오스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여권을 압수당한 채 콜센터에 감금돼 사기를 강요받는 사례가 국제 언론과 인권단체 보고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났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폭행과 협박이 뒤따르고, 탈출을 시도하면 몸값을 요구받는 구조도 확인됐다. 이는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국제적 인권 범죄이자 조직범죄로 분류되는 이유다.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일대에 밀집했던 대형 범죄단지가 해체되며 조직이 점조직 형태로 흩어지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현지 단속 이후 웬치로 불리는 범죄단지 상당수가 텅 비었고, 이들 조직원 상당수가 라오스와 태국, 미얀마 접경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은 과거 세계적인 마약 생산지였지만, 최근에는 다국적 피싱 사기의 온상지로 탈바꿈했다. 울창한 산림 지역에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장비를 설치해 전 세계를 상대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라오스 북부 보케오 지역에는 ‘범죄단지’를 넘어선 ‘범죄마을’도 존재한다. 중국 카지노 그룹 킹스 로만스가 99년간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을 운영하는 이 지역은 사실상 외부 접근이 차단된 치외법권에 가깝다. 불법도박과 마약 밀매, 스캠 사기, 암호화폐 자금세탁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의혹이 제기돼왔고, 미국은 이미 2018년부터 킹스 로만스를 초국가범죄 기업으로 지정해 제재하고 있다. 캄보디아에 프린스그룹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킹스 로만스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경 넘는 나쁜 놈들 마약 범죄 역시 라오스의 또 다른 어두운 단면이다. 최근 라오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한 채 출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한국인이 급증했다. 비엔티안과 지방 공항에서 잇따라 체포된 사례들은 대부분 헤로인과 케타민, 필로폰 등 대량의 마약을 포함하고 있다. 라오스 형법은 마약 범죄에 극히 강경하다.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고, 미수나 공범 역시 동일하게 처벌된다. 실제로 2019~2020년 비엔티안 공항에서 필로폰을 소지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은 현재까지도 장기 복역 중이다.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이 “타인으로부터 물건을 위탁받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배경이다. 라오스 정부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불법 콜센터 단속과 외국인 범죄자 검거, 장비 압수와 추방 조치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단속이 강화될수록 범죄조직이 인접 국가로 이동하는 ‘풍선효과’는 반복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범죄의 위치만 바뀔 뿐 산업 자체는 유지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범죄 환경은 라오스 투자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라오스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 요소를 갖춘 국가다. 수력발전과 광물, 재생에너지, 일부 농업·임산물 가공 분야는 실질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 절차의 불투명성, 계약 집행의 불확실성, 외환 규제와 금융 접근성 문제는 오래된 리스크다. 여기에 사이버 범죄가 결합되면서 정상 프로젝트와 사기성 프로젝트의 경계는 더욱 흐려지고 있다. ‘정부 승인’ ‘양허권 보유’ ‘현지 고위 인맥’ 같은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공식 검증 없이는 실체를 가늠하기 어렵다. 동남아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라오스의 개발 모델 역시 기회와 위험이 교차한다. 인프라를 외부 차관과 ODA로 먼저 구축하고 성장을 통해 상환하는 구조는 철도와 도로, 병원, 상수도 같은 가시적 성과를 냈다. 그러나 정부 부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0% 후반으로 추정되고, 낍(KIP)화 약세는 상환 부담을 키우고 있다. 빚으로 지은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산이 아니라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는 인프라가 완공돼도 운영 시스템과 인력, 수요가 따라오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다만, 한국 정부는 ‘메콩강 내륙국’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라오스를 지목했다. 해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 개발 속도가 더딘 메콩강 유역 내륙국 시장을 선점해 경제협력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정상회담 대상국으로 라오스를 선택한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라오스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것은 12년 만이다. 라오스는 대표적인 메콩강 유역의 내륙 국가로 꼽힌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은 중국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윈난성과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3대 교역국'으로 꼽히는 베트남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의 해양국과 활발한 경제·문화·인적 교류를 해온 반면 라오스와 미얀마, 캄보디아 등 메콩강 유역 내륙국과 비교적 교류가 적었다. 조원득 국립외교원 아세안인도연구센터장은 “(한국의) 경제협력이나 투자는 베트남 등에 집중됐고 동남아의 내륙 국가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간 (한국이) 한미일 외교에 집중하다 보니 (내륙국에 대한) 정치·외교적인 관심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범죄로 얼룩 이면엔 ‘기회의 땅’ 무궁무진 천연 광물과 수력발전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메콩강 유역 국가들은 베트남처럼 경제적으로 한 단계 높은 층위를 차지하는 국가들과 아닌 국가들로 구분돼있다”며 “메콩강 지역 개발의 최대 수혜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문제가 있고 캄보디아는 온라인 ‘스캠’(사기)으로 대표되는 치안 문제가 있다”며 “한국이 메콩 지역 개발을 위해 손잡고 일할 수 있는 국가는 현재로선 라오스”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해양국들뿐 아니라 내륙국들과 교류·협력 등을 통해 아세안에서 영향력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아세안의 GDP 규모는 약 3조8000억달러(약 5590조원)로 국가로 치면 세계 5위 수준이다. 인구 규모는 6억70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미중 갈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4강’을 넘어 아세안 등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6개월 만에 G7(주요 7개국), 유엔(UN·국제연합)총회,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상생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 및 다자주의 회복에 힘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통룬 주석과의 확대회담에서 “라오스가 통룬 주석의 리더십 하에 내륙 국가라는 지리적 한계를 새로운 기회로 바꿔 역내 교통·물류의 요충지로 발전한다는 국가 목표를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든든한 파트너로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호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확대·발전시켜서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익 보장? 의심부터 결국 라오스의 투자시장과 보이스피싱 범죄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공백과 국경 지대의 느슨한 관리, 외국 자본과 인력 유입이 만들어낸 회색지대라는 동일한 토양에서 자라난 두 개의 얼굴이다. 라오스는 여전히 기회의 땅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이제 철저한 검증과 리스크 관리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투자 제안일수록, ‘이미 현지에서 잘 돌아가고 있다’는 말일수록 냉정하게 의심해야 하는 이유다. 라오스 투자시장의 성장과 국제 범죄 산업의 확산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구조가 낳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결과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