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12)초희

가족간의 정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나리, 그런데 제 입장과 다름없다고 하신 말씀은 무슨 의미인지요.”

“물론 태생에는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면 그대나 나나 똑같다 이 말이오.”

“나으리, 궁금하옵니다.”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 않았소. 그러니 우리 차근차근 풀어나갑시다.”

“그러시면 그 이후의 일을…….”


“그럽시다.”

그 이후의 일

잠시 말을 멈춘 허균이 매창을 바라보다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까지 낳은 어머니께서 지체 없이 한양으로 거처를 옮기셨다오. 아버지와 또 아버지의 전 부인의 소생들이 있는 곳으로 말이오.”

“전 부인의 소생들이요?”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내가 한양으로 왔을 때는 모두 출가한 상태여서 그저 우리 형제들뿐이었다오.”

“하기야, 그 나이 차이라면.”


“균아, 어디 가려고.”

막 대문을 나서려던 순간 뒤에서 누나가 미소를 머금은 해맑은 얼굴로 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무료해서 바깥세상 구경하려는데 누나도 같이 갈래.”

“같이 가는 게 문제가 아니고 어머니께서 지금 찾으셔.”

“어머니가 왜 나를 찾으신다는 말이야.”

“아버지께서 너를 찾으시니까 어머니께서 너를 불러오라고 하셨지.”

아버지라는 말에 균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아버지께서 오셨다는 말이야!”

초희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아버지가 이 이른 시간에 집에 들어오실 수 있나.”

긴장했던 균의 어깨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를 감지했는지 초희가 한걸음 더 치고 나갔다.

“아버지가 그렇게 한가한 분이시더냐.”


“그러면 그렇지. 근데 왜 어머니가 나를 찾으셔.”

“어머니께서 이를 말씀이 있으신 모양이지.”

“일 없어. 나는 가서 멱이나 감으련다.”

“멱 감는다고.”

“그래, 그러니 누나도 가려면 같이 나서고.”

초희의 얼굴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내리 쬐는 한낮의 태양빛에 더욱 붉게 보였다.


“싫으면 그만 두고. 나는 가련다. 그러니 어머니께 그리 말씀드려.”

누나를 향했던 시선을 돌려 대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팔봉아, 어디 있냐.”

“균아!”

팔봉을 부르던 허균의 귀에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쫑긋 세우고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버…….”

“우리 막내는 아버지가 일찍 집에 돌아와 싫은 모양이지.”

미소 지으며 그리 말하는 아버지 곁에서 어머니 역시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고 있었다. 허균이 마뜩치 않은 표정으로 초희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균이는…….”

막상 말을 꺼냈지만 잇지 못했다. 차마 멱이라는 말을 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균이는 이 아버지를 모른 체하고 멱 감으러 간다는 말이지. 그러면 할 수 없지. 우리끼리 참외 먹는 수밖에.”

“참외요!”

지체 없이 한양으로…행복했던 어린 시절
누나가 쓴 글 아버지에게 보여주는 허균 

균이 참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균인 어서 가서 멱 감고 놀도록 해라. 우리는 참외 먹을 터이니 말이다.”

말을 마친 아버지, 허엽이 고개를 돌렸다. 초희가 급히 아버지 곁에 나란히 했다.

“도련님, 찾으셨어요.”

그제야 나타난 팔봉이 엉기적거리며 다가섰다. 균의 눈에 팔봉이 들어올 리 없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팔봉을 응시하기를 잠시 천천히 아버지 뒤를 따랐다.

순간 아버지의 고개가 뒤로 돌려졌다. 균이 맨땅에 엎드렸다.

“소자 균이 아버지께 문안인사 올립니다.”

너 댓 살 정도 아이가 흡사 성숙한 어른처럼 예를 갖추자 아버지 허엽이 못이기는 척 헛기침을 내뱉고는 균에게 다가섰다. 

“아버지가 균이 때문에 참외를 사가지고 왔는데.”

어정쩡하게 맨 땅에 엎드려 있는 균을 아버지가 번쩍 들어 안았다.

“내가 참외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리 말하는 균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초희가 두 사람 가까이 다가섰다.

“아버지, 균은 그냥 멱 감으러 가게 놓아두셔요.”

딸의 얼굴을 바라본 허엽이 균을 땅에 내려놓았다.

“왜, 우리 초희는 동생이 싫으냐.”

“싫은 것이 아니고…….”

초희가 말을 맺지 못했다.

균의 시선이 정면으로 자신의 얼굴을 향하고 있던 터였다. 

“자, 이제 그만하고 모두 함께 가도록 하자꾸나.”

“아버지, 그래요.”

허균의 시선을 외면하며 초희가 급히 앞으로 나아가 제 어머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오래지 않아 대청마루에 모두 모여 앉자 어머니께서 손수 참외를 가지고 오셨다.

허균이 노란 빛을 띠고 있는 참외를 바라보자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급히 자리를 떴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흰 종이를 들고 나타났다.

허균의 의도가 무엇인지 환히 알고 있다는 듯이 초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는 급히 균에게 다가서서는 종이를 빼앗으려 했다. 그러나 균의 동작이 더욱 빨랐고, 아버지에게 급히 내밀었다.

“아버지, 이거 누나가 뭐라고 쓴 건데 아버지께서 한번 봐주세요.”

“뭐라고, 초희가 쓴 것이라고.”

균이 건넨 종이를 받아 든 허엽이 백지 위에 쓰인 글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심각한 표정을 짓던 허엽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 글을 정녕 우리 초희가 썼단 말이냐?”

“아버지, 그렇다니까요.”

초희가 쓴 글

허엽이 잠시 허균을 주시하다 초희를 바라보았다. 초희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갔다.

“우리 초희가 진정으로 이 글을 썼다는 말이지.”

“예, 아버지.”

초희가 기어들어가는 듯이 가느다란 소리로 대답했다. 허엽이 다시 시선을 종이로 주었다. 그리고는 가늘게 되뇌어 보았다.


<다음 호에 계속>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