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조국 전 법무부장관 ‘36일 풀스토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10.21 13:53:38
  • 호수 12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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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탈’ 털릴 거 다 털리고 집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조국 법무부장관이 전격 사퇴했다. 헌정 사상 여섯 번째로 짧은 법무부 수장이 됐다. 법무부장관 취임 이후부터 사퇴까지 36일간 조 전 장관은 검찰 개혁에 매진했다. 조 전 장관은 스스로를 “검찰 개혁의 불쏘시개”라고 표현했다.  
 

 

조국 법무부장관이 지난 14일 전격적으로 사의를 밝혔다. 조 장관은 이날 오후 2시 ‘검찰 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사직 의사를 밝혔다. 조 장관은 “검찰 개혁은 학자와 지식인으로서 제 필생의 사명이었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추구해왔던 목표였다”며 “검찰 개혁을 위해 문재인정부 첫 민정수석으로서 또 법무부장관으로서 지난 2년 반 전력질주해왔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의혹 두고 
진영 대립

조 장관은 특히 “이유를 불문하고, 국민들께 너무도 죄송스러웠다. 특히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가족 수사로 인해 국민들께 참으로 송구했지만, 장관으로서 단 며칠을 일하더라도 검찰 개혁을 위해 마지막 저의 소임은 다하고 사라지겠다는 각오로 하루하루를 감당했다. 그러나 이제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발표한 특수부 축소를 골자로 하는 검찰 개혁안으로 ‘1차적 소명’을 다했다고 판단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조 장관은 “더는 제 가족 일로 대통령님과 정부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제가 자리서 내려와야, 검찰 개혁의 성공적 완수가 가능한 시간이 왔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검찰 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하다.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거듭 강조했다. 

조 장관이 전격 사퇴를 결정하면서 청와대 역시 이날 2시에 예정된 수석·보좌관 회의를 1시간 연기하고 후속대책을 논의하는 등 급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조 장관의 사의를 수락하고 오후 3시에 열린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조 장관 사퇴 이후에도 검찰 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과 공정의 가치는 우리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국정 목표이며 국정 과제”라며 “두 가치의 온전한 실현을 위해 국민의 뜻을 받들고 부족한 점을 살펴 가며 끝까지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천명한다”고 말했다.

대신 그동안 조 장관 의혹을 두고 진영 간 대립이 되풀이된 점에 대해서는 “결과적으로 국민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그런 가운데서도 의미가 있었던 것은 검찰 개혁과 공정의 가치,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조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 개혁을 희망했지만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면서도 “그러나 결코 헛된 꿈으로 끝나지는 않았다”고 언급했다.

법무부장관 임명 36일 만에 전격 사퇴 
검찰 가족 수사·국정지지도 추락 부담

이어 “법무부는 오늘 발표한 검찰 개혁 과제에 대해 10월 안으로 규정의 제정이나 개정, 필요한 경우 국무회의 의결까지 마쳐주길 바란다. 국회의 입법과제까지 이뤄지면 이것으로 검찰 개혁의 기본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엔 조 장관의 이번 결단이 검찰 개혁을 포함한 국정과제 실현을 위한 동력이 돼야 한다는 판단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퇴를 기점으로 진영 간 혼란을 추스르고 국정운영의 장악력을 더욱 높이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문 대통령은 서초동과 광화문서 잇따라 열린 일련의 대규모 집회를 거론하며 “이제는 국민 통합에 힘쓸 때”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광장서 국민들이 보여주신 민주적 역량과 참여 에너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며 “이제 그 역량과 에너지가 통합과 민생 경제로 모일 수 있도록 마음들을 모아달라. 저부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조 전 장관은 지난 8월9일 지명돼 법무부장관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국회에 인사청문 요청안에 전달되자마자 야권에선 이른바 ‘가족펀드’와 웅동학원 위장 소송, 부동산 위장 거래 의혹 등에 대해 파상 공격을 펼쳤다. 조 전 장관의 딸의 장학금과 입학 특혜 의혹이 제기되면서 여론마저 술렁이기도 했다. 

입시비리에 검증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문재인정부의 주요 지지층이던 2030세대가 ‘이게 공정이고 정의냐’고 항의하면서 들고 일어났다. 조 전 장관 딸이 다녔던 대학과 대학원서 항의성 촛불시위가 이어지면서 사실상 여론과 민심은 조 전 장관에게 등을 돌렸다.

또 조 전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논란에 또다시 민심이 흔들렸다.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뒤 주식을 처분하고 투자한 사모펀드의 운용 책임자가 공교롭게도 조 장관의 5촌 조카 조범동씨였다. 
 

가족이 운영해온 사학재단 웅동학원을 둘러싼 의혹도 연일 터졌다. 상황이 악화하자 여권서도 후보자 사퇴 가능성이 거론됐다. 하지만 조 전 장관은 “국민 여러분의 따가운 질책을 달게 받겠다. 더 많이 회초리를 들어달라”며 정면돌파의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8월27일 그 동안 접수된 고소·고발장을 특수2부에 배당하고 20여곳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전격 단행했다. 지난달 6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날 무렵 검찰은 부인 정 교수를 동양대 총장 표창장 위조 혐의로 전격 기소했다. 

특수부 축소
검사 감찰 강화

사흘 뒤 문 대통령은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다. 조 전 장관은 36일 동안 검찰 개혁안을 내놓으며, 검찰 개혁을 국민적 관심사로 끌어올렸다. 그동안 정치권과 법조계서 검찰 개혁 관련 논의가 여러 차례 있어왔지만, 이번처럼 대통령-법무부장관-검찰총장 차원서 개혁안이 논의되고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된 적은 없었다.

조 전 장관 가족을 둘러싼 검찰의 전방위 수사가 역설적으로 검찰 개혁의 필요성에 힘을 싣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은 임기 중 총 여섯 차례 공식 지시 내용을 발표했다. 그 중 1∼3호 지시는 검찰 개혁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조 전 장관은 임명 직후인 지난달 10·11일 1·2호 지시를 통해 검찰개혁추진지원단과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아래 검찰개혁위)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닷새 후인 16일엔 검사는 물론 일반 직원들까지 포함한 ‘장관-검찰 구성원과의 대화’를 추진하라고 3호 지시를 내렸다.

조 전 장관과 검찰 구성원과의 대화는 같은 달 20일과 25일, 각각 의정부지검과 대전지검 천안지청서 진행됐다. 또 검찰개혁추진지원단은 17일, 검찰개혁위는 30일 발족했다. 

특히 조 전 장관은 검찰개혁위 구성과 관련해 구체적 지시사항을 내렸다. 그 결과 특수부·공안부 등 주류가 아닌 형사부·공판부 등의 비주류 검사들이 개혁위에 들어갔다. 그동안 관련 논의서 소외됐던 젊은 검사, 검찰 수사관, 법무부 직원도 개혁위에 포함됐다. 사법 농단 사건을 세상에 알린 이탄희 전 판사(현재 변호사)처럼 신선한 인물도 개혁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검찰개혁추진지원단과 검찰개혁위는 ‘조국표 검찰 개혁안’의 브레인 역할을 담당했고, 조 전 장관이 장관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검찰 개혁 업무를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조 전 장관의 4∼6호 지시는 각각 교정, 출입국·외국인, 청소년 보호관찰 등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는 ‘검찰 중심 법무부 운영’서 탈피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다.

조 전 장관은 23일, 지난 2일 두 차례 법무혁신·검찰 개혁 간부회의를 열기도 했다. 첫 회의에선 홈페이지·메일로 검찰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라고 지시했고, 두 번째 회의에선 형사부·공판부 인력 확충 방안 등을 지시했다. 조 전 장관은 검찰 구성원의 의견뿐만 아니라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들의 검찰 개혁 관련 제안도 받았다.

관용차 폐지 및
심야 조사 금지 

조 전 장관의 지시, 검찰개혁추진지원단,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 두 차례 검찰 구성원과의 대화, 홈페이지·메일 제안 등은 조 전 장관의 취임 후 첫 검찰 개혁 기자회견으로 이어졌다.

지난 8일, 첫 기자회견서 조 전 장관은 “과감한 검찰 개혁 추진”을 강조했다. 이날부터 당장 시작된 개혁안은 ▲검사장 전용차량 폐지 ▲검사 내외파견 최소화 및 검사파견 심사위원회 설치였다. 또 검찰 직접수사 부서인 특수부를 서울·대구·광주 3곳만 남기고 부산·대전 등 4곳은 폐지하는 내용의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국무회의에 올렸다.

서초동 집회도 이번 검찰 개혁에 큰 변수로 작용했다. 소규모로 진행돼오던 집회는 ‘11시간 자택 압수수색’ 등이 발단이 돼 대규모로 발전했고, 지난달 28일과 지난 5일 절정에 달했다. 첫 대규모 집회 직후인 지난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검찰 개혁안 마련을 지시했고, 바로 다음 날 윤 총장은 개혁안(특수부 축소 등)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윤 총장은 공개소환 전면 폐지(10월4일), 심야조사 금지(10월7일), 직접수사 축소 및 전문공보관제 도입(10월10일) 등의 개혁안을 잇따라 내놨다.

조 전 장관의 두 번째 검찰 개혁 기자회견은 첫 기자회견 후 엿새 만인 지난 14일에 열렸다. 특히 직전 주말에도 법무부와 조 전 장관은 쉼 없이 움직였다. 

심야 조사와 부당한 별건수사 등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으로 지목돼온 행위도 법무부령으로 ‘인권보호 수사 규칙’을 제정해 바꾸기로 했다. 제정안에는 직접 수사 상황을 대검찰청뿐 아니라 관할 고등검사장에게도 보고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검찰공무원의 비위가 발생하면 법무부 장관에게 의무적으로 보고하고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1차 감찰권을 확대하도록 법무부 훈령도 개정하기로 했다.

조 장관은 앞서 지난 8일에도 개혁위와 대검찰청의 자체 개혁 방안을 검토해 ▲직접수사 축소 ▲수사 관행 개혁 ▲검찰에 대한 감찰 확대 등을 이달 안에 법령으로 만들겠다 방안을 발표했다.

언론과 검찰 집중포화
“개혁 불쏘시개 역할”

법무부와 대검찰청 고위 간부는 주말인 지난 12일에도 검찰 개혁을 주제로 협의를 진행했다. 그 다음날 조 전 장관은 고위 당정청 협의회 참석을 위해 국회를 찾았다. 이후 열린 두 번째 기자회견의 개혁안엔 특수부 명칭 폐지 및 축소를 위해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다음 날 국무회의에 상정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 전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개혁안을 발표한 뒤 2시간 만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조 전 장관이 검찰 개혁의 상징이었던 만큼, 신속 추진과제 외에 ▲법무부 탈검찰화 ▲사건배당 및 사무분담 시스템 개선 ▲수사관행 개혁 ▲검사 신규임용방안 등 인사제도 정비 ▲전관예우 폐해 근절 방안 등 연내 추진과제에 힘이 실릴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경수사권 조정 등 현재 국회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논의 중인 개혁안과 관련해서도 법무부의 역할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날 법무부는 “사임 의사를 밝힌 조 전 장관이 그동안 진행해온 검찰 개혁, 법무혁신, 공정한 법질서 확립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법무행정에 빈틈이 없도록 흔들림 없이 업무를 수행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대한변협, 참여연대 등에서는 조 전 장관 사퇴와 상관 없이 검찰 개혁이 계속 진행돼야 한다고 발표했다.
 

▲ 조국 전 법무부장관

한편 조 전 장관이 전격 사퇴하면서 재임 기간이 헌정 사상 여섯 번째로 짧은 법무부 수장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조 전 장관은 지난달 9일 0시 임기를 시작했다. 사의 표명을 공식화한 이날 오후 2시까지를 기준으로 35일 14시간 동안 법무부장관으로 재직했다.

조 전 장관보다 짧게 재직한 역대 법무부장관은 모두 5명으로 최단 기록은 김대중정부 시절 ‘43시간’ 동안 재직한 안동수 전 법무부장관이 갖고 있다. 안 전 장관은 2001년 5월21일 오후 3시 김 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이틀 뒤인 5월23일 오전 전격 경질됐다. 

‘충성서약’ ‘정권 재창출’ 등 부적절한 어휘가 포함된 이른바 ‘충성문건’ 파문 탓이었다. 당시 청와대에 보낼 팩스가 기자실로 잘못 발송되는 바람에 문제의 문건이 세상에 공개됐다. 나중에 국회의장까지 지낸 박희태 전 장관도 단기간 재직 기록을 갖고 있다. 박 전 장관은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3년 2월26일 취임했다가 9일 만인 3월7일 물러났다. 

사퇴 전 개혁안 
국무회의 상정

박 전 장관은 미국서 태어난 딸이 외국인 특례전형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한 게 문제가 됐다. 김대중정부 시절인 1999년 ‘옷로비 파문’에 휘말린 김태정 전 장관(14일), 1961년 5·16쿠데타로 물러난 이병하 전 장관(15일)이 엇비슷한 기록을 갖고 있다. 1982년 정치근 전 장관은 이철희·장영자 사건에 대한 민심 수습 차원서 33일 만에 경질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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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