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논란의 ‘평양 술집’ 가보니…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10.21 11:00:00
  • 호수 1241호
  • 댓글 0개

“어서 오시라요”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대동강맥주를 마실 날이 올까. 한 달 전 김일성 부자 사진과 인공기 디자인으로 논란이 된 한 홍대 주점이 내홍을 겪었다. 이 주점이 문을 연다는 소식에 <일요시사>가 찾아가봤다.

지난달 여론의 뭇매를 맞고 김일성 부자 사진과 인공기를 내린 홍대 ‘평양 술집이’ 지난 15일 문을 열었다. 홍대 클럽 거리 골목에 들어서자 눈길을 끄는 북한 분위기가 물씬 나는 외벽 간판이 보였다. 김일성 부자와 인공기는 철거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과 개그맨 김경진의 얼굴이 자리했다. 오색찬란한 한복을 입은 북한 미녀의 그림도 눈길을 끌었다.

대똥강맥주

출입구엔 한복을 입은 여종업원이 인사로 맞아줬다. 오후 6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입구엔 개업을 축하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주점 안으로 들어서자 계단부터 레드카펫을 깔아 강렬한 이미지를 줬다. 계단 벽면에는 ‘어서 오세요 평양 술집입니다’라는 문구가 기자를 반겼다. 실내는 민트색과 빨간색 투톤을 살려 북한 느낌을 진하게 냈다.

주점은 약 100평 공간에 150석이 마련된 꽤 넓은 공간이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눈에 띄는 건 ‘인민들에게 더 많은 소비품을’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나가자!’ ‘동무는 오늘의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있는가?’ 등 재미있는 문구였다. 이 문구들은 짙은 빨간색 배경에 흰색 글씨로 디자인됐다.


점원은 “오늘은 가오픈이라 일부 음식만 주문을 받는다”며 메뉴판을 건네줬다. 메뉴판엔 ‘료리(요리) 차림표’ 랭면(냉면), 코코탄산단물(콜라), 투명탄산물(사이다) 등 북한식 표현이 독특했다.

메뉴판 중 음식 이름마저 생소한 두부밥, 인조고기밥, 언감자떡이 궁금증을 자극시켰다. 주점 사장은 “두부밥과 인조고기밥은 실제 북한의 길거리 음식이며 탈북자들과 새터민들이 재료와 조리 방법에 대해 많이 도와줬다”고 설명했다.

주류는 ‘대똥강맥주’와 ‘평양소주’라는 라벨만 붙었을 뿐 독일 ‘웨팅어 맥주’와 ‘참이슬’이었다. 평양술집 관계자는 “북한 주류를 팔 수 없어 라벨만 붙였다. 비록 북한 술은 아니지만 손님들이 재밌게 즐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북한 느낌이 나도록 바꿨다”고 설명했다.

두부밥, 인조고기, 언감자떡…
1920년대 노래로 옛 느낌 조성

기자는 두부밥, 언감자떡, 인조 고기볶음과 대똥강맥주를 주문했다. 언감자떡은 5000원에 4개가 나왔는데 떡 안에 김치가 들어 있고 김치만두와 비슷한 식감이었다. 인조고기볶음(1만5000원)은 콩으로 고기를 만들어 채소와 함께 먹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두부밥은 유부초밥과 비슷한 형태로 다진양념 소스와 함께 5개가 나왔다. 밋밋한 두부밥에 소스를 찍어 먹으면서 허기가 채워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VIP룸처럼 따로 떨어진 테이블이 있길래 물었더니 포토존이라고 했다. 이 테이블에는 실제 대동강 맥주병과 북한서 사용하는 성냥, 담배, 소파 등이 전시됐다. 식당 종업원에게 문의하니 무료로 한복도 대여할 수 있고 포토존서 사진촬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평양 술집 사장은 “북한 물품을 소량으로 가져오는 건 범법 행위가 아니라고 한다. 중국을 통해 직원들이 일부 가져온 게 있다. 더 보고 싶다면 북한 물품만 따로 전시된 곳이 있다”며 새로운 곳으로 안내했다.


일반 손님에게는 오픈하지 않고 유튜버, 파워블로거 등에게만 공개하는 전시공간이었다. 이 공간에선 북한서 파는 아리랑 담배, 사과젖사탕, 초콜레트 탕, 인삼사탕, 참깨 과자, 빨랫 비누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손님이 직원에게 화장실을 묻자 “위생실은 저쪽입니다”라며 화장실을 가리켰다. 화장실도 강렬한 민트색과 빨간색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 주점의 큰 특징이라면 1920∼1930년대 노래인 ‘빈대떡신사’ ‘개고기 주사’ ‘오빠는 풍각쟁이’ 등의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점주에게 물어보니 북한 노래를 틀지 못해 가장 느낌이 비슷한 노래들을 선곡했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20대 A씨는 “정식 오픈을 하기도 전인데 홍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주점에 대해 다 알고 있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새로운 콘셉트의 인테리어가 신기해서 와봤다. 국내 유일의 북한 콘셉트 가게로 알고 있다. 대충 한 게 아니라 디테일한 부분까지 북한의 느낌을 고스란히 가져왔다는 점에서 재미있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이날은 가게 인테리어를 맡은 사장과 친분이 있는 개그맨 김경진, 이원구 등이 방문해 손님들과 사진도 찍고 개인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평양술집 사장은 “사실 이곳은 원래 일본식 술집이었다. 올해 불매운동이 터지면서 장사가 잘  안되다 보니 새로운 콘셉트의 술집 아이디어를 고민하다가 북한 콘셉트로 잡은 것이”라며 “20대가 많은 홍대서 새로운 걸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재밌게 즐기자고 하는 것이니 나쁘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추석 연휴 때 여론의 뭇매를 맞고 난 뒤 기존에 기획했던 참신한 아이디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곳을 재미있는 문화공간으로 이해하고 많이 오셔서 즐기다 가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사 안 돼서…

주점 관계자는 “지금 2019년에 김일성 부자 얼굴을 디자인했다고 욕 먹는 것도 참 이상하다. 웃고 즐기는 것이 하나의 문화인데 이걸 가지고 정치색을 가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외신서 취재 계획이 잡혀있을 정도로 외국인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일성 사진 처벌은?

북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과 인공기를 인테리어로 활용해 논란이 된 홍대 평양술집에 대해 경찰이 별도로 수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서 “주점 측이 문제가 된 사진들을 자진  철거했기 때문에 내사나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이 주점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과 인공기를 건물 외벽에 붙여 논란이 됐다.

구청과 경찰에 관련 민원이 접수됐으며 국가보안법 위법이 아니냐는 지적도 함께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주점 측은 지난달 16일 김일성 부자 사진과 인공기를 철거했다. 하지만 북한 술집 콘셉트를 유지한 채 계속 공사를 진행해 지난 15일 가오픈했다.

현행법상 술집 등 일반 음식점은 관할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허가되지 않는 사유에 인테리어는 포함돼있지 않다.

그러나 구청서 내주는 허가 외에 국가보안법 위반은 별도로 따져볼 수 있다. 마포구청은 해당 술집의 인테리어가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경찰에 판단을 의뢰했다.

경찰은 철거한 사진들을 확보하는 한편, 설치 경위를 확인해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토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국가보안법의 경우 단순 게시 뿐 아니라 목적에 이적성이 있어야 한다. 주점 측에서 영리적·상업적 목적을 게시한 것을 두고 혐의를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구>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