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논란의 ‘평양 술집’ 가보니…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10.21 11:00:00
  • 호수 12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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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시라요”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대동강맥주를 마실 날이 올까. 한 달 전 김일성 부자 사진과 인공기 디자인으로 논란이 된 한 홍대 주점이 내홍을 겪었다. 이 주점이 문을 연다는 소식에 <일요시사>가 찾아가봤다.

지난달 여론의 뭇매를 맞고 김일성 부자 사진과 인공기를 내린 홍대 ‘평양 술집이’ 지난 15일 문을 열었다. 홍대 클럽 거리 골목에 들어서자 눈길을 끄는 북한 분위기가 물씬 나는 외벽 간판이 보였다. 김일성 부자와 인공기는 철거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과 개그맨 김경진의 얼굴이 자리했다. 오색찬란한 한복을 입은 북한 미녀의 그림도 눈길을 끌었다.

대똥강맥주

출입구엔 한복을 입은 여종업원이 인사로 맞아줬다. 오후 6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입구엔 개업을 축하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주점 안으로 들어서자 계단부터 레드카펫을 깔아 강렬한 이미지를 줬다. 계단 벽면에는 ‘어서 오세요 평양 술집입니다’라는 문구가 기자를 반겼다. 실내는 민트색과 빨간색 투톤을 살려 북한 느낌을 진하게 냈다.

주점은 약 100평 공간에 150석이 마련된 꽤 넓은 공간이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눈에 띄는 건 ‘인민들에게 더 많은 소비품을’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나가자!’ ‘동무는 오늘의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있는가?’ 등 재미있는 문구였다. 이 문구들은 짙은 빨간색 배경에 흰색 글씨로 디자인됐다.


점원은 “오늘은 가오픈이라 일부 음식만 주문을 받는다”며 메뉴판을 건네줬다. 메뉴판엔 ‘료리(요리) 차림표’ 랭면(냉면), 코코탄산단물(콜라), 투명탄산물(사이다) 등 북한식 표현이 독특했다.

메뉴판 중 음식 이름마저 생소한 두부밥, 인조고기밥, 언감자떡이 궁금증을 자극시켰다. 주점 사장은 “두부밥과 인조고기밥은 실제 북한의 길거리 음식이며 탈북자들과 새터민들이 재료와 조리 방법에 대해 많이 도와줬다”고 설명했다.

주류는 ‘대똥강맥주’와 ‘평양소주’라는 라벨만 붙었을 뿐 독일 ‘웨팅어 맥주’와 ‘참이슬’이었다. 평양술집 관계자는 “북한 주류를 팔 수 없어 라벨만 붙였다. 비록 북한 술은 아니지만 손님들이 재밌게 즐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북한 느낌이 나도록 바꿨다”고 설명했다.

두부밥, 인조고기, 언감자떡…
1920년대 노래로 옛 느낌 조성

기자는 두부밥, 언감자떡, 인조 고기볶음과 대똥강맥주를 주문했다. 언감자떡은 5000원에 4개가 나왔는데 떡 안에 김치가 들어 있고 김치만두와 비슷한 식감이었다. 인조고기볶음(1만5000원)은 콩으로 고기를 만들어 채소와 함께 먹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두부밥은 유부초밥과 비슷한 형태로 다진양념 소스와 함께 5개가 나왔다. 밋밋한 두부밥에 소스를 찍어 먹으면서 허기가 채워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VIP룸처럼 따로 떨어진 테이블이 있길래 물었더니 포토존이라고 했다. 이 테이블에는 실제 대동강 맥주병과 북한서 사용하는 성냥, 담배, 소파 등이 전시됐다. 식당 종업원에게 문의하니 무료로 한복도 대여할 수 있고 포토존서 사진촬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평양 술집 사장은 “북한 물품을 소량으로 가져오는 건 범법 행위가 아니라고 한다. 중국을 통해 직원들이 일부 가져온 게 있다. 더 보고 싶다면 북한 물품만 따로 전시된 곳이 있다”며 새로운 곳으로 안내했다.


일반 손님에게는 오픈하지 않고 유튜버, 파워블로거 등에게만 공개하는 전시공간이었다. 이 공간에선 북한서 파는 아리랑 담배, 사과젖사탕, 초콜레트 탕, 인삼사탕, 참깨 과자, 빨랫 비누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손님이 직원에게 화장실을 묻자 “위생실은 저쪽입니다”라며 화장실을 가리켰다. 화장실도 강렬한 민트색과 빨간색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 주점의 큰 특징이라면 1920∼1930년대 노래인 ‘빈대떡신사’ ‘개고기 주사’ ‘오빠는 풍각쟁이’ 등의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점주에게 물어보니 북한 노래를 틀지 못해 가장 느낌이 비슷한 노래들을 선곡했다고 한다.

이곳을 찾은 20대 A씨는 “정식 오픈을 하기도 전인데 홍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주점에 대해 다 알고 있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새로운 콘셉트의 인테리어가 신기해서 와봤다. 국내 유일의 북한 콘셉트 가게로 알고 있다. 대충 한 게 아니라 디테일한 부분까지 북한의 느낌을 고스란히 가져왔다는 점에서 재미있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이날은 가게 인테리어를 맡은 사장과 친분이 있는 개그맨 김경진, 이원구 등이 방문해 손님들과 사진도 찍고 개인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평양술집 사장은 “사실 이곳은 원래 일본식 술집이었다. 올해 불매운동이 터지면서 장사가 잘  안되다 보니 새로운 콘셉트의 술집 아이디어를 고민하다가 북한 콘셉트로 잡은 것이”라며 “20대가 많은 홍대서 새로운 걸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재밌게 즐기자고 하는 것이니 나쁘게 보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추석 연휴 때 여론의 뭇매를 맞고 난 뒤 기존에 기획했던 참신한 아이디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곳을 재미있는 문화공간으로 이해하고 많이 오셔서 즐기다 가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사 안 돼서…

주점 관계자는 “지금 2019년에 김일성 부자 얼굴을 디자인했다고 욕 먹는 것도 참 이상하다. 웃고 즐기는 것이 하나의 문화인데 이걸 가지고 정치색을 가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외신서 취재 계획이 잡혀있을 정도로 외국인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일성 사진 처벌은?

북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과 인공기를 인테리어로 활용해 논란이 된 홍대 평양술집에 대해 경찰이 별도로 수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서 “주점 측이 문제가 된 사진들을 자진  철거했기 때문에 내사나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이 주점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사진과 인공기를 건물 외벽에 붙여 논란이 됐다.

구청과 경찰에 관련 민원이 접수됐으며 국가보안법 위법이 아니냐는 지적도 함께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주점 측은 지난달 16일 김일성 부자 사진과 인공기를 철거했다. 하지만 북한 술집 콘셉트를 유지한 채 계속 공사를 진행해 지난 15일 가오픈했다.

현행법상 술집 등 일반 음식점은 관할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허가되지 않는 사유에 인테리어는 포함돼있지 않다.

그러나 구청서 내주는 허가 외에 국가보안법 위반은 별도로 따져볼 수 있다. 마포구청은 해당 술집의 인테리어가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경찰에 판단을 의뢰했다.

경찰은 철거한 사진들을 확보하는 한편, 설치 경위를 확인해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토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국가보안법의 경우 단순 게시 뿐 아니라 목적에 이적성이 있어야 한다. 주점 측에서 영리적·상업적 목적을 게시한 것을 두고 혐의를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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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