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만?’ 경찰 개혁의 이면

검 방패 삼아 묻어가려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은 문재인정부 들어 개혁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부터 나오던 검찰 개혁의 목소리는 최근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검찰 권한의 축소는 필연적으로 경찰 권한의 강화로 이어진다. 경찰의 오랜 숙원은 이제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일각에선 경찰 역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제주도 펜션 살인사건 피의자 고유정

2017310일 헌법재판소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과 함께 정국은 조기 대선모드에 돌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핵심 공약으로 삼았다. 특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검, 힘 빼고
경, 강화?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는 수사기관 권력구조와 관련해 내놓은 3대 공약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당시 문 대통령이 내건 공약은 ·경 수사권 조정 광역단위 자치경찰제 추진 공수처 신설이었다. 지난해 621일 구체적 실행방안이 담긴 ·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이 발표됐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429일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개정안을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하거나 수사종결권을 갖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로 좁혔다. 자치경찰을 제외한 특별사법경찰관에 대해서만 수사지휘권을 유지하도록 했다.


전직 대통령·국회의원·법관·지방자치단체장·검사 등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비리를 수사, 기소할 수 있는 공수처를 설치해 검찰의 정치 권력화를 제어하고자 했다.

개정안은 야당의 반대로 현재 국회에 잠들어 있다. 잠잠해지나 했던 검찰 개혁의 목소리는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으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청와대 민정수석서 물러난 조 장관을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했다. 그와 동시에 조 장관의 딸, 아내, 동생, 조카 등 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고 검찰수사로까지 이어졌다. 문 대통령이 조 전 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정국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조 장관과 그 가족들에 대한 논란은 검찰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로 변해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 집결했다.

검찰 개혁 목소리 높아져
경찰 숙원 이뤄질 가능성↑

반대로 조국 사퇴를 주장하는 쪽의 목소리가 서울 광화문서 울려 퍼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청와대서 연 수석·보좌관 회의서 조 장관 수사, 검찰개혁과 관련해 최근 표출된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엄중한 마음으로 들었다다양한 의견 속에서도 하나로 모아지는 국민의 뜻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보장 못지않게 검찰 개혁이 시급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 모두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국회에 계류된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찰은 지금보다 강화된 권한을 갖게 된다. 문제는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크고 분명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경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 생각에 잠긴 민갑룡 경찰청장

오히려 검찰개혁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경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사그라지는 모양새다.

경찰은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국가사회기관 조사서 지난해와 올해 검찰, 국회와 함께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리얼미터는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2019년 국가사회기관 신뢰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대통령이 25.6%1, 시민단체가 10.1%2위를 차지했다. 이어 언론 9.0%, 종교단체 8.1%, 대기업 6.3% 등이 뒤를 이었다.

경찰은 2.2%로 국회 2.4%, 검찰 3.5%보다도 낮은 꼴찌를 기록했다. 지난해 조사서도 1위는 대통령(21.3%)이었고, 경찰(2.7%)과 검찰(2.0%), 국회(1.8%)는 바닥권을 맴돌았다. 경찰은 지난해 조사보다 수치가 0.5%p 떨어졌고, 순위도 뒤에서 3번째서 꼴찌로 낮아졌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경찰 불신에 기름을 붓는 악재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를 달궜던 버닝썬 게이트와 관련해 경찰이 봐주기 의혹에 휩싸였다. 버닝썬 게이트서 경찰총장이라고 지칭됐던 윤모 총경에 대한 수사가 부실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경찰은 지난 5월 버닝썬 게이트와 관련해 윤 총경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밝혀낸 혐의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국민 신뢰도
검·경 비슷

뇌물과 김영란법 위반 의혹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고 결국 직권남용 혐의로만 검찰에 송치했다. 윤 총경은 가수 승리와 유리홀딩스 유모 전 대표가 운영하던 클럽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반 신고가 들어오자 단속정보를 미리 알아봐 준 혐의를 받았다.

앞서 윤 총경은 유 전 대표로부터 식사와 골프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이는 무혐의로 결론 났다.

경찰은 윤 총경의 사건 개입 시점과 골프 접대 시점이 1년 이상 차이 나고 일부 비용이 윤 총경이 내기도 해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접대 금액이 적다는 이유도 들었다. 청탁금지법을 적용하려면 한 번에 100만원 또는 1년 기준으로 300만원 이상을 받았어야 하는데 윤 총경이 접대 받은 금액은 260여만원에 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지난달 27일 윤 총경과 관련된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경찰청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7일에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자본시장법 위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증거인멸 교사 등의 혐의로 윤 총경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 버닝썬 압수수색 중인 경찰

윤 총경은 지난 10일 구속됐다.

윤 총경은 주식 수천만원어치를 받고 수잉크 제조업체 녹원씨엔아이의 정모 전 대표에 대한 경찰수사를 무마하는 데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정 전 대표의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과 달리 검찰은 윤 총경이 사건을 무마했다고 본 것이다. 윤 총경에 대한 경찰 조사가 미온적으로 진행됐다는 의심이 나올 만한 대목이다.


경찰이 마주한 악재는 버닝썬 게이트만이 아니다. 과학수사의 쾌거로 불렸던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8차 사건의 진범 논란으로 경찰의 발목을 잡고 있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 일대서 일어났다. 개구리소년 사건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제사건으로 꼽혔다.

200642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영구미제로 남는 듯했던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지난 8월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경찰이 이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이미 다른 범죄로 수감 중이던 이춘재를 특정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달 18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경찰은 모방범의 소행으로 알려진 8차 사건을 제외하고 4건의 DNA가 이춘재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춘재는 지난 19건의 화성사건과 다른 5건 등 14건의 범행을 자신이 했다고 자백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찰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경찰이 모방범의 소행이라고 결론 낸 8차 사건을 이춘재가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고문 가능성에
부정여론 높아

8차 사건은 19889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한 가정집서 중학생 A양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여성이 성범죄를 당한 뒤 살해됐다는 점을 들어 화성연쇄살인 사건으로 포함됐다. 19897A양 집 인근에 살던 윤모씨가 범인으로 잡혔다. 윤씨는 1심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심과 3심에선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 진술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20여년을 복역하다가 감형돼 2009년 출소했다. 8차 사건의 진범이 이춘재일 경우 경찰의 책임 소재가 커진다. 진범이 아닌 사람이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춘재가 진범이 아닐 경우에는 14건의 자백도 신뢰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고유정 사건은 여전히 부실수사, 유착 의혹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유정은 제주서 전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518일 고유정은 본인의 차를 배편에 싣고 제주도로 들어갔다. 이후 일주일 만인 25일 전 남편 강모씨를 만나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 입실한 뒤 살해했다.

하지만 고유정의 범행 이후 경찰의 미흡한 초동 조치가 도마에 올랐다. 제주 경찰은 수사 초반 용의자 추적의 핵심 단서인 CCTV를 유족이 찾아줄 때까지 놓치고 있었다.

또 펜션 주인의 사건 현장에 대한 내부 청소를 허락하는 등 현장훼손도 그대로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찰이 초동수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고유정이 시신을 유기하기 전 체포할 수 있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경찰은 결국 지난 7월 고유정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수사 과정서 부족함이나 소홀함이 있었던 부분에 대해 본청서 진상조사팀을 구성해 하나하나 수사 전반을 짚어보겠다고 말했다.
 

▲ ▲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와 몽타주

바로 잡아야 할 것과 현장서 잘 안 되는 것들이 어떤 것인가를 반면교사로 삼고 큰 소홀함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필요한 추가 조사 후 상응하는 조치를 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민 청장은 버닝썬 사태 등에서 불거진 제 식구 감싸기’ ‘부실수사논란에 대해 경찰 수사는 여러 경로를 통해 나온 의혹에 대한 것이라며 검찰 수사와 경찰 수사는 영역이 다르다고 해명한 바 있다.

버닝썬, 화성, 고유정…잇단 악재
공무원 범죄 절반이 경찰청 소속

그는 지난 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이하 행안위) 국감에 출석해 국민과의 약속인 경찰개혁을 차질 없이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버닝썬 게이트 등으로 드러난 내부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내부 감찰제도를 쇄신하고 강도 높은 유착비리 근절대책을 시행하는 등 투명하고 청렴한 경찰상 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해이해진 공직기강은 수치로 확인됐다. 최근 공개된 국가공무원 범죄 통계 자료서 범죄를 저지른 전체 국가공무원의 절반이 경찰청 소속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회 행안위 소속 김한정 의원이 경찰청서 제출받은 2018년도 공무원 범죄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은 총 3356명이었다. 이중 경찰청 소속 공무원이 1460(48.9%)로 가장 많았다.

두 번째로 범죄를 많이 저지른 법무부 소속(304)과 비교해도 5배 이상 많은 수치다. 교육부가 280(8.3%)으로 세 번째였다. 강간 범죄의 경우 23건 중 18(78.3%), 협박 범죄는 47건 중 30(63.8%)이 경찰청 소속 공무원에 의해 저질러졌다.

김 의원은 법질서 수호자인 경찰의 부끄러운 민낯이자 낮은 윤리의식과 공직 기강 해이의 결과라며 경찰의 철저한 반성과 쇄신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에도 국회 행안위 소속 김영우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4년간 국가공무원 범죄 현황서도 경찰은 독보적이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12000명에 달하는 국가공무원 범죄가 발생했다. 이중 경찰은 4년 동안 5610명이 범죄를 저질렀다. 46.7%에 달하는 수치다.

최근 3년간 유착비리 혐의로 기소된 경찰도 30여명에 이른다. 국회 행안위 소속 권미혁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유착비리 혐의로 기소 처분된 경찰공무원은 총 28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전청 소속 B경위는 풍속영업단속 지원 출동 업무와 112신고 사건처리 및 방범순찰 등의 업무를 담당하던 중 관내 성매매 업주에게 단속 상황, 수사 상황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총 4회에 걸쳐 5698000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 경찰 대응 논란으로 불거졌던 대림동 여경 사건ⓒ유튜브

서울청 소속 C경위도 단속 및 수사정보를 제공, 수사를 축소·은폐하고 수사경과를 알려주는 대가로 성매매 업소서 11만원 상당의 마사지와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 봐주고
대가 받았다

대부분의 비위행위는 풍속 단속업무 중 오래 알고 지낸 경찰과 업주들의 유착으로 발생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 감찰로는 걸러지지 못했다. 실제 유착비리의 50% 이상(17)이 검찰·감사원 등 외부서 적발됐다.

권 의원은 최근 경찰의 유착비리는 금품과 향응 수수와도 같은 눈에 띄는 비위행위를 넘어 부정청탁 또는 수사·단속정보 유출도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버닝썬 게이트 이후로 경찰이 명운을 걸고 유착비리를 개혁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유착비리를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도록 내부 반부패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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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