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작고 10주기’ 고 신성희

평면에 머물지 않는 공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나의 작품은 찢어지기 위해 그려진다. 그리고 찢는다는 것은 이 시대 예술에 대한 질문이다. 그것이 접히며 묶이는 것은 곧 나의 답변이다. 공간은 나로 하여금 평면을 포기하게 한다. 포기해야 새로워진다는 것을 믿게 한다.” ‘누아주(Nouage, 엮음)의 작가’ 신성희가 작고한 지 10년이 흘렀다.
 

갤러리현대가 신성희 작가의 개인전 신성희: 연속성의 마무리전을 준비했다. 2009년 타계한 신성희는 국내외 미술계에 누아주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화가로서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성찰했다. 또 이를 독창적으로 유희하고 극복하는 일련의 연작을 발표했다.

입체의 형태

신성희의 연구는 회화의 본질을 쫓아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1970년대 초반 시작한 일명 마대 위의 마대연작에서는 캔버스 대신 마대를 바탕으로 삼아 그 위에 마대의 씨실과 날실, 그 음영 등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재현했다. 그 시각적 특징은 당대 한국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한 모노크롬 회화와 유사했다.

신성희는 이 연작서 대상과 그림, 사실과 착각, 실상과 허상 사이의 차이 혹은 대비를 고민했다. 이 과정을 통해 그는 그림은 착각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1980년 가족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떠나 나그네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국 미술계와 거리를 두며 자신만의 미학적 테제를 찾는 데 몰두했다.

1980년 가족과 파리로 떠나
자신만의 미학 찾으려 골몰


1980년대 일명 콜라주 회화는 다채로운 색으로 칠한 종이와 판지를 찢고 접어 멍석을 엮듯 무작위로 잇대고 겹쳐 붙여 이것을 한 화면으로 만든 연작이다. 신성희는 콜라주 회화가 그리는 행위와 그것을 받쳐주는 지지체를 분리해 실험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초반에는 투명한 아크릴판을 지지체로 삼았지만 1985년 이후부터 아크릴판 없이 종이를 잇댄 화면 자체가 지지체가 되도록 했다.

이어붙인 종이와 종이 사이에 형성된 화면 곳곳의 구멍은 이후 전개될 평면이면서 동시에 입체인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신성희는 1990년대 초반 다시 캔버스로 돌아간다. ‘무엇을 그리는가보다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캔버스 접기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번 전시서 선보이는 연속성의 마무리연작은 채색한 캔버스 천을 일정한 크기로 잘라 띠로 만들어 서로 잇대고 박음질해 완성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색띠를 엮어 화면에 그물망을 구축하는 누아주 연작으로 또 다른 변신을 시도했다.

갤러리현대는 신성희의 작고 10주기를 기념해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 33점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이 연작만을 살피는 첫 전시로, 신성희의 미술사적 성취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현대는 1998년부터 2016년까지 6회에 걸쳐 신성희의 개인전을 개최, 시대에 따라 변화한 그의 작품 세계를 한국 미술계에 알려왔다.
 

1988년 첫 전시에는 콜라주 회화를, 1994년에는 콜라주,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 오브제 작업을, 2001년과 2010년에는 마대, 콜라주, 연속성의 마무리, 누아주 연작, 오브제 작업을 선보였다. 2005년 누아주, 2016년 마대와 캔버스 뒷면을 극사실적으로 그린 초기작품까지 신성희의 작품을 소개했다.

박음질 회화로 통하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은 제목처럼 색을 칠한 띠가 한 화면에 수직과 수평으로 연속해서 배치된 작업이다.

신성희가 1980년대 전개한 콜라주 회화는 유희성과 우연성이 적극적으로 개입됐다. 반면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은 집을 짓거나 맞춤옷을 재단하듯 캔버스 뒷면을 기준으로 띠의 길이와 배치, 구조와 밀도 등을 완벽히 계산해야 한다. 천에 유채와 아크릴 물감으로 점을 찍고 얼룩을 뿌리는 추상적인 그림 그리기 과정서 출발한다. 이 추상회화처럼 보이는 캔버스 천을 잘라 해체하고 다양한 길이의 띠 형태로 접는다.


‘연속성의 마무리’ 집중 소개
“캔버스에 생명을 부여하자”

띠의 가장자리 끝을 뜯어내 캔버스 질감이 살아나도록 한다. 이렇게 만든 띠를 서로 마주보게 한 다음 재봉틀로 박음질을 해서 색 띠를 조합한다. 신성희가 평생에 걸쳐 고민한 회화를 떠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평면 작업에만 머물지 않는 공간이 창조되는 순간이다.

이번 전시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의 시기별 변화는 물론 작업과정의 치밀한 설계와 섬세한 변주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누워있는 것은 죽은 것이라는 신성희의 말처럼 가로와 세로로만 작업하는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의 제약서 벗어나 누아주라는 구축적 회화로 나아가는 흥미로운 변화를 감상할 수 있다.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에는 캔버스에 생명을 부여하자는 문장을 소명으로 삼고 회화의 평면성을 해체하고 다차원적 공간을 창조한 신성희만의 예술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는 신성희의 작품을 두고 놀라운 개혁! 혁신! 고백하건대 나는 이 진동하는 캔버스의 천 가장자리를 바라보며 어루만지고 싶은 충동의 커다란 설렘을 느낀다고 극찬했다.

다차원 공간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평면이라는 회화의 절대성에 놀라운 개혁을 선사하고, ‘우리를 바람이 오가는 공간의 문을 열게’(작가의 말)한 신성희 작품의 진면목을 재확인할 수 있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신성희는?]

1948년 안산서 태어나 2009년 서울서 세상을 떠났다. 1966년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회화과에 진학했다.

1968년 신인예술상전 신인예술상을, 1969년 제1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서 특선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1980년 32세에 가족과 함께 파리로 떠나 2009년까지 활동했다.

갤러리 꽁베흐정스, 미국 시그마갤러리, 앤드류 샤이어 갤러리, 스위스 갤러리 프로아르타, 일본 도쿄도 미술관, INAX 갤러리, 한국 환기미술관, 소마미술관, 단원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갤러리와 기관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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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