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컷’ 민주당 공천살생부 실체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10.14 10:31:35
  • 호수 12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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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퇴 중진들 초선 안고 논개처럼?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긴장감마저 감돈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천제도를 발표한 가운데 소속 현역 국회의원들은 하위 박스권에 속하지 않기 위해 분투 중이다. 기준은 하위 20%다. 여기에 속하면 20% 감점이라는 페널티를 받는다. 사실상 ‘살생부’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것. 당 대표의 불출마 선언은 살생부에 대한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 지난 5월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실서 21대 총선 공천제도 발표 기자간담회 갖는 윤호중 사무총장

더불어민주당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이하 평가위)는 현재 당 소속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에 들어간 상태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실시되는 최종평가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0월까지의 활동이 평가 대상이다. 평가위는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 각 의원실 보좌진을 불러 최종평가 제도 설명회를 가졌다. 이날 발표된 최종평가의 점수산정 분야는 크게 4가지다. ▲의정활동(34%) ▲기여활동(26%) ▲공약 이행 활동(10%) ▲지역활동(30%) 등이 그것이다.

어떻게든
피해야…

세부적으로 보면 명료한 항목도 있지만, 반대로 모호한 항목도 존재한다. 가장 반영률이 큰 ‘의정활동’은 상대적으로 명료한 편이다. 각 의원의 입법 실적과 각종 위원회서의 활동 등이 평가 대상이다. 

입법 실적에는 대표발의, 본회의 처리, 당론 채택 법안 발의 실적 등이 포함된다. 또 의원총회와 국회 본회의 및 상임위 출석률도 반영된다. 그 외에도 대정부질문이나 긴급 현안질의, 5분 자유발언 등 본회의 질문자, 국회 상임위원장이나 간사 등 국회직을 수행한 의원들에게 가점이 주어질 예정이다.

이는 국회의원 본연의 활동을 평가하는 성격이 짙다. 이를 위해 평가위는 단순히 자구 수정에 그친 법안발의를 평가서 제외할 계획이다. 의도적 ‘실적 부풀리기’를 미연에 차단하기 위함으로 읽힌다.


지역활동과 공약이행활동은 역시 상대적으로 명료한 축에 속한다. 지역활동에는 의원의 지역구 민원 해결, 당원 모집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점은 지역활동의 반영률이다. 기존 25%서 30%로 높아졌다. 

최근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과 그가 진두지휘하는 검찰개혁을 두고 여야 지도부가 치열한 샅바전을 벌이고 있음에도, 대다수 의원들이 지역활동에 힘을 쏟고 있는 이유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지역 기반이 약한 비례대표에게서 두드러진다.

공약이행활동은 의원실서 중간평가 때 제출했던 공약을 현재까지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 등을 평가한다.

공천제 발표, 감점 페널티
10월까지? 국감과 맞물려…

반면 기여활동은 상대적으로 불명확한 축에 속한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가장 우려하는 평가항목이 바로 기여활동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이는 당에 대한 기여활동을 의미한다. 공직윤리 수행 실적, 국민소통, 당정 기여, 수행평가 등이 이에 속한다. 

그 중에서 공직윤리 수행 실적은 의미하는 바가 비교적 명료하다. 최근 각 의원실은 당 윤리규범준수 서약서와 세금 및 당비 완납증명서, 보좌진들의 당비 납부확인서까지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당내 보좌진 사이에서는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의원의 평가와 보좌진의 당비 실적을 연관시키는 것 자체가 과도한 조치라는 것이다.

징계 여부도 점수로 환산된다. 윤리심판원서 경징계를 받았을 경우 10점, 기소돼 최종심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았을 경우 20점, 당직 정직 이상 징계를 받았으면 30점을 감점하는 식이다. 단 성희롱·갑질·음주운전·금품수수·채용비리 등 5대 비위에 해당될 경우 형 확정과 관계없이 기소만으로 감점토록 했다.


그 외 항목에 대해서는 무엇이 당에 대한 기여활동이고, 무엇이 아닌지가 모호하다.

한 국회 관계자는 지난 7일 <일요시사>를 통해 “사안이 있을 때마다 중앙당에서는 관련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의원실로 공지가 온다”며 “예를 들면 ‘행사장에 가서 찍은 사진을 제출하시오’ 같은 것이다. 그런데 자료를 제출해도 해당 자료가 점수로 반영되는지는 알 수 없다. 평가에 대한 세부항목이 무엇인지 의원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공천과 관련한 평가 때마다 여러가지 의혹이 나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공정성에 대한 불만도 있다. 대부분의 평가 항목서 법안 실적, 의원총회 출석률, 본회의 출석률, 상임위 출석률 등 정량평가 항목도 있지만, 정성평가 항목도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해 과연 공정한지에 대한 의문도 불만의 한 축이다.

이 같은 이유로 정성평가 항목이 중진 물갈이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하위 20%가 돼 감점을 받더라도, 정성과 정량평가 중 어떤 부분이 영향을 미쳤는지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명료한 것도
아닌 것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 실적이 평가 항목에 추가된 점이 특기할 만한 사안이다. 이는 디지털 소통실적에 해당한다. 반영률은 최종평가서 전체의 6%다. 해당 실적은 최근 민주당 의원들의 SNS 집중 현상을 불러왔다. 당 일각에선 의원의 ‘유튜브 활동’까지 평가에 반영된다는 소문이 나도는 상황이다.

특히 이석현(6선)·이종걸(5선)·송영길(4선)·민병두(3선) 의원 등 중진들에게서 두드러진다. 이중 이석현·이종걸·민병두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장관을 지지하는 글을 다수 게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검찰 개혁’에 방점을 둔 다른 의원의 글과 결이 달라 친문 지지자들 사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 4일 이 의원은 “검찰 개혁이 목적이지 ‘조국 수호’가 목적이냐는 분들이 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며 “검찰 개혁 투지를 안 놓고 버틸 사람, 조국 말고 또 있으면 말해보라”고 주장했다. 지난 6일에는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 촛불 하나 켜는 것도 큰 축복”이라며 “(국회)의원이니 조국수호 검찰 개혁에 있는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종걸 의원은 ‘조국 사태’가 본격화됐던 지난 8월부터 SNS에 조 장관을 수사하는 검찰을 비판하는 글을 다수 게재했다. 뿐만 아니라 이 의원은 자유한국당 지도부를 비판하는 저격수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민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8일 “‘태산명동서일필’(요란하게 일을 벌였으나, 별로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한 경우를 의미)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조 장관 수사는 태산명동표창장이다. 결국 증거도 없는 표창장 하나, 이것도 하다하다 안 되니까 코링크로 전환했는데 이 역시 ‘태산명동노링크(no link)’다. 조 장관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송영길 의원도 지난달 말 자신의 SNS에 ‘국회의 법안 통과 없이 법무부 차원서 할 수 있는 검찰 개혁을 말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 능력을 없애야 한다. 검찰 특수부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형법의 보충적 성격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치가 살아나야 한다”며 검찰 개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지도부
눈치에…

당 안팎에서는 민주당 중진들 사이서 SNS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는 이유가 ‘친문 진영을 향한 구애’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총선을 앞두고 서초동에 모여드는 다수의 친문 지지자들에게 구애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공교롭게도 SNS 활동이 활발해진 의원들 중 많은 수가 비문·범친문에 속한다. 


설상가상 당내에서는 ‘중진 물갈이론’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이는 핵심 친문 인사들이 연이어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불거졌다. 

시작은 이해찬 대표였다. 이 대표는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친문 인사들의 불출마 의사가 직간접적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백원우 민주연구원 부원장 역시 불출마 의사를 주변에 알린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백 부원장은 경기 시흥갑 출마가 거론될 정도로 출마가 유력시됐으나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들 외에도 입각한 진영 행정안전부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역시 총선에 불출마한다. 또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과 5선의 원혜영 의원도 불출마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영입인사 1호로 꼽혔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불출마를 공식 선언한 상태다.
 

▲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이 같은 릴레이 불출마 선언은 ‘중진 용퇴론’과 함께 혹시 모를 당 지도부의 물갈이 작업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대통령 측근부터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연스레 당내 반발을 잠재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21대 국회서 유력한 차기 국회의장으로 꼽혔던 원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다면, 당내 중진 의원들을 향한 물갈이 압박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실제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대표는 양 원장과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자신의 핵심 측근들에게 불출마를 권유하고 현역 의원들의 물갈이에 착수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물갈이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는 물갈이론이 수면 위로 올라올 때마다 “나는 ‘중진 의원 불출마’를 권유한 적이 없다” “이상한 뉴스에 흔들리지 말라” 등의 말로 당내 민심을 다잡고 있다. 민주당 평가위는 현역 의원을 대상으로 오는 11월4일까지 불출마 의견을 접수받을 예정이다.


발등에 불떨어진 현역들
벼락치기 의원들도 속출

민주당 평가위는 복수의 동료 의원들을 무작위로 선정해 무기명 설문조사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보안을 위해 무기명 지필 설문조사를 진행한 뒤 봉투에 밀봉해 수거해가는 방식이다. 설문지는 상임위원회, 겸임위원회, 의정활동 전반, 당직·정부직 수행, 당 기여도 등 5개 영역으로 나눠 구성할 방침이다. 

현재 민주당의 의석수는 총 128석으로 26명이 필연적으로 하위 20%에 속할 수밖에 없는 규모다. 26명이 20% 감점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20% 감점은 공천 탈락을 기정사실화할 수 있을 정도로 직격탄이다.

이에 현역 의원들은 하위 20%에 속하지 않기 위해 막판 스퍼트를 벌이고 있다. 벼락치기 대표법안 발의가 그것이다. 의정활동 항목서 점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길이다. 10월까지의 활동이 평가 대상이라 가능한 일이다.

실제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자신이 대표발의한 법안 64개 중 38개 법안을 올해 8월부터 현재까지 집중적으로 발의했는데 전형적인 벼락치기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민주당의 공천평가 방식에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가 다수 들려온다. 굳이 국정감사(이하 국감)와 맞물려 평가를 예고한 점도 불만 사항 중 하나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7일 “국감 시작 한 달 전부터 의원실이 업무에 허우적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당 지도부서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며 “그런데도 평가라는 민감한 사안을 꺼내든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의원들은 신경이 곤두선 상태다. 당내 일각서 나오는 “총선 경선서 청와대 근무이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아직 내부 총질을 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견제는 시작됐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아니라고
하지만…

평가위는 내달 5일부터 14일까지 다면평가, 같은 달 18일부터 28일까지 자료 제출·등록 및 검증·보완을 실시할 예정이다. 12월 초에는 자동응답시스템(ARS) 안심번호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최종평가는 오는 12월23일 완료되며, 그 결과는 공개되지 않는다. 앞서 평가위는 중간평가를 실시한 바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최종평가에 앞서 실시한 중간평가 결과를 합산하며 반영률은 중간평가 45%, 최종평가 5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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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