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은’ 철인3종 부실운영 실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10.07 11:05:39
  • 호수 12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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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게 진행했다가 참변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지난 1일, 실종됐던 철인 3종경기 대회 참가자의 시신이 발견됐다. 대회 참가자들은 무리한 상황서 대회를 강행한 주최 측의 미흡한 운영 행태에 대해 비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100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자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고 있다. 수많은 운동 가운데 마라톤, 자전거, 수영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과 낮은 난이도로 대중적인 운동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동호회 활성화

세 종목은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는 유산소 운동으로, 운동 초보자들에게 각광받는 종목이다. 이를 결합한 철인3종경기는 세 가지 종목을 휴식 없이 연이어 진행하는 경기다. 극한의 인내심과 체력을 요구하는 경기로 1970년대 미국서 시작돼 현재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서 많은 동호인들이 선호하는 인기 종목으로 각광받고 있다. 

2012년 기준 한국에 등록된 동호인 클럽은 123개다. 국내서 열리는 대회만 해도 ‘설악 트라이애슬론대회’ ‘전라남도지사배 전국 트라이애슬론 여수대회’가 있다. 또 ‘부안 전국해양스포츠제전’ 설봉 트라이애슬론대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전국 트라이애슬론 선수권대회’ 등이 열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강 난지공원서 ‘제7회 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 3종 대회’가 개최됐다. 이날의 한강 물살은 심상치 않았다. 철인 3종 중 수영경기가 시작된 시각은 오전 7시40분이었다.


한 달 밀물 중 가장 많이 차오르는 사리와 밀물 때가 겹친 것으로 전해졌다. 주최 측도 이를 확인하고 시합을 20분가량 연기했지만 결국 경기는 강행됐다. 

첫 번째 코스는 1km를 돌아오는 수영이었다. 수영 코스 지점 중 반환점인 월드컵 대교 인근서 한때 소동이 벌어졌다. 갑자기 빨라진 유속 때문에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수십명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됐던 것이다. 안전요원들이 줄을 던져주면서 구조활동까지 벌어야 했다. 수영은 취소됐지만 나머지 경기는 계속됐다.

하지만 이 과정서 30대 노씨는 종적을 감췄다. 경찰에 실종신고가 들어간 건 수영이 시작된 지 이미 6시간이 지난 뒤였다. 소방 당국과 경찰이 헬기 2대와 특수 드론 등을 이용해 수색에 나섰지만 이틀 동안 찾지 못했다. 결국 사흘째 실종자의 시신은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발견됐다.

지난 2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철인3종경기 사망 사고에 대한 공정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을 청원한다. 홍수 수준의 수위와 거센 유속에도 무리한 경기를 진행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시합 취소 않고 결국 강행
실종 신고도 뒤늦게 해 논란

글쓴이는 “현재 한강홍수통제소는 수위 2m가 넘으면 홍수로 보고 있다. 해당 대회 당시 수위는 2m가 넘었고 유속 또한 평소보다 거셌음에도 경기가 진행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주최 측은 노씨 아내의 전화에 실종된 것을 인지했다. 사건 발생 시각은 오전 8시경이었다. 노씨의 실종신고가 접수된 것은 무려 5시간40분이 지난 오후 1시40분이었다. 주최 측은 참가자 전원이 구조됐는지 인원 체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대회를 이어나갔다”고 주장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또 “사고 당시 상황을 볼 수 있는 사진과 영상을 주최 측에서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의 요청에 기록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참가자들의 사진이나 영상 속에 드론 등의 촬영장비가 등장하는 것으로 이미 확인했다. 현재 주최 측은 유가족이 사고 당시 정확한 상황에 관해 물으면 경찰에 진술하겠다는 말로 일관하며 유가족을 기만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철인3종 관련 카페에도 미흡한 대회 운영에 대해 지적하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한 대회 참가자는 카페에 “수영 출발 전부터 강한 조류로 부표 설치도 어려워 1km 단축됐고 방향을 전환할 때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감독관이 여러 번 설명을 해줬다. 계속 제자리 그때부터 여기저기 서로의 몸에 매달리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라고 글을 게시했다. 이처럼 대회 참가자들은 당일 대회 진행이 미숙했고, 안전요원도 참가 인원보다 턱없이 모자랐다는 증언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A협회 홈페이지엔 “지난 9월29일 제7회 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 3종대회에서 발생한 동호인 실종사고와 관련해 협회는 해경, 소방청, 경찰 등 유관기관과 함께 수색작업을 진행했으나, 회원 여러분의 기원과 달리 안타까운 결과를 맞았습니다. 우선 유가족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번과 같은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협회 임직원을 대표해 유가족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립니다. 협회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이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유가족의 여러분께 애도의 말씀을 드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사과문을 올라왔다.

이와 관련해 <일요시사>는 주최 측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해당 대회 담당자는 외부에 있다면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주최 측 사과

유가족은 KBS와의 인터뷰서 “혹시나 수색작업에 차질이 생길까봐, 시신을 찾기 전에는 최대한 협회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협회 측 대처에 있어 이해되지 않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경찰이 꼭 철저히 수사해서 다시는 이러한 인명 사고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태풍으로 철인3종 취소?

지난달 21일 17호 태풍 ‘타파’ 북상에 따라 전남 구례군이 예정했던 철인3종경기가 결국 취소됐다. 앞서 대회 주최 측은 태풍 피해를 우려해 구간별 코스를 단축한다고 밝혔으나, 태풍의 여파가 예상을 벗어날 것을 우려해 결국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이날 구례군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아이언맨 구례코리아’ 조직위원회는 이튿날인 22일 지리산호수공원서 열릴 예정이었던 풀코스 철인3종 경기를 결국 취소하기로 했다. 

경기는 오전 7시10분에 시작해 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2km 등 총 3개 구간 226km에 걸쳐 개최될 예정이었다. 


조직위는 우리나라가 태풍의 직접 영향권에 들 것으로 예보됨에 따라 이날 회의를 거쳐 일부 코스를 축소해 오후 4시30분 이전에 경기를 종료키로 했다. 그러나 태풍 타파의 영향이 예상을 벗어날 것으로 우려해 결국 대회를 취소하기로 했다.

이번 대회에는 41개국 1421명이 참가하며 이 중 외국인이 590명이다.

구례군 측은 “참가자 중 40%에 달하는 외국인들이 대부분 이미 구례에 도착한 상황이어서 대회를 축소해 진행하려 했으나 안전사고 가능성을 우려해 취소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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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