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서원 ②경주 옥산서원

태고의 자연 속에서 학문과 사색의 즐거움을 찾다

▲ 경주 옥산서원 구인당 대청에서 자옥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유교 교육기관이자 명문 사립학교인 경주 옥산서원(사적 154호)은 회재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고 배향하는 곳이다. 풍광 좋은 안강의 자계천에서 숲과 계곡이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 있다. 역락문을 지나 무변루, 구인당, 민구재와 암수재까지 작은 문고리 하나 무심히 지나칠 수 없을 만큼 회재의 학문적 열정이 스며들었다. 엄격한 강학과 성현의 문화가 만나는 옥산서원에서 학문과 사색의 즐거움을 찾았다.
 

▲ 회재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고 배향하는 옥산서원

회재 이언적은 김굉필, 정여창, 이황, 조광조와 함께 동방5현으로 꼽히는 조선 시대 성리학자다. 1514년 문과에 급제한 뒤 이조정랑, 밀양부사 등을 거쳐 높은 벼슬에 오르며 승승장구했지만, 두 번이나 정변에 밀려 낙향하는 불운을 겪었다. 회재가 택한 곳은 본가가 있는 양동이 아니라 독락당이다. 그는 직접 구상하고 지은 독락당에서 약 7년간 기거하며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회재 사후 19년이 지난 1572년, 후손들이 독락당 인근에 옥산서원을 세웠다. 회재의 삶이던 성리학은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파 학풍의 뼈대를 이루고, 그를 기리는 옥산서원은 사액을 받았다.
 

▲ 울창한 숲과 계곡이 아름다운 옥산서원

자연과 함께

옥산서원 앞에는 사철 마르지 않는다는 자계천이 흐른다. 회재가 이름 붙이고 퇴계가 썼다는 세심대(洗心臺)는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구하라’는 뜻이다. 회재가 이 천혜의 자연을 얼마나 아꼈을지 짐작할 만하다. 거대한 너럭바위 사이로 힘차게 들리던 물소리가 서원 안으로 들어서니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강학에 몰두하는 데 거친 자연의 소리가 거슬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사라지고, 적막한 고요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무변루 통문을 지나 돌계단에 올라서면 강학 공간의 마당이다. 마당은 휴식 공간인 무변루와 강당인 구인당 사이에 기숙사인 민구재와 암수재가 양쪽에 끼워진 정방형 공간이다. 전학후묘는 여느 서원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기품 있는 공간 배치가 돋보인다.
 

▲ 옥산서원으로 들어가는 역락문

옥산서원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역락문(亦樂門)이다.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에서 따온 이름이다.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의미다. 여러 해석 중에 출세가 목적이거나 남이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성숙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먼 곳에서도 사람이 찾아온다는 뜻이 가장 선명하게 다가온다.
 

▲ 구인당에서 바라본 무변루

무변루(無邊樓)는 서원 건축에서 접하기 어려운 누마루가 눈길을 끈다. 2층으로 된 무변루는 총 7칸이지만, 마당에서는 5칸처럼 보인다. 통나무 계단으로 오르는 누마루는 가운데 3칸이 대청이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배움에 끝이 없다’는 뜻의 무변루는 서원 밖 경관을 차단하는 판문의 푸른색이 폐쇄적인 느낌이지만, 판문을 열어젖히면 푸른 자옥산과 자계천이 펼쳐진다니 상상만 해도 아름답다. 서원의 규율과 위계가 엄격해서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와 만남을 삼갔다는 이야기가 실감 난다. 무변루로 가는 나무계단은 난간이 없어 올라가기 어려울 듯한데, 내려올 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휴식에서 학업으로 돌아오는 데 그보다 좋은 긴장감이 없었을 것이다.
 

▲ 난간이 없어 아찔한 무변루 계단

무변루에서 마주 보이는 ‘구인당(求仁堂)’은 회재가 저술한 〈구인록〉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회재는 “오상(五常)의 으뜸은 인(仁)이며 이것이 심덕(心德)의 전부요, 만선(萬善)의 근본”이라고 했다. 강의와 토론이 열리던 구인당은 대청 3칸과 양쪽 온돌방으로 구성된다. 구인당에는 내로라하던 대가들의 친필이 있다. 강당 처마에 걸린 ‘옥산서원’ 편액은 추사 김정희, 대청에 걸린 옥산서원 편액은 문신이자 명필 이산해의 글씨다. 마루 안쪽에 걸린 구인당 편액은 무변루와 함께 한석봉의 글씨다. 한 획 한 획 힘차고 믿음직한 글씨를 보면, 인(仁)의 선비 정신에 강한 호기심이 생긴다.
 

▲ 추사 김정희가 쓴 ‘옥산서원’ 편액
▲ 툇마루에 앉아 바라본 하늘이 고요하고 아름답다.

회재 이언적의 덕행·학문 기리는 곳
풍광 좋은 안강의 자계천에 위치

구인당과 무변루 사이 좌우에는 기숙사인 민구재와 암수재가 있다. 민구재(敏求齋)는 ‘민첩하게 진리를 구하다’, 암수재(闇修齋)는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수양하다’라는 뜻이다. 민구재 툇마루에 앉아 바라본 네모난 하늘이 서원의 기운만큼 반듯하고 고요하며 아름답다. 그 안에 담긴 하늘과 산과 나무까지 옥산서원의 품위를 닮았다.
 

▲ 역락문을 지나 구인당까지 회재의 학문적 열정이 스며든 옥산서원

서원은 1574년 선조에게 ‘옥산’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살아남은 47곳 가운데 하나인 옥산서원에는 보물급 문화재가 많다. 회재가 벼슬살이하며 받은 교지, 독락당과 강계에 유배 중이던 시기에 저술한 책 등이다. 국보인 〈삼국사기〉 본질 9책 50권이 옥산서원유물관에 있지만, 열람이 불가능하다. 또 〈동국이상국전집〉을 비롯한 고서 4000여권, 호구단자와 명문, 도록 등 고문서 1156건, 〈회재선생문집〉 책판 1123판 등 무형 유산과 기록 유산 6300여점이 있다.
 

▲ 마당에서 본 독락당 풍광이 그림 같다.

옥산서원 앞 계곡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회재가 살았던 경주 독락당(보물 413호)으로 가는 길이다. 회재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내던 집의 사랑채다. 토담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독락당은 숲과 계곡을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한 자연 친화적인 건축양식이 돋보인다. 마루와 사랑방으로 구성되고, 마당에서 바라본 풍광이 그림 같다. 엄격한 균형미와 폐쇄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옥산서원과 확실히 비교된다. 무위자연을 존중하며 학문과 수양에 전념하고자 한 회재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 대청에서 냇가를 바라볼 수 있도록 토담에 살창을 만들었다.

독락당은 안채와 사랑채, 별당, 사당, 공수간 등을 갖춘 살림집이다. 옛 독락당은 사랑채를 칭했지만, 지금은 집 전체를 의미한다. 독락당과 공수간 사이 골목은 토담으로 이어진다. 타박타박 걸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독락당에서 감탄을 자아내는 곳이 있다. 첫째, 독락당 옆쪽 담장에 살창을 달아 대청에서 냇가를 바라보도록 한 설계다. 토담에 뚫린 살창은 지금 봐도 신선하고 멋진 발상이다. 둘째, 독락당 뒷쪽 바위에 긴 기둥을 세워 만든 계정이다. 계곡 가까이 지은 정자로, 세속에 지친 마음에 위안을 주는 푸른 숲과 맑은 계곡을 품으려는 회재의 노력이 느껴진다. 계정 난간에 기대앉으면 계곡에서 청아한 바람이 불어온다.
 

▲ 푸른 숲, 계곡과 어우러져 자연 그 자체인 독락당의 계정
▲ 양동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인 심수정에서 본 마을 풍경

회재가 태어난 서백당이 있는 경주 양동마을(국가민속문화재 189호)은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집성촌으로 전형적인 양반 마을이다. 서백당, 무첨당, 관가정, 향단, 심수정 등 기와집과 초가 150여채가 있다. 심수정(국가민속문화재 81호)은 형인 회재 이언적을 대신해 벼슬을 마다하고 노모를 봉양한 농재 이언괄 공의 효심을 추모해서 지었다. 양동마을에서 가장 큰 정자로, 오래된 정원과 함께 고색창연하다.
 

▲ 독특한 양식과 빼어난 조형미를 보여주는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독락당에서 북쪽으로 700m쯤 올라가면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국보 40호)이 도도하게 서 있다. 정혜사 터에 남은 9세기 통일신라 석탑으로 높이 5.9m에 이른다. 불국사 다보탑,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 석탑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조형미가 빼어나 볼수록 신비롭고, 예술적인 감동을 준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옥산서원→독락당→정혜사지 십삼층석탑→양동마을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옥산서원→독락당→정혜사지 십삼층석탑→양동마을
둘째 날: 양동마을→동궁과 월지→경주 대릉원→황리단길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경주문화관광 http://guide.gyeongju.go.kr
- 경주愛(경주시 공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gyeongju_e
- 경주양동마을 http://yangdong.invil.org/index.html  

문의 전화 
- 경주시청 관광컨벤션과 054)779-6079
- 옥산서원 054)762-6567
- 독락당 010-7620-7712
- 경주양동마을 054)762-2630
- 신경주역관광안내소 054)771-1336
- 경주버스터미널관광안내소 054)772-9289

대중교통 정보
기차: 서울역-신경주역, KTX 하루 16~19회(05:15~21:30) 운행, 약 2시간10분 소요. 신경주역 정류장에서 50번 버스 이용, 경주역 정류장(호성한의원 앞)에서 203번 버스 환승, 옥산2리 정류장 하차, 약 2시간10분 소요. 옥산서원까지 도보 약 5분.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새천년미소 054)742-2690
버스: 서울-경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17회(06:10~23:30) 운행, 약 3시간3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17~19회(07:00~23:59) 운행, 약 4시간 소요. 경주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203번 버스 이용, 옥산2리 정류장 하차, 약 1시간30분 소요, 옥산서원까지 도보 약 5분.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경주시외버스터미널 1666-5599, http://gyeongjuterminal.co.kr 새천년미소 054)742-2690

자가운전
상주영천고속도로→동영천 IC→임고 방면→국도28호선 8.7km →호국로 12.1km→옥산서원길 2.3km→옥산서원

숙박 정보
- 독락당: 안강읍 옥산서원길, 010-7620-7712, www.독락당.com
- 베니키아스위스로젠호텔: 경주시 보문로, 054)748-4848, www.swissrosen.co.kr
- 신라부티크호텔: 경주시 강변로, 054)745-3500, www.sillaguesthouse.com
- 황남관한옥마을: 경주시 포석로, 054)620-5000, http://hanokvillage.hicomedia.com 

식당 정보
- 향적원(연잎밥정식): 경주시 불국로, 054)775-0014
- 전통맷돌순두부(순두부찌개): 경주시 숲머리길, 054)743-0111
- 경주원조콩국(콩국수): 경주시 첨성로, 054)743-9644
- 교리김밥 경주교동본점(김밥): 경주시 교촌안길, 054)772-5130, www.교리김밥.kr

축제·행사 정보
선비옷 입기 체험: 5~10월 토·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옥산서원 관람 시 차와 떡 제공

주변 볼거리
옥산세심마을, 첨성대, 천마총, 경주 최부자댁, 교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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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