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복’ 벗고 변호사 개업한 이영기 전 서울고검 감찰부장

“검찰은 검찰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이영기 변호사는 지난 8월, 서울고검 감찰부장을 끝으로 23년6개월 동안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1일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 변호사로 새 출발한 그를 만나 지난 검사 생활의 애환과 변호사로서의 포부를 들어봤다.
 

▲ 이영기 전 서울고검 감찰부장이 일요시사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이영기 변호사는 1969년생으로 석관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27세의 이른 나이에 제3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25기) 부산지검서 첫발을 내디뎠고, 춘천지검, 서울지검, 청주지검 등을 거쳐 대검찰청서 마약과장 검사와 조직범죄과장 검사를 지냈다. 이후 의정부지검,서울동부지검에 이어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거쳤고 지난 8월, 서울고검 감찰부장검사를 끝으로 사랑하던 검찰을 떠났다.

‘소리바다’ 수사
금융정보분석원

지난 1일 서초동에 위치한 사무실서 이 변호사를 만났다. 이 변호사의 방에는 그의 후배 검사들이 써놓은 편지들이 액자화돼있었다. “항상 그윽한 미소로 직원들을 격의 없이 대해 주시던 우리 차장님, 검찰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차장님은 ‘정말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셨습니다” “합리적인 일처리와 직원들을 향한 자상한 배려심, 위트 있는 말씀 등 멋진 간부님이셨습니다” “더 모시지 못한 아쉬움이 많지만 차장님을 모시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편지에는 따뜻한 이 변호사의 검사 시절 모습과, 존경하는 선배를 떠나보내는 후배들의 아쉬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소리바다 수사요. 대한민국 지적재산권 판결 중 가장 중요한 판결로 꼽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소리바다’는 2000년대 초에 전국민이 이용했던 음악 사이트다. 처음에는 사용자들끼리 음악 파일을 공유하는 P2P 프로그램으로 출발했지만, 음원을 무료로 공유할 수 있게 되자 음원 불법유통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음악은 무료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가수·작곡가 등 음악 산업 종사자들의 수입이 대폭 하락했다. 저작권이 명백히 침해됨에도 불구, 불법 유통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규정조차 없었다.

“미국에도 ‘냅스터’라고 소리바다와 똑같은 구조로 음원을 유통하는 사이트가 있었어요. 냅스터에 대해서 미국에선 엄청난 벌금을 부과하는 판결이 이뤄졌었거든요. 이 이론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습니다.”

한국판 ‘냅스터’ ‘소리바다’ 성공적 수사
금융정보분석원 파견 ‘핵심 컨트롤 타워’

음원을 주고받는 당사자가 아닌, 연결해주는 사람에게 음원의 불법유통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됐다. 하지만 이 판결은 1심에선 공소기각, 2심에선 무죄가 선고됐다. “거의 1년 넘게 수사를 했습니다. 1·2심 판결로 마음 고생 많이 했죠. 워낙 중요한 사건이어서 결국 대법원서 공개토론을 열었습니다.”

대법원은 결국 이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소리바다 개발자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됐고, 이 판결을 기준으로 유사 사이트들은 음원 유통을 유료로 전환했다. 저작권 침해가 횡행하던 음반시장에 질서를 형성한 결정적 사건으로, 이는 음반 제작자의 저작권 보호에 큰 전환점이 됐다.

“지금 음원 유통에 대해서는 불만들이 없으시잖아요. 음반 제작자들도 그렇고 가수 분들도 그렇고.” 이 변호사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 인터뷰 갖고 있는 이영기 변호사

2006년, 이 변호사는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파견되기도 했다. 금융정보분석원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보고받은 금전거래를 분석하고 범죄 자금이나 자금세탁과 관련돼있다고 판단될 경우, 금전 거래 정보를 사법기관에 제공해 불법자금 몰수를 추진하는 컨트롤타워다.

“금융정보분석원은 자금세탁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한 나라의 사법기관이 눈 여겨봐야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2013년 시행된 ‘특정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FIU법)’에 의해 국세청은 조세탈루 혐의 확인을 위한 조사업무 및 조세체납자에 대한 징수 업무를 위해, 금융정보분석원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현재 대기업의 현금거래, 회계 투명성에 대한 세무조사가 가능해져 고액체납자의 현금거래 추적에 활용되고 있다.

형사부 경력
검사의 기초체력

“특수부 검사는 되기 싫었어요. 특수부 검사가 하는 일이 선과 악이 분명히 구별되지 않잖아요. 특수부가 맡는 정치인을 수사하게 되면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얘기도 가끔 듣게 되고요. 전 선과 악이 분명한 걸 좋아해요. 마약사범과 조폭은 선과 악이 분명하잖아요. 그런 건 어느 분들에게 물어봐도 당연히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하시고요.”

이 변호사는 인천지검 강력부장과 서울동부지검 형사부장 시절, 조직범죄수사와 도박범죄수사, 성폭력사범수사 등 숱한 사건들을 담당하며 탁월한 경륜으로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특히 인천지검 강력부 부장검사 시절, 이 변호사가 맡았던 조직범죄수사는 대검 강력부 우수업무사례에 선정되기도 했다. 수사 당시, 이 변호사는 청소년 가출 소녀들을 모집해 성매매를 알선한 보도방 업주 31명과 유흥업소 업주 7명 등을 구속했다. 치밀한 내사와 팀제수사로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조직폭력배를 대거 적발해, 폭력조직 자금원 차단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서울동부지검 형사부 부장검사 시절에도 이 변호사는 두각을 보였다. 장기 미제사건으로 분류된 후 DNA 대조로 검거된 연쇄 성폭행범 ‘송파·강동구 발바리’를 구속기소, 서울동부지검 최초로 성충동 약물치료 명령을 청구했다. 아울러 범죄피해자 지원,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을 위한 부수처분을 적극 활용해 이 수사는 대검 형사부 우수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안전한 국가가 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봐요. 밤거리에 맘 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 조직 범죄나 마약 범죄로부터 안전해야 하죠. 그런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가 공권력의 행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 변호사가 검사 시절 수사에 임해왔던 소신과 사명감이 묻어났다. 그가 특히 형사·강력 사건에 두각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23년 6개월
특수·형사 지휘

대한민국은 마약청정국으로 불린다. 검찰은 마약수사직렬을 신설하는 등의 검찰청법의 꾸준한 개정을 통해서 마약전문 인력을 대폭 증강했다. 강력부가 설치된 6개 지검에 는 ‘마약류사범 검찰 ·세관 합동수사반’을 편성해 외국산 마약류 밀반입에 대처 중이다.


“지금 국내엔 마약·필로폰 제조업자들이 거의 없어요.” 이 변호사는 마약수사에 일가견이 있는 검사였다. 인천지검 강력부 부장시절 한국 여성을 운반책으로 이용한 나이지리아 국제 마약밀수조직을 적발했다. 당시 한국 세관과의 공조로 나이지리아 국내 총책과 한국 여성 등 3명을 구속기소해 필로폰 3kg을 압수했다.

“사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대부분 검사들은 승진에 대한 욕구가 있잖아요. 저도 처음엔 아쉬웠지만 이제는 없습니다. 빨리 털어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거죠.” ‘검사장 자리’에 대한 아쉬움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변호사는 담담히 웃어보였다.

부산지검을 시작으로 서울고검까지 23년 6개월의 검사 생활, 부장검사 10년, 묵직한 사건들을 맡아 진두지휘한 이 변호사의 커리어와 능력은 검찰의 꽃인 검사장을 노려보기에 충분했다.

“검찰의 80% 검사들은 형사부 사건을 담당하고 특수·공안·기획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전체의 비중에 10~20% 밖에 안 됩니다. 지금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대형 사건을 다루는 특수부나 정기적으로 오는 선거철에 선거사건을 다루는 공안부, 기획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요. 실질적으로 인사에 있어서도 그분들이 잘 나가고요. 형사부 검사들이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있는데, 기본을 다루고 있다 보니 부각이 안 되죠. 그 부분에 대해서 후배 검사들이 자괴감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선악이 분명히 구별되는 ‘형사통’ 출신
“다양한 법률서비스로 고객과 소통할 것”

수사를 통해 당사자 간 분쟁을 해결하는 게 검찰 본연의 역할이다. 형사부는 검찰을 지탱하는 바탕으로, 형사부 근무 경력은 검사의 기초체력를 쌓는 가장 큰 자양분이 된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기본 책무로, 국민들의 고통을 피부로 느끼고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서기 때문이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 때부터 검찰은 일선 형사부 강화를 주장해왔다. 일각에선 형사부장 자리는 형사부 출신 검사들에게 100% 할당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아울러 형사부 출신 검사들이 형사부장이나 보직 간부들이 갈 수 있는 길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 역시 계속되고 있다. 향후 인사서도 특수·공안·기획 경험이 없는 형사부 출신 검사들의 검사장 승진도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이는 ‘검찰 개혁’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이 변호사는 최근 화두가 된 ‘정치검찰’에 대한 형사부 후배검사들의 의견도 조심스레 전했다.
 

“후배들도 호소를 많이 하죠. 매일 8시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묵묵히 일하는데 모든 국민적 관심은 다 특수부에 가 있어요. 10~20%의 검찰 모습이 전체 검찰의 모습으로 비춰져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욕은 욕대로 먹으니 자괴감이 들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재밌게 인생을 살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강한데 젊은 검사들이 많이 희생하고 있어요.”

이 변호사는 검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검찰 본연의 역할에 집중해야 함을 짚었다.

직접수사 축소
검찰 본연에 집중

“검찰도 결국 국가기관입니다. 국민이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국가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서 하는 것이 필요해요. 국민들이 검찰을 정치검찰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정치적인 사건을 너무 많이 다뤄왔기 때문이잖아요. 직접수사 기능을 자제하는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가장 필요하다 봅니다. 또 모든 기관이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좀 지켜볼 필요도 있어요. 법대로 하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수사가 끝날 때까지는 기다리는 자세도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이 변호사로부터 한국을 묵묵히 지켜온 검사의 사명감과 조직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자리와 위치에 따라, 본연에 집중해야 함을 강조한 그는 변호사로서의 포부도 함께 덧붙였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의뢰한 내용에 맞춰 변론하는 직업이잖아요.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런 얘기도 나오는데 많은 사람들이 ‘변호’라는 서비스로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쓸 겁니다.”


<sangmi@ilyosisa.co.kr>


[이영기는?]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제35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25기
▲금융정보분석원 파견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대검찰청 마약과장검사
▲대검찰청 조직범죄과장검사
▲서울동부지검 형사3부장검사
▲서울중앙지검 공판1부장검사
▲광주지검 순천지청 차장검사
▲수원지검 안양지청 차장검사
▲서울고검 감찰부장검사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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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는 사업이 건설사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총사업비 2조여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양측이 제기한 고소·고발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갈등의 본질은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최대주주 지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다. 최근 지분확보를 위한 소송 과정서 의문의 돈거래가 포착됐다. 2020년 7월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도시계획시설서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은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서 해제하는 제도인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됐다. 도시공원 일몰제의 도입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관 합작 윈윈 사업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민간에 사업시행권을 주고 공원을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도록 하는 제도다. 민간 사업시행자는 공원부지 30% 범위서 아파트 건설 등 비공원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민간 자본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 사업시행자는 주택 공급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로 이득 볼 수 있는 구조다. 현재 전국 각지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규모가 가장 크다. 광주시 서구 금호동과 화정동, 풍암동 일대 243만5027㎡에 공원시설과 비공원시설을 건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비공원시설 부지에는 지하 3층~지상 28층, 39개동 총 2772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사업비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1월 사업시행사인 특수목적법인(SPC)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하 빛고을)이 설립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은 최근 시행사 지위와 시공권 등을 두고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SPC 설립 시점부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양과 이후 시공자로 들어온 롯데건설,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빈산업, 케이앤지스틸 등이 갈등의 주체다. 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