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9.30 11:19:03
  • 호수 12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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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만에 잡힌 그놈 “누구냐 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33년 만에 처음으로 특정됐다. 총 10차례 발생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DNA 증거물 가운데 최소 3건이 이 용의자와 일치했다. 용의자가 화성연쇄살인사건 발생 장소 인근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놀랍게도 그는 처제를 강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이춘재. 그는 1급 모범수였다.  
 

▲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국내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이다. 범인은 1986년 9월15일부터 1991년 4월3일까지 경기도 화성시 태안과 정남, 팔탄, 동탄 등 태안읍사무소 반경 3㎞ 내 4개 읍·면서 13세부터 71세 여성 10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하며 전 국민을 공포와 충격에 빠트렸다. 

80∼90년대 
전 국민 공포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의 범행 수법은 잔인했고, 엽기적이었다. 범인은 피해자의 스타킹이나 양말 등 옷가지를 이용해 목을 졸라 살해하는 교살(絞殺)을 살인 수법으로 가장 많이(7건) 사용했다. 손 등 신체부위로 목을 눌러 사망케 하는 액살(縊殺)도 2건 있었다. 

범인은 또 피해자가 사망한 뒤 신체 주요부위를 훼손하는 극악무도한 짓도 4건이나 저질렀다. 당시 경찰 수사에 따르면 범인은 버스정류장서 연결된 논밭길 혹은 오솔길에 숨어 있다가 귀가하는 피해자들을 노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의 수사망을 비웃듯 화성을 중심으로 반복되던 살인은 1991년 4월 3일 동탄면 반송리에서 벌어진 사건을 끝으로 멈췄다.


실제로 범인 검거를 위해 205만여명에 달하는 경찰이 투입됐다. 화성 일대를 샅샅이 뒤졌고, 신속 해결을 주문하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지시까지 떨어진 상황에 혹시나 이어질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24시간 경계 근무 체제에 들어가기도 했다.

용의자에겐 당시 최고액인 5000만원의 현상금이 걸렸고, 1992년 기준 누적 수사비만 해도 5억400만원에 달했다. 용의선상에 오른 수사 대상자만 2만1280명, 지문 대조 대상자는 4만116명으로 단일 사건 가운데 최다였다. 

실마리가 풀리지 않자 수사본부가 꾸려진 화성경찰서 서장 2명이나 연달아 직위 해제되기도 했다. 범인은 그렇게 연기처럼 자취를 감췄고, 결국 사건은 장기 미제로 분류되기에 이르렀다. 

가정폭력 등 이유로 아내 집 나가 
처제 성폭행·살해·유기 무기징역

화성연쇄 살인사건은 이후 1996년 연극 <날 보러 와요>와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 등으로 만들어졌다. 드라마 <시그널>과 <터널>서도 다뤄졌다. 특히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은 2013년 개봉 10주년 행사 당시 “범인이 이 행사에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첫 사건 후 33년, 마지막 사건으로부터 28년이 지난 2019년 한국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서서히 잊히고 있었다. 그 누구도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흔적조차 찾을 수 없던 범인을 잡게 될 것이라고는 쉽사리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올해 주요 미제 사건 수사 체제를 구축하고 관계 기록 검토와 증거물을 분석하던 경찰은 지난 7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화성 연쇄 살인사건 6차 사건 피해자 옷에서 채취한 DNA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증거물서 채취한 DNA와 일치하는 인물이 있다는 국과수의 통보를 받게 됐다. 경찰은 잔여 증거물 감정을 추가로 의뢰하고 수사기록 정밀 분석 등을 통해 특정한 용의자와 사건의 관련성을 파악 중이다. 공소 시효는 지난 2006년 4월 2일 끝나 처벌이 불가능하지만 용의자가 진범으로 확인될 경우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19일 경찰은 “오랜 시간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 심심한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며 “공소시효 만료 이후에도 화성 사건과 관련해 다양한 제보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 규명을 위해 당시 수사기록과 증거물을 보관해 왔다”며 “화성 피해자 옷에서 채취한 DNA 3건과 용의자 DNA가 일치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DNA 분석 기술 발달로 사건 발생 당시에는 DNA가 검출되지 않았지만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도 재감정서 DNA가 검출된 사례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지난 7월15일 현장 증거물 일부를 국과수에 DNA감정 의뢰했다”며 “대표적 미제 사건들은 공소시효가 만료됐더라도 최선을 다해 수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씨의 본적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진안1리로 현재의 진안동 인근. 당시 사건 현장지도를 살펴보면 10차례의 사건 가운데 다수가 진안1리서 멀지 않은 장소서 벌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살인강간 10명
진짜 범인일까

특히 6차 사건은 본적 주소와 아주 가까운 지점서 발생했다. 이후 7차 사건은 비교적 먼 곳에서 벌어졌는데, 이때 버스를 탄 범인을 본 운전기사에 증언에 의해 첫 몽타주가 만들어졌다.  

경찰과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이씨는 1993년 4월 화성을 떠나 충북 청주로 이사할 때까지 줄곧 화성서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성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발생한 10차례의 연쇄살인이다. 만약 이씨가 진범이라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10차례의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경찰 수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주민이었다는 말이 된다.

또 33년 전 이씨는 화성연쇄살인사건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화성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은 이씨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강간 및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이씨가 수사선상에 오른 건 1987년과 1988∼1990년, 1991년 총 3차례다.

하지만 경찰은 특별한 증거가 없는 가운데 ▲8번째 사건서 발견된 체모의 유전자(DNA)가 이씨 것과 일치하지 않고 ▲8번째 사건의 범인이 검거된 데다 ▲범행 현장 족적이 이씨의 발 크기와 다른 점 등을 이유로 수사 대상서 배제했다.

지금까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던 건 그가 이미 교도소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력 용의자 이씨는 이미 20년째 복역 중인 무기수였다. 그는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해하고 그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붙잡혀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그의 아내 역시 1993년 12월 가정불화와 가정폭력 등을 이유로 집을 나간 상태였다. 

이씨는 1994년 1월 20세였던 자신의 처제에게 “토스트기를 주겠다”며 말로 충북 청주시 흥덕구 자택으로 불러들였다. 이후 전날 미리 준비해둔 수십 개의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건넸다. 이씨는 음료수를 마시고 잠이 든 처제를 성폭행한 뒤, 망치 등으로 머리를 4회 이상 때리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후 시신을 1㎞가량 떨어진 철물점 창고로 옮겨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1·2심 재판부는 “반인륜적 범죄로 죄질이 극히 불량하고, 범행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진 점, 범행에 대한 뉘우침이 없는 점 등을 들어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며 이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우발 범행일 가능성을 감안해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이씨는 파기환송심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달래며 조사 
유도 애먹어

이씨가 처제를 살해한 수법은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닮은 점이 많다. 이씨는 처제의 시신을 청바지 등으로 묶어 싸놨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서 피해자의 옷가지가 발견된 것과 유사하다. 시신 유기 방식도 비슷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에도 범인은 피해자의 시신을 범행 현장 인근의 농수로나 축대, 야산 등에 숨겼다. 현재로서는 이씨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는 게 경찰과 프로파일러의 진단이다. 
 

1995년 부산 교도소에 수감된 이씨는 20년 넘는 수감 생활 동안 단 한 차례의 문제도 일으키지 않은 1급 모범수인 것으로 전해진다.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씨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유영철이나 다른 흉악범죄자들이 교도소 내에서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킨 것과 달리 흔한 징계조차 한 번 받지 않았다.


이로 인해 부산교도소는 이씨를 4등급으로 나뉘는 수감자 등급 중 1급 모범수로 분류했다. 무기 징역수가 아니었다면 이미 가석방 됐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자신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특정되었다는 보도를 접한 이후에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음은 물론, 지난달 18일 자신을 조사하러 부산까지 내려온 경찰 앞에서도 얌전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씨는 현재 불거진 화성연쇄 살인사건의 진범이라는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교도소 1급 모범수…조용한 성격
범행수법·인상착의 유사…자백할까?

경찰은 이씨의 입을 열기 위해 2009년 강호순 사건에 활약했던 베테랑 프로파일러 투입을 결정했다. 부산교도소서 안양교도소로 이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57명 규모로 꾸린 화성연쇄살인사건 재수사 수사본부에 프로파일러를 대거 포함시켜 이씨 접견에 투입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18일 이후 세 차례 이상 진행된 이씨 접견조사에 동행, 그의 반응 등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이 프로파일러 중에는 2009년 10명을 숨지게 한 연쇄살인범 강호순으로부터 자백을 이끌어낸 A 경위도 포함돼있다. 강호순은 2009년 1월 경기 군포서 실종된 여대생 살해 혐의로 체포됐으나 추가 수사를 통해 2006∼2008년 7명의 여대생을 살해한 사실 등이 드러났다.

수사팀이 봉착한 가장 큰 문제는 이씨가 경찰 조사를 거부해도 특별히 불이익을 받을 일이 없다는 점이다. 1991년에 끝난 연쇄살인사건은 모두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로, 경찰이 DNA 감식 결과 등을 들이밀어 압박을 가해도 이씨로선 다시 법정에 설 일이 없다. 

경찰은 다른 사건 DNA 감식 결과를 기다리며 이씨와 꾸준히 접촉,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데 우선 집중하고 있다. 앞서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도 이씨와 ‘라포르(rapport·신뢰관계) 형성’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또 이씨의 혈액형이 당초 알려진 범인과 같은 B형이 아닌 O형이라는 점은 ‘이씨가 진범이 아닐 수 있다’거나 ‘공범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확보한 혈흔이 용의자의 것인지, 피해자의 것인지 불분명하고 당시 경찰이 왜 B형을 특정했는지 알 수 없어 증거 효력이 떨어진다”며 “이씨가 진범이 아니라거나, 공범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경찰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수사 초기 혈액형을 B형으로 특정함에 따라 진범을 놓쳤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소시효 만료 
처벌 못하나

만약 이씨가 혐의를 인정하더라도 추가적일 처벌은 어려울 전망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전에 일어난 범죄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공소시효 폐지 전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는 소급 적용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수많은 피해자를 낸 화성연쇄살인사건. 30여년간 감춰져 있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지만 정의를 바로 세우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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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