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영국 왕실골프협회 R&A에 얽힌 비밀들

THE ROYAL &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 줄여서 ‘R&A’로 칭한다. 영국 왕실골프협회, 혹은 영국 왕립골프협회로 해석된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기관은 협회가 아닌 프라이빗 클럽이다. 하지만 골프에 관한 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권한을 쥐고 있는 21세기 골프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통한다. 260년간 골프를 통치하는 이 기관의 정체는 무엇일까.

2009년 <월스트리트저널>의 골프 전문기자 스테파니 웨이가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열린 디 오픈에 취재차 참석했다. 클럽하우스 2층에서 창문을 통해 그녀는 올드코스의 1번 홀 티업과 18번 홀 퍼팅 그린을 바라보면서 기사 거리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후에 그녀는 기사를 이렇게 시작했다.

왕실의 후원

‘곁에 있는 R&A 멤버가 건방진 태도로 기자에게 자랑스럽게 말을 건넨다. “어디서 맥주 한 잔을 손에 들고 벨벳 가죽소파에 앉아서 디 오픈의 경기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골프가 시작된 이래 R&A클럽 하우스 내에서 출입조차 금지된 여성이 초대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빈정대는 투로 너스레를 떠는 그의 모습이다.’

여자가 NBA농구 경기나 메이저 야구대회의 로얄박스에 초대될 수는 있지만 수백년 역사와 전통의 신비스런 R&A 클럽하우스에는 비할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21세기 현재까지도 이 건물에 출입이 허용된 여성은 오직 엘리자베스 여왕과 앤 공주 등 몇 사람뿐이다.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R&A빌딩의 2층 다이닝룸에서 맥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며 경기를 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전 세계에서 2400명뿐이다.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R&A는 어떻게 태동하게 되었을까? 

 

18세기 초 스코틀랜드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프리메이슨들이 골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사회 각계각층의 중심에 있던 그들은 1754년 올드코스에서 모임을 갖고 22명의 회원을 기초로 ‘GENTLEMEN’S GOLF CLUB OF ST. ANDRWES’를 결성한다.

단순히 골프동우회를 조직한 것이지만 당시의 멤버들은 이 클럽이 수백년 후 전 세계 골프를 지배할 기관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 혹은 의도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골프에 대한 모든 것을 정비하고 체계화하던 동우회는 80년이 흐른 1834년 영국왕 윌리엄 4세를 후원자, 즉 패트론으로 추대하면서 ‘ROYAL & ANCIENT’이라는 칭호를 부여 받았다.

ROYAL은 왕실의 명예를 상징하고 ANCIENT는 천년도시 ST. ANDREWS를 뜻했다.

1754년 올드코스 모임 갖고 
22명의 회원을 기초로 결성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멤버들은 20년 뒤인 1854년 클럽하우스를 짓고 그동안 제도화시켰던 골프에 관한 모든 것들을 관장한다. 동우회가 만들어진지 140년이 흐른 1894년에 결성된 미국골프협회 USGA와 함께 세인트 앤드루스 동우회는 양대산맥으로 전 세계의 골프를 감독하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골프의 세계화에 발맞추어 동우회는 수백년간 사적모임에 그쳤던 클럽을 조직화하기 위해 2004년 새로운 독립기관인 R&A를 조직하고 그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 


골프 장비에 관한 규칙을 만들고 새로운 클럽과 볼의 사용을 허가 또는 금지하기도 하고, 새로운 규칙을 제정하기도 한다. 영국에서 개최되는 디 오픈을 비롯해 아마추어 대회, 시니어 대회 등도 주관하면서 그 영향력을 발휘한다.

현재 R&A는 138개국에 152곳의 연계된 지부를 두고 3000만명에 이르는 골프선수들까지도 관리·감독하며 제반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미국과는 달리 여성들을 차별했던 R&A는 260년이 흐른 2014년에야 겨우 약간의 문호를 개방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버드대학 출신으로 2009년에 부임한 세인트앤드루스대학의 루이스 리차드슨 여성 총장마저 멤버로서 거부를 당해 조롱거리가 됐지만, R&A도 세월의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었다.

아니카 소렌스탐을 비롯해 20여명의 여성들이 새로운 멤버가 되어, 신비스럽기만 했던 클럽하우스에서 남녀차별의 역사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 

22명의 프리메이슨으로 시작됐던 멤버들이 260여년이 흐른 현재는 세계 150여 군데의 지부에 2500여명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프리메이슨들은 명성과 전통에 있어서 충분한 상징성과 함께 비록 정치적으로는 세계 단일국가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골프에 관해서만큼은 세계통일이라는 천년의 위업을 달성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종결정 권한 쥔 골프 최고 권력기관
‘금녀의 공간’ 철저히 베일에 싸인 조직

북해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고 올드코스 1번 티 뒷편에 번듯하게 세워진 R&A건물에 대해, 수백년 전부터 지금까지 세인트 앤드루스 시민들은 ‘우주에서 봐도 위대한 건축물’(THE GREAT ARCHITECT OF THE UNIVERSE)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건축물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신비롭고 오묘한 기운까지 감돌게 만든다는 게 시민들의 생각이다.

1754년 22명의 멤버로 출범한 이래 100년간 건물 없이 지내던 왕실협회는 정확히 100년이 지난 1853년 건축물을 짓기 시작한다. 프리메이슨의 상위계급이자 R&A의 멤버이던 존 화이트 멜빌이 초석을 올린다. 돌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석공조합인 프리메이슨들로 하여금 순전히 대리석 등 돌로만 건물을 세우면서 그들만의 건축물은 11개월 뒤인 1854년 6월22일 완공된다.

R&A 1층의 대형 로비에는 영국만이 간직하고 있는 수백년 동안의 골프에 대한 귀중한 보물들, 희귀한 골프채, 왕들과 귀족들, 유명 선수들이 사용했던 각종 클럽과 기념품들, 그리고 초상화들이 장식돼있다. 일반에게 공개돼도 좋은 골프 골동품들은 좁은 길을 건너 마주하는 영국박물관에 전시돼있다. 2층 다이닝로비에서는 멤버들만 창문을 통해 올드코스에서 열리는 디 오픈을 관람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린다. 

2500여명의 남성으로만 구성되던 조직이 역사의 흐름이라는 대세에 밀려 260년간 이어오던 전통을 깨고 여성들을 멤버로 영입한다고 했지만, 신청서를 작성하는 데만 세계 골프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2명의 추천서가 있어야 한다.

정식 회원이 되려면 기존 멤버 30명 이상이 동의해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많은 여성 멤버들이 가입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일부 여성만 개방


미국 조지아 어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이 2012년 전 미국 국무장관 곤돌리자 라이스와 달리 무어 여성 갑부, 그리고 2014년 IBM의 CEO인 빅토리아 로메티 등 단 3명의 여성에게만 개방한 것과 영국의 행보는 무관치 않아 보인다. 디 오픈을 관장하는 R&A와 마스터즈를 개최하는 어거스타 내셔널의 멤버 전원이 프리메이슨 단원임을 감안하면 무언가 상호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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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