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반도체 피폭 논란’ 막전막후

손가락이 검게 변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서울반도체 피폭사건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사고발생 원인은 안전장치의 인위적 해제. 사측과 피해자 측은 지시 여부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그 사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50여명의 전현직 직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 ⓒ서울반도체 노조

지난 8월16일 원자력위원회(이하 원안위)는 서울반도체서 발생한 피폭사고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방사선피폭 의심환자는 6명으로 모두 서울반도체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원안위는 방사선 작업을 즉시 중단시켰다. 6명 중 4명은 이렇다할 증상이 없었다. 그러나 2명은 손가락 국부 피폭이 발생했다. 손가락이 검게 변색됐고, 홍반·통증·열감 등의 이상증상이 나타났다. 원안위는 이들을 대상으로 정밀검사에 돌입했다.

6명 중 2명
이상증상 발생

원안위 현장조사 결과, 피폭사고 발생 원인은 ‘반도체 결함 검사 기계’였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LED 불량 여부를 검사했다. LED는 서울반도체의 주력 제품이다. 검사 방법은 엑스레이 기계에 LED를 넣고 문을 닫은 뒤, 방사선으로 촬영하는 식이었다. 방사선은 문을 닫아야 방출된다.

문이 열린 상태서 방사선이 방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안전장치가 설치돼있었다. 안전장치의 이름은 ‘인터락’이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인터락을 해제하고, 작업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안전장치를 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해당 장치에 종이를 끼워 누른 뒤, 테이프로 고정시키기만 하면 됐다. 결국 문이 열려도 방사선은 방출됐다.


피해자 측은 안전장치 해제 이유를 서울반도체의 ‘물량 압박’과 ‘지시’라고 주장했다. 인터락을 해제할 경우 더 많은 물량을 검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방법대로라면 LED 불량 여부 확인은 기계 문을 닫은 채로 진행된다. 이후 불량이 발견되면 문을 열고 직접 손으로 해당 부위에 스티커를 붙인다. 이 때 인터락이 제대로 작동해 방사선은 방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터락이 인위적으로 해제되면서 피해자들의 손은 방사선에 그대로 노출됐다. 어떨 때는 머리까지 넣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방사선 지속 노출, 손가락 변색     
관련 없는 유지·보수 업체가 왜?

피해자들은 안전장치를 풀었을 때 방사선 노출로 위험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최소한의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안전교육 없이 첫 출근부터 작업에 투입됐고, 해당 기계서 방사선이 방출되는지도 알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8월23일 원안위 107회 회의록 ‘서울반도체 용역직원 피폭사고 관련 중간보고’에 따르면  작업에 관여한 직원 1명이 더 발견됐다. 이 직원은 같은 달 20일 진료를 받았고, 다행히 이상증상은 없었다. 작업에 투입된 직원들은 지난 7월15일부터 약 2주간 교대로 근무했다.

이상증상을 보인 2명의 피해자는 작업 시간이 길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소속된 협력업체는 시설 유지·보수를 하는 곳이었다. 업체는 애초 방사선 작업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 원안위는 업체가 해당 작업을 맡게 된 까닭을 서울반도체의 지시라고 봤다.

원안위 회의록에 따르면 협력업체가 설치한 장비서 불량률이 높게 나왔다. 서울반도체 측은 업체에 불량률 검사를 요청했다. 원안위는 불량률 조사에 시간과 인력이 많이 투입돼 서울반도체가 업체에게 불량률 검사를 지시했다고 봤다.

서울반도체는 지난달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방사선 피폭 피해자들의 검사 결과를 들어 이상이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반도체는 “원안위 조사 결과에 따라 방사선 노출 의심자 7명의 혈액검사가 모두 정상”이라며 “7명 중 추가 정밀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2명의 염색체 이상 검사 결과도 모두 정상”이라고 밝혔다.

장치 해제
지시는?

서울반도체는 방사선 누출 정도 역시 극히 소량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반도체는 “해당 장비 작동 시 임의로 문을 개방해 그 앞에서 방사선 누출 정도를 측정한다 하더라도 그 수치는 극히 소량”이라며 “하루 8시간 365일 문을 열어 놓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연간 등가선량 한도 50mSv(밀리시버트·방사선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정도를 표시하는 단위)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등가선량이란 인체의 조직이나 장기에 흡수되는 방사선의 종류와 에너지가 달라 동일한 값으로 보정한 방사선 에너지양이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손·발 등 피부 부위에 대한 연간 등가선량한도는 500mSv다.

원안위는 지난달 19일 문제가 된 장비사용을 경험한 직원들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원안위는 직원을 포함해 퇴사자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초기 106명이 대상이었지만 조사 과정서 유사장비 작업자가 추가됐다. 조사 대상자만 250명이 넘는다.
 

▲ 피폭 피해자 ⓒ반올림

원안위는 “피폭자 7명 중 이상증상이 발현된 2명에 대한 혈액 및 염색체 검사 결과 정상으로 확인됐다”면서도 “통증, 변색 등의 증상으로 보아 선량한도(인체에 해가 없다고 생각되는 방사선의 양적 한계)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피해자 중 한 명의 아버지는 지난달 24일 국민청원에 청원글을 게재했다.

부친의 주장에 따르면 피해자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17일 동안 서울반도체 외주업체 장기 현장실습생으로 취업, 방사선 취급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서울반도체와 용역업체는 최소한의 방사선 안전교육조차 하지 않았다.

“분통 터진다”
부친의 호소


이들은 반도체 결합검사용 엑스레이 발생장치의 인터락을 풀고, 방사선이 방출되는 기기 내부에 손을 넣어 작업하도록 지시했다. 피해자는 17일간 방사선에 피폭된 채 업무를 진행했다. 방사선에 대한 안전교육은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안전장비나 피폭선량계(방사선 피폭량 위험수치 알림 기기)도 지급받지 못했다.

피해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손가락 통증이 심해지고, 피부 홍반이 나타나 담당직원에게 이상증상을 호소했다. 그러나 직원은 “수년간 일한 직원들도 아무 이상 없다. 과민반응하지 말라”며 오히려 나무라면서 욕을 했다.

외래 병원과 응급실을 거친 피해자는 결국 8월5일 원자력의학병원으로 이송, 방사선 피폭 정밀검진을 받았다.

피해자 부친은 “업체는 산재처리만으로 사건을 축소시키려 하고, 제대로 된 치료와 방사선 피폭 후유증에 대한 보상도 해주지 않고 있다”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평생 신체적 고통과 정신장애를 갖고 살아가야 할 제 아들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고 호소했다.

이어 “안전장치를 풀어 방사선 발생장치에 손을 집어넣게 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작업을 시킨 서울반도체와 협력업체의 실태를 철저히 조사하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시 있었다” vs “결코 없었다”
원안위 조사대상 확대…결과 주목 

서울반도체 및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안산·시흥지역 네트워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사측은 허용수치 범위 내에서 발생한 사고이고, 혈액검사와 염색체 검사서 이상이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며 “그러나 검사가 정상이라 하더라도 외상으로 발생한 부분을 사측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작업에 대한 지시를 협력업체 차장이 했지만, 서울반도체의 물량 압박 등의 지시가 있었다”며 “이름만 하도급업체지 원청의 지시를 100% 받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운영체계를 보면 결국 서울반도체서 지시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 서울반도체

그러면서 “해당 기계를 이용해 작업을 한 건 협력업체 직원만이 아니다”라며 “서울반도체 정직원들도 협력업체 직원들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장비 관리의 책임은 서울반도체에 있다”고 밝혔다.

서울반도체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피해자의 외상에 대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입장은 아니다”라며 “피폭은 인정한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원안위 조사를 받는 중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피폭 인정
책임질 것”

이 관계자는 “안전교육을 했고, 직원들이 임의로 안전장치를 해제한 것을 목격해 몇 차례 지적한 바 있다”고 밝혔다. 작업 지시 여부에 대해 “절대 사실이 아니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관리 소홀과 안전에 대한 책임은 서울반도체에게 있다”며 “조사를 받고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울반도체, 산재 인정 직원에 취소 소송

고 이가영씨는 서울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했던 직원이었다. 1992년생인 이씨는 2015년 서울반도체 파견업체 소속 비정규직서 서울반도체 정규직이 됐다. 이씨는 ‘우수사원상’을 받을 만큼 성실하게 일했다.

2017년 9월 이씨는 악성림프종(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2018년 10월 근로복지공단은 이씨의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이씨가 근무했던 장소에 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또 근무 환경 등이 악성림프종 발병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봤다.

그러나 서울반도체는 이씨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반도체 인사팀장은 이씨의 집으로 찾아가 산재 인정 취소 소송을 준비한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 4월8일 끝내 생을 마감했다. 이씨의 발인은 같은 달 10일이었다.

그러나 이씨의 유가족은 서울반도체서 산재 인정 취소 소송을 취하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입장이었다.

서울반도체 측은 그제야 소송 취하를 결정했다. 이씨의 발인은 하루 뒤인 11일에 이뤄졌다.

서울반도체는 최근 피폭 사건과 관련된 보도자료를 내면서 이씨의 사례를 언급했다.

서울반도체는 “당사가 받은 질병판정서에 2016년 10월부터 치료를 받은 것으로 돼있어 (이씨가) 입사한 2015년 2월부터 2년이 채 안 되는 근무 기간으로, 임직원들이 사실 확인을 희망해 인과관계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족들에게 행정소송 결과에 상관없이 ‘병원 치료는 당사가 부담하겠다’며 찾아뵙고 말씀도 드렸다”고 해명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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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