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현 전 <한겨레> 기자 “검사가 갑이고 기자가 을이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9.27 14:44:47
  • 호수 12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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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언론플레이’ 실상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법조기자와 검사는 ‘갑과 을’의 관계입니다. 검찰은 이미 권력집단이에요. 사실 검사가 언론플레이를 해봤자 승진 등에 큰 의미가 없어요. 자기한테 유리한 정보만 언론에 흘려줘도 된다는 거죠. 경쟁이 치열한 법조보도 시장서 검찰 관계자들이 흘려주는 걸 제대로 받지 못한 기자는 자연스럽게 출입처서 도태돼요. 검찰 입장서 손해볼 게 하나도 없죠. 검찰에게 정보를 받고 싶어하는 기자들이 차고 넘치니까요.” 
 

지난 22일 허재현 전 <한겨레> 기자는 자신의 SNS를 통해 법조기자와 검찰의 부적절한 ‘검언 카르텔’에 대해 고발했다. 그가 쓴 ‘<한겨레> 법조(기자)가 왜 검찰 편향적이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해 드릴게요…’라는 글은 SNS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선심 쓰듯 
한 입씩∼

지난달 24일, 서울 수서역 인근서 허 기자를 만났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이 겪은 검찰 편향적인 법조기자단의 내부 관행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허 기자는 최근 조국 법무부장관 칼럼 삭제를 비판한 주니어 기자들과 검찰발 기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앞서 그는 자신의 SNS에 "<한겨레>의 젊은 기자들이 검찰 편향적이라고 지적받는 ‘강희철의 법조외전’ 같은 문제 많은 칼럼에 대해 지적하기는커녕, 편집국장이 삭제 조처하는 걸 되레 문제 삼은 걸 보고 놀랐어요”라고 적었다. 


그가 쓴 글은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졌다. <한겨레>엔 구독 해지 전화와 항의가 빗발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글에 대한 비판과 함께 허 기자의 과거 마약 투여 사실이 다시금 논란이 됐다. 허 기자는 지난해 5월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뒤 <한겨레>서 해고됐다. 허 기자는 같은 해 9월 재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현재 그는 탐사보도 매체 <리포액트> 기자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허 기자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의 마약 투여 사실과 언론인으로서의 내부 고발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란 것이다. 그는 <한겨레> 재직 시 항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공익에 부합한 기사들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공로가 인정돼 <한겨레> 기자로서 수많은 기자상을 탔다. 

▲2009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경찰의 살인진압 현장 고발(국가인권위원회 인권보도상) ▲2010년 삼성반도체공장 집단 백혈병 사건의 진실(앰네스티 보도상) ▲2012년 ‘제2의 김진숙 제3의 한진중’ 장기노동분쟁 현장 추적(한국기자협회·국가인권위원회 인권보도상) ▲2015년 김련희 간첩사건 조작 의혹 제기(앰네스티 보도상) ▲2018년 경찰 정치댓글 조직적 작성 고발(한국기자협회 이달의기자상)

검찰서 슬쩍 흘린 수사 정보
기자들 덥석 물어 검발 보도

특히 허 기자는 <한겨레> 법조기자로서 검찰팀에 몸담은 ‘내부자’였다. 현 ‘조국 정국’서 문제가 되는 피의사실 공표, ‘검찰발 기사’ 생산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목격자이기도 하다. 다음은 허 기자와 일문일답. 

▲법조기자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유는?
-먼저 <한겨레> 구성원들에게 미안합니다. 내가 떳떳하게 <한겨레>를 나온 것도 아니고…공격하려고 쓴 글이 아니에요. 하지만 언젠가는 쓰려던 글이었어요. 나름 <한겨레>에 애정을 가지는 마음으로 썼어요.


예전부터 일간지의 법조 기사가 검찰 편향적이고, 지나치게 검찰발 정보에 의존한다고 생각했어요. <한겨레>만 그런 게 아니에요. 법조 보도 시장 전체가 문제죠. 물론, 개인의 관찰이자 의견이지만 직접 법조팀에 있어 봤기에 그 실상을 잘 안다고 생각해요. 또 출입처에 의존하지 않고 제보를 받거나 기사를 발굴해 자기 실력만으로 검증하는 기자들이 있어요. 이런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어요. 
 

▲언론이 검찰 편향적인 보도를 하는 이유는?
-출입처 문화의 폐해죠. 언론에선 검찰수사 속보기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보통 검찰수사 기사는 검사들이 흘려주는 정보로 쓰는 거예요. 그래서 검찰 출입기자들이 검찰발 정보에 많이 의존해요. 문제는 법조기자들이 검찰이 주는 정보를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보도한다는 거죠. 그러니 검찰 관점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죠. 

▲왜 검찰이 언론에 수사 정보를 흘리는 가?
-검찰은 중립성을 의심받는 수사기관이에요. 한국 사회서 통제되지 않는 권력을 너무 많이 갖고있다는 비판을 받죠. 검찰이 언론에 흘려주는 정보는 상당 부분 의도가 있다고 봐요. 기자가 검사들이 흘려주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보도하다 보면 그들이 원하는 세상으로 가는 겁니다. 

검사들은 그들이 만들고 싶은 세상이 분명히 있어요. 자신들이 흘려주는 수사 정보만 세상에 알려지길 원해요. 검찰이 매장하고 싶은 누군가가 있을 때 그런 걸 언론에 흘려요. 반대로 자신들이 보호해주고 싶은 누군가의 사건은 조용히 덮고요.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사건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 의혹 부실수사가 검찰의 이중적 태도가 드러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어떻게 검찰이 법조기자에게 정보를 흘리나?
-우선 검찰이 주요 언론사들을 관리해요. 그러면서 자신들이 필요할 때마다 활용할 언론사들을 취사선택해요. 사건마다 수사에 유리한 보도를 할 수 있는 언론사를 선별해 정보를 주는 거죠. 예를 들어 이 사건을 A신문사에 흘려주면 중립성을 의심받지 않겠다는 등 검찰이 판단을 해요.

또 주기적으로 검사들은 언론사와 술자리를 가져요. 그 자리서 해당 검사는 언론사와 관계를 맺어요. 술자리서 기자들에게 정보를 슬쩍 슬쩍 흘리는 건 흔한 일이고요. 친하게 지내면 검사가 필요할 때마다 그 언론사에 정보를 줘요. 

그렇다고 검찰이 수사 정보를 기자들에게 대놓고 주지는 않아요. 보통 각 언론사 법조팀장들을 통해 정보가 내려가요. “이런 정치인 문제 많으니까 취재해봐라” “여기 가서 누구 만나봐라” 등 검사들이 알려줘요. 이 정보를 가지고 법조팀장은 후배 기자에게 취재 지시를 내리죠. 

법조팀장들은 기사를 잘 안 써요. 검사들과 관계 유지하는 데 바쁘죠. 같이 술도 마시고, 등산도 가야 하고, 골프도 함께 치고… 이렇게 해야 후배기자들에게 아이템을 물어다 줄 수 있거든요. 그래야 조직서 능력 있는 기자로 인정받아요.   
 

또 검사 출신 변호사들을 통해 수사 정보가 흘러가는 경우도 있어요. ‘법조계에 따르면 어디 어디 수사가 진행 중이다’ 등의 법조기사는 검찰과 인맥이 있는 변호사가 기자에게 제보 혹은 정보를 줬을 가능성이 커요. 이 외에도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검찰이 기자에게 정보를 흘려요.

▲검찰에 정보를 받는 게 안 좋은 건가?
-저널리즘 영역이 다양할 수 있고, 검찰로부터 정보를 받는 것도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검찰이 주는 정보로 기사를 쓸 수도 있어요. 그런데 법조 보도 시장에서는 그것만이 전부가 됐어요. 저는 그것에만 매달리는 법조기자들의 행태를 지적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검찰이 그리고 싶은 세상을 위한 기사만 쓰게 돼요. 이걸 경계해야 한다는 거죠. 최근 조국 법무부장관 보도와 관련해 검찰발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데, 이건 검찰이 그리고 싶은 그림인 거죠. 언론이 사실상 검찰의 수사 도구로 활용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모든 정보 혹은 제보에는 독이 묻어 있어요. 이걸 발라내는 게 기자의 일이에요. 

소스 흘리는 방법 보니…  
법조팀장-검사 직거래?


언론사와 검찰이 ‘밀월 관계’로 보이는데? 
-사실 검사가 갑이고 기자가 을이에요. 검찰은 권력집단이에요. 검찰이 언론플레이를 해봤자 큰 의미는 없어요. 자기한테 유리한 정보만 언론에 흘려줘도 된다는 거죠. 경쟁이 치열한 법조 보도 시장서 검사들이 흘려주는 걸 제대로 받지 못한 기자는 자연스럽게 출입처서 도태돼요. 검찰 입장서 손해볼 게 하나도 없죠. 검찰에게 정보를 받고 싶어하는 기자들이 차고 넘치니깐요.”

▲도태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검사와 법조기자들은 어쨌든 상부상조해요. 예를 들어 검사가 A사 법조기자에게 정보를 주면 이 기자는 이걸 보도해줘야 해요. 그래야 두 사람의 관계가 형성이 되거든요. 보도를 안 해주면 이 검사는 더이상 A사 기자에게 정보를 주지 않을 거예요. 이 기자는 검사 입장서 활용 가치가 떨어지는 거죠. 검사는 밑질 게 없어요. 정보를 줄 기자들은 많으니까요. 어쨌든 아쉬운 건 기자 쪽인 거죠. 그런 문화가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어요. 독버섯 같은 거죠. 
 

▲법조기자들이 검찰 정보에 목을 매는 이유?
-결국 언론사의 구조적인 문제예요. 대부분 언론사 편집국서 타사가 보도하지 않은 수사속보와 단독을 원해요. 편집국에서는 검찰 수사속보 잘 캐오는 기자가 능력자로 대접받고, 고급 출입처를 보장받는 관행이 생겼어요. 이런 내부 분위기 때문에 법조기자들이 결국 검사 입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거죠. 

검사들에게 말 한 마디 듣기 위해 법조기자들이 고생을 많이 해요. 한 법조기자는 보름간 검사장급 검사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해 결국 이 검사가 기자를 데리고 노래방에 갔어요. 그곳에서 수사 관련 서류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기삿거리를 줬죠. 그 기자는 그걸 보도했고, 결국 큰 사건이 됐어요. 

▲법조기자 문화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언론사가 결단 내리지 않으면 쉽게 안 바뀔 거예요. 수사속보를 포기해도 좋으니 검증된 것만 쓰자고 각사 편집국서 선언을 해야 합니다. 검찰의 공식 브리핑으로 발표된 것만 쓰고. 그외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검증이 완료된 정보만 기사로 써야 해요. 또 검찰 중심이 아닌 법원 중심의 취재 관행으로 옮겨가야 해요. 

▲SNS글을 쓰고 ‘마약 기자’라는 비판도 많이 받던데. 
-받아들여요. 기자의 자질을 마약과 연관해서 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요. 속상하지만 감내해야죠. 제가 잘못을 저지른 건 사실이니깐요. 그렇다고 제가 경험하고 보고 들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제가 경험했던 법조기자들의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앞으로의 계획은? 
마약 관련 문제는 저와 떼어놓을 수 없는 숙명이 됐어요. 마약과 관련된 활동을 주로 하고 있어요. ‘약물중독자의 회복과 인권을 위한 회복연대’서 한국사회가 그간 다루지 않은 마약 제도와 마약 투약자 인식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또 탐사언론 매체 <리포액트>를 설립했고, 기자로서 마약 관련 취재를 전문적으로 할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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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