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박현주 애증의 10년 풀스토리

친했었는데…어쩌다 이 지경?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미래에셋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현주 회장과의 관계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지금은 꽤 불편한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는 막역한 사이였던 두 박 회장.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애증을 뒤로 하고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미래에셋대우는 HDC현대산업개발과 손잡고 아시아나항공 예비입찰 직전 참여 의사를 내놓으면서 ‘깜짝’ 인수 후보로 떠올랐다.

돌연 등장
관심 집중

지난 3일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는 아시아나항공 예비입찰에 재무적투자자(FI)로서 HDC현대산업개발과 함께 참여했다. 미래에셋대우는 HDC현대산업개발과 함께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구주)과 신주를 매입하거나 인수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현주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왔을 때부터 재무적투자자로서 미래에셋대우의 참여를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이 항공업 라이선스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 가치가 큰 데다 복잡한 구조로 이뤄진 대규모 거래인 만큼 미래에셋대우의 투자금융(IB) 역량을 보여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래에셋대우는 전략적투자자(SI)를 찾던 중 HDC현대산업개발과 뜻이 맞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건설업 이외에도 호텔, 면세점 등으로 사업범위를 넓히고 있는데 시너지를 낼 만한 기업으로 아시아나항공을 눈여겨보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대우가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박삼구 전 회장과 박현주 회장과의 관계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호남 출신 대표적 기업인으로 꼽히는 두 사람은 광주제일고 선후배다. 박삼구 전 회장이 1963년 졸업했고 박현주 회장은 14년 후인 1977년에 졸업했다. 나이 차이는 났지만 꽤 친했던 두 박 회장은 그동안 사업관계로 적지않은 마찰을 빚으면서 악연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보로 깜짝 등장
박·박 회장 한때 막역한 사이 눈길

지난 2006년 박현주 회장은 박삼구 전 회장의 대우건설 인수를 돕기 위해 재무적 투자자(FI)로 나선 바 있다.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시장의 만류에도 밀어붙였다. 이는 두 사람 간의 신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2008년부터 급격히 틀어졌다.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인수에 함께 따라 나선 미래에셋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자금 손실을 보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불편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인수구조를 살펴보면 당시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미래에셋 등 여러 FI와 공동 인수단을 꾸렸다. FI들이 대우건설 지분을 사주는 대신 향후 주가가 오르지 않을 경우 보유한 주식을 금호아시아나가 되사주는 이른바 풋옵션 계약을 맺었다.

미래에셋의 든든한 지원하에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손에 넣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시장의 우려대로 대우건설 주가가 급락을 거듭했다. 당연히 FI들의 보유지분가치는 떨어졌고 옵션 만기가 다가올수록 이를 되사야 하는 금호아시아나도 점차 자금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 풋옵션을 되사줄 수 없었던 금호아시아나는 결국 2008년 구조조정 계획안을 발표한다. 산업은행, 미래애셋 등 채권단과의 협의를 통해 대우건설 풋옵션을 보통주로 바꿔주는 출자전환에 합의했다. 이 과정서 미래에셋은 금호산업 지분 11.69%를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돈 때문에?
의사 오갔나

이후 금호아시아나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수차례의 증자와 감자를 반복했다. 당연히 최대주주인 미래에셋의 손해는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미래에셋을 믿고 함께 투자한 다른 투자자들의 손실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미래에셋그룹은 물론 박현주 회장에 대한 평가도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 

결국 박현주 회장은 최대주주 지위서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 정상화를 명목으로 주요 계열사 매각을 요구했다. 계열사 하나하나에 애착이 강했던 박삼구 전 회장에게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었다.
 

하지만 박삼구 전 회장 역시 채권단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금호산업 매각을 결정하게 된다. 다소 불편하기만 했던 둘의 사이는 이때를 기점으로 완전히 틀어졌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잠잠해진 듯 보였던 두 사람의 갈등은 2015년 다시 정점을 찍었다. 박삼구 회장이 다시 금호산업을 되찾는 과정서 미래에셋이 포함된 채권단이 매각가를 높게 올려놨기 때문. 당시 박 전 회장은 금호산업을 7000억원에 사들이려 했지만 채권단은 1조원까지 제시했다.

박 전 회장 측에서는 채권단이 매각가를 높여 잡은 배경에 미래에셋이 영향력을 발휘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박 회장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박 전 회장과 박 회장간의 갈등은 호남을 대표하는 기업간 다툼으로 당시 지역 내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급기야 광주경영자총협회가 성명을 통해 “채권단이 재기에 나서려는 향토기업의 발판을 뒤흔들고 있다”며 박 전 회장 편에 서서 박 회장 측을 비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입장 바뀌다
서로의 책임

오랜 갈등 끝에 박 전 회장이 금호산업을 다시 인수했지만 이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재무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금호타이어 인수 실패로 금호재건은 물 건너갔고 아시아나항공의 자금난은 갈수록 악화됐다. 그 결과 박 전 회장은 지난 3월로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직서 내려왔고 아시아나항공을 팔아야 하는 상황까지 맞이하게 됐다.

박 전 회장 입장에선 회사 매각 과정서 많은 돈을 지출하게 한 박 회장에게 서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박 회장 역시 투자금 손실을 겪게 한 박 전 회장에 대해 달갑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선 박 회장이 박 전 회장의 구원투수로 등판하고자 과거 부동산114 딜을 함께 추진했고 박 회장의 고려대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인 정몽규 회장이 있는 HDC현대산업개발과 손을 잡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최근 저가형항공사(LCC)를 비롯해 항공운송업황 전반이 부진한 탓에 부채만 2조원에 가까운 아시아나항공을 살 요인이 크지 않은 실정”이라면서도 “다만 박현주 회장이 SI를 앞세워 아시아나항공을 산 뒤 후에 다시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되넘기는 일종의 파킹딜을 구상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선후배 ‘돈이 뭔지’
갑자기 왜?…백기사? 흑기사?

미래에셋대우가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아시아나항공의 호남기업으로서 상징성도 다시 한 번 부각되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박 회장을 비롯해 그룹의 부회장 5명 가운데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 수석부회장, 최경주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 부회장, 정상기 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 대표이사 부회장 등 3명이 모두 호남 출신이다.

아시아나항공도 대한항공과 함께 양대 국적항공사란 점도 있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들과 함께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호남에 기반을 둔 기업이란 점에서 정치·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호남에 뿌리를 두지 않은 기업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지역사회의 반발이 클 것이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돌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점 때문에 미래에셋대우의 인수전 참여를 놓고 박 회장이 산업은행 등 금융당국으로부터 모종의 메시지를 받은 것 아니냐는 시선도 일각서 나온다. 다만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출신이 같다는 점이 투자의 이유가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관계 호전?
두고 봐야…

시장은 이번 아시아나항공 M&A를 두고 다시 만난 두 박 회장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어떤 새 주인을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건 두 회장의 관계가 당분간 호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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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