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박현주 애증의 10년 풀스토리

친했었는데…어쩌다 이 지경?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미래에셋그룹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현주 회장과의 관계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지금은 꽤 불편한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는 막역한 사이였던 두 박 회장.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애증을 뒤로 하고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미래에셋대우는 HDC현대산업개발과 손잡고 아시아나항공 예비입찰 직전 참여 의사를 내놓으면서 ‘깜짝’ 인수 후보로 떠올랐다.

돌연 등장
관심 집중

지난 3일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는 아시아나항공 예비입찰에 재무적투자자(FI)로서 HDC현대산업개발과 함께 참여했다. 미래에셋대우는 HDC현대산업개발과 함께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구주)과 신주를 매입하거나 인수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현주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왔을 때부터 재무적투자자로서 미래에셋대우의 참여를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이 항공업 라이선스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 가치가 큰 데다 복잡한 구조로 이뤄진 대규모 거래인 만큼 미래에셋대우의 투자금융(IB) 역량을 보여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래에셋대우는 전략적투자자(SI)를 찾던 중 HDC현대산업개발과 뜻이 맞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건설업 이외에도 호텔, 면세점 등으로 사업범위를 넓히고 있는데 시너지를 낼 만한 기업으로 아시아나항공을 눈여겨보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대우가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박삼구 전 회장과 박현주 회장과의 관계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호남 출신 대표적 기업인으로 꼽히는 두 사람은 광주제일고 선후배다. 박삼구 전 회장이 1963년 졸업했고 박현주 회장은 14년 후인 1977년에 졸업했다. 나이 차이는 났지만 꽤 친했던 두 박 회장은 그동안 사업관계로 적지않은 마찰을 빚으면서 악연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보로 깜짝 등장
박·박 회장 한때 막역한 사이 눈길

지난 2006년 박현주 회장은 박삼구 전 회장의 대우건설 인수를 돕기 위해 재무적 투자자(FI)로 나선 바 있다.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시장의 만류에도 밀어붙였다. 이는 두 사람 간의 신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2008년부터 급격히 틀어졌다.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인수에 함께 따라 나선 미래에셋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자금 손실을 보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불편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인수구조를 살펴보면 당시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미래에셋 등 여러 FI와 공동 인수단을 꾸렸다. FI들이 대우건설 지분을 사주는 대신 향후 주가가 오르지 않을 경우 보유한 주식을 금호아시아나가 되사주는 이른바 풋옵션 계약을 맺었다.

미래에셋의 든든한 지원하에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손에 넣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시장의 우려대로 대우건설 주가가 급락을 거듭했다. 당연히 FI들의 보유지분가치는 떨어졌고 옵션 만기가 다가올수록 이를 되사야 하는 금호아시아나도 점차 자금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 풋옵션을 되사줄 수 없었던 금호아시아나는 결국 2008년 구조조정 계획안을 발표한다. 산업은행, 미래애셋 등 채권단과의 협의를 통해 대우건설 풋옵션을 보통주로 바꿔주는 출자전환에 합의했다. 이 과정서 미래에셋은 금호산업 지분 11.69%를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돈 때문에?
의사 오갔나

이후 금호아시아나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수차례의 증자와 감자를 반복했다. 당연히 최대주주인 미래에셋의 손해는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미래에셋을 믿고 함께 투자한 다른 투자자들의 손실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미래에셋그룹은 물론 박현주 회장에 대한 평가도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 

결국 박현주 회장은 최대주주 지위서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 정상화를 명목으로 주요 계열사 매각을 요구했다. 계열사 하나하나에 애착이 강했던 박삼구 전 회장에게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셈이었다.
 

하지만 박삼구 전 회장 역시 채권단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금호산업 매각을 결정하게 된다. 다소 불편하기만 했던 둘의 사이는 이때를 기점으로 완전히 틀어졌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잠잠해진 듯 보였던 두 사람의 갈등은 2015년 다시 정점을 찍었다. 박삼구 회장이 다시 금호산업을 되찾는 과정서 미래에셋이 포함된 채권단이 매각가를 높게 올려놨기 때문. 당시 박 전 회장은 금호산업을 7000억원에 사들이려 했지만 채권단은 1조원까지 제시했다.

박 전 회장 측에서는 채권단이 매각가를 높여 잡은 배경에 미래에셋이 영향력을 발휘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박 회장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박 전 회장과 박 회장간의 갈등은 호남을 대표하는 기업간 다툼으로 당시 지역 내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급기야 광주경영자총협회가 성명을 통해 “채권단이 재기에 나서려는 향토기업의 발판을 뒤흔들고 있다”며 박 전 회장 편에 서서 박 회장 측을 비난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입장 바뀌다
서로의 책임

오랜 갈등 끝에 박 전 회장이 금호산업을 다시 인수했지만 이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재무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금호타이어 인수 실패로 금호재건은 물 건너갔고 아시아나항공의 자금난은 갈수록 악화됐다. 그 결과 박 전 회장은 지난 3월로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직서 내려왔고 아시아나항공을 팔아야 하는 상황까지 맞이하게 됐다.

박 전 회장 입장에선 회사 매각 과정서 많은 돈을 지출하게 한 박 회장에게 서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박 회장 역시 투자금 손실을 겪게 한 박 전 회장에 대해 달갑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선 박 회장이 박 전 회장의 구원투수로 등판하고자 과거 부동산114 딜을 함께 추진했고 박 회장의 고려대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인 정몽규 회장이 있는 HDC현대산업개발과 손을 잡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최근 저가형항공사(LCC)를 비롯해 항공운송업황 전반이 부진한 탓에 부채만 2조원에 가까운 아시아나항공을 살 요인이 크지 않은 실정”이라면서도 “다만 박현주 회장이 SI를 앞세워 아시아나항공을 산 뒤 후에 다시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되넘기는 일종의 파킹딜을 구상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선후배 ‘돈이 뭔지’
갑자기 왜?…백기사? 흑기사?

미래에셋대우가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아시아나항공의 호남기업으로서 상징성도 다시 한 번 부각되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박 회장을 비롯해 그룹의 부회장 5명 가운데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 수석부회장, 최경주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 부회장, 정상기 에너지인프라자산운용 대표이사 부회장 등 3명이 모두 호남 출신이다.

아시아나항공도 대한항공과 함께 양대 국적항공사란 점도 있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들과 함께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호남에 기반을 둔 기업이란 점에서 정치·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호남에 뿌리를 두지 않은 기업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지역사회의 반발이 클 것이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돌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점 때문에 미래에셋대우의 인수전 참여를 놓고 박 회장이 산업은행 등 금융당국으로부터 모종의 메시지를 받은 것 아니냐는 시선도 일각서 나온다. 다만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출신이 같다는 점이 투자의 이유가 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관계 호전?
두고 봐야…

시장은 이번 아시아나항공 M&A를 두고 다시 만난 두 박 회장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어떤 새 주인을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건 두 회장의 관계가 당분간 호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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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