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칼럼>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유감
<박재희 칼럼>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유감
  • 박재희 노무사
  • 승인 2019.09.23 14:42
  • 호수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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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명절 연휴에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주기 시작했다. 2015년, 국민 사기 진작과 내수 활성화를 목적으로 시작된 통행료 면제가 수년 간 계속되다 보니 작금에 들어서는 통행료 면제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기 힘들게 된 모양새다. 

2018년 1월, 유료도로법과 동법 시행령 개정으로 그간 정부 정책으로 시행되던 통행료 면제가 법제화됐다. 개정 법령이 명절 등에 반드시 통행료를 면제해야 한다는 뜻을 담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특정한 기간에는 통행료를 면제할 수 있다고 정해 놓은 법령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통행료를 징수하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번 추석 연휴에도 고속도로 통행료는 면제됐다. 납부해야 할 요금을 내지 않게 해 준다는데 기분 좋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통행료 면제의 목적 중 하나인 국민의 사기 진작이 이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정책이 타당한 것인지는 한 번쯤 따져 볼 일이다.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승용차로 고향을 다녀올 수 있는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보다 경제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여유가 있을 것이다. 직업적 특성이나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으로 명절에 고향 방문을 하지 못한 이들도 많다.

추석을 다 같이 맞이하더라도 명절을 보내는 모습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이 중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이들에게만 경제적 혜택을 주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를 전반적으로 살폈을 때 명절에 승용차로 고향에 방문하거나 여행을 갈 수 있는 사람은 정부나 공공기관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대상은 아니다.

그들에게 통행료를 면제해줄 여력이 있다면 명절에 더욱 소외감을 느끼는 어려운 이들에게 떡 한 점이라도 베푸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줄 여력은 있는 것일까?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로 인한 재정 부담은 한국도로공사와 여러 민자 고속도로 회사가 전부 감당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도로공사가 가장 큰 수입 손실을 입고 있다. 매년 설과 추석 연휴 기간에 발생하는 손실만 1000억원 안팎이다.

한국도로공사가 순이익이 발생하는 기관으로 이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면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올해 28조원가량인 한국도로공사의 부채는 2022년에는 34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자 지출만 1조원 안팎으로 한 해 영업이익이 이자 지출액보다 적은 경우도 있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보면 명절 등에 시행된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는 언젠가는 통행료 인상이나 세금 투입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통행료 인상과 세금 지원이 순조롭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지난 10년 간 고속도로 통행료는 단 두 차례 인상됐고 인상률도 평균 3%대에 불과했다. 세금 투입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명절이나 임시공휴일에 통행료를 면제해주고선 도로공사 적자는 세금으로 메운다는 것을 납득할 이가 얼마나 있을까. 조삼모사라고 생각할 것이다.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정책은 재고(再考)돼야 한다. 갑작스런 제도 변화가 부담스럽다면 전액이 아닌 일부 감면제도로라도 바꿔야 한다. 경차와 일반 승용차를 차등감면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 다수가 환영한다고 하더라도 냉정히 판단해 시행하지 말아야 하는 정책이 있고, 반대 여론이 비등(沸騰) 하더라도 국가적 견지에서는 과감히 실시해야 하는 정책도 있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정책은 전자였고 시행된 면제 정책의 수정이나 폐지는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국민의 호응을 얻어야 정권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관행화된 국민의 혜택을 축소하자는 주장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올바른 국정운영과 공공기관의 합리적 경영을 위해 누군가는 나서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