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무성’ 신림동 유령백화점의 정체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9.23 11:14:39
  • 호수 12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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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싸인 채 13년 흉물로 방치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신림역에 흉물로 방치된 유령 백화점이 있다. 13년이 지나도록 완공되지 않은 이 백화점은 사업 개발 과정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장기간 방치된 신림백화점을 두고 복잡한 권리관계가 얽혀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흉물인 신림백화점 개발사업이 또다시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신림백화점 인수자로 낙점된 부동산 투자사 브이앤아이그룹이 잔금 납부를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9월19일 기준) 잔금 납부기일인 지난 19일에 맞춰 자금을 마련해 신림백화점 시행권을 취득하려고 한 브이앤아이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전망이다.

씨앤 주도
2006년 공사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기일 내 잔금 미납 시 매매계약서 제3조 1항에 따라 계약은 해제하고 계약금을 몰취할 예정’이라고 명시됐다. 몰취란 민사 소송서 법원이 일정한 물건의 소유권을 박탈해 국가에 귀속시키는 결정을 의미한다. 

올해 6월 브이앤아이는 공매로 나왔던 신림백화점 인수를 추진해왔다. 거래는 수의계약 형태로 진행됐으며, 매매가는 773억원으로 책정됐다. 브이앤아이는 우선 계약금(20%) 150억원을 납부했고, 나머지 80%인 623억원을 납부했어야 했다. 

브이앤아이는 신탁사인 무궁화신탁과 지난 6월20일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매매계약 절차 중지 가처분이 재판 중이라는 이유로 7월12일 2차 계약서를 작성했다. 10일 뒤인 22일 절차 중지 가처분 기각이 결정되면서 잔금 기일이 8월20일까지로 결정됐지만, 납부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된 계약 요건에 따라 기한이 이달 4일 자로 연기됐다. 그러나 계속된 납부 지연으로 무궁화신탁은 브이앤아이에 ‘이행최고’를 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행최고란 상당 기간을 정해놓고 이행을 독촉하는 통지를 의미한다.

계약자 단체 중도금 납입 거부
잔금 납부 기한도 잇달아 연기

이와 관련해 브이앤아이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전에 부실채권을 인수한 중원에셋에도 문의를 시도했지만 담당자와 연결할 수 없었다. 수신자는 “담당자가 (이와 관련해)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브이앤아이의 납부 기한 연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매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자꾸 잔금 납부 날짜를 미루는 건 말도 안 된다. 개인 간 아파트 매매도 아니고 이상한 상황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예견된 상황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브이앤아이가 자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연이어 잔금 납부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주위의 시선은 의심의 눈초리로 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더벨>과의 인터뷰서 “브이앤아이가 금융기관을 통해 잔금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지금까지 납부하지 못했다. 사채를 동원해서라도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시행권과 관련해 무궁화신탁에 문의했지만 “계약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런 이야기도 해줄 수 없다”며 대답을 일축했다.

신림백화점은 지난 2006년 7월 공사에 돌입했다. 당시 시행사는 플레이쉘, 시공사는 씨앤우방(이하 우방)이었다. 신탁사는 한국자산신탁, 프로젝트 관리는 씨비알이(CBRE)가 맡았다. 지하 7층부터 지상 12층 규모의 건물을 지을 계획이었다.


거창한 계획
부도로 표류

2007년 ‘씨앤백화점’이란 이름으로 매장 점포를 분양 모집했다. 연면적 1만2000평, 지하 7층서 지상 12층 규모인 이 패션 테마 백화점은 씨앤그룹이 운영을 맡았다. 지하에는 세계 음식 식당, 대형슈퍼, 가정용품점이 지상층에는 각종 패션매장이 들어선다고 홍보했다. 

중도금 30% 무이자 융자 혜택으로 등기부상 소유권을 가질 수 없었던 기존 백화점과 달리 토지·건물은 100% 등기분양으로 이뤄졌다. 분양가는 1100만∼3500만원선으로 서울지하철 2호선 신림역서 지하로 직접 연결된다는 소식에 인근 주민들을 기대했다. 

중견 건설업체 씨앤우방(우방)의 유통분야 첫 진출사업인 씨앤백화점은 자가 주택, 자가 상점에 이어 이른바 ‘자가 백화점’ 시대의 시작을 알리며, 2009년 입주가 예정됐다.

당시 씨앤그룹 계열 시행사인 플레이쉘은 백화점이 위탁 운영해 수익률을 배분해주는 ‘분양 후 위탁 운영’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업계 최초의 백화점 분양으로 그 상징성을 더했다.

우방의 연 11% 수익 보증서 발행, 책임준공 보증서 교부 등 유혹으로 인해 투자자들이 몰렸다. 공사비는 약 3000억원으로 농협은행 등으로부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받아 800억원 자금을 조달했고 분양 계약자들로부터 약 1200억원을 확보하며 순조롭게 사업은 진행됐다. 공사에 들어간 선투자액은 40%였다.

이후 착공에 들어가며 입점은 2009년 3월로 계획됐지만 1년 만에 적신호가 켜졌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시공사였던 우방이 돈이 부족해서 공사에 차질이 생겼다. 받은 돈을 공사에만 사용해야 하는데, 계열사 지급보증으로 인해 자금이 빨리 떨어졌다. 회사 구조상 공사비가 계열사로 지급되다 보니 자금난이 오면서 시공사와 시행사가 모두 부도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우방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차질을 빚었다. 2011년 채권단 최대주주인 농협은행이 새 시공사로 금호산업을 선정해 공사가 재개되는 듯했지만, 2012년 3월 분양 계약자들이 단체로 중도금 납부를 거부하면서 개발이 중단됐다.

그 무렵 시공사였던 우방으로부터 공사 대금을 지불받지 못한 영창토건 등 하도급 업체들의 유치권 행사도 이어졌다.

농협은행은 2013년에 채권을 공매 매물로 내놨다. KB부동산신탁과 교보증권이 인수 의사를 드러냈지만,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중원에셋이라는 업체가 300억원대의 부실채권을 인수했다. 이때 신탁사는 한국자산신탁서 무궁화신탁으로 바뀌었다.

신림백화점서 ‘씨앤백화점’으로 변경됐던 상호는 ‘ART 백화점’으로 또 바뀌었다. 호텔로 사업을 변경한다는 이야기가 풍문으로 들리면서 공사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복잡한 
권리관계

하지만 사업은 진척되지 않았다. 백화점의 앙상한 골조가 그대로 유지됐으며 재건보다 기본적인 유지·보수만 될 뿐이었다. 관악구 한 관계자는 “인수자가 사업을 계속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 되팔아 수익을 창출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백화점이 사업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은 요인으로 여전히 복잡한 권리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관악방송 현대HCN뉴스와의 인터뷰서 “신림백화점 사업이 문제점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시행사, 시공사, 자금을 빌려준 금융사, 그리고 수분양을 받았던 분야주들에 대한 이해관계가 맞물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금융권이나 시행사와 달리 수분양자들은 한 푼의 수익도 없이 은행 이자만 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보니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심리도 많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 입장에선 신림백화점을 저렴한 가격에 매입해 상권 활성화, 시설 도입 등 운영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투자자들에게 보상비를 다 해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도심 도로에 뼈대만 앙상한 건물
백화점 개발사업 갈등으로 올스톱


공사가 멈춘 상태서 우여곡절이 계속되면서 신림백화점은 신림동의 흉물로 방치됐다. 인근 주민들의 불만이 커졌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에 따라 결국 다시 한 번 공매를 통해 원매자를 찾았다.

부동산개발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에도 개발 의사를 드러낸 소규모 시행사들이 있었지만, 사업 추진이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무궁화신탁이 플레이쉘을 상대로 승소하면서 신림백화점 개발사업이 재개됐고 무궁화신탁이 신림백화점 공매를 시작했다. 공매는 8회차까지 유찰했으며, 브이앤아이가 9회차 공매서 8회차 가격보다 높은 금액으로 거래가 성사될 것으로 보였지만 잔금납부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신림백화점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잔금 납부 관련해 상황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준다 준다
차일피일∼

일각에선 브이앤아이가 구두로만 보상을 약속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분양자들에게 보상을 해준다고는 구두로 약속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잔금에 대해 굉장히 불안한 상태인데 보상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인천 흉물도 보니…

인천해양경찰 출장소가 도심 속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해경이 인력을 파출소로 통합하면서 기존 출장소가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인천해양경찰서에 따르면 14개 출장소 가운데 상주하고 있는 지원이 없는 곳은 월미·소래·월곶·선수·창후리·용기포 등 총 6곳이다. 해경은 수년 전부터 인력 부종 등을 이유로 출장소 인원을 파출소로 통합했다. 

상주 직원이 없는 해경 출장소는 지역 곳곳에 흉물로 남아있다. 인천 대표 관광지인 월미출장소는 10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으며 건물 외벽은 금이 가 있거나 검게 녹슨 자국이 선명했다. 

내부에는 각종 공구가 사방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월미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낡은 건물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출장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천 해경은 남동구 소래 출장소와 옹진군 용기포 출장소 등도 무인출장사라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다. 

이 같은 사정에도 인천 해경은 출장소 인원을 파출소로 옮기는 통합근무인 ‘본청 지침’이라는 이유로 출장소 관리를 책임지지 않고 있다. 

인천 해경은 “순찰 직원이 출장소를 관리하고 있다”며 “공간을 활용하거나 철거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육경)은 빈 치안센터와 파출소를 청소년 카페, 공부방, 문화시설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부평구 삼산 치아센터 ‘청소년 카페’, 미추홀구 주안 치안센터 ‘승학골 북카페’ 등이 대표적이다. 

해경 관계자는 “본청 지침에 따라 출장소를 인근 해양사고 시 응급용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순찰하는 직원이 종종 가서 태극기를 교체하는 등 관리하고 있어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은방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해경 출장소는 해양사고 발생 시 장비 등을 현장에 빠르게 조달하는 나름의 역할이 있다”며 “다만, 관광지 등 도심에 있는 출장소는 건물 리모델링을 통해 외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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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