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무성’ 신림동 유령백화점의 정체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9.23 11:14:39
  • 호수 12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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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싸인 채 13년 흉물로 방치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신림역에 흉물로 방치된 유령 백화점이 있다. 13년이 지나도록 완공되지 않은 이 백화점은 사업 개발 과정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장기간 방치된 신림백화점을 두고 복잡한 권리관계가 얽혀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흉물인 신림백화점 개발사업이 또다시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신림백화점 인수자로 낙점된 부동산 투자사 브이앤아이그룹이 잔금 납부를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9월19일 기준) 잔금 납부기일인 지난 19일에 맞춰 자금을 마련해 신림백화점 시행권을 취득하려고 한 브이앤아이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전망이다.

씨앤 주도
2006년 공사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기일 내 잔금 미납 시 매매계약서 제3조 1항에 따라 계약은 해제하고 계약금을 몰취할 예정’이라고 명시됐다. 몰취란 민사 소송서 법원이 일정한 물건의 소유권을 박탈해 국가에 귀속시키는 결정을 의미한다. 

올해 6월 브이앤아이는 공매로 나왔던 신림백화점 인수를 추진해왔다. 거래는 수의계약 형태로 진행됐으며, 매매가는 773억원으로 책정됐다. 브이앤아이는 우선 계약금(20%) 150억원을 납부했고, 나머지 80%인 623억원을 납부했어야 했다. 

브이앤아이는 신탁사인 무궁화신탁과 지난 6월20일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매매계약 절차 중지 가처분이 재판 중이라는 이유로 7월12일 2차 계약서를 작성했다. 10일 뒤인 22일 절차 중지 가처분 기각이 결정되면서 잔금 기일이 8월20일까지로 결정됐지만, 납부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된 계약 요건에 따라 기한이 이달 4일 자로 연기됐다. 그러나 계속된 납부 지연으로 무궁화신탁은 브이앤아이에 ‘이행최고’를 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행최고란 상당 기간을 정해놓고 이행을 독촉하는 통지를 의미한다.

계약자 단체 중도금 납입 거부
잔금 납부 기한도 잇달아 연기

이와 관련해 브이앤아이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전에 부실채권을 인수한 중원에셋에도 문의를 시도했지만 담당자와 연결할 수 없었다. 수신자는 “담당자가 (이와 관련해)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브이앤아이의 납부 기한 연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매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자꾸 잔금 납부 날짜를 미루는 건 말도 안 된다. 개인 간 아파트 매매도 아니고 이상한 상황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예견된 상황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브이앤아이가 자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연이어 잔금 납부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주위의 시선은 의심의 눈초리로 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더벨>과의 인터뷰서 “브이앤아이가 금융기관을 통해 잔금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지금까지 납부하지 못했다. 사채를 동원해서라도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시행권과 관련해 무궁화신탁에 문의했지만 “계약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런 이야기도 해줄 수 없다”며 대답을 일축했다.

신림백화점은 지난 2006년 7월 공사에 돌입했다. 당시 시행사는 플레이쉘, 시공사는 씨앤우방(이하 우방)이었다. 신탁사는 한국자산신탁, 프로젝트 관리는 씨비알이(CBRE)가 맡았다. 지하 7층부터 지상 12층 규모의 건물을 지을 계획이었다.


거창한 계획
부도로 표류

2007년 ‘씨앤백화점’이란 이름으로 매장 점포를 분양 모집했다. 연면적 1만2000평, 지하 7층서 지상 12층 규모인 이 패션 테마 백화점은 씨앤그룹이 운영을 맡았다. 지하에는 세계 음식 식당, 대형슈퍼, 가정용품점이 지상층에는 각종 패션매장이 들어선다고 홍보했다. 

중도금 30% 무이자 융자 혜택으로 등기부상 소유권을 가질 수 없었던 기존 백화점과 달리 토지·건물은 100% 등기분양으로 이뤄졌다. 분양가는 1100만∼3500만원선으로 서울지하철 2호선 신림역서 지하로 직접 연결된다는 소식에 인근 주민들을 기대했다. 

중견 건설업체 씨앤우방(우방)의 유통분야 첫 진출사업인 씨앤백화점은 자가 주택, 자가 상점에 이어 이른바 ‘자가 백화점’ 시대의 시작을 알리며, 2009년 입주가 예정됐다.

당시 씨앤그룹 계열 시행사인 플레이쉘은 백화점이 위탁 운영해 수익률을 배분해주는 ‘분양 후 위탁 운영’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업계 최초의 백화점 분양으로 그 상징성을 더했다.

우방의 연 11% 수익 보증서 발행, 책임준공 보증서 교부 등 유혹으로 인해 투자자들이 몰렸다. 공사비는 약 3000억원으로 농협은행 등으로부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받아 800억원 자금을 조달했고 분양 계약자들로부터 약 1200억원을 확보하며 순조롭게 사업은 진행됐다. 공사에 들어간 선투자액은 40%였다.

이후 착공에 들어가며 입점은 2009년 3월로 계획됐지만 1년 만에 적신호가 켜졌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시공사였던 우방이 돈이 부족해서 공사에 차질이 생겼다. 받은 돈을 공사에만 사용해야 하는데, 계열사 지급보증으로 인해 자금이 빨리 떨어졌다. 회사 구조상 공사비가 계열사로 지급되다 보니 자금난이 오면서 시공사와 시행사가 모두 부도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우방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차질을 빚었다. 2011년 채권단 최대주주인 농협은행이 새 시공사로 금호산업을 선정해 공사가 재개되는 듯했지만, 2012년 3월 분양 계약자들이 단체로 중도금 납부를 거부하면서 개발이 중단됐다.

그 무렵 시공사였던 우방으로부터 공사 대금을 지불받지 못한 영창토건 등 하도급 업체들의 유치권 행사도 이어졌다.

농협은행은 2013년에 채권을 공매 매물로 내놨다. KB부동산신탁과 교보증권이 인수 의사를 드러냈지만, 계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중원에셋이라는 업체가 300억원대의 부실채권을 인수했다. 이때 신탁사는 한국자산신탁서 무궁화신탁으로 바뀌었다.

신림백화점서 ‘씨앤백화점’으로 변경됐던 상호는 ‘ART 백화점’으로 또 바뀌었다. 호텔로 사업을 변경한다는 이야기가 풍문으로 들리면서 공사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복잡한 
권리관계

하지만 사업은 진척되지 않았다. 백화점의 앙상한 골조가 그대로 유지됐으며 재건보다 기본적인 유지·보수만 될 뿐이었다. 관악구 한 관계자는 “인수자가 사업을 계속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 되팔아 수익을 창출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백화점이 사업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은 요인으로 여전히 복잡한 권리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관악방송 현대HCN뉴스와의 인터뷰서 “신림백화점 사업이 문제점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시행사, 시공사, 자금을 빌려준 금융사, 그리고 수분양을 받았던 분야주들에 대한 이해관계가 맞물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금융권이나 시행사와 달리 수분양자들은 한 푼의 수익도 없이 은행 이자만 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보니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심리도 많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 입장에선 신림백화점을 저렴한 가격에 매입해 상권 활성화, 시설 도입 등 운영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투자자들에게 보상비를 다 해주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도심 도로에 뼈대만 앙상한 건물
백화점 개발사업 갈등으로 올스톱


공사가 멈춘 상태서 우여곡절이 계속되면서 신림백화점은 신림동의 흉물로 방치됐다. 인근 주민들의 불만이 커졌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에 따라 결국 다시 한 번 공매를 통해 원매자를 찾았다.

부동산개발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에도 개발 의사를 드러낸 소규모 시행사들이 있었지만, 사업 추진이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무궁화신탁이 플레이쉘을 상대로 승소하면서 신림백화점 개발사업이 재개됐고 무궁화신탁이 신림백화점 공매를 시작했다. 공매는 8회차까지 유찰했으며, 브이앤아이가 9회차 공매서 8회차 가격보다 높은 금액으로 거래가 성사될 것으로 보였지만 잔금납부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신림백화점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잔금 납부 관련해 상황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준다 준다
차일피일∼

일각에선 브이앤아이가 구두로만 보상을 약속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분양자들에게 보상을 해준다고는 구두로 약속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잔금에 대해 굉장히 불안한 상태인데 보상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인천 흉물도 보니…

인천해양경찰 출장소가 도심 속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해경이 인력을 파출소로 통합하면서 기존 출장소가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인천해양경찰서에 따르면 14개 출장소 가운데 상주하고 있는 지원이 없는 곳은 월미·소래·월곶·선수·창후리·용기포 등 총 6곳이다. 해경은 수년 전부터 인력 부종 등을 이유로 출장소 인원을 파출소로 통합했다. 

상주 직원이 없는 해경 출장소는 지역 곳곳에 흉물로 남아있다. 인천 대표 관광지인 월미출장소는 10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으며 건물 외벽은 금이 가 있거나 검게 녹슨 자국이 선명했다. 

내부에는 각종 공구가 사방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월미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낡은 건물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출장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천 해경은 남동구 소래 출장소와 옹진군 용기포 출장소 등도 무인출장사라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다. 

이 같은 사정에도 인천 해경은 출장소 인원을 파출소로 옮기는 통합근무인 ‘본청 지침’이라는 이유로 출장소 관리를 책임지지 않고 있다. 

인천 해경은 “순찰 직원이 출장소를 관리하고 있다”며 “공간을 활용하거나 철거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육경)은 빈 치안센터와 파출소를 청소년 카페, 공부방, 문화시설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부평구 삼산 치아센터 ‘청소년 카페’, 미추홀구 주안 치안센터 ‘승학골 북카페’ 등이 대표적이다. 

해경 관계자는 “본청 지침에 따라 출장소를 인근 해양사고 시 응급용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순찰하는 직원이 종종 가서 태극기를 교체하는 등 관리하고 있어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은방 한국해양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해경 출장소는 해양사고 발생 시 장비 등을 현장에 빠르게 조달하는 나름의 역할이 있다”며 “다만, 관광지 등 도심에 있는 출장소는 건물 리모델링을 통해 외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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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