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노무현과의 대화’ 마지막 검사 김병현 “국민이 원하면 검찰은 따라야 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은 전국서 대표로 선정된 10명의 평검사들과 토론회, 이른바 ‘검사와의 대화’를 열었다. 이들 중 가장 오랫동안 현직에 남아있던 ‘마지막 멤버’ 김병현 변호사가 지난 7월말 검찰을 떠났다. '저승사자’ ‘독사’ ‘’. 검사를 수식할 때 자주 쓰이는 단어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면 피바람이 분다는 표현도 나온다.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검사의 이미지는 냉정하고 날카롭다. 살리기보다는 죽이는 데 더 익숙한 직업으로 묘사된다.
 

▲ 김병현 변호사

김병현 변호사는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보다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상생을 꾀하는 검사로 살고자 했다. 그런 그를 가리켜 대학 선배는 너는 살검(殺檢)이 아니라 활검(活檢)”이라고 말했다. 활검은 김 변호사가 가장 명예롭게 여기는 별명이다.

죽이기보다
살리는 검사

지난 728일 김 변호사(당시 서울고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흐르는 물처럼 떠나고자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사의를 밝혔다. 그는 그동안 저를 알던 분들께 참으로 미흡했고, 저를 모르는 분들께는 더더욱 부족 했습니다라며 장점보다 단점이 많았던 검사 김병현, 인생의 일부를 함께 해주셨던 선후배님들께 작별인사를 고합니다라고 전했다.

지난달 26<일요시사> 회의실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로 출근한지 이틀밖에 안된 새내기(?) 변호사 신분이었다. 검찰청서 법무법인으로 소속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변호사호칭이 조금 어색한 듯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2526년 정도 일한 직장서 떠나올 때 처음에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결단도 어려웠다. 시대적 흐름과 지나온 인생의 한 굽이에 대한 슬픔, 서운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사직의 변에 담았다.”


1993년 사법고시(35)를 패스한 김 변호사는 1996년 사법연수원(25)을 수료하고 인천지검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강력부, 특수부, 공안부를 거쳐 지휘라인에 이르기까지 검찰 내 요직을 넘나든 그는 각 부서를 거치면서 숱한 사건들을 담당했다.

특히 특수부 시절 경주서 일하면서 문화재 도굴 사건을 많이 맡았다. 사찰서 탱화를 훔치거나 분묘를 탐침봉으로 찔러본 뒤 부장품을 챙긴 도굴범들이 그의 손에 잡혔다. 우리 국보급 문화재를 일본으로 밀수출한 자들도 여럿 검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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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압수한 부장품 중에 도자기로 만든 소꿉놀이 세트가 있었다. 그걸 보는데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모가 아기를 위해 장난감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의 원형은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흙이 묻은 채 바닥에 놓인 그릇과 냄비를 보면서 한 인간이 겪어 왔을 삶의 편린이 떠올랐다.”

2006년 검사 시절 한 언론과의 인터뷰 사진 속 그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표정을 하고 있다. 14년 뒤 오랜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김 변호사는 그때보다 훨씬 편안한 얼굴로 솔직하고 담담하게 검사 시절을 회고했다.

옛날에는 웃질 않았다. 냉기가 흐른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살면서 세파나 부침을 겪고 나니까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어쩌면 이 시점서 검사를 그만두길 잘한 것 같다. 살인·강간·강도 이런 범죄는 정말 나쁘지만 몇몇 범죄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 안쓰러운 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 과거에 비해 약해진 것 같다.”

평검사 10명 중 가장 오래 현직
노사갈등 해결로 감사패 받기도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와는 달리 김 변호사는 검사 시절부터 가장 적은 수의 사람을 처벌하는 수준으로 사건을 해결해왔다. 이른바 예방적 공안개념이다.


가령 노사 갈등으로 파업이 일어났을 경우 과거에는 진압적 공안이라고 해서 위원장부터 사무국장, 직원들까지 관련자들을 한꺼번에 검거했다. 반면 예방적 공안은 평상시 노동계와 회사 쪽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전후 사정을 파악한 뒤 가장 불법적인 행동을 주도하는 사람만 검거하는 방식이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예방적 공안은 평소 사건 관련자들과의 대화가 전제돼야 한다. 김 변호사가 예방적 공안 개념을 주창할 때까지만 해도 검사가 노조 관계자와 대화하는 것을 불온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예방적 공안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여러 차례 성과를 냈다. 울산병원, 성진애드컴, 골든브릿지 투자증권 등에서 불거진 노사갈등은 그의 손을 거쳐 해결됐다. 울산병원 사태 때는 노사 안정에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노조와 회사 양측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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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울산병원 노사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연속 파업 사태를 겪었고 2002년에는 노조지부장이 불법파업 혐의로 구속되는 등 노사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김 변호사는 구속된 노조지부장에 대해 최대한 선처하면서 파업 자제를, 지부장을 징계하려는 사측에는 용서를 주문하는 등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다.

갈등이 봉합된 이후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복직된 노조위원장이 병원을 홍보하면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조서 사측을 상대로 정당한 투쟁을 벌이면서도 바깥으로는 우리 병원에 많이 와주세요라며 영업하고 홍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기뻤다. 말로만 하는 상생을 넘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공안,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었다.”

2006<오마이뉴스>는 검찰 각 분야 중 이른바 으로 꼽히는 검사를 발굴하는 기획-한국의 검사들을 연재했다. 당시 김 변호사는 한국의 검사들 1에 뽑혀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변호사는 내가 지향하던 보편타당한 가치, 예방적 공안의 개념을 이해해준 게 아닐까 싶다“‘한국의 검사 1라는 타이틀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영광스러웠다고 전했다.

강력, 특수, 공안…
검찰 요직 거쳐

김 변호사의 소신은 기관장으로 근무할 때 빛을 발했다. 대전지검 공주지청장으로 근무하다 떠날 적에는 지역 시의원과 유명 시인이 그를 위한 송덕비를 만들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 변호사가 극구 사양하면서 송덕비는 세워지지 않았지만 그가 지청장으로 근무하면서 보여준 진정성은 충분히 확인받은 셈이었다.

내가 (공주 지역에) 지망해서 갔지만 막상 가보니 많이 낙후돼있었다. 지청장에 부임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은 행사 때 지역 술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진로 소주 대신 공주 밤막걸리, 대전 소주를 마셨다. 벌금을 지역 실정에 맞게 조절하기도 했다. 양형기준이 있지만 대화를 통해 조율이 가능한 부분을 고려했다.”

예를 들어 시골 아줌마들끼리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다가 서로 상처를 입혀 벌금이 500만원이 나왔다. 시골서 500만원은 정말 큰돈이다. 이웃끼리 철천지원수가 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양쪽을 붙들고 따뜻한 말 한마디만 건네도 또 쉽게 풀어질 수 있다. 원칙서 벗어난 검사라고 비난 받을 여지는 있지만 내 생각엔 그게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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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우선이었다는 김 변호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공주 지역을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공주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지역 관계자와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 과정서 의견도 많이 냈다.

법조인은 법을 다루는 직업이지만 기본적으로 마음속에 긍휼함(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검사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긍휼함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것이다.”


그는 존경받는 검사의 조건으로 영적 이해력’ ‘사회 인식력’ ‘시대 통찰력을 들었다. 영적 이해력이 없으면 무능한 검사가, 사회 인식력이 없으면 난폭한 검사가, 시대 통찰력이 없으면 국가와 민족에 해가 되는 검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소 희생으로
원하는 결과를

영적 이해력은 세상에 자신이 모르는 세상도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항상 이성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사건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는 조언이다. 뭐든 자신이 경험한 것만 가지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영적 이해력은 타인의 내부까지 들어가서 심연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그 밑바탕에는 사람을 긍휼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부부싸움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을 달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검사는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사회 인식력은 균형감각과 비슷하다. 서울 시민과 시골 주민이 느끼는 벌금 500만원의 크기가 어떻게 다른지 깨닫는 문제다. 예를 들어 부부싸움 과정서 남편이 아내의 뺨을 때린 경우를 두고 어떤 검사는 어떻게 여자를 때릴 수 있느냐며 당장 구속해야 한다고 하는 반면, 또 다른 검사는 부부싸움에 왜 법이 관여해, 그냥 내버려 둬야지라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사회 인식력의 차이다.

시대 통찰력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이다. 시대마다 국민들의 흐름이 있다. 국민들이 원하면 검찰은 따라야 한다. 선출된 권력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정적을 제거해주는 것도 안 되고 반대로 검찰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 권력화되는 것도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 국민을 계도하려 하거나 우리가 대한민국 유일한 정의의 보루라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다.”


김 변호사는 이순신 장군과 원균 장군 이야기로 말을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는 이순신은 형편없는 장군이다. 원칙에 맞춰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통솔하는 원균과 비교하면 이순신은 훌륭한 군인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이순신은 실제 군사훈련보다는 어민을 돕는 일에 몰두했고 <난중일기>에 나와 있듯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하지만 이순신은 시대의 성웅으로 회자된다.
 

▲ 노무현과의 대화서 발언하는 김병현 당시 검사 ⓒ청와대

이순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바로 민심이다. 어민들은 자신들의 일을 도와준 이순신과 군사들을 위해 왜선의 경로를 알려줬다. 탐망선의 한계를 어민들의 신고로 극복한 것이다. 원균은 그걸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다. 검사 역시 국민들에게 존경받기 위해서는 영적 이해력, 사회 인식력, 시대 통찰력을 바탕으로 민심을 알아야 한다.”

김 변호사는 16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개혁 시도에 한가운데 서 있었다.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던 10명의 검사들은 평생 따라다닐 수식어를 그때 얻었다. 당시 영상과 발언은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그는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에 말을 아끼면서도 그때와 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예방적 공안 개념 주창해
검 민심 읽어야 존경받아

노무현정부 당시에는 기존 질서가 계속 유지되던 때였기 때문에 새로운 형식에 대한 생경함이 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검찰이 가진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이 구성원에게 전달됐고 이 과정서 검찰을 비판하는 민심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또 과거에 비해 조직이 방대해지면서 일체화된 행동양식이 나오기 어려워진 점도 노무현정부 때와 다른 부분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당시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한 검사들은 정치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많은 부분서 오해를 사고 있는 것과는 달리 참여한 검사들 가운데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강조했다.

검사 시절에도 비주류로서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김 변호사는 검찰을 떠났지만 조직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는 흥하는 조직은 (사람의)능력을 보고, 쇠하는 조직은 인품을 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좋다, 사람 괜찮다는 말에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앞서 말한 이순신과 원균의 사례처럼 단점이 큰 사람은 역으로 장점이 큰 경우가 많다. 인사 과정서 이런 부분을 고려해 장점을 중심으로 사람을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로 인생의 2막을 시작한 김 변호사는 아직까지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하지만 검사 시절부터 고수해온 가치중립적이라는 가치관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가치중립적 지식인으로서의 삶과 그런 사람이 머무를 여지가 있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어느 쪽이든 객관적인 시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 지식인은 어떤 의미서 항구적인 소수자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 변호사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 아시아인들끼리의 연대 등 공익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그의 관심은 검사 시절부터 쭉 이어져 온 것이다. 그는 다문화 학교를 두고 국가의 발전을 위한 전초기지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정말 잘한 것 중에 하나가 법사랑과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만든 것이다. 부산동부지청장으로 근무할 때 이 두 가지를 아시아에 많이 전파하고 싶었다. 큰 줄기의 외교는 대통령이나 정부가 해야겠지만 법사랑과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다른 나라에 알리는 일은 검찰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이화여대와 협력해 안산관산중 다문화 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힐링캠프 모습   

김 변호사는 대검 형사과장 시절 소년범들에게 미술치료를 도입했고, 안산지청 차장검사 시절에는 다문화 청소년들을 위해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또 아시아적 가치라는 관점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보호와 지원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가 가진 우수한 시스템을 교육하고 수출해 아시아가 함께 공유하는 것을 꿈꿨다. 검사로서 그걸 완성하지 못하고 사직한 것이 참 아쉽다. 지금은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지구촌학교에 관여하고 있다. ‘아시아평화대학(가칭)’ 같은 것을 운영해 우리가 먼저 취득한 민주화 학습이라든가 여러 가지 아시아적 가치를 공유하고 싶다.”

아시아적 가치
공유·전파해야

검찰에 있을 무렵 좋은 검사를 꿈꿨던 김 변호사는 이제 사회로 나와 좋은 인간을 꿈꾼다.

검사 시절에는 당신 같은 검사가 있어서 다행이다. 대한민국 검찰에 당신 같은 검사가 있어서 좋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실제 들었던 적도 있다. 정말 감동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남은 인생은 당신 같은 사람 있어서 좋다는 말을 듣고 싶다. 어느 한 부류의 사람에게라도 있어서 좋았다는 표현을 듣는다면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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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한동훈 축출’ 장동혁 용꿈의 비밀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는 한때 ‘짝패’였다. 장 대표는 용꿈을 꾸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에 몰두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의 욕망 ‘용꿈’을 이해해야 한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다. 조건은 “다음날까지 정치 생명을 걸고 재신임·사퇴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정치 생명을 건 재신임·사퇴 요구’가 있으면, 곧바로 전 당원투표를 시행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요구 기간 불과 이틀 지난 6일까지 장 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제안한 국민의힘 구성원은 아무도 없었다. 국민의힘 최수진 원내 수석대변인은 지난 7일 “반응이 없었으니 종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에 대한 당내 친한(친 한동훈)계·소장파의 비판이 시작된 시점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한 지난달 29일이었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 제명 조치도 지난 9일 확정됐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현직 당협위원장 신분으로 장 대표 등을 공개 비판해 왔다”는 이유로 지난달 26일 김 전 최고위원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결정했다. 김 전 최고위원이 탈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 제명 처리됐다. 오 시장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어이 당을 자멸의 길로 몰아넣었다”면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어 “장 대표는 국민의힘을 이끌 자격이 없으니, 물러나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의 의뢰를 받아 지난 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거주 18세 이상 남녀 8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ARS 여론조사(휴대전화 가상번호 100%)에 따르면, 오 시장은 33.3%의 지지를 얻어 47.5%의 지지를 얻은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보다 14.2%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참조할 수 있다. 친한계는 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뭉친 수도권·부산 내 보수 성향 엘리트 집단이다. 국민의힘이 지난 2016년부터 총선에서 연패한 탓에 당내 수도권 엘리트들의 영향력이 줄었다. 양당 체제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집단 탈당 후 창당’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바른정당·국민의당·바른미래당 등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 실험은 모두 실패했다. 현 시점에선 국회 의석 3석을 보유한 개혁신당만이 유일한 원내 보수 성향 제3지대 정당으로 존재한다. 4개월여 앞둔 선거가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궐선거란 사실도 이들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를 지휘해 연이어 이긴 경험이 있다. 반면 한 전 대표는 선거를 지휘해 이긴 경험이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2024년 비상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총선을 지휘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을 확보하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 제명을 사실상 주도한 장 대표에 대해선 “집단 탈당 후 신당 창당’이란 정치 실험이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한 전 대표의 선거 지휘 능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을 토대로 강행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고 중앙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만, 그래도 선거는 선거다. 지역 기반을 확보하는 선거가 중요하지 않을 리는 없다. 통상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빅텐트 설치 등 이합집산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당내 계파 중 하나를 와해시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 대표가 개혁신당을 창당한 시점은 총선을 약 3개월 앞둔 지난 2024년 1월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탈당 후 개혁신당으로 옮긴 현역 의원은 허은아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 1명이었다. 그리고 개혁신당이 거둔 의석은 지역구 1석·비례대표 2석 등 총 3석이라서 정치 구도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한 제명 후 오 반발 “장 물러나 책임져야” 하나뿐인 꿈…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장 대표의 한 전 대표 등 제명 및 오 시장과의 갈등은 “국민의힘이 수도권 내 지방선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으로 이어질 만큼 집요하다. 선거에선 어제 없던 조직이라도 오늘 만들어서 돌려야 하고, 어제의 원수와도 악수해서 표로 바꿔야 한다. 일정한 영향력을 당내 구성원을 내쫓아 선거에 악영향을 주는 것을 감수하는 선택은 “의아하다”는 의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큰 지점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수도권 패배·중도층 표심 공략 실패 여파로 총선에서 연패했다.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면서 수도권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 구성원 중 가장 강경한 보수 성향을 드러내는 김민수 최고위원조차 지난 9일 보수 유튜버들이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자유 유튜브 총연합회 토론회’에 출연해 “윤 어게인을 외쳐선 지방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며 “중도층을 설득해야 하는데, 부정선거론을 10년 동안 외쳐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누구나 아는 선거 승리 공식을 그가 현실적으로 외면할 순 없으리라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11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최고위원이 우파의 짠물 지지자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윤 어게인·탄핵 반대 구호로 그들의 성원을 받았으니, 노선을 바꾸더라도 그들이 따라올 것이란 기대감을 깔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충남 보령·서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지난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재선 의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직 초선 의원 임기 4년도 마치지 않았다.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 전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장 대표를 파격적으로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지난 2024년 전당대회에선 한 전 대표와 장 대표가 나란히 당 대표와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엔 장 대표도 있었다. 한 전 대표와 장 대표는 이때까진 누가 보더라도 ‘짝패’였다. 그로부터 1주가 지난 12월11일에 이르러, 이들은 명백한 결별 신호를 언론·대중에게 드러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와 달리 장 대표는 반대했고, 굳게 입술을 다문 채 당 대표실을 나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3일 후 장 대표는 가장 먼저 사퇴해 ‘한동훈 체제’ 붕괴에 결정적으로 일조했다. 누구나 아는 승리 공식 장 대표는 지난해 2월엔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비상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하나님이 승리로 이끌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강경 보수 전향을 선언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와 차별화하면서 강경 보수의 지지를 선점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선 강경 보수의 압도적 지지를 업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당 사무총장엔 통상 3선 의원이 발탁된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된 후 약 1년6개월이 지난 장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발탁된 것은 한 전 대표의 파격 인선으로 해석됐다. 이후 장 대표는 원내 수석대변인·수석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지난 2024년 12월 이후엔 정치적 원수가 돼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다. 장 대표의 변화에 대해선 “정치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은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이 대표는 지난해 9월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 대표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충청에서 몇 안 되는 용꿈 꾸는 분’이란 평가를 받았다”며 “용꿈을 꾸는 사람답게 유연한 정치 행보를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당 대표 당선 이후엔 굉장히 유연하게 노선을 바꿔 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한동훈’이란 이름 석 자 앞에선 유연하지 못하단 사실을 몸소 보여줬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남성은 3~5세에 이르러 처음 만나는 이성인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두고 싸워야 하는 경쟁자로 인식된다. 그런데 모든 조건에서 아버지가 우월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거세할 것”이란 무의식적인 공포를 느낀다. 아버지의 거세 시도를 막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공포는 선망으로 바뀐다. 이를 일컬어, 프로이트는 ‘초자아 형성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불행한 신탁을 받는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 때문에 정해진 운명을 맞는다”는 전형적 구조로 유명하다. 프로이트는 신화의 구조를 토대로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무의식 구조를 규정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에 반대했고,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치적 절정을 누렸다. 한 전 대표의 정치적 절정은 장 대표의 ‘용꿈’과 결정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전 대표가 날아오를수록 장 대표의 용꿈은 거세 공포를 느낄 수도 있다. 용꿈도 날아오르려는 욕망이다. 두 사람 모두 날아오를 순 없다. 한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서 비상계엄 해제에 참여했던 장 대표는 하루아침에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절정·비상 거세 공포 장 대표의 용꿈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한동훈’이란 압도적인 권위를 극복해야 한다. 당내 가장 막강한 그룹으로 거론되는 언더 찐윤엔 자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대권주자가 없다.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국민의힘이란 어머니를 차지해야 한다. 장 대표의 용꿈은 한 전 대표라는 ‘이미 결별한 정치적 아버지’를 제거해야 이룰 수 있다. 한 전 대표 제명은 “한동훈의 측근이란 옛 흔적을 완전히 부순 후 독립적인 용꿈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또 용꿈을 실현하기 위해선 언더 찐윤이란 막강한 집단도 굴복시켜야 한다.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은 지난해 12월 장 대표 앞에서 “국민의힘은 여전히 어이없는 비상계엄은 잘못됐단 인식을 갖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아무리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 마음에 다가가지 못하니 백약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마비가 비상계엄의 원인이란 얘기를 더는 하면 안 된다”며 “몇 달 동안은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도 되니, 지방선거에서 이겨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 보수를 자신의 정치적 배경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평가받는 장 대표를 정면 비판한 것이다. 이후 장 대표는 한동안 “언더 찐윤이 장 대표를 2월에 실각시킨 후,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 최고위원에게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길 것”이란 소문에 시달렸다. 언더 찐윤은 “국민의힘의 텃밭 대구·경북·강원에서 토호들과 밀착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장 대표는 윤 의원의 비판을 받는 등 구 친윤계로부터도 압박당하는 상황에서 당내 소수 계파 친한계 수장인 한 전 대표 제명에 더욱 집중했다. 이는 하향 전치란 심리학적 개념이 성립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전치는 자신의 감정·욕구를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 감정을 덜 위협적인 대상에게 표출하는 방어기제를 말한다. 특히 자신보다 만만한 대상에게 표출하는 것을 일컬어 하향 전치라고 한다. 일상 언어로는 ‘화풀이’라고 한다. 장 대표의 정치적 상황은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이론에 비유할 수도 있다. 지라르에 따르면, 사람의 욕망은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삼각형 구도로 발생한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사용하는 제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욕망의 주체·대상·체계는 상호 의존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지라르가 규정한 욕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거나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는 것도 포함한다. 이를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언더 찐윤 압박에 제명 더 집착…화풀이? 한은 장의 희생양…전한길도 장 노리나 이 대표 주장대로, 장 대표가 처음부터 용꿈을 염두에 두고 정계에 진출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라면, 장 대표는 한 전 대표와 함께 ‘짝패’를 구성하면서 자신의 용꿈도 아울러 키운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 반대 및 해제 참여로 정치적 절정에 오른 한 전 대표가 먼저 대권이나 보수 진영 주도권을 차지한다면, 장 대표로서는 “한 전 대표가 있는 한, 내 욕망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갑자기 한 전 대표와 결별한 후 강경하게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을 외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한 전 대표가 ▲언더 찐윤 ▲강경 보수 ▲장 대표 등과 두루 갈등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라르는 “한 집단의 갈등은 내부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대상을 희생시켜 해소한 후 단결한다”고 주장했다. 지라르는 이 과정을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이후 전한길씨·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를 당에 유입시켜 한 전 대표와 친한계의 공백을 채우고 언더 찐윤과 맞설 세력으로 양성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두 유튜버를 통해 한 전 대표 고유의 영향력을 재현하기는 어렵다. 특히 전씨는 지난 8일 자신의 팬카페 ‘자유한길단’에 “장 대표의 해명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다. 전씨는 이 글을 통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내란 세력·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세력과 함께할 수 없다’는 박성훈 수석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인지 3일 안에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장 대표가 답변 요구에 침묵한다면, 박 대변인의 논평이 장 대표의 공식 입장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렇다면 장 대표는 당원·윤 전 대통령을 함께 배신한 것이므로 이후 일어날 일에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 대표가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한 것처럼, 전씨가 장 대표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단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한 전 대표가 장 대표 주도로 ‘희생양’이 된 것처럼, 장 대표가 전씨 주도로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단 압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전씨의 요구에 대해 “답변드릴 내용이 없다”면서 침묵했다. 직설적인 욕망의 덫 장 대표의 정치 행위는 직설적이어서 ‘용꿈’이란 욕망이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국민의힘의 바닥 지지 기반이 무너진다. 이 때문에 구 친윤계 핵심이었던 윤 의원도 장 대표를 비판했다.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용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는 ‘욕망의 덫’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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