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노무현과의 대화’ 마지막 검사 김병현 “국민이 원하면 검찰은 따라야 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은 전국서 대표로 선정된 10명의 평검사들과 토론회, 이른바 ‘검사와의 대화’를 열었다. 이들 중 가장 오랫동안 현직에 남아있던 ‘마지막 멤버’ 김병현 변호사가 지난 7월말 검찰을 떠났다. '저승사자’ ‘독사’ ‘’. 검사를 수식할 때 자주 쓰이는 단어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면 피바람이 분다는 표현도 나온다.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검사의 이미지는 냉정하고 날카롭다. 살리기보다는 죽이는 데 더 익숙한 직업으로 묘사된다.
 

▲ 김병현 변호사

김병현 변호사는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보다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상생을 꾀하는 검사로 살고자 했다. 그런 그를 가리켜 대학 선배는 너는 살검(殺檢)이 아니라 활검(活檢)”이라고 말했다. 활검은 김 변호사가 가장 명예롭게 여기는 별명이다.

죽이기보다
살리는 검사

지난 728일 김 변호사(당시 서울고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흐르는 물처럼 떠나고자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사의를 밝혔다. 그는 그동안 저를 알던 분들께 참으로 미흡했고, 저를 모르는 분들께는 더더욱 부족 했습니다라며 장점보다 단점이 많았던 검사 김병현, 인생의 일부를 함께 해주셨던 선후배님들께 작별인사를 고합니다라고 전했다.

지난달 26<일요시사> 회의실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로 출근한지 이틀밖에 안된 새내기(?) 변호사 신분이었다. 검찰청서 법무법인으로 소속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변호사호칭이 조금 어색한 듯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2526년 정도 일한 직장서 떠나올 때 처음에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결단도 어려웠다. 시대적 흐름과 지나온 인생의 한 굽이에 대한 슬픔, 서운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사직의 변에 담았다.”


1993년 사법고시(35)를 패스한 김 변호사는 1996년 사법연수원(25)을 수료하고 인천지검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강력부, 특수부, 공안부를 거쳐 지휘라인에 이르기까지 검찰 내 요직을 넘나든 그는 각 부서를 거치면서 숱한 사건들을 담당했다.

특히 특수부 시절 경주서 일하면서 문화재 도굴 사건을 많이 맡았다. 사찰서 탱화를 훔치거나 분묘를 탐침봉으로 찔러본 뒤 부장품을 챙긴 도굴범들이 그의 손에 잡혔다. 우리 국보급 문화재를 일본으로 밀수출한 자들도 여럿 검거했다.
 

▲ ▲

한 번은 압수한 부장품 중에 도자기로 만든 소꿉놀이 세트가 있었다. 그걸 보는데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모가 아기를 위해 장난감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의 원형은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흙이 묻은 채 바닥에 놓인 그릇과 냄비를 보면서 한 인간이 겪어 왔을 삶의 편린이 떠올랐다.”

2006년 검사 시절 한 언론과의 인터뷰 사진 속 그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표정을 하고 있다. 14년 뒤 오랜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김 변호사는 그때보다 훨씬 편안한 얼굴로 솔직하고 담담하게 검사 시절을 회고했다.

옛날에는 웃질 않았다. 냉기가 흐른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살면서 세파나 부침을 겪고 나니까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어쩌면 이 시점서 검사를 그만두길 잘한 것 같다. 살인·강간·강도 이런 범죄는 정말 나쁘지만 몇몇 범죄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 안쓰러운 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 과거에 비해 약해진 것 같다.”

평검사 10명 중 가장 오래 현직
노사갈등 해결로 감사패 받기도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와는 달리 김 변호사는 검사 시절부터 가장 적은 수의 사람을 처벌하는 수준으로 사건을 해결해왔다. 이른바 예방적 공안개념이다.


가령 노사 갈등으로 파업이 일어났을 경우 과거에는 진압적 공안이라고 해서 위원장부터 사무국장, 직원들까지 관련자들을 한꺼번에 검거했다. 반면 예방적 공안은 평상시 노동계와 회사 쪽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전후 사정을 파악한 뒤 가장 불법적인 행동을 주도하는 사람만 검거하는 방식이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예방적 공안은 평소 사건 관련자들과의 대화가 전제돼야 한다. 김 변호사가 예방적 공안 개념을 주창할 때까지만 해도 검사가 노조 관계자와 대화하는 것을 불온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예방적 공안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여러 차례 성과를 냈다. 울산병원, 성진애드컴, 골든브릿지 투자증권 등에서 불거진 노사갈등은 그의 손을 거쳐 해결됐다. 울산병원 사태 때는 노사 안정에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노조와 회사 양측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 ▲

당시 울산병원 노사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연속 파업 사태를 겪었고 2002년에는 노조지부장이 불법파업 혐의로 구속되는 등 노사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김 변호사는 구속된 노조지부장에 대해 최대한 선처하면서 파업 자제를, 지부장을 징계하려는 사측에는 용서를 주문하는 등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다.

갈등이 봉합된 이후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복직된 노조위원장이 병원을 홍보하면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조서 사측을 상대로 정당한 투쟁을 벌이면서도 바깥으로는 우리 병원에 많이 와주세요라며 영업하고 홍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기뻤다. 말로만 하는 상생을 넘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공안,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었다.”

2006<오마이뉴스>는 검찰 각 분야 중 이른바 으로 꼽히는 검사를 발굴하는 기획-한국의 검사들을 연재했다. 당시 김 변호사는 한국의 검사들 1에 뽑혀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변호사는 내가 지향하던 보편타당한 가치, 예방적 공안의 개념을 이해해준 게 아닐까 싶다“‘한국의 검사 1라는 타이틀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영광스러웠다고 전했다.

강력, 특수, 공안…
검찰 요직 거쳐

김 변호사의 소신은 기관장으로 근무할 때 빛을 발했다. 대전지검 공주지청장으로 근무하다 떠날 적에는 지역 시의원과 유명 시인이 그를 위한 송덕비를 만들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 변호사가 극구 사양하면서 송덕비는 세워지지 않았지만 그가 지청장으로 근무하면서 보여준 진정성은 충분히 확인받은 셈이었다.

내가 (공주 지역에) 지망해서 갔지만 막상 가보니 많이 낙후돼있었다. 지청장에 부임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은 행사 때 지역 술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진로 소주 대신 공주 밤막걸리, 대전 소주를 마셨다. 벌금을 지역 실정에 맞게 조절하기도 했다. 양형기준이 있지만 대화를 통해 조율이 가능한 부분을 고려했다.”

예를 들어 시골 아줌마들끼리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다가 서로 상처를 입혀 벌금이 500만원이 나왔다. 시골서 500만원은 정말 큰돈이다. 이웃끼리 철천지원수가 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양쪽을 붙들고 따뜻한 말 한마디만 건네도 또 쉽게 풀어질 수 있다. 원칙서 벗어난 검사라고 비난 받을 여지는 있지만 내 생각엔 그게 옳았다.”
 

▲ ▲

처음에는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우선이었다는 김 변호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공주 지역을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공주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지역 관계자와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 과정서 의견도 많이 냈다.

법조인은 법을 다루는 직업이지만 기본적으로 마음속에 긍휼함(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검사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긍휼함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것이다.”


그는 존경받는 검사의 조건으로 영적 이해력’ ‘사회 인식력’ ‘시대 통찰력을 들었다. 영적 이해력이 없으면 무능한 검사가, 사회 인식력이 없으면 난폭한 검사가, 시대 통찰력이 없으면 국가와 민족에 해가 되는 검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소 희생으로
원하는 결과를

영적 이해력은 세상에 자신이 모르는 세상도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항상 이성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사건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는 조언이다. 뭐든 자신이 경험한 것만 가지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영적 이해력은 타인의 내부까지 들어가서 심연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그 밑바탕에는 사람을 긍휼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부부싸움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을 달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검사는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사회 인식력은 균형감각과 비슷하다. 서울 시민과 시골 주민이 느끼는 벌금 500만원의 크기가 어떻게 다른지 깨닫는 문제다. 예를 들어 부부싸움 과정서 남편이 아내의 뺨을 때린 경우를 두고 어떤 검사는 어떻게 여자를 때릴 수 있느냐며 당장 구속해야 한다고 하는 반면, 또 다른 검사는 부부싸움에 왜 법이 관여해, 그냥 내버려 둬야지라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사회 인식력의 차이다.

시대 통찰력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이다. 시대마다 국민들의 흐름이 있다. 국민들이 원하면 검찰은 따라야 한다. 선출된 권력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정적을 제거해주는 것도 안 되고 반대로 검찰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 권력화되는 것도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 국민을 계도하려 하거나 우리가 대한민국 유일한 정의의 보루라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다.”


김 변호사는 이순신 장군과 원균 장군 이야기로 말을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는 이순신은 형편없는 장군이다. 원칙에 맞춰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통솔하는 원균과 비교하면 이순신은 훌륭한 군인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이순신은 실제 군사훈련보다는 어민을 돕는 일에 몰두했고 <난중일기>에 나와 있듯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하지만 이순신은 시대의 성웅으로 회자된다.
 

▲ 노무현과의 대화서 발언하는 김병현 당시 검사 ⓒ청와대

이순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바로 민심이다. 어민들은 자신들의 일을 도와준 이순신과 군사들을 위해 왜선의 경로를 알려줬다. 탐망선의 한계를 어민들의 신고로 극복한 것이다. 원균은 그걸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다. 검사 역시 국민들에게 존경받기 위해서는 영적 이해력, 사회 인식력, 시대 통찰력을 바탕으로 민심을 알아야 한다.”

김 변호사는 16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개혁 시도에 한가운데 서 있었다.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던 10명의 검사들은 평생 따라다닐 수식어를 그때 얻었다. 당시 영상과 발언은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그는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에 말을 아끼면서도 그때와 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예방적 공안 개념 주창해
검 민심 읽어야 존경받아

노무현정부 당시에는 기존 질서가 계속 유지되던 때였기 때문에 새로운 형식에 대한 생경함이 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검찰이 가진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이 구성원에게 전달됐고 이 과정서 검찰을 비판하는 민심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또 과거에 비해 조직이 방대해지면서 일체화된 행동양식이 나오기 어려워진 점도 노무현정부 때와 다른 부분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당시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한 검사들은 정치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많은 부분서 오해를 사고 있는 것과는 달리 참여한 검사들 가운데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강조했다.

검사 시절에도 비주류로서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김 변호사는 검찰을 떠났지만 조직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는 흥하는 조직은 (사람의)능력을 보고, 쇠하는 조직은 인품을 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좋다, 사람 괜찮다는 말에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앞서 말한 이순신과 원균의 사례처럼 단점이 큰 사람은 역으로 장점이 큰 경우가 많다. 인사 과정서 이런 부분을 고려해 장점을 중심으로 사람을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로 인생의 2막을 시작한 김 변호사는 아직까지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하지만 검사 시절부터 고수해온 가치중립적이라는 가치관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가치중립적 지식인으로서의 삶과 그런 사람이 머무를 여지가 있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어느 쪽이든 객관적인 시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 지식인은 어떤 의미서 항구적인 소수자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 변호사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 아시아인들끼리의 연대 등 공익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그의 관심은 검사 시절부터 쭉 이어져 온 것이다. 그는 다문화 학교를 두고 국가의 발전을 위한 전초기지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정말 잘한 것 중에 하나가 법사랑과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만든 것이다. 부산동부지청장으로 근무할 때 이 두 가지를 아시아에 많이 전파하고 싶었다. 큰 줄기의 외교는 대통령이나 정부가 해야겠지만 법사랑과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다른 나라에 알리는 일은 검찰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이화여대와 협력해 안산관산중 다문화 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힐링캠프 모습   

김 변호사는 대검 형사과장 시절 소년범들에게 미술치료를 도입했고, 안산지청 차장검사 시절에는 다문화 청소년들을 위해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또 아시아적 가치라는 관점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보호와 지원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가 가진 우수한 시스템을 교육하고 수출해 아시아가 함께 공유하는 것을 꿈꿨다. 검사로서 그걸 완성하지 못하고 사직한 것이 참 아쉽다. 지금은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지구촌학교에 관여하고 있다. ‘아시아평화대학(가칭)’ 같은 것을 운영해 우리가 먼저 취득한 민주화 학습이라든가 여러 가지 아시아적 가치를 공유하고 싶다.”

아시아적 가치
공유·전파해야

검찰에 있을 무렵 좋은 검사를 꿈꿨던 김 변호사는 이제 사회로 나와 좋은 인간을 꿈꾼다.

검사 시절에는 당신 같은 검사가 있어서 다행이다. 대한민국 검찰에 당신 같은 검사가 있어서 좋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실제 들었던 적도 있다. 정말 감동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남은 인생은 당신 같은 사람 있어서 좋다는 말을 듣고 싶다. 어느 한 부류의 사람에게라도 있어서 좋았다는 표현을 듣는다면 기쁠 것 같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전 세계 흔든 트럼프 1년 풀 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처음에는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는 거칠 게 없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 여파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천조국’ 미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고 있다. ‘이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라는 반응이 거듭되는 모양새다. 되짚어 보면 이제 와 말이 안 된다고 하기엔 등장부터 파격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에는 조롱과 웃음이 난무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예상보다 더 파격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 기간 동안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임기 중에 어떤 식으로든 진행했다. 그 공약이 ‘미치광이’ ‘사이코’ 등의 원색적인 비난으로 이어져도 요지부동이었다. 되레 외부 자극이 커질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더욱 거칠어졌다. 문제는 그 행보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이 ‘유일한’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와 비견될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세계의 경찰’로 각국 상황에 관여했던 때보다도 영향력이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세계 질서를 유지했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대표적인 게 관세 부과에서 비롯된 통상 전쟁과 국제 질서 유지를 내세운 타국에 대한 물리적 개입이다. 두 사안 모두 ‘평범한’ 미국 대통령이라면 생각은 해도 실제로 행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당장 전 세계의 지도자가 반발할 테고 각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겪어야 할 정치적 리스크가 매우 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했고 또 하려 하고 있다. 모두가 ‘설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 소유로 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영토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시기에나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무기’나 다름없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전 세계와 통상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는 서로 수천%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세계 경제를 흔들었다. 관세 부과로 흔들더니 그린란드로 공포 조장 과거 FTA 체결로 미국과의 무역에서 관세 0%를 유지했던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협상한 일본의 관세 부과율을 기본으로 깔고 조율이 이뤄졌다. 줄다리기 끝에 협상이 타결됐지만 관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간 외교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전 세계가 통상 전쟁의 여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영토 확장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군사 작전을 진행해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베네수엘라 내부 상황을 언급했지만 속내는 석유라는 말이 나왔다. 베네수엘라는 제1의 석유 매장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사업을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실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차지하게 되면 세계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등에 업은 미국이 세계 석유시장 개편에 나설 길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주변국은 물론 산유국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미국은 베네수엘라 자체를 통치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을 몰아내고 권력 지형을 ‘친미’ 또는 친미 우호 세력으로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정가에서는 공산 정권을 유지 중인 쿠바가 다음 표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판에도 마이웨이 베네수엘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란드’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의 섬으로 한반도보다 9배나 큰 섬이다. 인구가 6만여명에 불과하고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인 땅이라 가치 평가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아래에 묻힌 광물을 채취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정학적으로도 좋은 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과거 미국정부는 그린란드를 사기 위해 돈을 제시한 적도 있고, 세계 2차대전 기간에는 점거하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반발, 무엇보다 그린란드 주민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노골적인 요구가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상 이유를 들었다. 그린란드를 지킬 수 있는 건 미국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그린란드에 묻혀 있는 자원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외신들은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으로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미국으로 압송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감이 붙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승리’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비치면서 극대화됐다. 협상의 기술 자유자재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에 참여 중인 국가들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유럽 간 오랜 시간 유지돼 온 ‘대서양 질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에 대해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무력 충돌 가능성 등으로 전운이 감돌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이른바 다보스 포럼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의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바탕으로, 그린란드와 사실상 전체 북극 지역에 관한 미래 합의의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럽 8개국을 상대로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기로 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미국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철폐하면서 상황 반전의 여지가 생겼다. 실제 그의 발언 이후 미국 증시 등은 오름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집단 반발, 금융시장 동요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발 후퇴를 이끌었다고 진단했다. 계속 가다간 나토의 내부 분열은 물론 유럽의 실력행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원하는 것을 취하는 ‘협상의 기술’을 또 사용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나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협상 기술을 사용해 왔다. 과도한 관세 부과, SNS 사용 등이 그 예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어 광물 자원 노리고 장악 시도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아직 갈등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했을 뿐 그린란드에 대한 병합 의지 자체가 꺾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에서 진행한 연설을 통해 그린란드 병합의 당위성을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는 그린란드를 ‘전략 요충지’이며 ‘북미 대륙의 일부, 서반구 최북단에 있는 우리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불확실성’의 토대 위에서 실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좌충우돌’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예측불가의 행보가 계속될 때마다 우리나라 또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미국과의 관계인 만큼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후 관리를 위해 만든 ‘평화위원회’ 가입 초청장을 60여개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의 평화지만 속내는 국제연합(UN) 등을 대체할 다자간 기구를 만들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등 서방 및 친서방 국가와 러시아, 벨라루스 등이 초청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지난 20일 “미국 측 초청에 따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평화위원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면상으로는 가자지구 평화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언제나 영향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시각) 임기 1주년을 맞았다. 불과 1년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에 일으킨 풍파는 엄청나다. 앞으로 불어닥칠 태풍의 크기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9년 1월20일 정오까지다. 아직 3년이나 남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