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노무현과의 대화’ 마지막 검사 김병현 “국민이 원하면 검찰은 따라야 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은 전국서 대표로 선정된 10명의 평검사들과 토론회, 이른바 ‘검사와의 대화’를 열었다. 이들 중 가장 오랫동안 현직에 남아있던 ‘마지막 멤버’ 김병현 변호사가 지난 7월말 검찰을 떠났다. '저승사자’ ‘독사’ ‘’. 검사를 수식할 때 자주 쓰이는 단어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면 피바람이 분다는 표현도 나온다.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검사의 이미지는 냉정하고 날카롭다. 살리기보다는 죽이는 데 더 익숙한 직업으로 묘사된다.
 

▲ 김병현 변호사

김병현 변호사는 범죄자를 단죄하는 것보다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상생을 꾀하는 검사로 살고자 했다. 그런 그를 가리켜 대학 선배는 너는 살검(殺檢)이 아니라 활검(活檢)”이라고 말했다. 활검은 김 변호사가 가장 명예롭게 여기는 별명이다.

죽이기보다
살리는 검사

지난 728일 김 변호사(당시 서울고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흐르는 물처럼 떠나고자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사의를 밝혔다. 그는 그동안 저를 알던 분들께 참으로 미흡했고, 저를 모르는 분들께는 더더욱 부족 했습니다라며 장점보다 단점이 많았던 검사 김병현, 인생의 일부를 함께 해주셨던 선후배님들께 작별인사를 고합니다라고 전했다.

지난달 26<일요시사> 회의실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로 출근한지 이틀밖에 안된 새내기(?) 변호사 신분이었다. 검찰청서 법무법인으로 소속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변호사호칭이 조금 어색한 듯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2526년 정도 일한 직장서 떠나올 때 처음에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결단도 어려웠다. 시대적 흐름과 지나온 인생의 한 굽이에 대한 슬픔, 서운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사직의 변에 담았다.”


1993년 사법고시(35)를 패스한 김 변호사는 1996년 사법연수원(25)을 수료하고 인천지검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강력부, 특수부, 공안부를 거쳐 지휘라인에 이르기까지 검찰 내 요직을 넘나든 그는 각 부서를 거치면서 숱한 사건들을 담당했다.

특히 특수부 시절 경주서 일하면서 문화재 도굴 사건을 많이 맡았다. 사찰서 탱화를 훔치거나 분묘를 탐침봉으로 찔러본 뒤 부장품을 챙긴 도굴범들이 그의 손에 잡혔다. 우리 국보급 문화재를 일본으로 밀수출한 자들도 여럿 검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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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압수한 부장품 중에 도자기로 만든 소꿉놀이 세트가 있었다. 그걸 보는데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모가 아기를 위해 장난감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의 원형은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흙이 묻은 채 바닥에 놓인 그릇과 냄비를 보면서 한 인간이 겪어 왔을 삶의 편린이 떠올랐다.”

2006년 검사 시절 한 언론과의 인터뷰 사진 속 그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표정을 하고 있다. 14년 뒤 오랜만에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김 변호사는 그때보다 훨씬 편안한 얼굴로 솔직하고 담담하게 검사 시절을 회고했다.

옛날에는 웃질 않았다. 냉기가 흐른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살면서 세파나 부침을 겪고 나니까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어쩌면 이 시점서 검사를 그만두길 잘한 것 같다. 살인·강간·강도 이런 범죄는 정말 나쁘지만 몇몇 범죄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 안쓰러운 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 과거에 비해 약해진 것 같다.”

평검사 10명 중 가장 오래 현직
노사갈등 해결로 감사패 받기도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와는 달리 김 변호사는 검사 시절부터 가장 적은 수의 사람을 처벌하는 수준으로 사건을 해결해왔다. 이른바 예방적 공안개념이다.


가령 노사 갈등으로 파업이 일어났을 경우 과거에는 진압적 공안이라고 해서 위원장부터 사무국장, 직원들까지 관련자들을 한꺼번에 검거했다. 반면 예방적 공안은 평상시 노동계와 회사 쪽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전후 사정을 파악한 뒤 가장 불법적인 행동을 주도하는 사람만 검거하는 방식이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예방적 공안은 평소 사건 관련자들과의 대화가 전제돼야 한다. 김 변호사가 예방적 공안 개념을 주창할 때까지만 해도 검사가 노조 관계자와 대화하는 것을 불온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예방적 공안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여러 차례 성과를 냈다. 울산병원, 성진애드컴, 골든브릿지 투자증권 등에서 불거진 노사갈등은 그의 손을 거쳐 해결됐다. 울산병원 사태 때는 노사 안정에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노조와 회사 양측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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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울산병원 노사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연속 파업 사태를 겪었고 2002년에는 노조지부장이 불법파업 혐의로 구속되는 등 노사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김 변호사는 구속된 노조지부장에 대해 최대한 선처하면서 파업 자제를, 지부장을 징계하려는 사측에는 용서를 주문하는 등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다.

갈등이 봉합된 이후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복직된 노조위원장이 병원을 홍보하면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조서 사측을 상대로 정당한 투쟁을 벌이면서도 바깥으로는 우리 병원에 많이 와주세요라며 영업하고 홍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기뻤다. 말로만 하는 상생을 넘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공안, 내가 지향하는 방향이었다.”

2006<오마이뉴스>는 검찰 각 분야 중 이른바 으로 꼽히는 검사를 발굴하는 기획-한국의 검사들을 연재했다. 당시 김 변호사는 한국의 검사들 1에 뽑혀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변호사는 내가 지향하던 보편타당한 가치, 예방적 공안의 개념을 이해해준 게 아닐까 싶다“‘한국의 검사 1라는 타이틀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영광스러웠다고 전했다.

강력, 특수, 공안…
검찰 요직 거쳐

김 변호사의 소신은 기관장으로 근무할 때 빛을 발했다. 대전지검 공주지청장으로 근무하다 떠날 적에는 지역 시의원과 유명 시인이 그를 위한 송덕비를 만들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 변호사가 극구 사양하면서 송덕비는 세워지지 않았지만 그가 지청장으로 근무하면서 보여준 진정성은 충분히 확인받은 셈이었다.

내가 (공주 지역에) 지망해서 갔지만 막상 가보니 많이 낙후돼있었다. 지청장에 부임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은 행사 때 지역 술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진로 소주 대신 공주 밤막걸리, 대전 소주를 마셨다. 벌금을 지역 실정에 맞게 조절하기도 했다. 양형기준이 있지만 대화를 통해 조율이 가능한 부분을 고려했다.”

예를 들어 시골 아줌마들끼리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다가 서로 상처를 입혀 벌금이 500만원이 나왔다. 시골서 500만원은 정말 큰돈이다. 이웃끼리 철천지원수가 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양쪽을 붙들고 따뜻한 말 한마디만 건네도 또 쉽게 풀어질 수 있다. 원칙서 벗어난 검사라고 비난 받을 여지는 있지만 내 생각엔 그게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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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우선이었다는 김 변호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공주 지역을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공주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지역 관계자와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 과정서 의견도 많이 냈다.

법조인은 법을 다루는 직업이지만 기본적으로 마음속에 긍휼함(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검사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긍휼함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것이다.”


그는 존경받는 검사의 조건으로 영적 이해력’ ‘사회 인식력’ ‘시대 통찰력을 들었다. 영적 이해력이 없으면 무능한 검사가, 사회 인식력이 없으면 난폭한 검사가, 시대 통찰력이 없으면 국가와 민족에 해가 되는 검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소 희생으로
원하는 결과를

영적 이해력은 세상에 자신이 모르는 세상도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항상 이성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사건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는 조언이다. 뭐든 자신이 경험한 것만 가지고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영적 이해력은 타인의 내부까지 들어가서 심연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다. 그 밑바탕에는 사람을 긍휼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부부싸움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을 달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검사는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사회 인식력은 균형감각과 비슷하다. 서울 시민과 시골 주민이 느끼는 벌금 500만원의 크기가 어떻게 다른지 깨닫는 문제다. 예를 들어 부부싸움 과정서 남편이 아내의 뺨을 때린 경우를 두고 어떤 검사는 어떻게 여자를 때릴 수 있느냐며 당장 구속해야 한다고 하는 반면, 또 다른 검사는 부부싸움에 왜 법이 관여해, 그냥 내버려 둬야지라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사회 인식력의 차이다.

시대 통찰력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이다. 시대마다 국민들의 흐름이 있다. 국민들이 원하면 검찰은 따라야 한다. 선출된 권력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정적을 제거해주는 것도 안 되고 반대로 검찰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 권력화되는 것도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 국민을 계도하려 하거나 우리가 대한민국 유일한 정의의 보루라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다.”


김 변호사는 이순신 장군과 원균 장군 이야기로 말을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는 이순신은 형편없는 장군이다. 원칙에 맞춰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통솔하는 원균과 비교하면 이순신은 훌륭한 군인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이순신은 실제 군사훈련보다는 어민을 돕는 일에 몰두했고 <난중일기>에 나와 있듯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하지만 이순신은 시대의 성웅으로 회자된다.
 

▲ 노무현과의 대화서 발언하는 김병현 당시 검사 ⓒ청와대

이순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바로 민심이다. 어민들은 자신들의 일을 도와준 이순신과 군사들을 위해 왜선의 경로를 알려줬다. 탐망선의 한계를 어민들의 신고로 극복한 것이다. 원균은 그걸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다. 검사 역시 국민들에게 존경받기 위해서는 영적 이해력, 사회 인식력, 시대 통찰력을 바탕으로 민심을 알아야 한다.”

김 변호사는 16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개혁 시도에 한가운데 서 있었다.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던 10명의 검사들은 평생 따라다닐 수식어를 그때 얻었다. 당시 영상과 발언은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그는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에 말을 아끼면서도 그때와 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예방적 공안 개념 주창해
검 민심 읽어야 존경받아

노무현정부 당시에는 기존 질서가 계속 유지되던 때였기 때문에 새로운 형식에 대한 생경함이 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검찰이 가진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이 구성원에게 전달됐고 이 과정서 검찰을 비판하는 민심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또 과거에 비해 조직이 방대해지면서 일체화된 행동양식이 나오기 어려워진 점도 노무현정부 때와 다른 부분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당시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한 검사들은 정치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많은 부분서 오해를 사고 있는 것과는 달리 참여한 검사들 가운데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강조했다.

검사 시절에도 비주류로서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김 변호사는 검찰을 떠났지만 조직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는 흥하는 조직은 (사람의)능력을 보고, 쇠하는 조직은 인품을 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좋다, 사람 괜찮다는 말에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앞서 말한 이순신과 원균의 사례처럼 단점이 큰 사람은 역으로 장점이 큰 경우가 많다. 인사 과정서 이런 부분을 고려해 장점을 중심으로 사람을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변호사로 인생의 2막을 시작한 김 변호사는 아직까지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하지만 검사 시절부터 고수해온 가치중립적이라는 가치관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가치중립적 지식인으로서의 삶과 그런 사람이 머무를 여지가 있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어느 쪽이든 객관적인 시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 지식인은 어떤 의미서 항구적인 소수자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김 변호사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 아시아인들끼리의 연대 등 공익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그의 관심은 검사 시절부터 쭉 이어져 온 것이다. 그는 다문화 학교를 두고 국가의 발전을 위한 전초기지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정말 잘한 것 중에 하나가 법사랑과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만든 것이다. 부산동부지청장으로 근무할 때 이 두 가지를 아시아에 많이 전파하고 싶었다. 큰 줄기의 외교는 대통령이나 정부가 해야겠지만 법사랑과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다른 나라에 알리는 일은 검찰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이화여대와 협력해 안산관산중 다문화 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힐링캠프 모습   

김 변호사는 대검 형사과장 시절 소년범들에게 미술치료를 도입했고, 안산지청 차장검사 시절에는 다문화 청소년들을 위해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또 아시아적 가치라는 관점서 다문화 가정에 대한 보호와 지원에 관심이 있었다. 우리가 가진 우수한 시스템을 교육하고 수출해 아시아가 함께 공유하는 것을 꿈꿨다. 검사로서 그걸 완성하지 못하고 사직한 것이 참 아쉽다. 지금은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지구촌학교에 관여하고 있다. ‘아시아평화대학(가칭)’ 같은 것을 운영해 우리가 먼저 취득한 민주화 학습이라든가 여러 가지 아시아적 가치를 공유하고 싶다.”

아시아적 가치
공유·전파해야

검찰에 있을 무렵 좋은 검사를 꿈꿨던 김 변호사는 이제 사회로 나와 좋은 인간을 꿈꾼다.

검사 시절에는 당신 같은 검사가 있어서 다행이다. 대한민국 검찰에 당신 같은 검사가 있어서 좋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실제 들었던 적도 있다. 정말 감동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남은 인생은 당신 같은 사람 있어서 좋다는 말을 듣고 싶다. 어느 한 부류의 사람에게라도 있어서 좋았다는 표현을 듣는다면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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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