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 건설현장은 지금… 2019년 막노동 일당 공개

새벽에 나와 하루 8시간 13만원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건설 현장서 일을 하면 “못 배운 사람이 하는 일”이라며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젊은이들이 흔히 3D(Difficult, Dirty, Dangerous)직업이라며 기피하는 직군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다. 적당한 순화용어도 없이 그저 ‘노가다’라는 일본발 속어로 불리우며 멸시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도 엄연한 한 가정의 가장이자 산업역군으로 우리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일요시사>에서는 이들의 임금 상황과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알아봤다.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2019년 하반기 적용 건설업 임금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통 인부의 하루 8시간 근무 시 임금은 13만264원으로 올해 상반기 12만5427원보다 3.85% 증가했다. 13만254원은 시급으로 환산하면 1만6283원이다. 

오르긴 했는데…
임금 상황은?

평균임금 현황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전체 123개 직종 중 91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반 공사직종은 전반기 대비 3.03% 상승, 광전자 4.36%, 문화재 3.23%, 원자력 0.42%, 기타 직종은 4.6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종별로는 전기공사 물량 확대로 전기공사 기사는 26만1628원으로 전 분기보다 8.9% 상승했다. 전기공사 산업기사도 23만1347원으로 9.45% 올랐다. 그에 반해 플랜트·원자력 직종은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플랜트 배관공(-2.3%), 플랜트 제관공(-3.7%), 플랜트 기계 설치공(-1.8%), 플랜트 케이블 전공(-2.7%) 등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원자력도 마찬가지였다. 원자력 플랜트 전공은 지난 분기 20만9162원서 올해 하반기 19만7852원을 기록하며 5.4% 하락한 수치를 보였다. 원자력 용접공도 19만7852원으로 6.17% 감소했다.

흔히 노가다로 불리는 보통인부 하루 일당은 하반기 13만264원으로 전년동기 11만8130원보다 9.31% 올랐으나 전반기 12만5427원에 비해선 3.85% 상승에 그쳤다. 

이번 결과에 대해 건설협회 관계자는 “건설경기 위축 지속에 따른 건설 물량 축소가 인력수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임금 상승세가 둔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건설업 임금실태조사 통계는 전국 2000개 공사현장의 2019년 5월 건설근로자 임금을 조사·집계한 것으로 지난 1일부터 건설공사 원가계산에 적용할 수 있다.

건설 일용직 근로자 임금의 실거래가를 직종별로 살펴봤다.

경기도민간고용서비스단체 관계자는 “보통인부의 경우 평균적으로 13만원을 받는다”며 “우리말로 잡부라고 하는데 보조, 심부름, 청소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고 말했다. 건설협회가 발표한 13만254원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보다 3.85% 증가…상승세 둔화
건설경기 위축으로 인한 물량 축소 이유


직업소개소의 실거래가에 따르면 시멘트, 회반죽 등 미장재료를 이용해 구조물의 내외표면을 바르는 작업을 하는 미장공은 22만원, 벽돌, 치장벽돌 및 블록쌓기 및 해체하는 조적공의 경우 22만원서 28만원의 가격대를 형성했다.  

높은 곳의 임시 비계서 각종 작업에 종사하는 비계공의 경우 24만원의 임금을 받는다. 철근의 절단, 가공, 조립, 해체 작업에 종사하는 철거공은 15만원서 20만원의 임금이 책정된다.

구조물의 바닥, 벽체, 지붕 등의 누수 방지 작업을 하는 방수공의 경우 20만원서 25만원의 임금을, 목공은 22만원의 임금을 받는다. 

석재 설치 또는 붙이거나 일반 쌓기로 구조물을 축조하는 석공의 경우 20만원을 받는다. 건물 등에서 목재, 철재, 샷시 등으로 된 창 및 문짝을 제작 또는 설치하는 창호공의 경우도 20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협회가 발표한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미장공 21만4502원, 조적공 19만2633원, 비계공 22만8462원, 철근공 21만2935원, 방수공 15만3086원, 형틀목공 20만7239원, 건축목공 20만3532원, 석공 20만4974원, 창호공 19만5972원, 포장공 18만5736원을 받았다. 

실거래가와 통계치를 비교해보면 실거래가가 적게는 1만∼2만원서 3만∼4만원까지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고 기술의 유무에 따라 보통인부와 확연한 임금 차이를 보였다. 

실거래가와 통계치의 차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지역별로 금액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며 “지방으로 갈수록 전문 기술을 가진 근로자를 구하기 어려워 임금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통계와 다른 
실거래가 왜?

건설근로자의 경우 작업환경이 척박하고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용직 근로자 업무의 특성상 매일 일을 하기에 육체적인 한계와 근로일이 불규칙하기도 하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지난해 실시한 건설 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건설 노동자의 평균 일당은 지난해 기준 16만5299원이다. 팀장 및 반장급 일당은 20만4909원, 조공(반숙련공)·일반공은 일당 13만4528원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해당 건설 노당자들의 평균 연봉 수준은 3429만8566원(월 285만원)으로 일당에 미치지 못했다. 팀장 및 반장급과 조공(반숙련공)·일반공의 평균 연소득도 각각 4389만원(월 365만원), 2868만원(월 239만원)에 그쳤다. 

이처럼 일당으로 계산했을 때보다 연소득(월급)이 적은 이유는 고된 노동과 일감 부족으로 20일 이상 일할 수 있는 곳이 드물기 때문이다. 실제 이들이 한달 동안 근무한 건설현장은 평균 1.3곳, 평균 근무일 수는 20.3일이었다.  


근무 환경도 여전히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교육은 수시로 받았다는 응답이 85.1%로 많았고 안전장비인 안전대와 안전모를 받아본 적 없다는 응답은 각각 5.8%, 0.8%에 그쳤다. 

▲ 대한건설협회 건설 분야별 임금 현황

건설현장의 화장실 유무에 관한 질문에는 98.7%가 있다고 답했지만, 샤워실이 있다는 응답은 65.3%에 그쳤다. 화장실이 있어도 개수나 크기 등이 부족하다는 응답은 52.2%로 조사됐다. 화장실이 더럽다는 응답(48.7%)과 접근 등이 불편하다는 응답(29.6%)도 많았다. 

특히 여성 근로자의 불편이 더욱 큰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 현장 계획 수립 시 여성노동자의 근로환경 제반시설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편의시설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쉬지 못하는
인부의 한숨

이와 관련해 한 건설노동자 A씨는 “대형건설사는 상대적으로 편의시설 등이 잘 마련돼있는 반면, 중견사의 경우 여성들을 위한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며 “법으로는 건설 현장에 화장실, 샤워실 등을 설치하라고 명시돼있지만, 명목상 컨테이너로 된 간이화장실을 하나 갖다놓는 보여주기 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건설노조 관계자도 “근로자의 날 서울 시내만 나가봐도 건설 현장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며칠 전 발생한 타워크레인 사고는 비단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형건설사의 건설 현장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해당 기업을 향한 주변의 시선이 많다보니 비교적 안전한 환경 내에서 작업이 이뤄지지만, 작은 건설 현장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그렇지 않다”며 “여전히 열악한 현장에 노출된 근로자들이 과반수”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건설 노동자의 퇴직공제금이 너무 적을뿐더러 그마저도 건설업계의 꼼수로 피해간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과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은 지난 7월9일 청와대 앞에서 건설노동자의 퇴직금을 보장하라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3만7000건의 서명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1996년 12월 제정된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1998년부터 건설근로자퇴직공제 제도가 시행됐다. 건설 사업주는 고용한 일용건설노동자들에 대해 매월 근로일수를 신고하고 공제부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렇게 마련된 공제금은 건설 노동자가 퇴직할 때 소정의 이자를 더해 지급된다.

하지만 문제는 사업주가 납부하는 공제금액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공제금액은 4000원이었고 지난해 한차례 인상됐지만 4800원으로 증가폭이 미미한 실정이다.

작업환경·개인능력 따라 수십만원 차이
여전히 열악한 환경…퇴직공제금도 문제

플랜트건설노조 조현일 교육선전국장은 “노후 퇴직금 적립률이 하루 담배 한 갑 수준”이라며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4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퇴직공제금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행령이나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현행법상 퇴직 공제금액은 5000원으로 상한이 정해져 있다. 더욱이 퇴직공제금 예외규정도 폭넓다. 공공기관의 경우는 총 공사비가 3억원 이상일 경우 공제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민간공사의 경우 기준은 100억원이다. 조 교육국장은 “민간과 공공기관의 차이가 막대하게 커서 누가 봐도 낮춰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정부가 기존업계와 기업이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더욱이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수법도 업계서 통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위 말하는 쪼개기 계약이다. 총 사업비가 100억원 이상이어도 공사계약을 분할하는 수법으로 공제금 납부 의무를 피하는 것이다.

조 교육국장은 “지난해 GS칼텍스 여수공장의 정비건이 대표적인 사례”라며 “당시 5000명의 노동자가 일했지만, 퇴직공제금을 적용받는 인원은 450여명에 머물렀다”고 말했다.

적은 공제금마저도 건설업체가 제대로 납부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플랜트건설노조는 건설 노동자의 월별 평균 근로일수가 15일가량이지만 건설업주가 실제로 납입한 공제금액은 6.4일치 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 나동원 과장은 “현재 2018년 통계자료를 만드는 중”이라며 “다음 주에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담배 한 갑 
수준 받고…

노동자민중당 정희성 대표는 이날 발언서 “건설 노동자에게 퇴직공제금은 노후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며 “늙어서 리어카를 끌거나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임명우 정책실장은 “관련 법안이 현재 국회 환노위에 계류 중”이라며 “국회서 처리가 안 되면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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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