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7)자유인

‘천하의’ 나으리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운우의 정 자주 나누세’

운우의 정이라. 자신의 전공 아니던가.

그런데 그 점잖은 촌은이 노골적으로 그를 드러냈다.

흡사 그 글귀가 자신의 방문을 미리 예견하고 지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일어났다.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는 듯했다.

시선을 돌렸다. 저만치에 이 방의 주인이 사용하고 있을 법한 앙증맞은 화장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 앞에서 거울을 주시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드디어 매창 등장

턱 선보다 넓어 보이는 이마 그리고 서글서글한 눈매, 오뚝하지는 않으나 반듯하게 내리뻗은 코와 굳게 다문 입술, 두툼한 양 볼. 거울 속 허균이 자신을 바라보며 음흉스럽게 웃고 있었다.  

거울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자신의 전신이 거울에 비쳐지고 있었다.

신장에 비해 훨씬 커 보이는 두상이 조금은 어색해보였으나 그리 흉이 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 앞에서 허리에 손을 얹어보았다.

거울의 주인이 자신을 주시하는 듯이 생각되자 슬그머니 미소를 지어 보냈다.

“나리, 소인 고생원입니다.”

그 소리에 급히 몸을 돌려 자리 잡고 앉으면서 대답 대신 밭은기침을 내뱉자 문이 열리며 고생원이 방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두 명의 여인이 따랐다.

다시 밭은기침을 내뱉으면서 허균이 은근한 시선으로 두 여인을 바라보았다.

30이 거의 다 되어 보이는 여인과 16∼17세 정도의 앳된 모습의 여자가 시선에 들어왔다.

시선을 나이 많은 여인에게 주었다. 나이로 보아 말로만 듣던 매창이 바로 저 여인일 터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아니 조금은 작아 보이는 외형과 반듯하면서도 조금은 튀어나온 듯이 보이는 이마, 반짝이는 눈동자와 역시 반듯하게 뻗어 내린 코, 앙다문 입술. 어디서인가 많이 보았음직한 얼굴이었다. 

순간 방금 전 거울에 비쳐본 자신의 모습과 닮아 보이는 얼굴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가벼이 신음을 흘리며 다시 한 번 밭은기침을 해댔다. 그게 신호라도 된 듯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소녀 매창이 판관 나리를 뵈옵니다.”


자세를 잡고 큰 절로 예를 올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맑지 못했다.

순간적인 떨림이 그 목소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주인을 제쳐두고 내가 먼저 자리 차지하고 있었소이다. 나 허균이라는 사람이외다.”

답을 하는 허균의 목소리 역시 맑지 못했다. 조금은 떨리고 있었다.

허균이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시 밭은기침을 내뱉었다. ‘

“나리의 집인 양 편히 자리하십시오.”


허균의 속내를 매창이 읽은 모양이었다.

“고맙소. 내 그리하리다.” 

대답하는 허균의 얼굴로 매창의 시선이 박혔다. 매창의 눈동자가 순간 반짝이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나리, 술상 올리도록 할까요?”

고생원이 둘의 인사가 끝나자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나섰다. 허균의 시선이 매창에게 떠나지 않고 있었다. 매창의 얼굴이 살짝 한쪽으로 기울었다. 

“이 방의 주인에게 물어보도록 하시게나. 어차피 나야 객이지 않은가."

허균이 말을 마치자 매창이 앳된 여자, 별을 바라보고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흡사 둘만의 무언의 행위인 듯이 앳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30이 다 되어 보이는 여인…떨리는 목소리
외모 특출 나지 않지만 묘한 느낌의 여인

별이 나가자 잠시 고요가 흐르기 시작했다.

허균이 시선을 ‘이화우……’의 시가 걸려있는 곳으로 주었다.

매창의 시선이 허균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기를 잠시 가느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리께서 이 미천하기 짝이 없는 소녀를 찾아주시어 감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매창은 무슨 말을 그리하시오. 미천하기 짝이 없다니. 그렇다면 이 허균은 무엇이고 촌은 선생은 또 어떻게 되는 게요. 그러면 나나 촌은도 한낱 미천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오?”

매창이 급히 자세를 바로 했다.

“소녀가 어찌 나리와 촌은 선생께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겠사옵니까.”

매창의 곤혹스러워함에 허균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건 그렇고 촌은 선생의 소식은 들으시오.”

물론 매창과 촌은이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허균이 모를 리 없었다.

그녀의 마음의 상태를 흘낏 스치고 싶었던 탓이었다.

마치 허균의 속내를 읽었다는 듯 매창의 입에서 다시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얼굴에 아쉬움이 서려 있었다. 

순간 묘한 느낌을 주는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기생들처럼 딱히 외모가 뛰어나다든가 특별나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기생으로서는 퇴물에 가까울 나이건만 예전에 마주했던 여인들과는 다른 중압감이 찾아들었다.

그것은 단지 촌은의 상대였다는 이유만은 아닌 듯했다.

“이미 이화우와 함께 가버리신 님이십니다.”

촌은 유희경, 천민출신으로 선조 시대 백대붕과 함께 당대 시단을 장악했던 인물로서 매창으로 하여금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고 2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 그러나 임진란이 터지자 의병을 조직해 전선으로 달려 나간 애국자였다.

“그래서 지금은 그 사람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는 게요.”

“이미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니…….”

“허 허, 그럼 10년이 흐른 이 시점에 이화우와 함께 가버린 임을 대신해서 태풍우에 찾아온 게 되는가.”

허균이 슬쩍 농을 걸었다.

“감히 천하의 나으리를 어찌 하찮은 저와 비교하시는지요.”

“천하의라는 의미는 무엇이오?”

정식으로 맞다

그 소리가 듣기 좋지 않았다. 천하의 난봉꾼의 그 ‘천하의’로 들렸던 탓이다.

“이미 나리의 명성은 이 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요. 그러니 ‘천하의’ 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되옵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난봉꾼으로 말이오?”

난봉꾼이라는 말에 매창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너무나 지나친 비약이시옵니다. 나리의 명성, 천하에 거칠 것이 없는 자유인이라는 의미로  알고 있사옵니다.”

“자유인이라.”

“그러하옵니다, 나리. 자유인 말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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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