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칼럼> 약자를 배려하는 성숙한 사회로

  • 박재희 노무사 cplapjh@naver.com
  • 등록 2019.09.09 09:22:11
  • 호수 12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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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고, 절대적으로 힘이 약한 무력한 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을 거의 다 파악할 수 있다.” 철학자 마크 롤랜드(Mark Rowlands)가 그의 저서 <철학자와 늑대>를 통해 남긴 명언이다. 

우리 대부분 강자에게는 언행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안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직장상사의 평가에 따라 내 급여가 달라질 수 있고 승진 여부가 결정될 수 있으므로 직장상사 앞에서 언행을 함부로 하는 이는 드물다.

반면, 약자는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 힘들다. 친절히 대한다고 해서 실질적인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니거니와 쌀쌀맞게 대한다고 해도 특별한 불이익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타인을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당위적 도덕관념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그들이 약자를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는 이들은 약자에게 가혹하다. 서비스업 종사자에게 반말을 일삼고 사소한 잘못에 분통을 터뜨린다. 상식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도 서슴지 않는다. 

볼썽사나운 행동을 하면서도 ‘서비스 업계서 돈 벌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든가 ‘이게 싫으면 다른 일 해야지’라며 약자라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대우라는 식으로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한다. 우리나라에선 기업이 고객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대응책을 좀처럼 마련하지 않는다. 약자가 감수하거나 회사가 떠안는 불가피한 손해라고 여긴다.


이는 약자에 대한 ‘갑질’이 개인의 성품뿐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서도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약자에 대한 ‘갑질’이 용인되다 보니 자신이 ‘갑’인지 ‘을’인지에 대해 예민해진다. 자신이 ‘갑’이라고 판단되면 자신이 ‘을’이었을 때 받았던 부당한 대우를 그대로 행하는 이들도 있다. 사람이 가진 어떤 특징이 실질적으로는 약점이 아닌데도 이에 터 잡아 상대를 ‘을’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계속 일어난다. 

약자들도 이에 대항해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사회 일각에선 ‘약자는 선(善)이고 강자는 악(惡)이다’라는 언더도그마(underdogma) 현상도 나타난다.

이 불합리한 현상은 속칭 ‘을질’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공동 책임이 있는 사안에 책임소재를 따지려 하는데 그것을 ‘약자에 대한 횡포’라고 항변하거나 사실관계를 떠나 어느 한쪽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만으로 비난을 일삼는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 수준을 높이는 잠재적 원인이 된다. 여러 자료서 한국의 갈등 수준이 OECD 평균보다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다행히 최근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나 산업안전보건법에 ‘감정 노동자 보호’ 조항이 생기는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적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갑질 근절 캠페인’과 같은 상징적인 행사도 열리고 있다. 

법률 개정이나 캠페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민의식 향상일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고 해서 다른 이에게 그대로 행하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인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타인의 사회적 위치와 나의 유불리를 따지기에 살피기에 앞서 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자신의 진면목이다.


법률 개정과 캠페인을 시작으로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확산돼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높이고 불필요한 갈등을 줄여 국가의 양적·질적 발전이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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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