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와 4·15총선’의 함수관계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간 ‘집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지난 22일,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일부 언론과 야당에선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체계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여당에선 지소미아 종료에는 일본정부의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밝히며, 한미동맹이 흔들릴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평행선을 달리는 한일관계가 내년 총선에 영향을 미칠까.
 

▲ 당정청회의 갖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상조 정책실장 및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청와대

 

문재인정부는 지난달 22일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 대응 조치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인(이하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했다. 신뢰 훼손으로 화이트리스트서 배제된 한국이 안보상 일본과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판단이 뒷받침됐다. 일본은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발, 아베 총리는 국가와 국가 사이에 신뢰관계를 해치는 대응이라며 한일간 국가 사이의 약속을 지키라고 밝혔다.

미일 공조
한국 압박?

문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로 일본을 압박함과 동시에 지소미아 종료 철회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7일 당정청 회의서 “지소미아가 종료되는 11월23일까지 약 3개월의 기간이 남아 있다”며 “그 기간에 타개책을 찾아 일본이 부당한 조치를 원상회복 하면 우리는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이 총리의 발언 다음날인 28일에도 한국 화이트리스트 제외 개정안을 예정대로 시행했다. 특히 이 총리의 발언에 “일본의 수출 관리와 군사정보에 관한 정부 간 협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며 사실상 원상회복을 거부했다.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은 “수출 관리를 적절히 실시하기 위한 운용 재검토로, 한일 관계에 영향을 주려는 생각은 아니다”라며 기존 입장을 강조해 한일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를 두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국무부의 반응은 엇박자를 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은 저의 좋은 친구” “한국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볼 것”이라며 의견을 표명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반면, 미국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25일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종료한 것에 대해 깊이 실망하고 우려한다”며 “한국 방어는 더욱 복잡해지고 미국 병력에 대한 위험도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를 방위비 대폭 인상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어 익명의 미국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27일, 11월이 종료되기 전에 한국이 생각이 바꾸기를 바란다며 문정부가 종료 결정을 재고하도록 촉구했다. 미국 고위 당국자가 청와대를 직접 거론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그동안 실망만을 표출했던 미국이 안보이익을 우려하며 적극적인 한국 압박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협정 종료’ 한미일 안보 협력은?
‘평행선’ 내년 선거 영향 미칠까

한국의 독도방어훈련에 대해서도 “한일문제를 악화시킨다”며 불편한 심경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1966년 이후 정례로 이뤄진 한국의 독도훈련을 미국이 문제 삼은 것 역시 처음으로 강제 징용 판결을 둘러싼 한일갈등이 일본의 수출 규제로 확대될 때 미국의 방관적인 자세와 대조되는 대목이다.

미국정부의 우려가 계속되자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은 지난달 28일 미국 해리스 대사에게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양자관계 맥락서 검토, 결정된 것으로 한미동맹과는 무관하다”며 “미측의 긴밀한 공조하에 한미일 안보협력을 지속 유지해 나가는 것과 함께 한미동맹을 한 차원 더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내서 지소미아 종료로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해 나오자 문정부가 직접 나서서 이를 불식시키고자 함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한미일 3국의 공조가 분열되면 반사이익은 고스란히 중국이 얻게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어 3국 공조가 틈을 보일 경우 북한의 핵도발 위협에 대한 한미일 협력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3국 체계가 약화되면 자연스레 북·중·러 동맹이 강화돼 이는 동북아 패권경쟁서 미국이 중국에 밀릴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셈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이 흔들릴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 역시 배경이 됐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일본 아베 총리가 2016년 케냐서 처음 언급한 것으로, 태평양서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지역을 해양 안보 벨트로 묶어 협력을 추진하자는 외교 전략이다. 이는 미국이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봉쇄해 경제와 안보서 중국을 견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 마크 에스퍼 미국방장관

일본의 극우 언론인 <산케이신문>은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의 원인을 ‘중국 공포증’에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지소미아를 종료한 이유는 2017년 사드 배치로 인해 대규모 경제 보복을 받은 한국이 경제가 심각하게 악화돼 미국과의 공조가 아닌 중국과의 공조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지소미아 파기의 원인을 일본정부의 문제가 아닌 한국 내부의 원인으로 돌리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중·러
웃고 있다

중국의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의 종료 결정에는 최근의 반일 여론뿐만 아니라 한일 간 정치적 신뢰 부재가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일갈등이 무역전쟁서 안보 문제로 확대 재생산됐으며 앞으로 다른 분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미국의 위상 저하와 한미일 공조 약화로 이어졌음을 지적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인 <메아리>는 <민중의 소리>가 실은 ‘지소미아 종료, 의미 있는 한걸음’이라는 사설 전문을 소개하고 나섰다.

사설은 “정부의 이번 결정은 적어도 외교적 굴욕으로 이어지는 길을 단호히 거부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며 “우리 안보의 근간도 아니고 절차적으로도 무리가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를 지지했다. <메아리>가 사설의 전문 그대로를 인용한 것으로 보아 지소미아 종료에 지지 입장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지소미아 종료로 한미 동맹이 약화돼 한국이 북중러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동아시아 패권 속 한국이 포지셔닝 변화를 추진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열린 ‘지소미아 폐기 관련 한반도 안보’ 긴급간담회서 “지소미아 파기가 결국 중국과 러시아, 북한에 미래 한국의 포지셔닝에 대해 ‘희망적 사고’를 품을 수 있는 빌미를 만들어줬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미 동맹을 거래 카드로 사용한 것은 외교·안보의 기본 식견 부족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문정부의 외교 능력을 정면 비판했다.

이 같은 주장과 달리 문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로 한미일 공조 체계가 와해되거나 한일 정보교류가 완전히 차단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일본은 지소미아 체결 이전에도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을 활용해 군사정보를 지속적으로 공유했다.

지난 2016년 11월 지소미아 체결 이전에도 한미일 3국 간 군사정보 교환은 이뤄져왔다. 지소미아 체결 이후엔 한일간 정보교류는 모두 29건으로, 남북관계가 희망적였던 작년엔 2건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지속되고 있는 최근을 빼곤 한일간 별다른 정보교류가 없어 효용성 차원서도 한국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점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총선 앞두고
지지율 휘청


지소미아의 태생적 한계 역시 종료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소미아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기 불과 보름 전에 체결됐고, 미국과 일본의 압박에 의해 졸속으로 협정이 체결돼 국민들의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또 일본은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메시지, 한일 외교부장관 회담, 이 총리의 종료 파기 가능성 등 우리 정부의 화해 시도를 모두 무시했다. 외교적 실익만큼 국민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미국의 강경한 전략가인 신보수주의자를 배경으로 한 전략가들과 아베의 전략이 일치하기 때문에 지소미아 종료 또는 폐기는 그 사람들의 심기 건드리는 것 사실”이라면서도 “한미동맹은 전혀 문제가 없는 동맹”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어 “지소미아 종료를 두고 한미동맹이 해체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데 66년 동맹의 제도적 문화적 군사적 동맹 체제가 이로 해체된다면 그 동맹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봐야할 것”이라며 “지나친 비약이고 정치적 공세”라고 강조했다.
 

▲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다로 일본 외무상

정가에선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두고 여야 정치인들이 극명한 입장차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민감한 군사정보를 신뢰가 깨진 일본과 공유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YTN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서 지소미아를 폐기해야 하는 이유로 “신뢰가 깨졌는데 경제보다 더 민감한 군사정보를 공유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우리와 북한 사이의 핫라인이 만들어졌으니 위기국면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걷어찬 일본과 연대할 이유가 없다”며 한국정부가 다방면으로 외교적 노력을 펼쳤음에도 일본이 모두 거부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정부가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위기인가 기회인가
여야 극명한 차이


반면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은 “종료가 아니라 파기한 것”이라며 “북한이 원했던 상황이 벌어졌다”고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일관계와 국내 정치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의견도 나왔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백승주 의원은 지소미아 종료를 두고 “기승전 총선, 국내 정치와 관련해 판단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백 의원은 BBS 라디오 <이상휘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민주연구원이 지난 7월 말 한일갈등이 내년 총선서 민주당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며 “그 연장선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당과 보수권 시민단체에서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지소미아를 파기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문정부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살리려 한미일 삼각동맹을 파괴해 반일 정서로 조 후보를 살리려고 한다는 분석이다.

조 후보는 대표적 친문 세력이자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조 후보자의 지지율은 문 대통령의 지지율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총선이 8개월 남짓한 시점서 조 후보의 법무부장관행을 두고 전국적인 논란이 일자 일본과의 대결전선으로 흔들리는 여권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문정부의 의도 유무와는 상관없이 지소미아 종료가 조 후보 논란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조국 때리기’로 물 만난 보수 세력에 중도층이 결집되자 주목도가 높은 한일갈등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주장에 서둘러 차단막을 쳤다.

또 다른 시각
조국 살리기?

민주당 박광온 최고위원은 “일부 정당이 조국을 덮으려고 지소미아를 꺼냈다고 하는데 국익과 정략적 이해를 혼동하고 구별하지 못하는 저차원적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장인 최재성 의원은 CBS 라디오서 한국당의 주장에 대해 “상상할 수 없는 얘기”라며 “조 후보자 문제가 그냥 하루 잠깐 내리고 마는 그런 비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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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