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5)방문

운명 속으로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묘한 일이었다.

비에 흠뻑 젖은 몸을 닦고 객사에 들어서자 마치 한 겨울에 밖에서 들어와 화롯불 앞에서 언 몸을 녹인 듯 온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눈두덩이 무거워지면서 스르르 감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만히 몸을 바라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모든 힘이 한군데로 집중되고 있었다.


허균 자신의 가운데가 뻐근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제 놈 혼자 성내기 시작했다. 

민망한 꿈

가만히 방안을 살펴보았다.

윗목에 덩그마니 놓여있는 목침이 눈에 들어왔다.

엉기적거리며 목침을 가져와 베게 삼아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모든 기운이 밑 모를 골짜기로 빨려드는 듯했다.

“나리, 웬 낮잠이십니까!”


눈을 뜨고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언제 들어왔는지 삼복이 세 명의 여인들과 함께 자신을 내려 보고 있었다.

그 중 두 명의 여인은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듯이 휘황찬란한 기운을 온몸에서 풍기고 있었고, 그녀들과 조금 사이를 두고 수줍은 듯 미소를 머금고 서 있는 여인은 여염집 아낙처럼 수수했다.

“나리, 빨리 일어나지 않고 무엇 하십니까! 왜요, 제가 가져온 홍시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리 말을 하는 삼복의 얼굴 위로 빈정거리는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삼복이, 네 이놈. 감히 내 홍시에 손을 댄 건 아니겠지!”

“나리, 무슨 말씀입니까. 저도 명색이 사내거늘…….”

느끼한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삼복이 밉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 셋 중에 나의 홍시가 어느 여인이란 말이냐.”

“그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 나리께서 찾아내셔야지요.”

허균이 누운 상태로 다시 세 명의 여인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묘하게도 시선이 자꾸 한 여인, 그 중에서도 가장 외모가 딸리는 여인에게 향했다. 


“내 홍시가 바로 너로구나. 어서 이 품속으로 들어 오거라.”

허균의 시선을 받은 여인이 곁에 서있는 여인들에게 가볍게 냉소를 보내고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옷깃을 풀어 헤치며 당당하게 허균을 향했다.

순간 삼복이 여인의 손목을 낚아챘다.

“나리, 하필이면 왜 제 홍시를!”

“무엇이라, 네 홍시라고! 그것 참 잘되었구나. 본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의 여자가 더 맛있는 법이거늘.”

이번에는 삼복이 아닌 허균의 얼굴 위로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나리, 이 여인은 아니 되옵니다. 차라리 여기 두 여인을 몽땅 가지십시오!”

“일 없다, 이놈아. 네 놈이 감히 내 눈을 속이려고 하다니! 나는 그 여인이면 족하니 나머지 두 여인은 날로 먹든 익혀 먹든 네 맘대로 해라!”

삼복의 눈동자가 허균의 힐난에 불같이 타오르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 이놈아!”

“나리, 이 여인은 절대로 아니 되옵니다. 그러니 제발!”

더 이상 자리에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허균이 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삼복의 손에 잡혀있는 여인에게 돌진했다.

“이 놈아, 이 여인이 나의 여인이라는데 건방지게.”

허균의 손이 여인의 손을 잡고 있는 삼복의 손을 거세게 내리쳤다.

그러나 온몸의 힘을 다해서 내리쳤는데도 삼복의 손은 여인의 몸과 달라붙었는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똑같은 동작을 되풀이했으나 마찬가지였다.

“이 놈이, 감히…….”

허균이 급히 자신의 품속에서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꺼내 삼복에게 들이댔다.

“이 놈아, 이래도 그 손 놓지 못하겠냐!”

삼복의 얼굴 위로 다시 묘한 미소가 번졌다.

“절대로 안 되지요. 이 여인은 절대로 나리께 드릴 수 없습지요. 그러니 나리께서 포기하시고 저 두 여인을 취하십시오.”

“네 각오가 정녕 그러하단 말이냐!”

객사에서의 단잠…삼복이 데려온 세 여인
축축하게 젖은 바지…고생원이 온 이유는?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나리!”

그리 대답하는 삼복의 표정이 너무나 당당했다.

삼복의 말이 신호라도 된 듯 곁에서 지켜보던 두 여인이 언제 옷을 벗었는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허균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허균이 잠시 삼복의 손에 잡혀있는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이미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두 여인에게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뒤에서 매달려 있던 여인이 갑자기 자신의 손을 뻗어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자신의 가운데 부분을 온 힘을 다해 잡아 비틀었다.

그곳에서 가벼운 통증과 함께 시원한 느낌이 밀려오고 있었다.

“나리!”삼복이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거무튀튀하게 변한 천장에 군데군데 바른 한지가 시선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허전하다는 생각이 온몸을 에워 쌓다.

잠깐 사이 잠속에 빠져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리!”

“왜 그러느냐!”

“고생원께서 찾아계시었습니다.”

“고생원이라고.”

마냥 누워있을 수만 없었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순간 가운데서 이상한 느낌이 감지되었다.

손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그 부분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제기랄! 그 새를 못 참고.” 

혼잣말을 내뱉고는 앉은 자세에서 몸을 움직여 문가로 다가갔다.

“고생원이 어인 일로 오셨는고.”

말함과 동시에 문을 열자 삼복의 뒤에 서 있던 고생원이 앞으로 나섰다.

“나리, 고홍달이옵니다.”

“고생원, 어서 오시게.”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건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는 시늉만 하다가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냥, 앉아계십시오.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마치 허균의 상태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 말에 은근히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판관나리, 먼저 소인의 인사 받으시지요.”

방에 들어선 고생원이란 작자가 큰절로 예의를 표하자 허균도 급히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몸을 낮추었다.  

고생원 방문

“아니, 이 사람. 이럴 필요는 없는데.”

“나리, 미리 기별주시지 않으시고.”

허균이 마뜩치 못한 표정으로 문밖에 있는 삼복을 바라보았다.

“저 놈이 괜한 짓을 해서 일을 번거롭게 만드는구먼.”

“괜한 짓이라니요, 당연히 제가 찾아뵈어야 도리입지요.”

문밖에서 삼복이 시큰둥한 얼굴로 허균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가벼이 혀를 차고는 다시 시선을 고생원에게 주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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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