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또 새판’짜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8.27 08:23:37
  • 호수 12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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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없는 ‘손의 선언’ ‘만덕산 저주’ 탄식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빅텐트로 새로운 정치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일명 ‘손학규 선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현재 사정은 녹록지 않다. 실제로 그는 당내 비당권파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고 향후 거취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손 대표가 이 국면을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지난 20일, 바른미래당 중심의 ‘빅텐트’를 강조하며 당내서 분출되고 있는 대표직 사퇴 요구에 정면돌파할 뜻을 밝혔다. 손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다른 당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지 말자”며 “바른미래당이 중심에 서는 빅텐트를 준비해 새로운 정치, 제3의 길을 수행하기 위한 새 판짜기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퇴진 거부 
마이웨이∼

그러면서 손 대표는 자유한국당이나 민주평화당서 탈당한 의원들이 결성한 대안정치연대와의 통합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당을 통째로 이끌고 자유한국당과 통합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리자”며 “한국당과의 통합은 양당정치로의 회귀, 구태정치로의 복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평화당 또는 대안정치연대와 통합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며 “지역정당으로 퇴락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안정치연대와 당 대 당 통합을 고민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대안정치연대 쪽에서도 개혁에 동조하고 대한민국 미래에 함께 동조하고 협조하면 그것(바른미래당과의 통합)을 거부할 생각은 없다”고도 언급했다.


바른미래당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론이 손 대표의 구상이다. 그는 “바른미래당이 중심에 서는 빅텐트를 준비할 것”이라며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심판과 자유한국당에 대한 절망이 중간지대를 크게 열어놓을 것이고, 그 중심을 잡는 바른미래당에게 민심이 쏠릴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바른미래당으로 튼튼하게 자리 잡고,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의 모든 개혁세력이 제3지대서 함께 모여 대통합개혁정당을 만들자”고 말했다.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 첫걸음이고, 국정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개헌을 추진할 것”이라며 “바른미래당으로 자강해서 자신을 지키고 힘을 키워나가며 제3지대서 중도개혁과 통합에 동조하는 모든 보수 진보의 정치세력이 모여 총선서 예상되는 문재인정권에 대한 심판, 한국당에 대한 절망으로 넓어지는 중간지대를 건설하자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 대표는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다”면서도 “다만 한 가지 남은 꿈이 있다면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해 당내의 대표직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그는 “정당 간 연합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정책적 연속성을 보장받는 독일식 연합정치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제 꿈이고 마지막 남은 정치적 욕심”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 그만 싸우고 화합하자”며 “안철수 대표, 유승민 대표, 저와 함께 가자. 제가 직접 나서 안철수·유승민을 끌어들이겠다”고도 했다.

당내 사퇴 요구에도 퇴진론 일축
반격 나서는 손…전운 감도는 당

하지만 손 대표의 제안으로 바른미래당 내분이 수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손 대표는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와 선거제 개편안 등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서 이견 차이로 갈등이 시작됐다. 특히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서 강제로 사보임된 오신환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내분은 심화됐다. 오 원내대표는 취임 시작부터 ‘지도부의 체제 전환’을 강조하는 등 사실상 손 대표 사퇴를 압박했다. 

오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CBS라디오 <뉴스쇼>에 출연해 “손 대표 체제는 더 이상 국민들에게 감동이 없다”며 “(사퇴라는)결단을 내려주십사 하는 간곡한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추석까지 지지율 10%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만두겠다’는 손 대표의 약속은)어디로 갔는지 날아가 버렸다”며 “대국민선언처럼 약속한 것이니 지키는 것이 정치적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 기자회견 갖고 있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잠재적 연대 대상으로 거론되는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대안정치)’도 손 대표의 선언 내용에 불쾌감을 토로하고 있는 만큼 험로가 불가피해보인다.

민주평화당서 탈당해 제3지대 신당을 준비하고 있는 대안정치연대는 손학규 선언에 대해 “왜곡된 현실 인식과 무례한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장정숙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대안정치연대와 관련해 지역정당을 연상케 한 손 대표의 무례한 언급은 심히 불쾌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분에 휩싸여 있는 바른미래당과 손 대표는 정치개혁을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빅텐트 치고 중심에 서겠다는 포부는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손학규 선언도 정치권에 큰 반향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의 격한 공방 속에서 손학규 선언이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민주평화당 비당권파의 집단탈당, 한일 갈등 한복판서 맞는 광복절 등을 고려해 선언 시점을 한 차례 미뤘지만, 달아오르는 인사청문 정국으로 인해 외면당한(?) 모양새다.

당권파 내부에선 손 대표가 중대한 정치적 결심을 밝힐 때마다 다른 대형 이슈에 가려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명 ‘만덕산의 저주’에 또 한 번 갇힌 것 아니냐는 탄식도 나온다. 앞서 2006년 10월 유력 대권주자였던 손 대표는 경기지사 퇴임 직후 시작한 ‘100일 민심 대장정’을 마치고 상경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같은 날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주목받지 못했다.

청사진에도
뜨뜻미지근 

2007년 3월 대선후보 경선에 반발해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며 빛이 바랬다.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1년 11월에는 ‘민간인 사찰’ 국정조사·특검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에 돌입했다가 다음 날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중단해야 했다.

2016년 10월 2년여간의 칩거를 마치고 전남 만덕산 토굴집서 내려왔지만, 언론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몰두했다. 이때부터 ‘만덕산의 저주’라는 말이 붙었다. 당권파 내부서 이번 선언을 통해 안철수·유승민 전 공동대표의 무책임론을 부각한 것만큼은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정작 반응은 냉소적이거나 예상외로 미지근하다.

실제로 안철수·유승민 전 공동대표는 손 대표 선언에 응대조차 하지 않았다.

손 대표는 1948년 경기도 시흥군(현 서울특별시 금천구)서 5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교사로 생활하다가 그가 태어날 무렵에 교장으로 승진했지만, 손 대표가 4살 되던 해인 1950년 1월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손 대표와 형제들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어려운 환경서 자랐다. 

1959년에 서울매동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경기중학교를 졸업 후 1962년 경기고에 입학한 그는 3학년 무렵에 대학생들과 함께 시청 앞 국회의사당서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참가했다. 1965년에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후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투쟁이 끝난 뒤 시인 김지하, 김정남, 김도현, 이현배, 허현 등의 선배들과 활동하며 문리대 학생운동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대학 2학년 무렵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무기정학 중 데모에 참가했다가 또 다시 무기정학을 받았던 손 대표는 강원도 함백탄광서 노동을 하기도 했다. 복학 후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더불어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69년 육군에 입대해 1972년에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손 대표는 소설가 황석영과 구로공단에 자취방을 얻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동운동을 하던 손 대표는 한국서 에큐메니컬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진보 기독교 단체 NCCK의 박형규 목사를 만나 기독교 빈민선교운동에 투신한다. 

운동권 출신 
산전수전 겪어 

해방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전태일로부터 충격을 받은 한국의 에큐메니컬운동은 도시산업선교를 통해 노동자와 빈민의 인권문제를 위해 활동했다. 청계천서 빈민들과 같이 생활하던 손 대표는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민주세력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 유신독재체제는 박형규, 김관석, 권호경 목사 등을 구속했다. 당시 손 대표를 검거하기 위해 현상금 200만원에 2계급 특진을 걸었다. 손 대표는 2년 동안 숨어 살며 원주의 과수원, 서울의 철공소서 일했다.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민주화운동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 최성묵 목사 등을 만나 사후 대책을 논의하다가 수사당국에 검거된다. 김해 보안대로 연행돼 48시간 동안 무작정 두들겨 맞고 문초를 당하던 그는 유신독재체제가 붕괴하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서울의 봄이 한창이던 1980년, 그는 돌연 영국 옥스퍼드대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1987년에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5공 말기에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직을 맡아 부천서 성고문 사건 자료집인 <우리의 딸 권양>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각종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을 재개했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0년서 1993년까지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서 교수로 강단에 섰다. 교수 시절 동안 진보적인 소장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재야의 대표적인 인사였던 그는 1993년에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보궐선거서 경기 광명서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제15대 총선서도 신한국당 소속으로 승리해 재선에 성공했다. 

1996년 11월, 당시 최연소 장관 기록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제33대 보건복지부장관이 됐다. 1997년 8월까지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내다 2000년 제16대 총선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에 성공했으며 2002년에는 민선 3기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2007년 3월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후 같은 해 8월, 민주평화계의 대통합을 이뤄내고자 대통합민주신당에 참여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에게 패해 낙선했다.

“안철수·유승민과 제3의 길 모색”
하는 일마다…매번 타이밍이 문제

손 대표는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로 선출돼 민주당과 통합을 성사시켜 단일 야당 통합민주당을 출범시켰다. 이후 2008년 4월, 18대 총선서 당을 이끌었으나 299석 중 81석을 얻는 데 그쳐 같은 해 7월6일 통합민주당 대표직 사임 후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며 강원도 춘천으로 칩거에 들어갔다.

2010년 8월15일, 춘천을 떠나며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정계로 복귀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시혜적 복지, 잔여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를 강조했으며 “진보적 자유주의의 새로운 길이 추구하는 사회는 정의로운 복지사회로서 공동체주의와 보편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10월3일, 인천 문학경기장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서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반성과 무상복지를 내용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의 새로운 노선을 제시해 당 대표로 선출됐다. 당 대표가 된 손 대표는 전국을 돌며 민주대장정을 전개했으며, 이듬해 1월3일부터 다시 전국을 돌며 시민들의 건의와 주장을 경청하고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 노선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희망대장정을 전개했다.
 

10월4일,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운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서 패배하자 손 대표는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박 장관 등 다수 민주당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하루 만에 대표직 사퇴를 철회하며 논란을 빚기도 했다. 

후로 2012년 6월14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나 민주통합당 국민 참여 경선서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패해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2014년 6월4일 지방선거 때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같은 해 7월31일, 7·30 수원 병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김용남 후보에 패하자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군 만덕산 자락에 있는 토굴로 들어갔다.

정계 복귀
그 이후…

2016년 10월20일엔 오랜 산중 생활을 마치고 ‘제7공화국으로의 개헌’을 명분으로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최측근인 이찬열 의원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을 전격 탈당 후 자신의 정치기반인 국민주권개혁회의와 국민의당의 통합을 선언했다. 이듬해 3월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에게 밀려 또 고배를 마셨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 후 바른미래당 지방선거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2018년 8월8일 정치제도, 선거제도 개혁을 내세우며 바른미래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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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좌우로 열린 윤영호 게이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를 둘러싼 정치권 로비·금품 제공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이른바 ‘통일교 특검’이 본궤도에 올랐다. 여야는 통일교의 정치권 금품 지원 의혹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법을 각자 발의한 뒤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와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김은혜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31일 “2차 종합특검, 통일교·신천지 특검(법의 국회 통과)을 설(내년 2월17일) 연휴 전에 반드시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정치인 줄줄이 특검 수사의 초점은 정치인 개개인의 비위 여부를 넘어, 통일교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정치권에 접근해 정책·인사·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 제공이 있었는지 여부도 핵심이다. 수사선상에는 통일교 지도부와 핵심 실무 라인은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명이 거론된 정치권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 로비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특검은 출범과 동시에 통일교 내부 자금 흐름과 의사결정 구조를 정밀 추적하고 있다. 수사의 출발점은 통일교 고위 간부였던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의 진술과 관련된 자료다. 윤 전 본부장은 검찰·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들에게 현금과 고가 물품이 전달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 진술의 신빙성을 가리기 위해 통일교 본부 및 산하 단체 회계, 자금 집행 내역, 내부 문건을 대거 확보해 분석 중이다. 통일교 측은 “조직 차원의 불법 지시는 없었다”며 일부 인사의 개인적 일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나, 특검은 지도부 보고·승인이 있었는지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보고 있다. 이번 특검이 주목받는 이유는 수사의 외연이 정치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와 수사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의원, 광역단체장, 정부 인사들의 이름이 잇따라 등장했다. 민주당에서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성 전 의원, 강선우 의원,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이름이 언론 보도에서 거론됐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성동 의원, 김규환 전 의원 등이 수사 관련 기사에 등장했다. 이들 대부분은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거나 “통일교와의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이었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진술과 물증을 대조해 사실관계를 가려내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계열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인물은 전 전 장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18년 전후 통일교 고위 인사로부터 현금 또는 고가 물품을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이 수사 과정에서 나왔다. 여야 각자 특검법 발의 후 협의키로 여야 막론 정교 유착 전모 밝혀지나 해당 의혹은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통해 처음 알려졌고, 이후 경찰과 특검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핵심 쟁점은 실제 금품 전달 여부와 함께, 당시 전 전 장관의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전 전 장관은 관련 보도 직후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해 오고 있다. 같은 당의 임 전 의원 역시 통일교 정치권 로비 의혹 명단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의 경우 구체적인 금액이나 전달 시점이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통일교 측이 “여야 정치인 다수에게 자금을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는 과정에서 실명이 언급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특검이 임 전 의원을 포함한 인사들에 대해 소환 조사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쟁점은 통일교와의 관계가 단순한 접촉 수준이었는지, 아니면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하는 금품수수로 이어졌는지다. 임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강 의원은 금품수수보다는 ‘접촉·관리 대상’ 의혹으로 이름이 거론됐다. 보도된 통일교 관계자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언급에서 강 의원의 이름이 등장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다. 해당 보도들은 통일교 측이 정치권 인사들을 분류·관리하며 접근 전략을 세웠다는 의혹을 전하는 맥락에서 강 의원을 언급했다. 현재까지 강 의원과 관련해 현금이나 물품 제공 정황이 확인됐다는 보도는 없다. 그는 통일교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전면 부인했다. 노 전 실장 역시 통일교 인사 간 통화 녹취 또는 내부 문건에서 이름이 언급됐다는 언론 보도로 연관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경우도 금품수수 의혹보다는, 통일교가 ‘영향력 있는 정치·권력 인사’로 인식하고 접촉을 시도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노 전 실장 측은 통일교와의 불법적 관계나 금품수수는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권 의원이 통일교 특검 국면에서 가장 무겁게 거론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이 권 의원에게 정치자금 또는 현금 성격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 매체는 압수수색이나 계좌 추적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권력 과시 여야 통일? 쟁점은 자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 전달됐다면 정치자금으로 신고됐는지, 그리고 대가성이 있었는지 여부다. 권 의원 측은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통일교 측이 관리·접촉 대상으로 삼았던 정치인 명단 관련 보도에서 이름이 등장했다. 그의 경우도 구체적인 금품 전달 사실이 확인됐다는 보도보다는,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접점 인사’로 분류됐다는 정황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통일교 자금과의 실질적 연결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 전 의원 역시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부인했다. 이들 사례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공통적인 흐름이 드러난다. 2018년 전후 통일교 내부에서 정치권 로비를 담당하는 실무·재정 라인이 가동됐다는 진술이 나오고, 2022년 이후 통일교 지도부 관련 사건이 불거지면서 과거 정치권 접촉 내역이 재조명됐다. 2024~2025년에는 경찰 수사와 특검 출범을 계기로 통일교 고위 인사 진술, 녹취, 내부 문건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며 정치인 실명 보도가 잇따랐다. 의혹의 유형을 나누면 세 가지로 첫째, 전재수·권성동처럼 현금 또는 정치자금 성격을 띤 자금 제공 의혹이 직접 제기된 경우다. 둘째, 임종성처럼 통일교 측 진술에서 ‘자금 전달 대상’으로 언급됐으나 구체성이 아직 부족한 경우다. 셋째, 강선우·노영민·김규환처럼 통일교 내부 녹취나 문건에서 ‘접촉·관리 대상’으로 거론된 경우다. 특검은 이 세 유형을 종합해 통일교의 정치권 접근이 우발적이었는지, 아니면 계획적·조직적이었는지를 판단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특검의 법적 판단은 몇 가지 체크 리스트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자금 또는 물품이 실제로 정치인 또는 그 측근에게 전달됐는지에 대한 물증(계좌 흐름, 현금 출처, 구매 내역)이 확보되는지 여부다. 줬다는데 안 받았다 또 해당 정치인의 직무와 관련된 청탁이나 편의 제공 요구가 있었는지, 즉 대가성이 입증되는지다. 이어 자금이 개인 차원의 일탈이 아니라 통일교 지도부 또는 조직의 승인·묵인 아래 이뤄졌는지 여부다. 또 정치자금으로 볼 경우 신고 누락이 있었는지, 뇌물로 볼 경우, 공소시효와 구성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다. 현재까지 통일교 특검에서 거론된 정치인들과 관련한 보도는 모두 ‘의혹 제기’ 또는 ‘수사 진행 상황’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특검이 이 사안을 개별 정치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종교단체가 정치권을 상대로 벌인 장기적 로비 구조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소환과 기소 여부에 따라 파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통일교 특검이 향하는 끝이 어디인지, 그리고 정치권 전반의 신뢰 문제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검 수사의 또 다른 축은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를 둘러싼 고가 선물 수수 의혹이다. 통일교 측이 명품 가방과 귀금속 등을 전달하며 각종 편의를 기대했다는 의혹이다. 이 사안은 정치인 대상 로비와는 별도의 트랙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만 특검은 통일교 지도부가 동일한 자금·조직 라인을 활용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며, 두 사건을 구조적으로 연결해 보고 있다. 특검이 들여다보는 ‘로비 방식’은 전통적인 봉투 전달에 국한되지 않는다. 통일교 및 연계 단체들은 국제회의, 평화 포럼, ‘평화대사’ 위촉 행사 등을 통해 정치인과의 접점을 넓혀 왔다. 문제는 이 같은 공식 행사 뒤편에서 현금·물품 제공이나 정치적 대가성 요구가 있었는지다. 특검은 행사 전후 일정, 면담 기록, 수행 인력 동선, 통신 기록 등을 종합 분석해 접촉의 성격을 규명하고 있다. 특히 정치자금법상 신고되지 않은 후원이거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청탁금지법·뇌물죄 적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여야 모두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파장 관리에 고심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하나같이 “접촉은 공식 행사 차원” 레퍼토리 반복···한 입서 나온 증언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불법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원칙론을 내세웠다. 여권과 야권 일각에서는 “특검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경계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특검 수사 대상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확대되면서, ‘편파 수사’ 논란은 힘을 잃는 분위기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특검의 성패가 ‘대가성 입증’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한 친분 관계나 종교 행사 참석만으로는 처벌이 어렵고, 금품 제공과 구체적 직무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자금법 위반의 경우 공소시효 문제도 변수로 작용한다. 특검이 초기부터 강제수사에 나선 배경에는 이 같은 시간적 제약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통일교 특검은 한국 정치사에서 반복돼온 ‘종교-정치 유착’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종교의 자유와 정치의 독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어디에서 충돌하는지, 그 경계선을 명확히 그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수사가 개인 처벌에 그칠지, 아니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통일교 특검이 던진 질문은 “정치가 누구의 돈과 조직에 의해 움직였느냐?”다. 특검의 칼끝이 어디까지 향할지, 그 결과가 한국 정치의 신뢰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편, 핵심 피고인·피의자로는 통일교 지도부(한학자 총재)와 통일교 고위 간부(윤영호 전 세계본부장) 등이 거론된다. 한 언론은 특별검사팀 발표를 인용해 한 총재가 통일교 자금의 유용 및 증거인멸 지시, 정치자금법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됐고, 김건희(전 영부인)씨 및 권 의원(국민의힘) 등에게 전달된 것으로 의심되는 금품·자금이 수사의 초점이라고 전했다. 특히 보도에 따르면, 통일교 측은 2022년 1월 권 의원에게 1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 2022년 7월 김씨에게 명품 등을 제공했다는 의혹 등이 ‘수사기관 주장’으로 적시돼있으며, 당사자들은 부인 취지 입장을 밝혀왔다. 로비 자금의 ‘규모’ 논란을 키운 장면은 통일교 핵심 시설(가평 천정궁) 압수수색 과정에서 거액 현금이 발견됐다는 보도였다. <MBC>는 특검 압수수색 당시 한학자 총재 개인 금고에서 외화 포함 약 280억원 상당 현금이 확인됐다며, 이 돈이 통일교 회계와 별개로 관리된 자금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권 로비 자금’ 의심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2022년 지방선거 전후 ‘정치 후원금’ 형태의 지원 의혹으로는, 법정 진술을 인용해 유상범 의원(국민의힘), 백경현(경기 구리시장), 김진태(강원도지사) 등의 이름과 액수가 거론됐다고 알려졌다. 또 나온 김건희 통일교 로비 의혹의 ‘작동 방식’으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산하·연계 조직의 외피를 통한 접점 확보다. 예컨대 UPF(천주평화연합) 같은 NGO 성격 단체가 각종 국제 행사(월드서밋 등)를 주최하고, ‘평화대사’ 위촉 등으로 정치인·지자체 관계자·지역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확장해 왔다는 설명이 반복된다. UPF가 권역을 나눠 주요 인사를 접촉·관리하는 구조였다는 의혹을 전하며, 자금 집행과 조직적 접촉이 실제 정치자금 제공이나 청탁과 연결됐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라고 짚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