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또 새판’짜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8.27 08:23:37
  • 호수 12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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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없는 ‘손의 선언’ ‘만덕산 저주’ 탄식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빅텐트로 새로운 정치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일명 ‘손학규 선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현재 사정은 녹록지 않다. 실제로 그는 당내 비당권파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고 향후 거취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손 대표가 이 국면을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지난 20일, 바른미래당 중심의 ‘빅텐트’를 강조하며 당내서 분출되고 있는 대표직 사퇴 요구에 정면돌파할 뜻을 밝혔다. 손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다른 당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지 말자”며 “바른미래당이 중심에 서는 빅텐트를 준비해 새로운 정치, 제3의 길을 수행하기 위한 새 판짜기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퇴진 거부 
마이웨이∼

그러면서 손 대표는 자유한국당이나 민주평화당서 탈당한 의원들이 결성한 대안정치연대와의 통합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당을 통째로 이끌고 자유한국당과 통합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리자”며 “한국당과의 통합은 양당정치로의 회귀, 구태정치로의 복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평화당 또는 대안정치연대와 통합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며 “지역정당으로 퇴락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안정치연대와 당 대 당 통합을 고민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대안정치연대 쪽에서도 개혁에 동조하고 대한민국 미래에 함께 동조하고 협조하면 그것(바른미래당과의 통합)을 거부할 생각은 없다”고도 언급했다.


바른미래당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론이 손 대표의 구상이다. 그는 “바른미래당이 중심에 서는 빅텐트를 준비할 것”이라며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심판과 자유한국당에 대한 절망이 중간지대를 크게 열어놓을 것이고, 그 중심을 잡는 바른미래당에게 민심이 쏠릴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바른미래당으로 튼튼하게 자리 잡고,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의 모든 개혁세력이 제3지대서 함께 모여 대통합개혁정당을 만들자”고 말했다.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 첫걸음이고, 국정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개헌을 추진할 것”이라며 “바른미래당으로 자강해서 자신을 지키고 힘을 키워나가며 제3지대서 중도개혁과 통합에 동조하는 모든 보수 진보의 정치세력이 모여 총선서 예상되는 문재인정권에 대한 심판, 한국당에 대한 절망으로 넓어지는 중간지대를 건설하자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 대표는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다”면서도 “다만 한 가지 남은 꿈이 있다면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해 당내의 대표직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그는 “정당 간 연합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정책적 연속성을 보장받는 독일식 연합정치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제 꿈이고 마지막 남은 정치적 욕심”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 그만 싸우고 화합하자”며 “안철수 대표, 유승민 대표, 저와 함께 가자. 제가 직접 나서 안철수·유승민을 끌어들이겠다”고도 했다.

당내 사퇴 요구에도 퇴진론 일축
반격 나서는 손…전운 감도는 당

하지만 손 대표의 제안으로 바른미래당 내분이 수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손 대표는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와 선거제 개편안 등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서 이견 차이로 갈등이 시작됐다. 특히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서 강제로 사보임된 오신환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내분은 심화됐다. 오 원내대표는 취임 시작부터 ‘지도부의 체제 전환’을 강조하는 등 사실상 손 대표 사퇴를 압박했다. 

오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CBS라디오 <뉴스쇼>에 출연해 “손 대표 체제는 더 이상 국민들에게 감동이 없다”며 “(사퇴라는)결단을 내려주십사 하는 간곡한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추석까지 지지율 10%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만두겠다’는 손 대표의 약속은)어디로 갔는지 날아가 버렸다”며 “대국민선언처럼 약속한 것이니 지키는 것이 정치적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 기자회견 갖고 있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잠재적 연대 대상으로 거론되는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대안정치)’도 손 대표의 선언 내용에 불쾌감을 토로하고 있는 만큼 험로가 불가피해보인다.

민주평화당서 탈당해 제3지대 신당을 준비하고 있는 대안정치연대는 손학규 선언에 대해 “왜곡된 현실 인식과 무례한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장정숙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대안정치연대와 관련해 지역정당을 연상케 한 손 대표의 무례한 언급은 심히 불쾌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분에 휩싸여 있는 바른미래당과 손 대표는 정치개혁을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빅텐트 치고 중심에 서겠다는 포부는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손학규 선언도 정치권에 큰 반향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의 격한 공방 속에서 손학규 선언이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민주평화당 비당권파의 집단탈당, 한일 갈등 한복판서 맞는 광복절 등을 고려해 선언 시점을 한 차례 미뤘지만, 달아오르는 인사청문 정국으로 인해 외면당한(?) 모양새다.

당권파 내부에선 손 대표가 중대한 정치적 결심을 밝힐 때마다 다른 대형 이슈에 가려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명 ‘만덕산의 저주’에 또 한 번 갇힌 것 아니냐는 탄식도 나온다. 앞서 2006년 10월 유력 대권주자였던 손 대표는 경기지사 퇴임 직후 시작한 ‘100일 민심 대장정’을 마치고 상경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같은 날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주목받지 못했다.

청사진에도
뜨뜻미지근 

2007년 3월 대선후보 경선에 반발해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며 빛이 바랬다.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1년 11월에는 ‘민간인 사찰’ 국정조사·특검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에 돌입했다가 다음 날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중단해야 했다.

2016년 10월 2년여간의 칩거를 마치고 전남 만덕산 토굴집서 내려왔지만, 언론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몰두했다. 이때부터 ‘만덕산의 저주’라는 말이 붙었다. 당권파 내부서 이번 선언을 통해 안철수·유승민 전 공동대표의 무책임론을 부각한 것만큼은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정작 반응은 냉소적이거나 예상외로 미지근하다.

실제로 안철수·유승민 전 공동대표는 손 대표 선언에 응대조차 하지 않았다.

손 대표는 1948년 경기도 시흥군(현 서울특별시 금천구)서 5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교사로 생활하다가 그가 태어날 무렵에 교장으로 승진했지만, 손 대표가 4살 되던 해인 1950년 1월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손 대표와 형제들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어려운 환경서 자랐다. 

1959년에 서울매동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경기중학교를 졸업 후 1962년 경기고에 입학한 그는 3학년 무렵에 대학생들과 함께 시청 앞 국회의사당서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참가했다. 1965년에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후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투쟁이 끝난 뒤 시인 김지하, 김정남, 김도현, 이현배, 허현 등의 선배들과 활동하며 문리대 학생운동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대학 2학년 무렵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무기정학 중 데모에 참가했다가 또 다시 무기정학을 받았던 손 대표는 강원도 함백탄광서 노동을 하기도 했다. 복학 후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더불어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69년 육군에 입대해 1972년에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손 대표는 소설가 황석영과 구로공단에 자취방을 얻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동운동을 하던 손 대표는 한국서 에큐메니컬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진보 기독교 단체 NCCK의 박형규 목사를 만나 기독교 빈민선교운동에 투신한다. 

운동권 출신 
산전수전 겪어 

해방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전태일로부터 충격을 받은 한국의 에큐메니컬운동은 도시산업선교를 통해 노동자와 빈민의 인권문제를 위해 활동했다. 청계천서 빈민들과 같이 생활하던 손 대표는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민주세력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 유신독재체제는 박형규, 김관석, 권호경 목사 등을 구속했다. 당시 손 대표를 검거하기 위해 현상금 200만원에 2계급 특진을 걸었다. 손 대표는 2년 동안 숨어 살며 원주의 과수원, 서울의 철공소서 일했다.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민주화운동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 최성묵 목사 등을 만나 사후 대책을 논의하다가 수사당국에 검거된다. 김해 보안대로 연행돼 48시간 동안 무작정 두들겨 맞고 문초를 당하던 그는 유신독재체제가 붕괴하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서울의 봄이 한창이던 1980년, 그는 돌연 영국 옥스퍼드대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1987년에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5공 말기에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직을 맡아 부천서 성고문 사건 자료집인 <우리의 딸 권양>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각종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을 재개했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0년서 1993년까지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서 교수로 강단에 섰다. 교수 시절 동안 진보적인 소장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재야의 대표적인 인사였던 그는 1993년에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보궐선거서 경기 광명서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제15대 총선서도 신한국당 소속으로 승리해 재선에 성공했다. 

1996년 11월, 당시 최연소 장관 기록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제33대 보건복지부장관이 됐다. 1997년 8월까지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내다 2000년 제16대 총선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에 성공했으며 2002년에는 민선 3기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2007년 3월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후 같은 해 8월, 민주평화계의 대통합을 이뤄내고자 대통합민주신당에 참여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에게 패해 낙선했다.

“안철수·유승민과 제3의 길 모색”
하는 일마다…매번 타이밍이 문제

손 대표는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로 선출돼 민주당과 통합을 성사시켜 단일 야당 통합민주당을 출범시켰다. 이후 2008년 4월, 18대 총선서 당을 이끌었으나 299석 중 81석을 얻는 데 그쳐 같은 해 7월6일 통합민주당 대표직 사임 후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며 강원도 춘천으로 칩거에 들어갔다.

2010년 8월15일, 춘천을 떠나며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정계로 복귀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시혜적 복지, 잔여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를 강조했으며 “진보적 자유주의의 새로운 길이 추구하는 사회는 정의로운 복지사회로서 공동체주의와 보편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10월3일, 인천 문학경기장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서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반성과 무상복지를 내용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의 새로운 노선을 제시해 당 대표로 선출됐다. 당 대표가 된 손 대표는 전국을 돌며 민주대장정을 전개했으며, 이듬해 1월3일부터 다시 전국을 돌며 시민들의 건의와 주장을 경청하고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 노선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희망대장정을 전개했다.
 

10월4일,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운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서 패배하자 손 대표는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박 장관 등 다수 민주당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하루 만에 대표직 사퇴를 철회하며 논란을 빚기도 했다. 

후로 2012년 6월14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나 민주통합당 국민 참여 경선서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패해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2014년 6월4일 지방선거 때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같은 해 7월31일, 7·30 수원 병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김용남 후보에 패하자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군 만덕산 자락에 있는 토굴로 들어갔다.

정계 복귀
그 이후…

2016년 10월20일엔 오랜 산중 생활을 마치고 ‘제7공화국으로의 개헌’을 명분으로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최측근인 이찬열 의원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을 전격 탈당 후 자신의 정치기반인 국민주권개혁회의와 국민의당의 통합을 선언했다. 이듬해 3월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에게 밀려 또 고배를 마셨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 후 바른미래당 지방선거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2018년 8월8일 정치제도, 선거제도 개혁을 내세우며 바른미래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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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