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또 새판’짜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8.27 08:23:37
  • 호수 12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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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없는 ‘손의 선언’ ‘만덕산 저주’ 탄식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빅텐트로 새로운 정치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일명 ‘손학규 선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현재 사정은 녹록지 않다. 실제로 그는 당내 비당권파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고 향후 거취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손 대표가 이 국면을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지난 20일, 바른미래당 중심의 ‘빅텐트’를 강조하며 당내서 분출되고 있는 대표직 사퇴 요구에 정면돌파할 뜻을 밝혔다. 손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다른 당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지 말자”며 “바른미래당이 중심에 서는 빅텐트를 준비해 새로운 정치, 제3의 길을 수행하기 위한 새 판짜기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퇴진 거부 
마이웨이∼

그러면서 손 대표는 자유한국당이나 민주평화당서 탈당한 의원들이 결성한 대안정치연대와의 통합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당을 통째로 이끌고 자유한국당과 통합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리자”며 “한국당과의 통합은 양당정치로의 회귀, 구태정치로의 복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평화당 또는 대안정치연대와 통합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며 “지역정당으로 퇴락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안정치연대와 당 대 당 통합을 고민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대안정치연대 쪽에서도 개혁에 동조하고 대한민국 미래에 함께 동조하고 협조하면 그것(바른미래당과의 통합)을 거부할 생각은 없다”고도 언급했다.


바른미래당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론이 손 대표의 구상이다. 그는 “바른미래당이 중심에 서는 빅텐트를 준비할 것”이라며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심판과 자유한국당에 대한 절망이 중간지대를 크게 열어놓을 것이고, 그 중심을 잡는 바른미래당에게 민심이 쏠릴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바른미래당으로 튼튼하게 자리 잡고,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의 모든 개혁세력이 제3지대서 함께 모여 대통합개혁정당을 만들자”고 말했다.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 첫걸음이고, 국정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개헌을 추진할 것”이라며 “바른미래당으로 자강해서 자신을 지키고 힘을 키워나가며 제3지대서 중도개혁과 통합에 동조하는 모든 보수 진보의 정치세력이 모여 총선서 예상되는 문재인정권에 대한 심판, 한국당에 대한 절망으로 넓어지는 중간지대를 건설하자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 대표는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다”면서도 “다만 한 가지 남은 꿈이 있다면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해 당내의 대표직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그는 “정당 간 연합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정책적 연속성을 보장받는 독일식 연합정치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제 꿈이고 마지막 남은 정치적 욕심”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 그만 싸우고 화합하자”며 “안철수 대표, 유승민 대표, 저와 함께 가자. 제가 직접 나서 안철수·유승민을 끌어들이겠다”고도 했다.

당내 사퇴 요구에도 퇴진론 일축
반격 나서는 손…전운 감도는 당

하지만 손 대표의 제안으로 바른미래당 내분이 수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손 대표는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와 선거제 개편안 등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서 이견 차이로 갈등이 시작됐다. 특히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서 강제로 사보임된 오신환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내분은 심화됐다. 오 원내대표는 취임 시작부터 ‘지도부의 체제 전환’을 강조하는 등 사실상 손 대표 사퇴를 압박했다. 

오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CBS라디오 <뉴스쇼>에 출연해 “손 대표 체제는 더 이상 국민들에게 감동이 없다”며 “(사퇴라는)결단을 내려주십사 하는 간곡한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추석까지 지지율 10%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만두겠다’는 손 대표의 약속은)어디로 갔는지 날아가 버렸다”며 “대국민선언처럼 약속한 것이니 지키는 것이 정치적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 기자회견 갖고 있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잠재적 연대 대상으로 거론되는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대안정치)’도 손 대표의 선언 내용에 불쾌감을 토로하고 있는 만큼 험로가 불가피해보인다.

민주평화당서 탈당해 제3지대 신당을 준비하고 있는 대안정치연대는 손학규 선언에 대해 “왜곡된 현실 인식과 무례한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장정숙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대안정치연대와 관련해 지역정당을 연상케 한 손 대표의 무례한 언급은 심히 불쾌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분에 휩싸여 있는 바른미래당과 손 대표는 정치개혁을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빅텐트 치고 중심에 서겠다는 포부는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손학규 선언도 정치권에 큰 반향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의 격한 공방 속에서 손학규 선언이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민주평화당 비당권파의 집단탈당, 한일 갈등 한복판서 맞는 광복절 등을 고려해 선언 시점을 한 차례 미뤘지만, 달아오르는 인사청문 정국으로 인해 외면당한(?) 모양새다.

당권파 내부에선 손 대표가 중대한 정치적 결심을 밝힐 때마다 다른 대형 이슈에 가려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명 ‘만덕산의 저주’에 또 한 번 갇힌 것 아니냐는 탄식도 나온다. 앞서 2006년 10월 유력 대권주자였던 손 대표는 경기지사 퇴임 직후 시작한 ‘100일 민심 대장정’을 마치고 상경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같은 날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주목받지 못했다.

청사진에도
뜨뜻미지근 

2007년 3월 대선후보 경선에 반발해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며 빛이 바랬다.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1년 11월에는 ‘민간인 사찰’ 국정조사·특검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에 돌입했다가 다음 날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중단해야 했다.

2016년 10월 2년여간의 칩거를 마치고 전남 만덕산 토굴집서 내려왔지만, 언론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몰두했다. 이때부터 ‘만덕산의 저주’라는 말이 붙었다. 당권파 내부서 이번 선언을 통해 안철수·유승민 전 공동대표의 무책임론을 부각한 것만큼은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정작 반응은 냉소적이거나 예상외로 미지근하다.

실제로 안철수·유승민 전 공동대표는 손 대표 선언에 응대조차 하지 않았다.

손 대표는 1948년 경기도 시흥군(현 서울특별시 금천구)서 5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교사로 생활하다가 그가 태어날 무렵에 교장으로 승진했지만, 손 대표가 4살 되던 해인 1950년 1월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손 대표와 형제들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어려운 환경서 자랐다. 

1959년에 서울매동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경기중학교를 졸업 후 1962년 경기고에 입학한 그는 3학년 무렵에 대학생들과 함께 시청 앞 국회의사당서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참가했다. 1965년에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후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투쟁이 끝난 뒤 시인 김지하, 김정남, 김도현, 이현배, 허현 등의 선배들과 활동하며 문리대 학생운동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대학 2학년 무렵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무기정학 중 데모에 참가했다가 또 다시 무기정학을 받았던 손 대표는 강원도 함백탄광서 노동을 하기도 했다. 복학 후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더불어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69년 육군에 입대해 1972년에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손 대표는 소설가 황석영과 구로공단에 자취방을 얻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동운동을 하던 손 대표는 한국서 에큐메니컬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진보 기독교 단체 NCCK의 박형규 목사를 만나 기독교 빈민선교운동에 투신한다. 

운동권 출신 
산전수전 겪어 

해방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전태일로부터 충격을 받은 한국의 에큐메니컬운동은 도시산업선교를 통해 노동자와 빈민의 인권문제를 위해 활동했다. 청계천서 빈민들과 같이 생활하던 손 대표는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민주세력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 유신독재체제는 박형규, 김관석, 권호경 목사 등을 구속했다. 당시 손 대표를 검거하기 위해 현상금 200만원에 2계급 특진을 걸었다. 손 대표는 2년 동안 숨어 살며 원주의 과수원, 서울의 철공소서 일했다.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민주화운동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 최성묵 목사 등을 만나 사후 대책을 논의하다가 수사당국에 검거된다. 김해 보안대로 연행돼 48시간 동안 무작정 두들겨 맞고 문초를 당하던 그는 유신독재체제가 붕괴하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서울의 봄이 한창이던 1980년, 그는 돌연 영국 옥스퍼드대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1987년에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5공 말기에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직을 맡아 부천서 성고문 사건 자료집인 <우리의 딸 권양>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각종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을 재개했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0년서 1993년까지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서 교수로 강단에 섰다. 교수 시절 동안 진보적인 소장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재야의 대표적인 인사였던 그는 1993년에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보궐선거서 경기 광명서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제15대 총선서도 신한국당 소속으로 승리해 재선에 성공했다. 

1996년 11월, 당시 최연소 장관 기록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제33대 보건복지부장관이 됐다. 1997년 8월까지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내다 2000년 제16대 총선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에 성공했으며 2002년에는 민선 3기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2007년 3월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후 같은 해 8월, 민주평화계의 대통합을 이뤄내고자 대통합민주신당에 참여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에게 패해 낙선했다.

“안철수·유승민과 제3의 길 모색”
하는 일마다…매번 타이밍이 문제

손 대표는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로 선출돼 민주당과 통합을 성사시켜 단일 야당 통합민주당을 출범시켰다. 이후 2008년 4월, 18대 총선서 당을 이끌었으나 299석 중 81석을 얻는 데 그쳐 같은 해 7월6일 통합민주당 대표직 사임 후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며 강원도 춘천으로 칩거에 들어갔다.

2010년 8월15일, 춘천을 떠나며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정계로 복귀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시혜적 복지, 잔여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를 강조했으며 “진보적 자유주의의 새로운 길이 추구하는 사회는 정의로운 복지사회로서 공동체주의와 보편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10월3일, 인천 문학경기장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서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반성과 무상복지를 내용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의 새로운 노선을 제시해 당 대표로 선출됐다. 당 대표가 된 손 대표는 전국을 돌며 민주대장정을 전개했으며, 이듬해 1월3일부터 다시 전국을 돌며 시민들의 건의와 주장을 경청하고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 노선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희망대장정을 전개했다.
 

10월4일,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운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서 패배하자 손 대표는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박 장관 등 다수 민주당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하루 만에 대표직 사퇴를 철회하며 논란을 빚기도 했다. 

후로 2012년 6월14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나 민주통합당 국민 참여 경선서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패해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2014년 6월4일 지방선거 때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같은 해 7월31일, 7·30 수원 병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김용남 후보에 패하자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군 만덕산 자락에 있는 토굴로 들어갔다.

정계 복귀
그 이후…

2016년 10월20일엔 오랜 산중 생활을 마치고 ‘제7공화국으로의 개헌’을 명분으로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최측근인 이찬열 의원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을 전격 탈당 후 자신의 정치기반인 국민주권개혁회의와 국민의당의 통합을 선언했다. 이듬해 3월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에게 밀려 또 고배를 마셨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 후 바른미래당 지방선거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2018년 8월8일 정치제도, 선거제도 개혁을 내세우며 바른미래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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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