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또 새판’짜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8.27 08:23:37
  • 호수 12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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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없는 ‘손의 선언’ ‘만덕산 저주’ 탄식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빅텐트로 새로운 정치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일명 ‘손학규 선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현재 사정은 녹록지 않다. 실제로 그는 당내 비당권파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고 향후 거취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손 대표가 이 국면을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지난 20일, 바른미래당 중심의 ‘빅텐트’를 강조하며 당내서 분출되고 있는 대표직 사퇴 요구에 정면돌파할 뜻을 밝혔다. 손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다른 당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지 말자”며 “바른미래당이 중심에 서는 빅텐트를 준비해 새로운 정치, 제3의 길을 수행하기 위한 새 판짜기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퇴진 거부 
마이웨이∼

그러면서 손 대표는 자유한국당이나 민주평화당서 탈당한 의원들이 결성한 대안정치연대와의 통합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당을 통째로 이끌고 자유한국당과 통합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버리자”며 “한국당과의 통합은 양당정치로의 회귀, 구태정치로의 복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평화당 또는 대안정치연대와 통합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며 “지역정당으로 퇴락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안정치연대와 당 대 당 통합을 고민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대안정치연대 쪽에서도 개혁에 동조하고 대한민국 미래에 함께 동조하고 협조하면 그것(바른미래당과의 통합)을 거부할 생각은 없다”고도 언급했다.


바른미래당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론이 손 대표의 구상이다. 그는 “바른미래당이 중심에 서는 빅텐트를 준비할 것”이라며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심판과 자유한국당에 대한 절망이 중간지대를 크게 열어놓을 것이고, 그 중심을 잡는 바른미래당에게 민심이 쏠릴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바른미래당으로 튼튼하게 자리 잡고,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의 모든 개혁세력이 제3지대서 함께 모여 대통합개혁정당을 만들자”고 말했다.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 첫걸음이고, 국정의 원활한 수행을 위한 개헌을 추진할 것”이라며 “바른미래당으로 자강해서 자신을 지키고 힘을 키워나가며 제3지대서 중도개혁과 통합에 동조하는 모든 보수 진보의 정치세력이 모여 총선서 예상되는 문재인정권에 대한 심판, 한국당에 대한 절망으로 넓어지는 중간지대를 건설하자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 대표는 자신의 거취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다”면서도 “다만 한 가지 남은 꿈이 있다면 대한민국 정치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해 당내의 대표직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그는 “정당 간 연합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고 정책적 연속성을 보장받는 독일식 연합정치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제 꿈이고 마지막 남은 정치적 욕심”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 그만 싸우고 화합하자”며 “안철수 대표, 유승민 대표, 저와 함께 가자. 제가 직접 나서 안철수·유승민을 끌어들이겠다”고도 했다.

당내 사퇴 요구에도 퇴진론 일축
반격 나서는 손…전운 감도는 당

하지만 손 대표의 제안으로 바른미래당 내분이 수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손 대표는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와 선거제 개편안 등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서 이견 차이로 갈등이 시작됐다. 특히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서 강제로 사보임된 오신환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내분은 심화됐다. 오 원내대표는 취임 시작부터 ‘지도부의 체제 전환’을 강조하는 등 사실상 손 대표 사퇴를 압박했다. 

오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CBS라디오 <뉴스쇼>에 출연해 “손 대표 체제는 더 이상 국민들에게 감동이 없다”며 “(사퇴라는)결단을 내려주십사 하는 간곡한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이어 “(‘추석까지 지지율 10%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만두겠다’는 손 대표의 약속은)어디로 갔는지 날아가 버렸다”며 “대국민선언처럼 약속한 것이니 지키는 것이 정치적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 기자회견 갖고 있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잠재적 연대 대상으로 거론되는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대안정치)’도 손 대표의 선언 내용에 불쾌감을 토로하고 있는 만큼 험로가 불가피해보인다.

민주평화당서 탈당해 제3지대 신당을 준비하고 있는 대안정치연대는 손학규 선언에 대해 “왜곡된 현실 인식과 무례한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장정숙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대안정치연대와 관련해 지역정당을 연상케 한 손 대표의 무례한 언급은 심히 불쾌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분에 휩싸여 있는 바른미래당과 손 대표는 정치개혁을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빅텐트 치고 중심에 서겠다는 포부는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손학규 선언도 정치권에 큰 반향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의 격한 공방 속에서 손학규 선언이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민주평화당 비당권파의 집단탈당, 한일 갈등 한복판서 맞는 광복절 등을 고려해 선언 시점을 한 차례 미뤘지만, 달아오르는 인사청문 정국으로 인해 외면당한(?) 모양새다.

당권파 내부에선 손 대표가 중대한 정치적 결심을 밝힐 때마다 다른 대형 이슈에 가려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명 ‘만덕산의 저주’에 또 한 번 갇힌 것 아니냐는 탄식도 나온다. 앞서 2006년 10월 유력 대권주자였던 손 대표는 경기지사 퇴임 직후 시작한 ‘100일 민심 대장정’을 마치고 상경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같은 날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주목받지 못했다.

청사진에도
뜨뜻미지근 

2007년 3월 대선후보 경선에 반발해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며 빛이 바랬다.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1년 11월에는 ‘민간인 사찰’ 국정조사·특검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에 돌입했다가 다음 날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중단해야 했다.

2016년 10월 2년여간의 칩거를 마치고 전남 만덕산 토굴집서 내려왔지만, 언론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몰두했다. 이때부터 ‘만덕산의 저주’라는 말이 붙었다. 당권파 내부서 이번 선언을 통해 안철수·유승민 전 공동대표의 무책임론을 부각한 것만큼은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정작 반응은 냉소적이거나 예상외로 미지근하다.

실제로 안철수·유승민 전 공동대표는 손 대표 선언에 응대조차 하지 않았다.

손 대표는 1948년 경기도 시흥군(현 서울특별시 금천구)서 5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은 교사로 생활하다가 그가 태어날 무렵에 교장으로 승진했지만, 손 대표가 4살 되던 해인 1950년 1월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손 대표와 형제들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어려운 환경서 자랐다. 

1959년에 서울매동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경기중학교를 졸업 후 1962년 경기고에 입학한 그는 3학년 무렵에 대학생들과 함께 시청 앞 국회의사당서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참가했다. 1965년에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한 후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투쟁이 끝난 뒤 시인 김지하, 김정남, 김도현, 이현배, 허현 등의 선배들과 활동하며 문리대 학생운동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대학 2학년 무렵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무기정학 중 데모에 참가했다가 또 다시 무기정학을 받았던 손 대표는 강원도 함백탄광서 노동을 하기도 했다. 복학 후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더불어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1969년 육군에 입대해 1972년에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손 대표는 소설가 황석영과 구로공단에 자취방을 얻고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동운동을 하던 손 대표는 한국서 에큐메니컬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진보 기독교 단체 NCCK의 박형규 목사를 만나 기독교 빈민선교운동에 투신한다. 

운동권 출신 
산전수전 겪어 

해방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전태일로부터 충격을 받은 한국의 에큐메니컬운동은 도시산업선교를 통해 노동자와 빈민의 인권문제를 위해 활동했다. 청계천서 빈민들과 같이 생활하던 손 대표는 1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민주세력을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한 유신독재체제는 박형규, 김관석, 권호경 목사 등을 구속했다. 당시 손 대표를 검거하기 위해 현상금 200만원에 2계급 특진을 걸었다. 손 대표는 2년 동안 숨어 살며 원주의 과수원, 서울의 철공소서 일했다.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민주화운동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 최성묵 목사 등을 만나 사후 대책을 논의하다가 수사당국에 검거된다. 김해 보안대로 연행돼 48시간 동안 무작정 두들겨 맞고 문초를 당하던 그는 유신독재체제가 붕괴하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서울의 봄이 한창이던 1980년, 그는 돌연 영국 옥스퍼드대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1987년에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5공 말기에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직을 맡아 부천서 성고문 사건 자료집인 <우리의 딸 권양>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각종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등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을 재개했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1990년서 1993년까지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서 교수로 강단에 섰다. 교수 시절 동안 진보적인 소장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재야의 대표적인 인사였던 그는 1993년에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보궐선거서 경기 광명서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제15대 총선서도 신한국당 소속으로 승리해 재선에 성공했다. 

1996년 11월, 당시 최연소 장관 기록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제33대 보건복지부장관이 됐다. 1997년 8월까지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내다 2000년 제16대 총선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3선에 성공했으며 2002년에는 민선 3기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2007년 3월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후 같은 해 8월, 민주평화계의 대통합을 이뤄내고자 대통합민주신당에 참여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에게 패해 낙선했다.

“안철수·유승민과 제3의 길 모색”
하는 일마다…매번 타이밍이 문제

손 대표는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로 선출돼 민주당과 통합을 성사시켜 단일 야당 통합민주당을 출범시켰다. 이후 2008년 4월, 18대 총선서 당을 이끌었으나 299석 중 81석을 얻는 데 그쳐 같은 해 7월6일 통합민주당 대표직 사임 후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며 강원도 춘천으로 칩거에 들어갔다.

2010년 8월15일, 춘천을 떠나며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정계로 복귀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시혜적 복지, 잔여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를 강조했으며 “진보적 자유주의의 새로운 길이 추구하는 사회는 정의로운 복지사회로서 공동체주의와 보편적 복지를 기본 이념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해 10월3일, 인천 문학경기장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서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반성과 무상복지를 내용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의 새로운 노선을 제시해 당 대표로 선출됐다. 당 대표가 된 손 대표는 전국을 돌며 민주대장정을 전개했으며, 이듬해 1월3일부터 다시 전국을 돌며 시민들의 건의와 주장을 경청하고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 노선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희망대장정을 전개했다.
 

10월4일,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운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서 패배하자 손 대표는 책임을 지고 사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박 장관 등 다수 민주당 의원들의 강력한 반대에 하루 만에 대표직 사퇴를 철회하며 논란을 빚기도 했다. 

후로 2012년 6월14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나 민주통합당 국민 참여 경선서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패해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2014년 6월4일 지방선거 때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같은 해 7월31일, 7·30 수원 병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김용남 후보에 패하자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군 만덕산 자락에 있는 토굴로 들어갔다.

정계 복귀
그 이후…

2016년 10월20일엔 오랜 산중 생활을 마치고 ‘제7공화국으로의 개헌’을 명분으로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최측근인 이찬열 의원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을 전격 탈당 후 자신의 정치기반인 국민주권개혁회의와 국민의당의 통합을 선언했다. 이듬해 3월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에게 밀려 또 고배를 마셨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 후 바른미래당 지방선거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2018년 8월8일 정치제도, 선거제도 개혁을 내세우며 바른미래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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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