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여자들이 무슨 골프? 멸시 딛고 일어서다!

골프가 시작된 지 5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골프는 남자들만의 전유물이었다. 1576년 스코틀랜드의 메리여왕이 시중들과 골프를 친 이래 수백년이 흐르도록 여성 골퍼에 대한 어떤 기록이 영국에는 없었다. 여성들이 골프채를 잡을 수 없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스코틀랜드 남성들은 여자들이 골프를 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백년이 흐르던 1790년 머슬버러에 살던 어부의 아내가 골프채를 잡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자들이 하는 게임을 여자들이라고 못하란 법은 없다”며 골프를 쳤다. 그러나 당시 남성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녀를 보는 시각은 냉담했다.

1867년 클럽 조직

“남자들이나 하는 골프를 대체 여자들이 왜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 골퍼들을 금지할 어떤 명분이나 법적인 근거는 없었다. 단지 남성들의 편견일 뿐이었다.

어부의 아내를 비롯한 선각자적인 여성들의 항변이 거세지자 남자들은 할 수없이 세인트앤드루스의 올드코스 인근에 작은 공간을 할애해줬다. 허락은 하되 지극히 제한된 곳으로 국한했다. 티샷은 금지돼있었고 단지 그린에서 퍼팅만 허락됐다.

복장도 모자를 쓰고 몸에 꼭 맞는 긴 드레스를 입어야 했고 목에는 쇼울을 감아야 했다. 


당시 사회적으로 신분 있는 여성들이 코르셋이 포함된 롱 드레스를 입은 상태에서는 도저히 풀스윙은 할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당시 분위기로는 여성이 어깨선 위로 팔을 들어 올리는 행동은 엄청난 에티켓에 어긋나는 ‘유별난 여성답지 못한’UNLIKELY WOMEN 행동으로 간주했다.

1576년 메리여왕 이래 여성 기록 전무
1790년 어부 아내가 치고 있다는 소문

여성들은 그저 그린위에서 퍼팅이나 하면서 얌전하게 굴어야 하는 게 미덕이라는 분위기였다.

남성들의 철저한 관리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골프에 대한 여성들의 열망은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급기야 1867년 스코틀랜드 최초의 ‘세인트앤드루스 여성골프클럽’이 조직됐고, 이어 웨스트 호, 노스 디반 등 여성 전용 골프 동우회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여성 골퍼 인구도 증가하기 시작해, 스코틀랜드에서만 1870년을 전후해 1000여명이 넘기도 했다. 

여성 전용 코스도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노스 디반에 전체 길이 1895야드 짜리 영국 최초의 여성 전용 골프코스가 생겼다. 짧은 홀은 120야드, 긴 홀은 380야드도 있었다. 코스가 짧은 것은 여성들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당시 여성 골퍼들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가 80야드 정도에 불과했는데, 이는 힘이 없기 보다는 긴 치마와 딱 맞는 상의, 사회분위기 등으로 인해 스윙을 어깨위로 올리지 못한 탓이었다.

끈질긴 선구자들 덕에 여성 골퍼들의 열성과 정열은 결국 빛을 보았다. 1893년 최초로 영국 여자 아마추어오픈이 개최 됐으며 마가렛 스콧이라는 선수가 최초로 우승을 했다. 마가렛 스콧은 다음 시즌인 1894·95년에도 우승을 하면서 브리티시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메리 여왕이 골프채를 잡은 지 300년이 흐른 시점에서 공식적인 여자골프대회가 태동하고, 여성 골퍼들이 비로소 영국사회의 무대 위로 등장한 것이다. 

그 후 20여년이 흐를 즈음 여자골프계에 불세출의 최강자가 나타난다. 17세의 신출내기 세실 리치가 1914년 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여자 골프를 주도하기 시작한 것. 근육질의 체격으로 남자 같은 스윙을 하는 리치는 남자선수와의 대결 에서도 이길 정도로 파워스윙을 구사하는 골퍼였다. 

드레스 입고 목에 쇼울 둘러
코르셋 때문 풀스윙 불가능

1914년부터 4년 간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으로 인한 휴식기에도 불구하고 리치는 전후 다시 재개된 대회에서 1920· 21년을 연거푸 우승해 영국오픈 3연패의 금자탑을 쌓아가며 영국여자골프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메이 헤즐렛, 도로시 캠벨, 에니드 윌슨 등 전설적인 여자 골퍼들이 다연승을 하며 영국 여자골프를 함께 이끌어 나갔다.

세실 혼자만의 독무대가 만들어져 가던 즈음 강력한 라이벌인 조이스 위더드라는 19살의 신예가 등장하면서 영국 여자 골프계는 라이벌 구도로 들어간다. 1922년 영국오픈에서 두 사람은 운명처럼 부딪쳤고, 위더드가 리치를 물리치며 20세기 초 영국 여자골프의 양대 산맥을 형성한 것이었다.

영국 데일리 뉴스의 당시 기사는 ‘10년 전 리치가 그랬듯이 위더드도 바람처럼 등장한 타고난 승부사’라며 향후 벌어질 두 사람의 치열한 대결을 예고했다. 

특히 위더드는 당시에는 여자가 종아리를 보이는 골프 치마를 입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무릎위로 올라오는 짧은 치마 등 혁신적인 복장을 하고 골프장을 누빈 혁신적인 여성 골퍼였다. 긴 드레스를 고집하면서 그와 맞붙은 선수들에게는 “부인, 코르셋을 껴입은 그렇게 긴 치마는 퍼팅을 할 때 퍼터가 무릎에 닿아 불편할 텐데요, 짧은 치마가 더 낳지 않을까요?”라며 비아냥 섞인 독설을 던지기도 했다. 

전쟁도 못 막아

리치와 위더드 두 골퍼는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접전을 벌였다. 리치가 영국오픈 4승을 올린만큼 위더드도 1922·1924·1925·1929년 등 4차례나 오픈을 차지했다. 두 사람은 각축을 벌이면서 영국 여성 골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명승부는 당시 집에만 갇혀 지내던 영국 여인들을 골프장으로 불러내기에 충분한 몫을 했다. 더욱이 영국 여자 골퍼들의 활약은 장차 미국에서 여성들이 골프를 주도하는 데 기폭제 역할까지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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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