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광주 명문고 교사 과로사 내막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8.26 10:56:34
  • 호수 12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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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상전 교사는 뒷전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광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쓰러졌다. 지역 내 명문사학이라 불리는 해당 학교서 벌어진 일이라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비상식적인 학교의 업무량은 교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고등학교 교사 과로사 내막에 대해 <일요시사>가 파헤쳤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최근 광주 K고등학교서 시험지 유출 논란이 알려지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K고의 한 학생이 지난달 25일 치러진 교내 기말교사 3학년 수학 시험문제 중 5개 문항이 교내 수학동아리 학생들에게 유출됐다는 내용을 SNS에 공개했다. 이 내용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시험 유출
시끌시끌…

사태가 커지자 K고는 광주광역시교육청의 특별감사를 받았다. 지난달 8일부터 지난 7일까지 광주광역시교육청의 특별감사 결과 ▲시험문제 유출 ▲최상위권 학생 특별관리 ▲과목 선택 제한 ▲대입 학교장 추천 전형 등 상위권 특정 학생들에 대한 특혜가 드러났다.

K고는 학내 곳곳에 시교육청의 감사행정을 비난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거는 등 감사 결과에 불복하고 있다. 

K고는 우수한 진학 실적 등으로 인해 지역 명문고로 알려져 있다. 매스컴에도 노출되며 우수한 진학률로 학부모들에게 높은 인기를 받고 있다. 과거에도 해당학교는 명문대 진학률이 높았다. 서울대 진학 ▲1999년 11명 ▲2000년 19명 ▲2001년 14명 ▲2002년 5명 ▲2003년 8명 ▲2004년 6명 ▲2005년 13명 ▲2006년 6명 ▲2007년 5명 ▲2008년 3명 등이었다. 


이후에도 서울대 합격 실적은 광주 일반고 1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서울대뿐 아니라 고려대, 연세대와 서울 소재 주요 대학 등에도 두각을 보였다. 2015년, 2016년 대입의 경우 서울대 7명, 고려대와 연세대 15명, 서울소재 주요대학 88명, 전남대 101명, 조선대 69명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2017학년 대입의 경우 서울대는 5명이나 늘어난 12명, 고려대와 연세대 18명, 서울 주요대학 125명으로 수도권 실적이 크게 늘었고, 전남대 75명, 조선대 80명의 합격 실적을 냈다. 의치한(의대·치대·한의대)에는 2016학년 17명(의대 11명, 치대 2명, 한의대 4명), 2017학년 21명(의대 15명, 치대 2명, 한의대 4명)으로 전통 강호였으며 특수대 및 이공계 특성화대학 실적도 늘어났다. 

명문대 진학률 높아 학부모에 인기
학생만 신경 쓰고 선생은 나몰라라?

2016학년 경찰대학 1명, KAIST 2명, 포스텍 2명, GIST대학 3명의 합격자를 배출했고, 2017학년의 경우 경찰대학 2명, KAIST 4명, 포스텍 2명, GIST대학 4명으로 합격실적을 더 불렸다. 특히 2017학년 대입에 경찰대학 남자수석이 나왔고, 2017년 2월 졸업식에선 K고 출신이 서울대 의대를 수석졸업하기도 했다.

K고는 학생의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늘리거나 기숙사를 운영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학교의 목표는 오로지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이었다. 공부만 하는 학생을 밤낮으로 뒷바라지하는 건 교사들의 몫이었다. 
 

2012년 2월부터 K고등학교서 근무한 교사 A씨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2015년 8월2일 오전 9시45분경 자택 침대서 사망한 채 발견돼 부검한 결과 관상동맥 경화에 따른 허혈성 심장질환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A씨 유가족 측은 “2014년 3월부터 정규 교과 업무 외에 보충수업, 교무 기획 업무, 기숙사 사감장 업무 등을 근무했다. 그로 인해 육체적인 피로도가 쌓이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아 심근경색을 초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정규교육업무로 2014년에는 주당 16시간, 2015년에는 주당 17시간의 고등학교 2학년 국어 과목을 담당했다. 보충수업 담당 업무는 2014년에는 연간 252시간(평균 1주당 4.8시간), 2015년에는 7월까지 152시간(평균 1주당 5시간)의 수업을 담당했다.  

이렇게 죽었다
판결문 보니…

K고 특성상 교사들은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6시30분에 퇴근한다. 2014년 3월1일부터 A씨는 해당 학교학사의 생활관 사감으로 임명돼 근무를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16일부터는 사감장으로 임명돼 근무했다. 학사는 성적이 우수한 3학년 학생 60명, 1·2학년 학생 각각 30명씩 대학 입시에 매진하기 위해 생활하는 기숙사다. 

생활관 교사들은 학생들이 정규 학교수업을 마친 후 야간, 휴일 학습, 방학 중 학사 도서실서 공부하도록 하는 학생들의 생활과 수면을 통제·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학사엔 1인의 사감장과 2인의 사감이 1년에 휴일 없이 3교대로 근무했다.

사감들의 업무 일정은 오후 9시경 기숙사서 학생의 입실 준비를 도와주고 학생들이 교과과정을 마치고 오후 10시 기숙사로 돌아오면 인원을 체크한다. 오후 10시30분부터 자기 정비, 간식 등을 챙겨주며 오전 12시50분까지 자기 주도적 학습을 관리·감독한다. 오전 1시30분까지 학생들을 입실시킨 후 점호를 돌며 취침 확인까지 한다. 이들은 매일 상황을 일지에 기록한 후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기숙사서 숙직 후 오전 6시경 일어난 뒤 학생들을 깨운다. 학생들의 아침식사와 등교 관리를 한 후 오전 8시 학교로 복귀해 교사로서의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주말에도 업무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2시40분까지 사감의 관리감독 근무가 계속됐다.

2014년 A씨는 담임 신청을 했지만 학교 측의 만류로 무산됐다. A씨는 학교 임원들의 교무 기획 업무를 더 맡아 달라는 요청으로 교무기획부 담당을 연임하고 교무기획부 실무를 단독으로 부담했다. 2014년 11월경 A씨가 사감장으로 임명되자 2015년 A씨는 교무기획 담당, 다른 선생이 교무기획2담당으로 기획 업무를 공동 분담했다.

“스트레스 심해
심근경색 초래”

A씨의 사망일 무렵에는 수술을 하고도 과도하게 업무를 시켰다. A씨는 2015년 6월25일 맹장염 수술을 받고 다음날 제거 수술을 받았다. 29일 퇴원한 A씨는 다음달 3일에 외래방문으로 실밥 제거를 한 후 당일 야간 업무에 들어갔다. 6일과 8일부터 10일까지 연속으로 사감 업무를 했고 그 이후에도 13일, 16일, 24일, 30일에 3교대로 사감 업무를 맡았다.

A씨는 14일 야간에도 논술지도 능력 향상 직무연수를 수행했다. 24일과 25일 오후 내내 학생부 종합전형에 관한 연수를, 28일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수시 지원 전략 연수, 29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는 진학상담 프로그램 활용법 연수에 참여했다. 당시 A씨의 건강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2015년 6월25일 받은 건강진단 결과에도 콜레스테롤 정량,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기준 범위였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의학적으로 초과근무와 야간 교대 근무는 고혈압과 관상동맥질환을 유발하는 인자로 잘 알려져 있다. 야간 근무 중 혈압상승이 일어나면 휴식을 해도 잘 회복이 되지 않고 잠을 취할 때 혈압하강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또 야간 교대 근무가 지속될 경우, 생체주기에 스트레스가 유발돼 동맥경화 등 심혈관질환이 초래할 수 있다.

A씨 가족은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서 이겼다. 2019년 4월 광주지법의 판결문에는 “A씨는 K고 교사로서 오전 8시30분 출근해 오후 6시30분에 퇴근해 수업 실시와 준비, 교무 기획 업무를 수행하면서 최소 1주당 50시간을 학교 교사로 근무한 점” “2014년 3월부터 K고 기숙사 사감업무를 맡으면서 사망일까지 1주당 평균 2회씩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기숙사서 야간 근무를 한 점 등 직무상 과로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심근경색을 초래했다”고 적시됐다.


오전 1시30분 취침에 6시 기상
실밥 제거한 다음날 야간업무

적어도 기존의 관상동맥경화 등이 직무상 과로로 인해 자연적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 급성심근경색을 초래했다고 판단한 셈이다. 결국 재판부는 A씨의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의 생활을 통제하는 기숙사 사감 업무의 특성상 거의 1년 내내 근무 긴장도가 계속됐음이 추측되며 1년6개월가량 반복되는 숙직 생활로 인해 수면 부족에 시달렸을 것으로 보인다”며 “11월부터 사감장을 맡은 A씨는 학부모, 교장 및 교감과 직접 학생들 학습, 생활관리, 건물 관리 등에 대해 보고하고 학생들을 통솔하는 업무가 가중됐을 것이다. 우수한 성적의 기숙사 학생들을 잘 지도·관리해 좋은 입시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을 것이라고 추측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A씨는 2015년 6월26일 맹장 수술을 받는 바람에 3교대로 하는 사감업무를 하지 못해 이를 메우려고 7월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연속해 사감업무를 맡아 숙직했다. 그 후에도 직무 관련 연수와 출장을 다녔다. 또 1주간 평균 72시간을 근무하며 사감의 기숙사 야간 근무만 해도 1주간 평균 16시간을 근무하며 휴무 없이 3교대로 1년6개월을 지속했다. A씨의 2014년 건강검진에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범위 내로 진단을 받았으며 지병이 급성 심근경색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고 덧붙였다.

K고 측은 “(유가족이) 돈을 받을 수 있게 협조를 했다. 현재 기숙사는 폐쇄된 상태며 교사들이 좀 더 나은 근무 조건을 위해 (교사)숫자도 늘리고 근무시간을 줄이는 등 근무환경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1주당 2회
기숙사 야근


유가족 측은 “법원은 젊은 교사의 3년 전 죽음이 과로에 기인했다고 판단했다. 해당 고등학교는 그 교사를 기숙사 사감장으로 근무하도록 해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유가족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학교는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일부 학생들에게 특혜를 주는 등 내신관리가 엉망으로 이뤄진 것이 감사 결과 드러났다. 명문대 진학률에만 목메는 사립고의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두 번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교육청 차원서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씁쓸한 의료계 현실

건강했던 31세 2년차 전공의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사인은 ‘해부학적으로 불명’이었다. 그는 숨기 전 일주일 동안 113시간 근무했으며, 지난 4주간 평균 근무시간은 주 100시간이었다. 

지난 2월1일 가천대길병원 당직실서 숨진 채 발견된 소아청소년과 2년차 전공의 신씨의 이야기다. 주당 근무시간을 최대 88시간으로 제한한 전공의법이 제정된 이후 발생한 사건이다.

31살 전공의 과로사

근로복지공단은 신씨가 숨진 지 6개월 만에 과로사로 인정했다. 고용노동부는 12주 동안 주 평균 근무시간이 60시간 이상이면 만성과로로 판단한다.

신씨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고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해 온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대한민국 전공의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며 씁쓸해했다.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전공의법이 제정됐지만,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전공의가 많은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구>

<기사 속 기사> 학원 일요휴무제 추진

서울시 교육청이 ‘학원 일요휴무제’ 시행을 위해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번 일요일 영업을 강제로 금지하면서 학생의 휴식을 권장하고 사교육비를 절감시키겠다는 취지다.

교육계와 학부모·학생들은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불법과외 조장, 교육 선택권 침해 등의 이유로 “현실성 떨어진 제도”라며 비판하고 있다.

시교육청은 외주업체와 8월 한 달간 공론화 과정 및 계획을 수립하고, 9∼10월 시민 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이며 공론화 결과는 11월말 발표한다. 

학생도 과로사?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공약사항인 학원 일요휴무제는 올해 안으로 공론화와 정책 도입 타당성을 마무리하고 내년 법제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법제화에 성공하면 서울 시내 교과 관련 학원·교습소 2만3000여곳의 일요일 영업이 2020년부터 금지된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민주주의 국가서 지나친 법제화는 교육의 선택권 침해로 번질 우려가 있다. 교육정책은 결국 학부모와 학생을 위해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서 제도적으로 먼저 시행하려 하면 당연히 부작용과 거부감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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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