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로 본 한국 사회상

서점에 가면 대한민국이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한 권의 책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 이 책은 교보문고, 예스24 등에서 판매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전국을 뒤덮고 있는 반일 불매운동과 맞물려 높은 관심을 받는 모양새다. 논쟁은 정치권으로까지 옮겨 붙어 대중의 호기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의 비율은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취미로 꼽는다. 오프라인 서점은 늘 사람으로 북적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라인 서점 아이디를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다. 중고서점은 책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들로 복잡하다. 책은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규모 주는데
신작 늘어나

한국의 출판시장은 독특한 구조를 띤다. 전체 시장 규모는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데 새로 나오는 책의 종류는 매년 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내놓은 2017년도 출판산업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서적출판업 규모는 201312490억원, 201412238억원, 20151840억원, 201611732억원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신간 도서의 발행 종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1361548종서 2015791종으로 처음 7만종을 넘어선 데 이어 2017년에는 8130종으로 8만종을 돌파했다. 2년에 1만종씩 늘어나는 추세다. 말 그대로 매일 새 책이 쏟아지는 형국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쏟아지는 책들 사이서도 사회 상황에 따라 일정한 흐름이 생긴다는 점이다. 교보문고나 예스24 등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서 1년을 마무리하는 의미서 내놓는 한 해 결산 자료를 보면 그런 흐름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매년 열풍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판매 순위가 형성되는 것.

최근 반일 불매운동이 국민들의 최고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서점가에서 일본 관련 서적이 영향을 받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가 대표적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지난 7월에 출간됐지만 그때보다 현재 더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전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서 한일 관계에 대해 조명했다. 이 과정서 강제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등 친일 발언을 이어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치권으로 번진 책에 대한 논쟁은 판매량으로 이어졌다. <반일 종족주의>는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에서 1주일간(8511)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떠올랐다. 반일 불매운동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은 셈이다.

실제 베스트셀러는 사회의 상황과 그 궤를 같이 한다는 말이 많다. 시대상을 알고 싶으면 그해 베스트셀러를 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선 베스트셀러를 시대상의 거울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새 책 쏟아져도 일정한 흐름
사회 상황 따라 쏠리는 현상

지난해 출판시장을 먹여 살린 장르는 에세이다. 특히 힐링 에세이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서점에 가면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표지를 장식한 책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괜찮아라며 독자를 위로하고 힘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들이 지난해 최고 인기를 누렸다.

인터파크는 지난해 11, 11일부터 11개월 동안 에세이 도서 판매량이 같은 기간보다 171%나 늘어났다고 밝혔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와 후속작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의 힐링·공감 에세이가 지난해 서점가를 달궜다.

실제 교보문고에 따르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는 연간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등극했다. 교보문고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연간 베스트셀러 결산자료에 따르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외에도 <모든 순간이 너였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언어의 온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6종의 힐링 에세이가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힐링 에세이 열풍은 올해 상반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에세이 도서 출간 종수는 1220종으로 1102종이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여종 이상 늘었다. <연필로 쓰기> <여행의 이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등 소설가와 시인이 쓴 에세이가 다수 출간됐다.
 

특히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는 예스24 주간 베스트셀러에 6번이나 이름이 올라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3위를 차지했다. 혜민스님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2위였다. 지난해 출간됐던 힐링 에세이도 여전히 강세다. 베스트셀러에서 스테디셀러로 인기를 유지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힐링 에세이 열풍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 등의 사회 현상과 결부시킨다. 많은 젊은이들이 급변하는 사회 상황에 불안정함을 느낀다. 또 좁아진 취업시장으로 인해 빈번하게 상처받는다. 이런 우울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힐링 에세이로 치유 받는다는 것.

힐링 에세이
위로 필요해

특히 최근에는 시인이나 소설가, 종교인 등이 내놓은 에세이보다 친구나 동료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해주는 듯한 말을 담은 책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젊은 세대는 SNS를 통해 자신이 읽은 힐링 에세이의 일부 구절이나 표지 등을 공유한다. SNS를 통해 확산된 정보는 판매량으로 직결된다.

20162017년 사이에 불기 시작한 페미니즘 서적 열풍은 이제 서점가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이 시기에 대표적인 페미니즘 소설인 <이갈리아의 딸들>서 따온 메갈리아가 등장했고, 서울 강남역 화장실서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과거에 출간됐다가 대중의 관심에 밀렸던 책들도 재조명됐다.

특히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베스트셀러에 이어 스테디셀러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201610월에 출간한 <82년생 김지영>201811월 누적판매 100만부를 돌파했다. 1982년생 김지영의 탄생과 성장, 연애와 결혼, 사회생활, 출산과 육아 등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담았다. <82년생 김지영>은 일본, 대만 등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출판계를 강타한 것은 마이클 센델 하버드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필두로 한 인문학이다. 당시 출판계는 유례없는 불황 상태였고 인문학은 여러 장르 중에서도 독자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는 장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100만부 넘게 팔리면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서점가에 불어 닥친 정의 열풍은 역설적으로 정의에 대한 결핍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선거철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비리 행태, 인사청문회 과정서 불거지는 후보자의 비위, 연예인들의 병역 기피 등 정의를 찾아볼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실망이 센델 교수의 책으로 분출됐다는 분석이다.

페미니즘·정의
시대상 반영

자기계발서 열풍은 주기적으로 돌아온다. 힐링에도 지친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려고 생각할 때쯤 자기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린다. 2013년 서점가에 불었던 힐링 열풍이 잠잠해진 틈을 타 2015년 자기계발서 열풍이 다시금 불기 시작했다.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시도를 넘어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이 자기계발로 이동하면서 관련 책의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

교보문고는 지난 2017, 1980년대 이후 베스트셀러 분석을 통해 시대상이 독자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소개했다. 1980년대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혼란기였다. 대중들이 정치권으로부터 억압을 느끼던 시대다. 현실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김홍신의 <인간시장>이 대표적이다. 22살의 법대생 장총찬이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렸다. 이 책은 누적 판매 560만부를 기록했다.

1980년대 하반기는 시와 소설의 전성시대였다. 이해인의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1985, 서정윤의 시집 <홀로서기>1987년과 1988년에 종합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1988년에는 종합 베스트셀러 1~3위가 모두 시집이었다.

교보문고는 출판물에 대한 검열과 탄압의 수위가 올라가던 시기에 비유와 상징으로 표현하는 시가 시대정신과 맞물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분석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이 시기의 베스트셀러다.

1990년대 들어서는 독자들의 니즈가 다양해졌다. 문학에 쏠려 있던 독자의 관심이 인문, 자기계발, 컴퓨터, 실용서 등으로 확대됐다. <반갑다, 논리야>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등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8년 외환위기 발생 이후에는 에세이가 흥했다. 가정이 붕괴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등 사회 전체가 어두운 때였다. 따뜻한 느낌의 소설이나 위로를 담은 에세이가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가시고기> 등이 판매량 부분에서 호조를 보였다.

힐링 에세이와 자기계발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해

2000년대에는 부자성공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2006<마시멜로 이야기> 같은 스토리형 자기계발서가 크게 늘었다. 2007년과 20082년에 걸쳐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시크릿>은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자기계발서로 꼽힌다. 2009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세계 금융위기가 닥칠 때까지 자기계발서 열풍은 이어졌다.

2009년에는 <엄마를 부탁해>, 2012년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2013년에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베스트셀러로 꼽혔다. 교보문고는 “2010년 하반기부터는 정치 이슈가 베스트셀러에 즉각 반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장미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이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 ▲▲ ▲▲ ▲ 이영훈 교수가 쓴 &lt;반일 종족주의&gt;와 신경숙 장편소설 &lt;엄마를 부탁해&gt;

서점가에선 매년 반짝 특수를 누리는 시기가 있다. 노벨문학상 선정 시기나 국내작가가 해외서 큰 상을 탔을 때다. 20165월 작가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 프랑스의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의 맨부커상을 국내 작가가 탄 건 한강이 처음이었다. 200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판매량이 폭발하면서 2016년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됐다.

노벨문학상 발표는 매년 10월경 이뤄진다. 후보자조차 공개하지 않고 수상자를 발표하기 때문에 다양한 작가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수상작을 비롯해 이전 작품들까지 높은 관심을 받는다.

반짝 특수
미디어셀러

방송을 통해 언급되거나 유명인사가 추천한 책의 판매량도 반짝치솟는다. 미디어와 베스트셀러를 합쳐 미디어셀러라고 부른다. 2004년 나희덕의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는 지난해 4월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 소개되면서 방송 직후 판매량이 12배 이상 뛰었다드라마 <남자친구>서 언급된 나태주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스카이캐슬>에 등장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도 미디어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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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