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보수 딜레마

친미·친일 명분이…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해방 직후, 극심한 좌우 대립 속 ‘한국 보수’는 ‘친미’와 ‘반공’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으로 치환됐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이어 최근 한일 무역전쟁이 심화되면서 반공을 함께할 우방국들의 상황이 변하고 있다. 딜레마에 빠진 보수진영, 흔들리는 그들의 시선을 조명했다.
 

최근 한미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검증을 위해 ‘한미연합지휘소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진행하는 한국에 ‘새벽잠을 설쳐대며 허우적’, ‘겁먹은 개가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것’ 과 같은 막말을 일삼는 반면, 미국에 대해선 한미연합훈련이 끝나자마자 만나서 협상하고 싶다는 의사를 담은 친서 외교를 보냈다. 정치권에선 통미봉남(미국과의 실리적 통상외교를 지향하면서 남한 정부의 참여를 봉쇄하는 북한의 외교전략)의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흩어지면 죽고
뭉쳐야 산다!

북미실무협상은 오는 20일에 마무리되는 한미연합훈련 이후 재개될 전망이다.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에는 단거리 미사일 실험에 대한 작은 사과가 담겨 있었다”며 “한미 연합훈련이 끝나는 대로 (미사일 발사) 시험을 끝낸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을 머지않은 미래에 만나길 기대한다. 핵 없는 북한은 전 세계서 가장 성공한 나라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최근 미사일 시험을 강행하며 국제사회를 도발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발사체가 단거리 미사일이기에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북한을 옹호했다. 실무협상 이전 대화에 집중하려는 북한과 외교 능력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윈윈(Win-Win) 전략으로 읽힌다.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최초로 북한 땅을 밟았다. 과거 미국 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부르며 극심한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게 우호적 태도를 유지하며 과거 미국 대통령들과는 남다른 면을 과시, 북한과의 관계를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 그는 판문점 회동 이후 오바마 행정부서 북핵 문제에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북한과의 관계를 본인의 경쟁력으로 과시하는 면모를 보였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고, 미사일을 쏘아 보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좋고 조용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날 “자신과 김 위원장 간에는 어떤 좋은 케미스트리가 있지 않나, 그래서 이렇게 (판문점 상봉이)성사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은 데 대해 “좋지 않은 과거를 청산하고 앞으로 좋은 앞날을 개척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남다른 용단”이라고 말하며 둘은 특별한 ‘브로맨스’를 보였다.

북미 우호적 관계…불편한 김-트 케미
점점 멀어지는 일본 “편들 수도 없고”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주도권 싸움서 자신에게 주도권이 있음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고, 외교적 성과를 선거서 활용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내년 대선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관계의 성과를 지렛대 삼아 선거서 승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동북아 평화에 한 발짝 나아간 계기가 된 남북미 회동을 두고 한국 보수진영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을 지켜줄 우방의 대통령이 주적인 북한 땅을 밟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해 보수진영의 친미 노선에 혼란이 생긴 것이다. 외국의 보수는 민족주의와 국익을 중시하지만 냉전 이데올로기로 인해 한국 보수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친미’이자 ‘반공’이다.

그들에게 미국은 ‘선’이자 반미는 ‘악’으로 간주된다. 믿고 따랐던 미국 대통령의 행보로 ‘친미반공’의 프레임이 깨지자 보수진영 사이서 여러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특히 친미적 색채가 강한 우리공화당(이하 공화당) 내부에선 “매 집회 때마다 성조기를 흔드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면서 배신감을 감추지 못했다.

공화당은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기습 설치해 서울시와 대립했지만 트럼프 대통령 방한이 있던 날 경호를 위해 천막을 자진 철거하며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보수≠친미
새로운 개념


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는 지난달 청계광장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서 남북미 회동을 두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다”며 “통미봉남의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행동하는 자유시민>의 공동대표인 이언주 무소속 의원도 “정작 비핵화는 아무 진전도 없다”고 지적하며 남북미 회동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냈다. 하지만 트럼프정부는 암묵적으로 핵보유국인 북한을 인정하고, 비핵화의 범위를 스몰딜에 의한 핵동결로 전략을 전환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본인의 재선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행보는 반드시 한국 보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불편한 진실 속, 보수 세력 내에서도 미국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보수=친미’ 프레임이 서서히 깨지고 있는 셈이다.
 

▲ 악수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공동취재단

펜앤마이크 정규재 대표는 유튜브서 “트럼프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보수 내에서 여러 견해가 있지만, 보수가 트럼프나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올바른 노선을 하루빨리 정립해 움직여야 한다”며 보수 세력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쇼’라는 평가도 있다. 미국을 계속해 신뢰하며 따르자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보수단체 관계자는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내 친미국가로 만들려는 전략”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 때리는
반일 종족주의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과 대한민국은 저마다의 국익이 있고 미국이 반드시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며 “특히 자신의 재선 가능성 등 경제적 논리로 협상에 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봤을 때 한국과 이해관계가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보수층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볼 수 있지만 성조기를 버리는 등의 행동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미관계를 해칠 뿐”이라며 “한미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의 문제서 우리의 어떤 스탠스가 국익에 도움이 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미국과 함께 일본은 북한에 각을 세우는 보수진영의 우방국이었다. 일본과 반공이라는 가치관을 함께 공유하는 보수진영이 ‘친일’ 프레임에 쉽게 씌이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노선에 이어 일본과의 최근 무역 전쟁에 대해 보수진영내 의견이 분분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일부 보수진영은 한일 무역 갈등의 원인을 아베정권의 잘못보다는 문재인정부의 외교적 실책으로 꼽고, '한국 때리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의 최근 조치는 경제보복이 아니며, 작년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이 부당하다며 일본 편을 든 것이다. 지난 8일 엄마부대는 “문정권은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면서 대한민국 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며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일본하고 싸우느냐”고 주장해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최근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낸 <반일 종족주의> 역시 일본에 대한 보수진영의 엇갈린 시선을 극명히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 전 교수는 뉴라이트의 대표적 인사로 꼽히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인물이다. 책에선 식민지배와 친일 청산, 일본군 위안부, 독도 문제 등을 다뤘다. 필자들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 노동자는 강제동원된 것이 아니며 일본에 대한 ‘로망’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본에 건너갔음을 주장하고, 토지조사사업으로 토지를 대량 수탈한 점도 사실이 아니라고 적시했다.

‘모든 게 문 탓’ 프레임
정부 외교 실책에 집중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SNS에 “<반일 종족주의>를 읽고 난 뒤 심한 두통과 모욕을 느낀다”며 “국민을 우민(愚民)으로 여기고 있다. 우민이 된 국민으로서 격한 모욕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지식인의 용기로 포장된 역사 자해 행위”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댓글에는 장 의원의 의견에 반하는 일부 보수 성향 사람들의 비난 댓글이 잇따라 달리면서 장 의원은 곤욕을 치뤄야 했다.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읽어보니 이건 아니다 싶은데 왜 이 책을 보수 유튜버가 띄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보수, 우파들 기본 생각과도 어긋나는 내용이라고 보여진다”고 썼다.
 

▲ 군사분계선 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공동취재단

극우 성향 만화가인 윤서인이 “실제 진실은 이러한데 그 책의 이런 부분은 이러이러해서 문제다. 명확한 근거와 논리로 말씀해주시면 좋겠다”고 반박하자 홍 전 대표는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적었는데 달려드는 것을 보니 좌파들보다 더 하다”며 불편한 기색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보수진영 내에서 일본을 두고 벌어지는 입장 차에 대해 한 보수단체 관계자는 “아베의 헛된 망상에 대해서 좌우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아베정권에 죄송하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그건 그분들 생각”이라며 선을 그었다.

트럼프 가고
아베 오나

지난 14일 국내 대표적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은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자유총연맹은 진보인사로 꼽히는 함세웅 신부를 초청해 첫번째 발언자로 내세우며 진영 간의 논리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함 신부는 “350만 자유총연맹 회원 모든 분들이 뜻을 모아 5000만 국민들이 한뜻으로 일본을 도덕적으로 꾸짖고 아베가 회개할 수 있도록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