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보수 딜레마

친미·친일 명분이…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해방 직후, 극심한 좌우 대립 속 ‘한국 보수’는 ‘친미’와 ‘반공’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으로 치환됐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이어 최근 한일 무역전쟁이 심화되면서 반공을 함께할 우방국들의 상황이 변하고 있다. 딜레마에 빠진 보수진영, 흔들리는 그들의 시선을 조명했다.
 

최근 한미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검증을 위해 ‘한미연합지휘소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진행하는 한국에 ‘새벽잠을 설쳐대며 허우적’, ‘겁먹은 개가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것’ 과 같은 막말을 일삼는 반면, 미국에 대해선 한미연합훈련이 끝나자마자 만나서 협상하고 싶다는 의사를 담은 친서 외교를 보냈다. 정치권에선 통미봉남(미국과의 실리적 통상외교를 지향하면서 남한 정부의 참여를 봉쇄하는 북한의 외교전략)의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흩어지면 죽고
뭉쳐야 산다!

북미실무협상은 오는 20일에 마무리되는 한미연합훈련 이후 재개될 전망이다.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에는 단거리 미사일 실험에 대한 작은 사과가 담겨 있었다”며 “한미 연합훈련이 끝나는 대로 (미사일 발사) 시험을 끝낸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을 머지않은 미래에 만나길 기대한다. 핵 없는 북한은 전 세계서 가장 성공한 나라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최근 미사일 시험을 강행하며 국제사회를 도발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발사체가 단거리 미사일이기에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북한을 옹호했다. 실무협상 이전 대화에 집중하려는 북한과 외교 능력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윈윈(Win-Win) 전략으로 읽힌다.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최초로 북한 땅을 밟았다. 과거 미국 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부르며 극심한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게 우호적 태도를 유지하며 과거 미국 대통령들과는 남다른 면을 과시, 북한과의 관계를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 그는 판문점 회동 이후 오바마 행정부서 북핵 문제에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북한과의 관계를 본인의 경쟁력으로 과시하는 면모를 보였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고, 미사일을 쏘아 보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좋고 조용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날 “자신과 김 위원장 간에는 어떤 좋은 케미스트리가 있지 않나, 그래서 이렇게 (판문점 상봉이)성사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은 데 대해 “좋지 않은 과거를 청산하고 앞으로 좋은 앞날을 개척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남다른 용단”이라고 말하며 둘은 특별한 ‘브로맨스’를 보였다.

북미 우호적 관계…불편한 김-트 케미
점점 멀어지는 일본 “편들 수도 없고”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주도권 싸움서 자신에게 주도권이 있음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고, 외교적 성과를 선거서 활용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내년 대선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관계의 성과를 지렛대 삼아 선거서 승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동북아 평화에 한 발짝 나아간 계기가 된 남북미 회동을 두고 한국 보수진영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을 지켜줄 우방의 대통령이 주적인 북한 땅을 밟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해 보수진영의 친미 노선에 혼란이 생긴 것이다. 외국의 보수는 민족주의와 국익을 중시하지만 냉전 이데올로기로 인해 한국 보수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친미’이자 ‘반공’이다.

그들에게 미국은 ‘선’이자 반미는 ‘악’으로 간주된다. 믿고 따랐던 미국 대통령의 행보로 ‘친미반공’의 프레임이 깨지자 보수진영 사이서 여러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특히 친미적 색채가 강한 우리공화당(이하 공화당) 내부에선 “매 집회 때마다 성조기를 흔드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면서 배신감을 감추지 못했다.

공화당은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기습 설치해 서울시와 대립했지만 트럼프 대통령 방한이 있던 날 경호를 위해 천막을 자진 철거하며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보수≠친미
새로운 개념


공화당 조원진 공동대표는 지난달 청계광장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서 남북미 회동을 두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다”며 “통미봉남의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행동하는 자유시민>의 공동대표인 이언주 무소속 의원도 “정작 비핵화는 아무 진전도 없다”고 지적하며 남북미 회동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냈다. 하지만 트럼프정부는 암묵적으로 핵보유국인 북한을 인정하고, 비핵화의 범위를 스몰딜에 의한 핵동결로 전략을 전환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본인의 재선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행보는 반드시 한국 보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불편한 진실 속, 보수 세력 내에서도 미국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보수=친미’ 프레임이 서서히 깨지고 있는 셈이다.
 

▲ 악수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공동취재단

펜앤마이크 정규재 대표는 유튜브서 “트럼프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보수 내에서 여러 견해가 있지만, 보수가 트럼프나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올바른 노선을 하루빨리 정립해 움직여야 한다”며 보수 세력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쇼’라는 평가도 있다. 미국을 계속해 신뢰하며 따르자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보수단체 관계자는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내 친미국가로 만들려는 전략”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 때리는
반일 종족주의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과 대한민국은 저마다의 국익이 있고 미국이 반드시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며 “특히 자신의 재선 가능성 등 경제적 논리로 협상에 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봤을 때 한국과 이해관계가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보수층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볼 수 있지만 성조기를 버리는 등의 행동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미관계를 해칠 뿐”이라며 “한미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의 문제서 우리의 어떤 스탠스가 국익에 도움이 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미국과 함께 일본은 북한에 각을 세우는 보수진영의 우방국이었다. 일본과 반공이라는 가치관을 함께 공유하는 보수진영이 ‘친일’ 프레임에 쉽게 씌이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노선에 이어 일본과의 최근 무역 전쟁에 대해 보수진영내 의견이 분분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일부 보수진영은 한일 무역 갈등의 원인을 아베정권의 잘못보다는 문재인정부의 외교적 실책으로 꼽고, '한국 때리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의 최근 조치는 경제보복이 아니며, 작년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이 부당하다며 일본 편을 든 것이다. 지난 8일 엄마부대는 “문정권은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면서 대한민국 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며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일본하고 싸우느냐”고 주장해 국민적인 공분을 샀다.

최근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낸 <반일 종족주의> 역시 일본에 대한 보수진영의 엇갈린 시선을 극명히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 전 교수는 뉴라이트의 대표적 인사로 꼽히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인물이다. 책에선 식민지배와 친일 청산, 일본군 위안부, 독도 문제 등을 다뤘다. 필자들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 노동자는 강제동원된 것이 아니며 일본에 대한 ‘로망’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본에 건너갔음을 주장하고, 토지조사사업으로 토지를 대량 수탈한 점도 사실이 아니라고 적시했다.

‘모든 게 문 탓’ 프레임
정부 외교 실책에 집중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SNS에 “<반일 종족주의>를 읽고 난 뒤 심한 두통과 모욕을 느낀다”며 “국민을 우민(愚民)으로 여기고 있다. 우민이 된 국민으로서 격한 모욕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지식인의 용기로 포장된 역사 자해 행위”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댓글에는 장 의원의 의견에 반하는 일부 보수 성향 사람들의 비난 댓글이 잇따라 달리면서 장 의원은 곤욕을 치뤄야 했다.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을 읽어보니 이건 아니다 싶은데 왜 이 책을 보수 유튜버가 띄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보수, 우파들 기본 생각과도 어긋나는 내용이라고 보여진다”고 썼다.
 

▲ 군사분계선 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공동취재단

극우 성향 만화가인 윤서인이 “실제 진실은 이러한데 그 책의 이런 부분은 이러이러해서 문제다. 명확한 근거와 논리로 말씀해주시면 좋겠다”고 반박하자 홍 전 대표는 “그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적었는데 달려드는 것을 보니 좌파들보다 더 하다”며 불편한 기색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보수진영 내에서 일본을 두고 벌어지는 입장 차에 대해 한 보수단체 관계자는 “아베의 헛된 망상에 대해서 좌우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아베정권에 죄송하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그건 그분들 생각”이라며 선을 그었다.

트럼프 가고
아베 오나

지난 14일 국내 대표적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은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자유총연맹은 진보인사로 꼽히는 함세웅 신부를 초청해 첫번째 발언자로 내세우며 진영 간의 논리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함 신부는 “350만 자유총연맹 회원 모든 분들이 뜻을 모아 5000만 국민들이 한뜻으로 일본을 도덕적으로 꾸짖고 아베가 회개할 수 있도록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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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