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가구 전문기업 코아스의 하청업체 죽이기 공방전

법 위에 원청, 법 밖에 하청?

[일요시사 취재1팀] 김정수 기자 = “우리나라 하도급의 현실은 ‘갑’이 지시하면 당사와 같은 ‘을’ 입장에선 그나마 직원들의 생계인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현실이다.” A사는 코아스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A사의 매출 대부분은 코아스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A사는 거래 중단까지 감수하면서 신고를 감행했다. 그간 A사와 코아스 사이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A사는 금형제조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이다. ㈜코아스는 사무용 가구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코스피 상장사다. A사는 지난해 9월5일 코아스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신고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A사의 공정위 신고 내용에 따르면 A사와 코아스는 지난 2014년 6월16일 협력업체 계약을 체결했다. A사는 2015년 10월19일에 이어 2018년 1월2일 코아스와 2차례 계약을 연장, 4년간 거래했다.

신고했다고?

A사는 코아스로부터 금형이나 사무용 가구 부품 제조를 위탁받아 납품했다. 거래는 코아스가 운용하는 발주시스템(SCM)을 통해 이뤄졌다. 코아스가 발주시스템에 발주서를 업로드하면 A사가 이를 출력해 목적물을 납품하는 방식이었다.

A사는 코아스와 거래 상 있었던 불법행위 내용을 공정위에 신고했다. A사는 “이번 신고로 코아스와의 거래는 종료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고서를 제출하는 이유는 이 이상 참는다 하더라도 코아스의 부당 행위가 지속될 경우 의미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A사에게 코아스는 ‘주요’ 거래처였다. A사의 전체 매출에서 코아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65%다. A사가 법인으로 전환하기 전에는 71%에 달했다.

A사의 주장에 따르면 코아스는 금형 제조를 위탁한 뒤 도면 변경으로 수정작업을 추가 위탁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동 법률) 제3조’에 따르면 원사업자(코아스)가 수급사업자(A사)에게 제조 위탁을 하는 경우 또는 제조 위탁 이후, 계약내역에 없는 제조를 위탁하거나 내역을 변경한다면 제2항의 사항(하도급계약 내용, 하도급대금 조정요건 등)을 적시한 변경계약 서면을 수급사업자(A사)에게 발급해야 한다.


그러나 코아스는 변경계약 서면을 발급하지 않았다.

코아스는 2015년 10월과 2017년 7월 A사에게 금형 제조를 위탁했다. 2015년 코아스는 공급가액 9700만원 중 4900만원을 A사로부터 제조 위탁하는 자재를 매입할 때, 자재 수량이 2만개가 될 때까지 자재 단가 1개당 2450원을 포함해 지급한다고 계약했다.

2017년에도 동일했다. 코아스는 공급가액 2700만원 가운데 1350만원을 매입 자재 수량이 1만개에 도달할 때까지 자재 단가 1개당 650원, 700원 등을 함께 지급하기로 했다. A사는 “코아스가 두 계약의 계약금액이 현저히 낮다고 인지해 다른 목적물에 대한 하도급 대금으로 보전해주려는 내용을 계약서에 넣었다고 볼 수 있다”고 봤다.

코아스, 하청 매출 좌지우지
발주서 기재 단가 임의 수정

그러나 코아스는 첫 번째 계약의 경우, 2015년 12월22일 매입을 시작하다가 2017년 3월 이후 발주하지 않았다. 두 번째 계약도 마찬가지였다. 코아스의 매입은 단 2건에 그쳤다. 결국 A사는 각각 2300여만원과 1160여만원을 받지 못했다.

A사는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및 감액행위에 대한 심사지침’을 들었다. 심사지침에 따르면 한 목적물에 대해 하도급 대금을 낮게 결정하고, 그 차액에 상당하는 금액을 다른 목적물에 대한 하도급 대금의 결정 시 보전해주기로 한 뒤 이행하지 않는다면 부당하다고 본다.

코아스는 위탁 제품 수량을 임의로 변경하기도 했다. 코아스는 A사에게 플라스틱 제품 등을 제조 위탁했지만 사유를 들어 수량을 변경했다. 동 법률 제8조에 따르면 원사업자(코아스)는 제조 등의 위탁을 한 뒤 수급사업자(A사)의 책임으로 돌릴 사유가 없는 경우, 제조 등의 위탁을 임의로 취소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코아스는 하도급대금을 다양한 방법으로 감액했다. 동 법률 11조 1항에 따르면 원사업자(코아스)는 제조 등의 위탁 시 결정한 하도급대금을 감액할 수 없다. 다만 원사업자(코아스)가 정당한 사유를 입증한 경우, 감액할 수 있다.

코아스는 2014년 12월∼2017년 4월 플라스틱 제품 등을 A사에게 제조 위탁했다. 코아스는 목적물을 수령한 뒤 돌연 A사에게 ‘할인료’ 명목으로 발주금 일부를 감액했다. 코아스는 감액된 세금계산서 발행을 요구했다. 감액 금액은 모두 4500여만원이었다.
 

코아스는 ‘프로젝트 네고’와 ‘패널티 명목’으로 각각 1억5800만원, 1500여만원씩 감액하기도 했다. 코아스는 패널티를 부여한 이유로 A사의 납품 제품을 지목했다. 최종 생산물에 대한 불량 원인이 A사의 납품 제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A사는 “코아스는 거래 과정서 한 번도 목적물 수령 이후 10일 이내 검사 통지를 서면으로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동 법률 제9조 2항에 따르면 원사업자(코아스)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외에 수급사업자(A사)로부터 목적물 등을 수령한 날에서 10일 이내에 수급사업자(A사)에게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이 기간 내 통지하지 않은 경우, 검사에 합격한 것으로 본다. A사는 “불량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실하지 않은데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코아스는 ‘반품 처리’를 이유로 3600여만원도 감액했다. 코아스는 2015년 12월∼2017년 11월 A사에게 목적물을 수령한 뒤 납품 제품이 불량하다며 일부 제품에 대해 반품 처리했다. A사는 “어떤 불량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불량이라고 주장하는 제품을 반환하지도 않았으며, 당사가 제조하지 않은 제품을 반품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만들지도 않은 제품 반품하고 감액
조항 유명무실 공정위 역할 물음표

대금 지연과 이자 미지급도 언급됐다. 코아스는 2018년 1월24일 목적물을 수령, 같은 해 7월20일 하도급대금을 지급했다. 수령일서 60일을 경과한 것이다. 동 법률 제13조 1항에 따르면 원사업자(코아스)가 수급사업자(A사)에게 제조 등의 위탁을 할 경우, 목적물 등의 수령일에서 60일 이내의 기한으로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또 동 법률 제13조 8항에 따르면 60일이 지난 뒤에는 초과기관에 대해 공정위가 고시하는 이율에 따라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코아스는 60일을 넘겼고, 지연이자도 지급하지 않았다.

A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코아스 측에서 해당 내용을 모두 인정했다”며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률적 단가 인하’에 대해선 (코아스가)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해당 사안이 가장 큰 부분”이라며 “지급받지 못한 대금을 꼭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A사의 주장에 따르면 코아스는 특별한 이유 없이 단가를 인하했다. A사는 2017년 4월 목적물 납품 이후 코아스에게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 그러나 코아스는 “세금계산서를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이후 “의자 사출비 10%와 조립비 5% 단가를 인하한다”며 구두 통보했다. 코아스는 발주서에 기재된 단가를 임의로 수정했다.

코아스는 한 달 뒤인 2017년 5월을 기점으로 2018년 7월까지 일률적 인하 대금을 A사에게 지급했다. 동 법률 제4조 2항 1호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일률적인 비율로 단가를 인하해 하도급대금을 결정하는 행위’를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으로 본다. 또 동 법률 제4조 2항 5호에 따르면 ‘원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낮은 단가에 하도급대금을 결정하는 행위’ 역시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으로 볼 수 있다. A사는 1900여만원의 대금을 지급받지 못했다.

A사는 지난 6월 기준으로 받지 못한 대금이 모두 12억원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대부분 인정

코아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A사는 우리와 오랜 협력업체”라며 “아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A사와 현재도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며 “중간 소통 과정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상생의 의미로 잘해보고 싶다”며 “잘못이 없다기보다 근거에 기반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