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박서보

노화가의 70년 예술 인생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다음 달 1일까지 박서보 작가의 개인전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를 개최한다. 박서보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린다. 현대인의 번민과 고통을 예술로 치유해야 한다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묘법을 지속해왔다. 이번 개인전에선 박서보의 70여년 화업을 조명한다.
 

▲ 원형질(原形質) No.1-62  1962, 캔버스에 유채, 163x13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박서보는 묘법 연작을 통해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는 평론가, 행정가, 교육자로서 한국 현대미술을 일구고 국내외에 알리는 데 평생 헌신했다. 1956반국전 선언을 발표해 기성 화단에 도전했고, 1957년 작품 회화 No.1’으로 국내 최초 앵포르멜 작가로 평가받았다.

다양한 활동

이후 물질과 추상의 관계와 의미를 고찰하며, 이른바 원형질’ ‘유전질시기를 거쳐 1970년대부터 묘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한국 추상미술의 발전을 주도했으며 현재까지 그 중심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이끌어온 박서보의 삶과 작품세계를 한자리서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전시는 박서보의 1950년대 초기 작품부터 올해 신작까지 129, 아카이브 100여점을 다섯 시기로 구분해 선보인다. 첫 번째는 원형질 시기다. 상흔으로 인해 불안과 고독, 부정적인 정서를 표출한 회화 No.1부터 1961년 파리 체류 이후 발표한 한국 앵포르멜 회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원형질 연작을 소개한다.

대량 학살과 집단 폭력으로 인한 희생, 부조리 등 당대의 불안과 고독을 분출한 작업은 부정을 거듭하며 기존의 가치관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회화 No.1이 파괴의 장이라면 이후 제작된 원형질 연작은 파괴로부터의 절규서 나아간 생존의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두 번째는 유전질 시기다. 1960년대 후반 옵아트, 팝아트를 수용하며 기하학적 추상과 한국 전통 색감을 사용한 유전질 연작과 1969년 달 착륙과 무중력 상태서 영감을 받은 허상 연작을 소개한다. 분노와 파괴서 절규로 이행하던 그의 작업은 1960년대 후반 다양한 실험을 거듭했다.

전통문화와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박서보는 전통미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로, 오방색을 활용하고 당시 서구서 유행하던 옵아트나 팝아트의 영향 아래 기하학적 추상과 대중적 이미지를 담은 유전질을 선보이게 된다.

세 번째는 초기 묘법 시기다.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서 착안해 캔버스에 유백색 물감을 칠하고 연필로 수없이 선긋기를 반복한 1970년대 연필 묘법을 소개한다. 박서보는 이 시기 작가로서 독자적인 언어를 찾고자 했다. 동시대의 사회와 문화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현대인의 고통·번민 예술로 치유
묘법 연작을 통해 독보적 작품세계

전통을 담아내고 서구미술을 수용하면서도 단순히 모방하지 않는 작품을 구현하고자 했다. 연필 묘법 과정서 물성과 정신성, 그리고 작가의 행위가 합일에 이르게 되는 이 작업을 박서보는 수신의 도구라고 일컬었다.

네 번째는 중기 묘법 시기다. 1982년 닥종이를 재료로 사용하면서 한지의 물성을 극대화해 한지를 발라 마르기 전에 문지르거나 긁고 밀어붙이는 등의 행위를 반복해 지그재그 묘법이라고도 불린다.
 

▲ 비키니 스타일의 여인, 1968, 캔버스에 유채, 130x89cm, 개인 소장

무채색의 연필 묘법서 쑥과 담배 등을 우려낸 색을 활용해 색을 회복한 시기이기도 하다. 한지가 채 마르기 전에 완성해야 하는 이 시기 작업은 고된 방식으로 인해 점차 작가는 화면을 분할하는 방식서 나아가 후기 묘법으로 이행하게 된다.


다섯 번째는 후기 묘법 시기다. 색채 묘법이라고도 불리며 1990년대 중반 손의 흔적을 없애고 막대기나 자와 같은 도구를 이용해 일정한 간격으로 고랑처럼 파인 면들을 만들어 깊고 풍성한 색감이 강조된 대표작을 볼 수 있다.

자연이 그러하듯 예술이 흡인지처럼 현대인의 번민과 고통을 치유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박서보의 신념은 점차 중첩된 색면의 오묘함을 내포하면서 더욱 다채로워진다. 그의 신념은 2000년대 초반 단풍 절정기의 풍경을 경험한 후 더욱 확고해졌다.

작업에 대한 박서보의 끝없는 열의는 색채 묘법과 연필 묘법이 결합된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으로 이어진다. 박서보는 이번 전시서 미공개 작품 일부를 비롯해 신작 2점을 최초로 공개한다. 1970년대 전시 이후 선보인 적 없는 설치 작품 허의 공간도 소개한다.

신작 공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박서보의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이번 전시는 한국적 추상을 발전시키며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 큰 족적을 남긴 박서보의 미술사적 의의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박서보는?]

1931년 경북 예천 출생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개인전

‘Park Seo-Bo Ecriture 1967-1976’ 화이트 큐브, 홍콩(2018)
‘Ecriture’
페로탕 갤러리, 뉴욕, 미국(2018)
‘Pursuit of Inner Self’ Art Issue Projects,
타이베이(2018)
‘ZIGZAG: Ecriture 1983-1992’
화이트큐브 갤러리, 런던(2017)
화이트 큐브 갤러리, 런던(2016)
페로탕 갤러리, 홍콩(2016)
‘Empty the Mind: The Art of Park Seo-Bo’
도쿄 갤러리, 도쿄(2016)
대전시립미술관, 대전(2015)
조현 화랑, 부산(2015)
페로탕 갤러리, 파리(2014)
대구미술관, 대구(2012)
국제갤러리, 서울(2010-2011)
박서보 한국 아방가르드의 선구자: 화업 60부산시립미술관, 부산(2010-2011)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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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