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삐뚤어진 아베 집안의 비밀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8.12 10:11:29
  • 호수 1231호
  • 댓글 0개

할아버지부터 ‘그 나물에 그 밥’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일본의 한반도 침탈 역사는 뿌리가 깊다. 이번 한일 경제전쟁도 같은 맥락이다. 갈등을 촉발한 아베 신조에게는 극우와 전범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한반도 일제강점기 시절 군국주의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게 아베의 속내다. 
 

일본 정부가 지난 2일 한국을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서 제외하는 2차 경제보복을 감행하면서 이는 사실상 양국 간의 전면적인 경제전쟁으로 비화됐다. 지난달 초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1차 경제보복 조치 이후 한국에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날 정도로 반발이 심하다. 관망하던 미국까지 나서서 자제를 촉구했지만, 일본은 양국 갈등을 봉합하기보다 확대시키는 방향을 선택했다. 

일본 유력 
정치가문 

한국 정부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방침 등 일본에 대한 총력대응을 공언한 상태인 만큼 한일관계는 현재보다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무역 제재 조치는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이후 내린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보복’이 아니라 ‘안보’를 위한 것인 만큼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도 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과 국제 사회는 물론이고 일본 내부서도 ‘국제 정치와 무역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국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선택한 것은 이익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미 최근 참의원 선거서 ‘한국 때리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아베정권은 공적 연금의 보장성 논란과 소비세 인상 문제 등 불리한 이슈가 묻히는 효과를 봤다. 


아베 총리(이하 아베)는 보수층을 결집시켜 숙원사업이었던 개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베가 일본 임시국회 개원 전날 자민당 중·참의원 의원총회서 “엄중함이 증가하는 국제정세 안에서 국익을 지켜나가 헌법개정 등 곤란한 문제를 한몸이 돼 다뤄가고 싶다”고 말한 것은 한일갈등 상황을 이용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아베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레임덕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의 측근들은 자민당 규정을 한 번 더 바꿔 총리 4연임을 가능하게 만들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가 빠르면 올해 안에 열릴 것이라는 예상도 있는 만큼 아베 총리의 한국 때리기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경제보복…한국 때리기 왜?
과거 극우·군국주의 정치로 회귀 

그가 집권하는 사이 일본 사회의 ‘혐한’은 갈수록 심해졌다. 일본 언론서 혐한 발언을 노골적으로 내보낼 정도다. 한 일본 방송 토론 프로그램서 ‘오사카에 북한 테러리스트들이 대거 잠복해 있다’ ‘한국서 일본 맥주가 너무 인기 있는 만큼 일본이 맥주 수출을 막으면 폭동이 일어난다’고 하는 등 부적절한 발언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아베가 경제보복을 통해 한국 경제에 불안을 야기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아베는 전부터 3연임 달성 시 ‘전쟁 가능 국가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2020년 개헌 동력을 확보하려면 3분의 2 이상의 의석수를 확보해야 하는데,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이 이를 위한 바탕이라는 것이다. 

그의 구상은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일본 전범들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그가 이처럼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베의 피에는 극우와 A급 전범의 DNA가 흐르기 때문이다. 

아베는 1954년 9월21일 도쿄서 당시 〈마이니치신문〉의 기자였던 아베 신타로와 어머니 요코 사이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베 집안은 계파정치와 세습 출마가 전통인 일본의 대표적 정치 명문가다. 


외할아버지는 자민당 체제를 확립한 기시 노부스케, 외종조부는 기시의 친동생이자 7년이 넘는 장기집권에 ‘비핵 3원칙’으로 유명한 사토 에이사쿠다. 할아버지인 아베 간도 중의원을 지낸 바 있다.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는 외무장관을 지내다가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됐다.

다만 친가와 외가의 정치적 행적은 정반대다. 외할아버지 기시는 1930∼1940년대 만주국서 요직을 지내며 일본 군국주의의 최전선에 있었다. 반면 할아버지 아베 간은 전쟁 반대를 내걸고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설 만큼 군국주의에 비판적이었다. 

A급 전범 
품서 자라 

아베 집안은 메이지유신의 태동지인 조슈번, 현재 혼슈 남단의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조슈번은 외지고 작았지만 특유의 공격성으로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지역으로 유신 이후 총리만 무려 8명이나 배출해 하나의 벌(閥)족을 이뤘다. 총리 배출 순위 2위인 도쿄서 배출된 총리가 4명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세력이다.

한국서 대통령 12명 중 5명을 배출하고, 정부 수립 후 70년 가운데 40여년을 집권한 ‘TK’(대구·경북)와 비슷하다. 군벌이 주력이었다는 점도 같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요시다 쇼인으로, 그 역시 조슈번 출신이다. 쇼인은 메이지유신(1868년)을 주도한 조슈 번벌의 거두다. 일본인에게 쇼인은 아시아서 유일하게 서구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게 이끈 근대화의 선각자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정한론(征韓論, 조선정복론)의 원조이자 일본 군국주의와 침략주의 선동가다. 

아베는 1기 내각 시절인 2006년 의회서 “쇼인 선생은 3년간(감옥 강의 포함) 교육으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작은 쇼카손주쿠가 메이지 유신의 태동지가 됐다”고 발언한 바 있다. 

지금은 국가유적지가 된 ‘소나무 아래 마을글방’ 입구에는 ‘明治維新 胎動之地’(명치유신 태동지지)라는 글씨가 새겨진 큰 돌비석이 있다. 메이지 유신 100주년(1968년) 기념물이다.  전후 최장수(제61·62·63대) 총리인 사토 에이사쿠가 쓴 것이다. 사토는 아베의 정치적 롤모델이자 외할아버지인 기시의 친동생이다(기시가 양자를 가서 형제의 성이 다르다).
 

기시는 일본 괴뢰정부인 만주국서 고위관료로 일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서 전쟁물자를 관장하는 군수차관과 상공장관을 지냈다. 기시는 일본이 패망한 뒤 고향 조슈번서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수감됐다. 하지만 1948년 성탄전야에 공직 선출 제한 조건으로 석방된다. 

그는 1952년 공직 진출 제한이 풀리자 ‘자주헌법 제정’ 등을 슬로건으로 내건 일본재건연맹을 설립해 정치를 재개했다. 1955년 11월 자유민주당을 창당해 초대 간사장이 됨으로써 이른바 ‘자민당 55년 체제’를 열었다. 이후 기시는 총리 시절에 줄기차게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베의 조부인 아베 간은 기시와는 반대로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군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반골 기질의 ‘비둘기파’ 정치인이었다. 야마구치현 오쓰 출신으로 1937년 총선서 중의원(무소속)에 당선됐다. 1942년 익찬선거(도조 히데키 내각이 전쟁에 비협조적인 후보를 낙선시키려고 했던 선거)서도 도조 내각의 군국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아들 신타로가 대학생이었을 때인 1946년, 52세에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아베 신타로는 기시의 딸과 결혼해 아베를 낳았다. 기자였던 신타로는 1956년 장인인 기시가 외무상으로 입각하자 신문사를 그만두고 외무상 비서관이 됐다. 또 기시가 총리가 되자 총리 비서관으로 취임했다. 

그 후 1958년 총선거서 야마구치 1구의 자민당 후보로 출마해 정치가의 길로 들어선 신타로는 기시파를 계승한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파서 활동하면서 내각 관방장관, 자민당 정조회장 등을 지냈다.

아베는 어릴 적부터 외조부 손에서 자랐다. 기시가 특히 예뻐했던 손자가 아베였다. 그는 도쿄를 자주 비웠던 부모 대신 외조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자연스레 전후 체제를 벗어난 보통국가화, 개헌 등 기시 전 총리의 어젠다가 아베의 핵심 어젠다가 됐다. 

정한론 본산
정치적 계승

아베도 책을 통해 기시의 사상이 자신에게 스며들었다고 말할 정도다. 정치에 뜻을 품게 된 계기도 고교 시절 기시가 체결한 신미·일안보조약에 대해 비판적으로 설명한 교사에게 반발심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베는 “내용도 모른 채 반권력, 혁신이란 것에 취한 사람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보수주의를 자신의 지향점으로 삼았다”고 적었다. 


아베는 대학 졸업 후 2년간의 미국 생활과 3년간의 고베제강 근무를 마치고 28세가 된 1982년, 당시 외상이던 부친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부친 사망(1991년) 후 야마구치현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중의원이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 행보를 걸었다.

아베는 A급 전범이자 노회한 극우 정치인(외조부)의 자산을 세습했다. 기시는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한 첫 총리다. 일본이 독립하려면 자주헌법이 필요하다는 게 기시의 신념이자 정치적 목표였다.

아베 역시 “평화헌법 개정이야말로 독립의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아베의 ‘강한 일본 되찾기’와 ‘새로운 나라 만들기’ 구상은 결국 기시가 꿈꿨던 국가를 실현하려는 의도다. 아베가 주변국의 경고와 동맹국(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사를 참배한 이유다.

그는 2013년 4월 의회서 침략과 식민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나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며 “국가 간 관계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침략의 정의가)다르다”고 언급했다. 

매우 평범하고 특별한 점도 없는 아이
국회 입성하면서 ‘우익 괴물’로 변해 

그해 8월 ‘쇼인 신사’를 참배한 아베는 “중의원 입후보의 뜻을 굳혔을 때도 참배했다, (앞으로)올바른 판단을 할 것을 맹세한다”고 했다. 일본 근대화의 선각자이자 군국주의 선동가인 쇼인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현직 총리로는 고이즈미 이후 처음으로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8월 이른바 아베 담화를 통해 “지난 침략과 식민지배의 역사에 대해 더 이상 사죄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평화로운 나라라는 뜻을 지닌 야스쿠니는 이름과는 상반되게 전쟁의 화신들을 추모하는 곳이 됐다. 

아베의 조부와 부친, 그리고 아베의 지인들을 두루 인터뷰한 일본 언론인 아오키에 따르면, 신조는 매우 평범하고 어떤 특별한 점도 없는 좋은 집 아이, 즉 극히 평범한 도련님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처음 국회에 입성한 뒤 주변에 있던 우익 성향 인물들의 영향을 받아 ‘우익의 괴물’로 변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평범한 도련님’이 우익의 괴물로 변신한 배경을 일본 특유의 세습정치서 찾은 것이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일본 극우세력의 본산이자 싱크탱크로 통하는 ‘일본회의’가 꼽힌다. 일본회의는 1997년 5월 대표적인 우파단체인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통합되면서 결성된 조직이다. 일본을 지키는 모임은 1974년 우파계 종교단체가 중심이 돼 결성됐다.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는 1981년 정재계, 학계, 종교계 우파가 총결집해 만들었다.

일본회의는 천황제 고수, 강요된 평화헌법 개정,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 외국인 지방참정권 반대, 사과외교 중단, 대동아전쟁 긍정론, 자학적 역사 교육 및 지나친 권리 편중 교육 시정 등을 주장한다. 

우경화 최전선
개헌에 집착

지난해 10월 출범한 제4차 아베 내각 20명의 면면을 보면, 아베는 일본회의 산하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의 특별고문이다. 또 일본 내 신사를 포괄하는 종교법인 ‘신사본청’을 모태로 설립된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야스쿠니 신사 역시 민간종교법인인 신사본청의 관할로 그는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다함께)에도 속해 있다.

일본회의에는 아베와 함께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 등 15명이, 신도정치연맹과 다함께엔 집권 자민당과 연립한 공명당의 이시이 게이이치 국토교통부장관을 제외한 19명이 모두 속해 있다. 아베의 행태가 세습정치와 극우정치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배너

관련기사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