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삐뚤어진 아베 집안의 비밀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8.12 10:11:29
  • 호수 12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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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부터 ‘그 나물에 그 밥’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일본의 한반도 침탈 역사는 뿌리가 깊다. 이번 한일 경제전쟁도 같은 맥락이다. 갈등을 촉발한 아베 신조에게는 극우와 전범의 피가 흐르고 있다. 한반도 일제강점기 시절 군국주의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게 아베의 속내다. 
 

일본 정부가 지난 2일 한국을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서 제외하는 2차 경제보복을 감행하면서 이는 사실상 양국 간의 전면적인 경제전쟁으로 비화됐다. 지난달 초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1차 경제보복 조치 이후 한국에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날 정도로 반발이 심하다. 관망하던 미국까지 나서서 자제를 촉구했지만, 일본은 양국 갈등을 봉합하기보다 확대시키는 방향을 선택했다. 

일본 유력 
정치가문 

한국 정부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방침 등 일본에 대한 총력대응을 공언한 상태인 만큼 한일관계는 현재보다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무역 제재 조치는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이후 내린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보복’이 아니라 ‘안보’를 위한 것인 만큼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도 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국과 국제 사회는 물론이고 일본 내부서도 ‘국제 정치와 무역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국내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선택한 것은 이익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미 최근 참의원 선거서 ‘한국 때리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아베정권은 공적 연금의 보장성 논란과 소비세 인상 문제 등 불리한 이슈가 묻히는 효과를 봤다. 

아베 총리(이하 아베)는 보수층을 결집시켜 숙원사업이었던 개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베가 일본 임시국회 개원 전날 자민당 중·참의원 의원총회서 “엄중함이 증가하는 국제정세 안에서 국익을 지켜나가 헌법개정 등 곤란한 문제를 한몸이 돼 다뤄가고 싶다”고 말한 것은 한일갈등 상황을 이용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아베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레임덕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의 측근들은 자민당 규정을 한 번 더 바꿔 총리 4연임을 가능하게 만들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가 빠르면 올해 안에 열릴 것이라는 예상도 있는 만큼 아베 총리의 한국 때리기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경제보복…한국 때리기 왜?
과거 극우·군국주의 정치로 회귀 

그가 집권하는 사이 일본 사회의 ‘혐한’은 갈수록 심해졌다. 일본 언론서 혐한 발언을 노골적으로 내보낼 정도다. 한 일본 방송 토론 프로그램서 ‘오사카에 북한 테러리스트들이 대거 잠복해 있다’ ‘한국서 일본 맥주가 너무 인기 있는 만큼 일본이 맥주 수출을 막으면 폭동이 일어난다’고 하는 등 부적절한 발언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아베가 경제보복을 통해 한국 경제에 불안을 야기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아베는 전부터 3연임 달성 시 ‘전쟁 가능 국가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2020년 개헌 동력을 확보하려면 3분의 2 이상의 의석수를 확보해야 하는데,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이 이를 위한 바탕이라는 것이다. 

그의 구상은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일본 전범들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그가 이처럼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베의 피에는 극우와 A급 전범의 DNA가 흐르기 때문이다. 

아베는 1954년 9월21일 도쿄서 당시 〈마이니치신문〉의 기자였던 아베 신타로와 어머니 요코 사이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베 집안은 계파정치와 세습 출마가 전통인 일본의 대표적 정치 명문가다. 

외할아버지는 자민당 체제를 확립한 기시 노부스케, 외종조부는 기시의 친동생이자 7년이 넘는 장기집권에 ‘비핵 3원칙’으로 유명한 사토 에이사쿠다. 할아버지인 아베 간도 중의원을 지낸 바 있다.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는 외무장관을 지내다가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됐다.

다만 친가와 외가의 정치적 행적은 정반대다. 외할아버지 기시는 1930∼1940년대 만주국서 요직을 지내며 일본 군국주의의 최전선에 있었다. 반면 할아버지 아베 간은 전쟁 반대를 내걸고 무소속으로 선거에 나설 만큼 군국주의에 비판적이었다. 

A급 전범 
품서 자라 

아베 집안은 메이지유신의 태동지인 조슈번, 현재 혼슈 남단의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조슈번은 외지고 작았지만 특유의 공격성으로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지역으로 유신 이후 총리만 무려 8명이나 배출해 하나의 벌(閥)족을 이뤘다. 총리 배출 순위 2위인 도쿄서 배출된 총리가 4명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세력이다.

한국서 대통령 12명 중 5명을 배출하고, 정부 수립 후 70년 가운데 40여년을 집권한 ‘TK’(대구·경북)와 비슷하다. 군벌이 주력이었다는 점도 같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요시다 쇼인으로, 그 역시 조슈번 출신이다. 쇼인은 메이지유신(1868년)을 주도한 조슈 번벌의 거두다. 일본인에게 쇼인은 아시아서 유일하게 서구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게 이끈 근대화의 선각자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정한론(征韓論, 조선정복론)의 원조이자 일본 군국주의와 침략주의 선동가다. 

아베는 1기 내각 시절인 2006년 의회서 “쇼인 선생은 3년간(감옥 강의 포함) 교육으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작은 쇼카손주쿠가 메이지 유신의 태동지가 됐다”고 발언한 바 있다. 

지금은 국가유적지가 된 ‘소나무 아래 마을글방’ 입구에는 ‘明治維新 胎動之地’(명치유신 태동지지)라는 글씨가 새겨진 큰 돌비석이 있다. 메이지 유신 100주년(1968년) 기념물이다.  전후 최장수(제61·62·63대) 총리인 사토 에이사쿠가 쓴 것이다. 사토는 아베의 정치적 롤모델이자 외할아버지인 기시의 친동생이다(기시가 양자를 가서 형제의 성이 다르다).
 

기시는 일본 괴뢰정부인 만주국서 고위관료로 일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서 전쟁물자를 관장하는 군수차관과 상공장관을 지냈다. 기시는 일본이 패망한 뒤 고향 조슈번서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수감됐다. 하지만 1948년 성탄전야에 공직 선출 제한 조건으로 석방된다. 

그는 1952년 공직 진출 제한이 풀리자 ‘자주헌법 제정’ 등을 슬로건으로 내건 일본재건연맹을 설립해 정치를 재개했다. 1955년 11월 자유민주당을 창당해 초대 간사장이 됨으로써 이른바 ‘자민당 55년 체제’를 열었다. 이후 기시는 총리 시절에 줄기차게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베의 조부인 아베 간은 기시와는 반대로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군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반골 기질의 ‘비둘기파’ 정치인이었다. 야마구치현 오쓰 출신으로 1937년 총선서 중의원(무소속)에 당선됐다. 1942년 익찬선거(도조 히데키 내각이 전쟁에 비협조적인 후보를 낙선시키려고 했던 선거)서도 도조 내각의 군국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아들 신타로가 대학생이었을 때인 1946년, 52세에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아베 신타로는 기시의 딸과 결혼해 아베를 낳았다. 기자였던 신타로는 1956년 장인인 기시가 외무상으로 입각하자 신문사를 그만두고 외무상 비서관이 됐다. 또 기시가 총리가 되자 총리 비서관으로 취임했다. 

그 후 1958년 총선거서 야마구치 1구의 자민당 후보로 출마해 정치가의 길로 들어선 신타로는 기시파를 계승한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파서 활동하면서 내각 관방장관, 자민당 정조회장 등을 지냈다.

아베는 어릴 적부터 외조부 손에서 자랐다. 기시가 특히 예뻐했던 손자가 아베였다. 그는 도쿄를 자주 비웠던 부모 대신 외조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자연스레 전후 체제를 벗어난 보통국가화, 개헌 등 기시 전 총리의 어젠다가 아베의 핵심 어젠다가 됐다. 

정한론 본산
정치적 계승

아베도 책을 통해 기시의 사상이 자신에게 스며들었다고 말할 정도다. 정치에 뜻을 품게 된 계기도 고교 시절 기시가 체결한 신미·일안보조약에 대해 비판적으로 설명한 교사에게 반발심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베는 “내용도 모른 채 반권력, 혁신이란 것에 취한 사람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보수주의를 자신의 지향점으로 삼았다”고 적었다. 

아베는 대학 졸업 후 2년간의 미국 생활과 3년간의 고베제강 근무를 마치고 28세가 된 1982년, 당시 외상이던 부친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부친 사망(1991년) 후 야마구치현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중의원이 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 행보를 걸었다.

아베는 A급 전범이자 노회한 극우 정치인(외조부)의 자산을 세습했다. 기시는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한 첫 총리다. 일본이 독립하려면 자주헌법이 필요하다는 게 기시의 신념이자 정치적 목표였다.

아베 역시 “평화헌법 개정이야말로 독립의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아베의 ‘강한 일본 되찾기’와 ‘새로운 나라 만들기’ 구상은 결국 기시가 꿈꿨던 국가를 실현하려는 의도다. 아베가 주변국의 경고와 동맹국(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사를 참배한 이유다.

그는 2013년 4월 의회서 침략과 식민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나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며 “국가 간 관계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침략의 정의가)다르다”고 언급했다. 

매우 평범하고 특별한 점도 없는 아이
국회 입성하면서 ‘우익 괴물’로 변해 

그해 8월 ‘쇼인 신사’를 참배한 아베는 “중의원 입후보의 뜻을 굳혔을 때도 참배했다, (앞으로)올바른 판단을 할 것을 맹세한다”고 했다. 일본 근대화의 선각자이자 군국주의 선동가인 쇼인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현직 총리로는 고이즈미 이후 처음으로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8월 이른바 아베 담화를 통해 “지난 침략과 식민지배의 역사에 대해 더 이상 사죄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평화로운 나라라는 뜻을 지닌 야스쿠니는 이름과는 상반되게 전쟁의 화신들을 추모하는 곳이 됐다. 

아베의 조부와 부친, 그리고 아베의 지인들을 두루 인터뷰한 일본 언론인 아오키에 따르면, 신조는 매우 평범하고 어떤 특별한 점도 없는 좋은 집 아이, 즉 극히 평범한 도련님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처음 국회에 입성한 뒤 주변에 있던 우익 성향 인물들의 영향을 받아 ‘우익의 괴물’로 변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평범한 도련님’이 우익의 괴물로 변신한 배경을 일본 특유의 세습정치서 찾은 것이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일본 극우세력의 본산이자 싱크탱크로 통하는 ‘일본회의’가 꼽힌다. 일본회의는 1997년 5월 대표적인 우파단체인 ‘일본을 지키는 모임’과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통합되면서 결성된 조직이다. 일본을 지키는 모임은 1974년 우파계 종교단체가 중심이 돼 결성됐다.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는 1981년 정재계, 학계, 종교계 우파가 총결집해 만들었다.

일본회의는 천황제 고수, 강요된 평화헌법 개정,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 외국인 지방참정권 반대, 사과외교 중단, 대동아전쟁 긍정론, 자학적 역사 교육 및 지나친 권리 편중 교육 시정 등을 주장한다. 

우경화 최전선
개헌에 집착

지난해 10월 출범한 제4차 아베 내각 20명의 면면을 보면, 아베는 일본회의 산하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의 특별고문이다. 또 일본 내 신사를 포괄하는 종교법인 ‘신사본청’을 모태로 설립된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야스쿠니 신사 역시 민간종교법인인 신사본청의 관할로 그는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다함께)에도 속해 있다.

일본회의에는 아베와 함께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 등 15명이, 신도정치연맹과 다함께엔 집권 자민당과 연립한 공명당의 이시이 게이이치 국토교통부장관을 제외한 19명이 모두 속해 있다. 아베의 행태가 세습정치와 극우정치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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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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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 장지선 기자 =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업계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내부는 엉망진창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다. 레이블 간의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주력 IP는 과거와 비교해 힘을 못 쓰는 모양새다. 연예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려는 걸까? 2024년 5월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 자산 총액과 자본 총액을 더한 자산이 5조원을 넘긴 곳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2024년 3월 공개한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하이브 자산 총계는 5조원을 넘었다. 당시 기준으로 재계 순위 85위에 올랐다. 빛 좋은 개살구?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기업의 의무가 늘어난다.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상징성도 얻는다. 실제 하이브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국가 차원에서 하이브가 ‘업계 1위’로 인정받은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팝의 세계화로 앨범, 공연, 콘텐츠 등이 주요 수익원인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급격히 성장한 것이 반영됐다”고 지정 배경을 밝혔다. 하이브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의 갈등이 한창 불거질 무렵에 이뤄졌다. 앞서 2024년 4월 하이브는 그룹 뉴진스 등이 소속된 레이블 어도어를 이끌고 있던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 이른바 ‘민-하 대전’의 시작이었다. 이후 뉴진스, 다른 레이블까지 싸움에 뛰어들었다. 뉴진스는 자신들의 프로듀서는 민 전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다른 레이블은 민 전 대표가 제기한 표절 의혹 등에 반발해 소를 제기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계약 문제도 송사로 번졌다. 그 사이 뉴진스는 쪼개졌고 멤버 1명은 계약 해지 후 피소됐다. 내부 문제 외에도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카카오와의 갈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카카오와 하이브는 ‘아이돌 명가’로 불리는 SM을 인수하기 위해 엄청난 출혈 경쟁을 벌였다. 인수전이 과열되면서 카카오가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범수 의장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가 보석 석방되기도 했다. 1900억원대 부당이득 혐의 경찰 영장 청구, 검찰 반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두문불출 상태였다. 미국에 머물다가 인터넷 방송 BJ ‘과즙세연(본명 인세연)’과 거리를 걷는 사진이 찍혀 입길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행보를 알기 어려웠다.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도맡아 온 방탄소년단(BTS)도 ‘군백기(군대+공백기)’ 상태였다. 하지만 BTS의 광화문 공연 이후 방 의장에 대한 언급이 늘었다. BTS는 멤버 전원이 군대에 다녀온 뒤 ‘완전체’ 첫 행보로 광화문 공연을 선택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하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된 공연은 각종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하이브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 시점도 이때다. 지난달 21일 광화문 일대는 경찰 등에서 동원된 경비 인원으로 삼엄했다. 광화문 인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이 이뤄졌고 그 수위는 살벌했다. 공연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도 검문 대상으로 지목됐고 결혼식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도 어김없었다. 정부와 전폭적인 지원에도 BTS 공연을 위해 광화문에 모인 인파는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앞서 26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연 직후 경찰은 4만명으로 추산했고 하이브는 10만여명으로 발표했다. 어떤 기준을 갖다 대도 예상치보다 적은 인원이 모이면서 공연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모두의 광장인 광화문을 사기업이 특정 시간대에 독점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회사 뒤에 숨어 있나 실제 BTS의 광화문 공연은 ‘관급 행사’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전 국무총리가 하이브를 방문했고 서울시는 공연 당일 경비를 위한 회의를 여러 번 진행했다. 물 샐 틈 하나 없는 경비 체제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안전 관리에만 경찰 6700여명 등 모두 1만5000명에 이르는 인력이 동원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가세했다. 이 대통령은 공연 전에는 안전 관리를 당부하는 목소리를 냈고 공연 이후에도 호평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공연 이후인 지난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번 공연은 광화문 홍보를 넘어 대한민국 홍보에 결정적이었다”며 “기획을 잘 해서 잘 진행했다”고 평했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공교롭게도 방 의장에 대한 비판으로 튀었다. 방의장이 현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점, 그 내용이 주식과 관련된 것이라 정부 정책에 반한다는 점 등이 화두가 됐다. 이 대통령은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이라면서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방 의장은 하이브 IPO(기업 공개) 이전인 2019년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지연될 것처럼 설명하는 등 기망행위를 통해 주식을 매수하고 이후 자신과 관련된 사모펀드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추산한 부당이득 액수는 19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의 ‘주가조작은 패가망신’ 경고 이후 주식시장을 교란한 혐의를 받는 인사들에 대한 금융 당국의 제재가 강해졌다. 당시 지목당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방 의장이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7월16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금지 위반 혐의로 방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경찰도 같은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 압박 경찰 발끈? 검․경의 중복 수사 우려까지 불거졌던 사안은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2024년 말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방 의장을 처음 소환한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총 5차례 조사했다. 이후 5개월간 추가 소환이나 신병 확보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늑장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구속영장 청구 하루 전인 지난 2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방 의장 수사는 거의 마무리됐다”며 “법리를 검토 중이고 머지않은 시간 내에 종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고 다음 날 방 의장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이다. 방 의장 측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장기간 성실히 수사에 협조했음에도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은 유감”이라며 “향후 법적 절차에도 충실히 임해 최선을 다해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방 의장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출국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한에는 오는 7월4일 예정된 미국 독립기념일 250주년 행사 참석과 BTS의 월드투어 지원 필요성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BTS 광화문 공연부터 특혜 의혹 솔솔 나와 주한미국대사관의 행보에 경찰 내부는 격앙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BTS 콘서트나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 등을 고리로 미국 측을 움직여 수사 편의를 우회 압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지난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는 상황이라 방 의장이 입을 맞추거나 도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경찰의 신병 확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이브는 국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주한미국대사관의 서한 발송이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하이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행사 참석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구속 갈림길에 서 있던 방 의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로 한숨 돌리게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 24일 방 의장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돌려보냈다. 검찰은 “현 단계에서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단 구속 위기는 피했지만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하이브의 최대 변수가 되는 모양새다. 하이브는 핵심 IP인 BTS 컴백으로 최대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상황에서 광화문 공연이 한 차례 논란이 된 데 이어 오너 리스크까지 덮쳤다. 무엇보다 방 의장이 하이브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만큼 향후 상황에 따라 발생할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너 리스크 K-팝도 영향 연예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하이브를 넘어 K-팝 업계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K-팝의 이미지가 업계 1위 수장의 오너 리스크로 얼룩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방 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