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뺨치는’ 교회 세습의 민낯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8.12 10:07:40
  • 호수 12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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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물려주는 회장님 교회 물려주는 목사님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명성교회 세습에 제동이 걸렸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이 명성교회 세습을 무효라고 판결했다. 교단이 한국 대형 교회의 불법적인 세습 관행에 스스로 제동을 건 것이다. 그동안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법망을 피해 재벌이나 대기업서 이뤄지는 대물림 현상이 횡행해 큰 논란이 됐다. 
 

▲ 명성교회

명성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이 교단 헌법상 세습금지 조항을 위반해 무효라는 교단 재판국의 판결이 내려졌다. 명성교회가 속한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은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서 열린 명성교회 설립자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위임목사의 청빙 결의 무효소송 재심 재판서 청빙 결의는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재판국원 15명 가운데 14명이 판결에 참여했으며 표결 결과는 공개하지 않았다.

교단 재판국
무효 판결

이날 오후 5시40분부터 시작된 심리는 당초 오후 7시께 재판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심리가 예상보다 훨씬 길어지면서 자정께 판결이 나왔다.

김하나 목사는 2015년 12월 정년 퇴임한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의 아들로, 2017년 3월 명성교회서 위임목사로 청빙하기로 결의하면서 교회의 부자 세습 논란에 휩싸였다. 명성교회가 소속된 서울동남노회서 2017년 10월 김하나 목사 청빙을 승인하자 ‘서울동남노회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청빙 결의가 교단 헌법상 세습금지 조항을 위반해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교단 재판국은 지난해 8월 김하나 목사의 청빙이 적법하다며 명성교회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국원 15명 가운데 8명이 청빙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열린 제103회 교단 총회에선 “재판국이 판결 근거로 삼은 교단 헌법 해석에 문제가 있다”며 판결을 취소하고, 판결에 참여한 재판국원 15명 전원을 교체했다.

예장통합 교단 헌법에는 ‘은퇴하는 담임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는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는데, 해석상 논란이 된 부분은 ‘은퇴하는’이라는 문구다.

명성교회 측은 김삼환 목사가 은퇴하고 2년이 지난 후 김하나 목사를 청빙한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교회 세습에 반대하는 교계 시민단체 등에선 이에 반발해왔다.

세금 한 푼도 안 내면서 사유화 논란
대물림 유형 보니…갖가지 방법 동원

명성교회 측은 교단 재판국 결정에 사실상 불복하겠다는 입장이다. 명성교회 장로들은 지난 6일 회의를 연 뒤 낸 입장문을 통해 “명성교회는 노회와 총회와 협력 속에서 김하나 담임목사가 위임목사로서의 사역이 중단 없이 지속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전날 교단 재판국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명성교회의 후임목사 청빙은 세습이 아닌, 성도들의 뜻을 모아 당회와 공동의회의 투표를 통한 민주적 결의를 거쳐 노회의 인준을 받은 적법한 절차”라며 부자간 담임목사 세습이라는 재판국 판단에 반대했다.

대형 교회의 세습 관행은 재벌의 대물림 문화와 흡사하다.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목회자는 교회를 자신의 소유물로 착각한다.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기어이 자식에게 물려주거나 공금을 빼돌려 쌈짓돈처럼 마구 쓴다. 운영방식도 재벌 판박이다. 재벌기업의 문어발처럼 수많은 계열회사를 만들어 가족과 친인척 측근들의 배를 채운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에 따르면 현재까지 143개의 교회가 가족 세습을 했다. 이 중 92개 세습 교회가 신도 수 500명 이상인 중대형 교회였고, 2010년 이후 세습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충현교회, 광림교회, 소망교회, 금란교회, 강남제일교회 등에서 공공연히 부자 세습이 이뤄졌다. 

교회 세습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들끊자 2013년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예장통합이 교단 중에서는 처음으로 ‘세습 방지법’을 마련하기도 했다. 

변칙적 관행 
이제 끊길까

하지만 대형 교회들은 온갖 유형의 편법을 써서 여전히 세습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들에게 지교회를 설립해 담임을 맡도록 하는 ‘지교회 세습’, 비슷한 규모의 교회 목회자끼리 아들 목사의 목회지를 교환하는 ‘교차 세습’, 할아버지가 목회하는 곳에서 손자가 목회지를 승계하는 ‘징검다리 세습’ 등이 활용됐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2015년 발간한 ‘세습방지법의 그늘… 편법의 현주소를 규명한다’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교회 세습은 8가지 유형으로 이루어졌다.

▲지교회형= 아들 목사나 사위 목사에게 담임하던 교회를 승계하는 일이 여의치 않게 되자, 지교회를 설립한 후 그 교회의 담임으로 가도록 하는 형태다. 지교회 세습은 명분과 방식에 있어서 비난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변칙세습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소망교회가 있다. 소망교회는 담임목사의 아들에게 교회를 직접 넘겨주지 않고 다른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넘겨줬다. 하지만 정작 본교회보다 더 큰 교회를 건축해서 아들에게 넘겨줌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세습을 한 대표적인 변칙 사례로 꼽힌다. 길자연 왕성교회 목사가 아들 길요한 목사에게 과천왕성교회를 설립하게 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교회를 합병하면서 실질적으로 아들을 왕성교회 담임목사로 끌어온 사례도 있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징검다리형= 할아버지가 목회하는 곳을 손자가 승계하는 경우다. 이 또한 교회가 일개 가족을 위한 편의적인 목적 수단으로 전락한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이는 잘못된 가족주의의 전형으로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교회라는 거룩한 공동체를 선물로 주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징검다리 세습은 순천광명교회, 전주호남교회, 서천제일교회서 시도됐다.

재벌인지 
목사인지

▲분리형= 아버지 목사가 개척한 여러 교회 중 하나를 아들 목사에게 맡기는 세습을 말한다. 예를 들어 본교회 외에 다른 복수의 교회를 분립·개척한 후 그중 하나의 교회를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주는 방식이다. 이 세습의 방식 역시 외형적으로는 직접적인 세습의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는 세습을 관철시키는, 이른바 ‘양태론적 변칙세습’의 일종이다.

▲교차형= 비슷한 규모의 교회 목회자끼리 아들 목사의 목회지를 교환하는 세습의 방식이다. 다시 말해 A교회의 담임목사의 아들을 B교회가 청빙해 받아들이고, B교회의 담임목사의 아들을 A교회가 청빙해 받아들이는 형태를 말한다. 이런 변칙세습은 목사 집안끼리 교회를 쌍방 교환한다는 점에서 목사 집안의 담합에 의한 거래행위를 비판을 받아왔다.

이 사례의 경우 A교회가 담임목사에 대해 만족한다고 해도, B교회서 교차 부임한 담임목사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면 B교회 내에서 분란이 일어나 그 여파가 A교회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교차세습의 사례는 천안 가나안교회, 간석제일교회 등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에 따르면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다자간형= 교차세습이 두 교회의 목사 아들이 서로 맞교대로 이뤄지는 세습이라면, 그 범위를 여러 교회로 넓혀 서로 교차적으로 세습하는 것을 말한다. 한양제일교회, 은혜교회 등이 다자간형 세습을 했다. 

143개 교회 가족 승계
8가지 유형으로 넘어가

▲통합형= 분리세습과 정반대의 형태로서 아들이 개척한 교회를 아버지 교회로 통합시킨 후 그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세습방식이다. 최근 들어 교회 성장이 급격히 둔화되자 교회의 존립과 활로를 타개하는 차원서 교회와 교회 간의 합병작업이 상당히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통합세습은 아버지와 아들 교회가 대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두 교회의 분위기를 일신해 교회의 답보상태를 타개해나가면서, 동시에 목사직도 세습·이양하는 매우 실리적인 변칙세습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동서간형= 동서 간에 교회를 넘겨주어 대물림하는 세습을 말한다. 영일교회서 시도된 방법으로 극히 예외적인 사례로 전해진다. 이 경우는 친인척 중에서 교회를 이양받아 이루어지는 세습이므로 ‘친인척 세습’으로 부르기도 한다.
 

▲쿠션형= 아버지 목사가 자신과 가까운 목사에게 교회를 형식적으로 이양한 후, 이를 다시 아들 목사에게 물려주는 세습이다. 부자 세습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교회를 신뢰할 만한 다른 목사에게 이양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목적대로 이양하는 방식이다. 이 변칙세습은 징검다리 세습과 약간 유사한 방식으로 ‘건너뛰기 변칙세습’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번에 세습무효 판결을 받은 명성교회는 아들에게 새 교회를 세워주고 시간이 흘러 합병을 추진하는 통합세습 방식을 택했다. 2015년 김삼환 목사가 정년 퇴임하자, 명성교회는 김하나 목사의 새노래명성교회(2014년 경기 하남시에 설립)를 합병했다. 2017년엔 김하나 목사의 담임목사 청빙안을 의결했다. ‘은퇴하는 목사는 자신의 가족에게 목회지를 넘길 수 없다’는 대한예수교장로회헌법 규정을 교묘히 피해간 것이다. 


편법 가지각색 
교회 간 M&A도

교회 세습이 부당한 이유는 사유화 때문이다. 교계에선 교회를 인간의 소유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세운 것으로 해석한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는 “교회 세습은 담임목사직만 물려받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물적 재산, 즉 교회 자본을 대물림하는 행위”라며 “세습은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혹은 그 가족, 친족 중 1인에게 대물림한다는 점에서 교회 사유화의 잘못된 악습”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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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