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서른셋의 반란 (3)꿈

사라진 님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말을 마친 허균이 비에 흠뻑 젖은 옷을 벗어 삼복에게 주었다.

옷을 받아 든 삼복이 어디서 구해왔는지, 보송보송한 옷 한 벌을 허균에게 건넸다.

“나리, 나리의 뜻이 정녕 그러하시다면….”

“이 놈아, 그게 나의 뜻이냐. 네 놈의 주둥아리가 그리 원하는 일이니 내가 어떻게 마다할 일이더냐.”  

“네! 나리도 참….”


목욕재계

삼복이 자신의 입을 손으로 한 번 비벼대고는 쭈뼛거렸다. 

“이놈아, 게서 목욕하는 거 구경하려고 그러느냐?”

“그건 구경해서 뭐한데요.”

“그런데 왜 그러고 있느냐 말이다. 이놈아.”

삼복이 갑자기 뭔가 생각나는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참 깜빡했네. 나리, 급히 다녀오겠습니다.”


“절대로 터지지 않게 조심해서 다룰 일이야.”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삼복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삼복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허균은 주위를 살펴보았다.

휑하니 터진 객사의 한 모퉁이에 마련된 목욕 장소가 그런 대로 아늑했다.

비록 여기저기 틈새가 벌어져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살핀다면 영락없이 속속들이 보여주어야 할 판이었으나 그런 대로 사람들의 시선을 가릴 만했다.

허균이 바가지에 물을 떠서 머리에서 기울였다.

비와 다를 바 없는 같은 물이었건만 이상하리만치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물을 한 바가지 떠서 이번에는 머리가 아닌 자신의 가운데로 기울였다.

그곳에서 짜릿한 기분이 일어나더니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매창아, 나의 월중항아야.”

막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이었다. 아련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에 눈을 뜨고 귀를 곧추세웠다.

잠시 후 다시 창호지로 바른 방문 틈 사이로 애절하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창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초롱으로 다가갔다. 

초롱에 불을 켜고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가슴을 스쳐 지나가는 손길에 하얀 살이 시선에 들어왔다.

작은 가슴이 심하게 뛰고 있었고 온몸이 붉게 물들어가는 듯 달구어지고 있었다.

크게 심호흡하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야심한 시간에 뉘신지요!”


목소리의 주인공이 자신이 오매불망하는 연인임을 확신한 매창의 목소리에 원망과 그리움의 회한이 묻어 있었다.

“매창아, 나의 월중항아야!”

삼복을 보내고 목욕재계하는 허균
매창이 애타게 찾는 사람은 누구?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급히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어둠 속에 당당히 서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방에서 흘러나가는 불빛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하자 격한 기운이 서러움으로 바뀌어갔다.

“나리, 소녀 여기 있나이다!”

매창이 맨발로 어둠 속으로 뛰어나갔다.

거의 종이 한 장 차이의 간격을 두고 매창이 얼음처럼 굳어졌다.

그러기를 잠시, 쓰러지듯이 사내의 널따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나 그 사내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차라리 목석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고개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움푹 파인 볼이 시선에 들어왔다.

매창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그 얼굴로 향했다.

“나으리, 어찌 이리 야위셨는지요. 나리의 그리움도 소녀만하였던가 보옵니다. 어서 드시지요.”

순간 어둠 속 남자의 손이 매창의 손을 떼어냈다.

“아니다. 네가 내게서 가져간 마음을 가지러 왔다.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어서 내어놓아라!”

“무슨 말씀이옵니까, 마음을 내어놓으라니요. 나리께서 제게 주신 그 마음은 이미 제 마음이 삼킨 지 오래되었나이다. 어찌 이제 와서 내놓으라 하시는지요.”

“밤마다 네가 와서 그 마음을 가져가지 않았느냐!”

그리 말하는 사내의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더 이상 그 실체에 대해 미덥지 못했던지 사내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초췌한 모습, 이렇다 할 표정 하나 없는 촌은 유희경이 매창의 손을 잡고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방으로 이끌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촌은이 다짜고짜 매창의 옷고름을 풀기 시작했다.

손이 잠시 스치는 것 같더니 바로 매창의 가슴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매창은 촌은이 그리도 서두르는 이유를 알 만했다. 

자신의 사무침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 생각하고 가만히 그에게 몸을 맡기며 행동을 주시했다.

그러나 촌은은 옷을 벗기는가 싶더니 갑자기 매창의 가슴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휘젓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후 자신의 가슴 속에서 살이 토실토실 오른 보름달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매창이 의아한 시선으로 촌은과 보름달을 번갈아 보았다.

촌은의 행동도 행동이려니와 느닷없이 자신의 가슴 속에서 보름달은 또 웬 것이란 말인가.

“보아라, 나의 마음을 밤마다 와서 가져가더니 이렇게 살이 토실토실 올랐구나.”

촌은이 그 달을 가슴에 품더니 급히 열려진 방문을 통해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매창은 옷고름이 풀린 채 촌은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허공을 휘적거릴 뿐 아무 것도 스치지 않았다.

“나리! 나으리!”

오매불망 그리던 연인을 그대로 보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급히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묘한 일이었다.

닿을 듯 닿을 듯 보이는 촌은과의 거리가 자꾸 멀어지고 있었다. 그를 놓칠세라 한층 더 빨리 뒤를 따랐다. 

자나깨나 잊지 못했던 연인이 매창의 처절한 몸부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을 벗어나더니 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을을 벗어나자 숲길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다시 한 번 매창이 촌은을 부르며 손을 뻗었다.

한순간 그 손이 촌은에게 닿았다 싶었는데, 잡힌 것은 바짝 마른 나무 가지였고, 그것에 손이 닿자마자 하얀 피가 솟구쳤다.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물러서는데 촌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만치 가고 있었다. 

요상한 꿈

그 모습을 바라보자 마치 몸이 굳은 듯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사라져가는 촌은의 모습을 바라보며 시선을 자신의 가슴으로 주었다.

보름달이 빠져나간 그 자리에 휑하니 구멍이 나 있었고 그 구멍에서 하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으리! 어찌 제게 이러십니까. 어찌….”

매창은 흐느끼고 있었다. 아니, 절규에 가깝도록 울부짖으며 흐르는 하얀 피를 두 손으로 막고 있었다.

한참을 울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일어나 고개를 들었다. 그곳은 숲이 아닌 바로 자신의 방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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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