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불매운동> 덕 본 기업들 어디?

“물 들어올 때 노 젓자”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일본 정부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무역 갈등이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토종 브랜드가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한국 브랜드는 애국 마케팅, 할인 행사 등으로 ‘반일 특수’를 톡톡히 누리는 모습이다.
 

온라인과 SNS를 타고 일본 불매운동 기업 목록이 빠르게 확산 중이다. 이 목록에는 자동차·전자·의류·맥주·편의점 등 일상생활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제품들이 총망라됐다. 누리꾼들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상징하는 ‘노’(NO)라는 로고를 공유하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NO’라는 영문의 ‘O’는 일장기를 형상화했으며 ‘보이콧 재팬’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함께 적혀 있다. 

전 품목에 해당
반사이익 최고

업계에 따르면 불매운동 여파로 맥주를 비롯해 패션, 식음료 등 다양한 일본산 제품들의 매출은 감소한 반면, 애국 마케팅을 펼친 업체들은 반사이익 효과를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대형마트, 편의점 등에선 아사히·기린 등 일본 맥주들의 매출이 20% 가까이 떨어졌고, 불매운동 대표 브랜드로 지목된 ‘유니클로’도 매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본사 지분율이 99.96%인 신발 편집숍 ABC마트코리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일본 기업이 지분 100%를 보유한 한국미니스톱도 불매운동 리스트에 오르며 점주들의 매출 타격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자 토종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일부 업체들은 ‘애국 마케팅’에 불을 지피고 있다.
 

▲ 모나미와 탑텐

신성통상이 운영하는 ‘탑텐’이 대표적이다. 탑텐은 올해 2월 대한민국 100주년 기념 티셔츠를 기획·제작해 완판한 데 이어 오는 8월15일 광복절을 앞두고 ‘광복절 기념 티셔츠’를 출시해 주목받고 있다. 이 제품은 지난달 5일 출시돼 현재까지 1만장이 판매됐다.

이는 기존 프로젝트 제품보다 2배 정도 빠른 판매 속도로 판매율은 현재까지 75%다.

탑텐은 일본 불매운동이 시작될 무렵부터 애국 마케팅을 강조한 홍보활동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특히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이 2012년 탑텐 론칭 당시 “한국 시장에 파고드는 일본 SPA 브랜드를 견제하기 위해 그에 못지않은 소재 개발과 아이템으로 당당히 경쟁하겠다”고 말했던 것을 적극 홍보하며, 소비자들에게 국내 대표 SPA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사상 최대 불매운동…전 품목 매출 감소
애국 마케팅으로 반사이익…횡재한 기업들

신성통상 관계자는 “탑텐은 역사와 사회 문제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 매년 삼일절, 광복절, 독도의날, 군함도 관련 프로모션 등을 적극 펼치고 있다”며 “올 초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프로젝트 티셔츠 출시 때도 SNS를 통해 역사에 대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고 소통하며 2030세대들의 열렬한 지지와 관심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랜드월드도 최근 SPA 브랜드인 ‘스파오’가 토종 브랜드라는 점을 앞세워 토종 캐릭터인 ‘로보트 태권브이’와 협업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로보트 태권브이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적용해 ‘뉴트로’ 감성으로 재해석한 반팔 티셔츠, 에코백 등으로 제작됐다.
 

이랜드월드 관계자는 “스파오와 로보트 태권브이는 일본 및 글로벌 브랜드들이 장악하던 국내 시장서 토종 콘텐츠로서 자존심을 지켜온 국가대표 브랜드”라며 “이번 컬래버레이션은 상징적 의미가 깊다”고 밝혔다. 


이어 “스파오는 2009년 국내 토종 SPA 브랜드로 일본과 유럽 브랜드가 강세를 보이는 SPA 시장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며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맞이하는 제74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마련한 이번 컬래버레이션은 3040세대에게는 추억에 대한 향수를 불러오고, 1020세대에게는 한국판 로봇캐릭터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니클로 대체는?
속옷까지 국산

BYC는 공식 자료를 통해 여름철 인기 제품인 ‘보디드라이’의 판매량이 최근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알림과 동시에 자사가 토종 기업이라는 점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BYC 관계자는 “BYC는 1946년 광복 이듬해에 설립돼 73년간 한국 내 산업의 역사와 함께 달려온 국내 토종기업”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표 볼펜 생산기업인 모나미도 일본산 문구류 불매운동의 수혜주로 각광받고 있다. 모나미는 1000원 이상의 국내 필기용품 시장서 일본 제품에 밀렸으나, 최근 불매운동 여파로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롯데주류 등 국내 주류 업체들도 ‘맥주 마케팅’에 더욱더 힘을 쏟고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맥주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본 제품 불매운동 분위기가 번지며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오비맥주는 이달 31일까지 대표 제품인 ‘카스’와 발포주 신제품 ‘필굿’을 대상으로 한시적 판촉행사를 실시한다. 카스 맥주의 경우 이 기간 출고가를 약 4∼16% 인하해 공급한다. 카스 병맥주 500㎖를 기준으로 보면 출고가가 현행 1203원서 1147원으로 4.7% 내려간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경기둔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맥주가 가장 많이 팔리는 여름 성수기에 소비자와 소상공인들이 직접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판촉행사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오비맥주는 같은 기간 발포주 필굿의 가격도 355㎖캔은 10%, 500㎖캔은 41%가량 낮춰 도매사에 공급할 예정이다. 인하된 출고가가 적용되면 355㎖ 캔의 경우 대형마트에서 ‘12캔에 9000원’ 판매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류업체 동참
마케팅 전쟁

하이트진로는 ‘청정라거-테라’의 여름 광고를 최근 공개하고 시장 공략을 위한 활동을 강화한다고 선언했다.

새 광고는 지난달 초부터 지상파, 케이블, 디지털 매체 등을 통해 방영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무더운 여름철에 청량감을 더할 청정라거-테라의 특장점을 알리고 브랜드 인지도를 강화해 초기 돌풍을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테라는 지난 3월21일 출시 이후 101일 만에 1억병 판매 기록을 세우는 등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맥주를 대체하는 성격이 강한 발포주 라인업도 강화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25일 국내 최초로 밀을 원료로 한 신개념 발포주 ‘필라이트 바이젠’(Filite WEIZEN)을 선보였다. 필라이트 바이젠은 기존 필라이트, 필라이트 후레쉬를 즐기는 소비자층은 물론 밀 맥주를 선호하는 음용층을 겨냥한 제품이다. 다양한 소비자의 니즈와 입맛을 반영한 라인업을 구성, 발포주 소비층을 더욱 확대하며 시장 내 경쟁우위를 강화한다는 목표다. 


지난 2017년 출시된 국내 첫 발포주 필라이트는 뛰어난 가성비와 우수한 품질력으로 초기 판매 돌풍을 일으키며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롯데주류 역시 피츠·클라우드 등 자사 제품들을 앞세워 소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클라우드는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8일까지 열리는 ‘한강몽땅 여름축제’에 참여해 차별화된 문화이벤트를 운영 중이다. ‘피츠 수퍼클리어’는 지난달 20∼21일 서울시 송파구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서 열린 ‘2019 워터밤 서울’ 페스티벌에 공식 후원 맥주브랜드로 참여하기도 했다. 

밉보인 유니클로…토종 브랜드 도약
수혜 보고 있지만…매출 상승이 관건

롯데주류는 또 휴가철을 맞아 다양한 맥주 쿨러백(Cooler Bag) 패키지를 출시했다. 쿨러백 패키지는 맥주를 시원한 상태로 손쉽게 운반할 수 있는 패키지로 무더운 여름 휴가철, 야외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제품이다. 롯데주류는 캔맥주 6개로 구성된 ‘미니 패키지’를 준비하는가 하면, 가방처럼 멜 수 있는 ‘피츠 백팩 쿨러백’ 등을 소개해 이목을 끌고 있다.  

업계에선 유통가에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 분위기가 번지며, 올여름 국산 업체 간 ‘맥주 전쟁’이 유난히 뜨겁다고 진단하고 있다. 실제 수입맥주 카테고리서 1위를 달리던 일본 아사히 맥주의 경우 편의점·대형마트 등에서 판매가 크게 줄며 고전하고 있다.

일부 매장에서는 일본산 제품의 판매가 50% 이상 줄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는 오비맥주가 ‘성수기에 가격 할인’이라는 이례적인 카드를 꺼내든 배경이기도 하다. 오비맥주는 지난 3월 카스·카프리 등 맥주 제품들의 출고가를 평균 5.3% 인상했으나, 4개월여 만에 가격정책을 바꿨다. 최근 일본맥주의 점유율 하락을 ‘큰 기회’로 판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오비맥주 측은 “무역분쟁 등으로 인해 국산제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시점에 이번 특별할인 행사가 국산맥주에 대한 소비촉진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맥주 시장서 특히 일본산 제품의 하락세가 돋보이는 것은 국산맥주나 다른 국가의 맥주 등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라며 “‘4캔에 1만원’ 공세에 한동안 주춤했던 국산맥주 브랜드 입장에선 반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기회”라고 전했다.  

수혜 어디까지?
아직 키져봐야…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맞물려 의미가 큰 해인 데다 최근 한일 간 갈등으로 불매운동 움직임이 점차 확산되면서 업체들이 애국 마케팅을 펼치기에 부담이 덜한 편”이라며 “국내 토종기업들이 일본산 제품의 불매운동으로 인한 수혜를 톡톡히 보고 있지만, 실제 매출로 연결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