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진실 물고 있는 배익기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8.05 09:36:11
  • 호수 12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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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국보급 보물인 해례본 상주본을 둘러싸고 정부와 배익기씨가 10년 넘게 씨름하고 있다. 대법원은 국가에게 상주본의 소유권이 있다고 최종 판결했다. 상주본 행방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소장자 배익기씨는 반환의 대가로 1000억원 보상을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글날을 앞두고 상주본의 향방은 여전히 오리무중 상태다. 
 

▲ 배익기씨

지난 2008년 처음 공개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소유권을 둘러싼 민사소송서 대법원은 해례본 상주본이 국가 소유라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가 “국가에 넘겨줄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1조원 이상
10분의 1만?

지난달 11일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는 배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청구의 소송 상고심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초 상주본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상주본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2008년 배씨가 자신의 집을 수리하던 중 같은 판본을 발견했다고 공개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상주본 반환은 앞으로도 지난할 것으로 보인다. 상주본을 소장하고 있는 배씨가 쉽사리 정부에게 넘겨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배씨는 상주본의 위치와 정보 공개를 거부하며 1000억원을 주면 내주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씨는 “주운 돈도 5분의 1은 찾은 사람에게 준다”며 “상주본은 가치가 1조원 이상이기 때문에 10분의 1만 받아도 1000억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엔 제3의 독지가가 배씨에게 상주본의 대가로 상당 금액을 제시했고, 돈을 받으면 상주본을 넘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문화재청은 대법원 판결을 바탕으로 금전적 보상을 통해 상주본을 회수하는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재판 결과를 배씨에게 통지해 온전하게 문화재를 반환하도록 설득할 것”이라면서도 “배씨가 계속 상주본 반환을 거부하면 강제집행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동시에 문화재 은닉 및 훼손죄로 검찰 고발 조치도 예정돼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주본의 가치로 평가된 ‘1조원설’에 대해 오도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감정 당시 8000억원으로 평가된 ‘직지심체요절’보다 상징적 의미가 있는 훈민정음의 가치가 더 높아야 된다는 의미서 1조원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장은 배씨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와 압수수색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회수 방안에 대해 고심 중이다. 문화재청은 상주본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서 무리한 강제집행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반환 협상이 되지 않은 상태서 압수수색을 벌이게 되면 자칫 상주본이 훼손될 수 있다”며 “(배씨와의) 반환 협상을 우선으로 하되, 강제집행을 하는 방안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1000억원 주면 반환하겠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흥정?

배씨도 현재 대화의 가능성은 열어 놓은 상태다. 다만 배씨는 상주본 반환에 대한 대가로 1000억원을 요구한 자신의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상주본 반환 시 박물관 명예관장 자리와 여타 예우를 해주겠다는 정부 측 제안에 “소유권 무효화 소송까지 생각하고 있다. 제대로 된 진상 조사 후에 감정평가를 받겠다”며 “돈과 명예는 누구나 다 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배씨는 상주본에 엮인 10년 이상의 소송 때문에 결혼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를 물려줄 후손도 없어 양보안을 제시했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배씨는 “소송 십몇 년 하니까 결혼도 못했다. 대대로라는 말도 좀 웃기는 말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나도 모르는 자식이 어디 있을 리도 없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상주본을 바로)주면 칭찬할 사람도 없이 당연히 줬다는 식으로 여겨질 것 아닌가. 그래서 양보안을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씨는 상주본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발견 당시에도 완벽한 보존 상태가 아니었던 상주본은 설상가상 2015년 3월 배씨 집에 불이 났을 때 일부가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씨는 “제가 알기로는 이게 완전한 본으로는 총 33장이다. 그런데 책장 세보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면서도 “훈민정음 간송본처럼 상주본도 어차피 다 완전한 것은 아니다”라고 현재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내비쳤다. 배씨는 줄곧 상주본이 29엽(장) 정도 남아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항간에 13엽이라는 소문이 있다’는 의혹에 “13엽은 넘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이에 대한 검증은 거절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이날 방송서 배씨가 상주본을 국가에 반환하는 대가로 국립한국박물관 명예관장 자리와 한글세계문화재단서의 적절한 예우 등을 제안했다. 안 의원은 배씨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문화재청과의 사이서 적극 중재하겠다고도 밝혔다. 상주본의 가치 판단을 위한 감정평가도 제시했다.

실제 가치는
얼마나 되나

하지만 배씨는 “소유권 무효화 소송까지 생각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이어 “(진상 조사를 해야)내가 (상주본을)소유하든지, 감정평가를 받든지, 헌납을 하든지 그게 결정이 나올 거 아닌가?”라며 감정평가는 그 이후라고 못 박았다.
 

▲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배씨가 1000억원을 요구하며 상주본 반환을 거부하면서, 국보급 보물인 상주본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어떤 것이고, 얼마나 중요한 유물이길래 정부는 한 개인을 상대로 10년 넘게 씨름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이 보물은 어디에 있다가 배씨의 소유가 된 것일까.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와 ‘해례’로 나누어져 있다.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으며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해례는 성삼문, 박팽년 등 세종을 보필하며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원리와 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글자를 만든 원리가 설명된 일종의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이 창제된 지 3년이 지난 세종 28년(1446년) 발행됐다. 당초 여러 부가 제작됐으나 일제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인 우리말과 글에 대한 탄압 정책으로 인해 대부분 소실됐다. 

1940년 경북 안동의 고가서 발견된 것을 간송 전형필 선생이 거액을 주고 사들였다. 이후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됐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전형필 선생이 보존한 간송본(간송미술관 소장)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해례본으로 알려졌다.


사건은 경북 상주시에 거주하는 배씨가 2008년 7월 간송본과 다른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냈다고 방송에 공개해 그 존재가 알려지며 시작됐다. 2008년 배씨가 자신의 집을 수리하던 중 같은 판본을 발견했다고 공개하면서 화제를 모은 것.

상주서 발견돼 상주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판본은 간송본에 비해 보존상태가 좋고, 16세기에 표제와 주석이 새롭게 더해져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몰라” 발뺌
환수 작업 돌입

배씨는 골동품업자 조용훈(2012년 사망)씨 가게서 고서적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해례본의 존재가 알려지자 두 사람은 소유권을 놓고 첨예하게 다퉜다. 조씨가 “배씨가 고서 2박스를 30만원에 구입하면서 상주본을 몰래 가져갔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소송전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소유권을 확보한 조씨는 사망하기 전인 2012년 5월 기증식까지 갖고 실체가 없는 해례본 상주본을 국가(문화재청)에 기증했다. 이로써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소유자는 국가가 됐다. 

검찰은 민사판결을 근거로 배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절도)로 구속기소했다. 그는 1심서 징역 10년형을 받았지만, 항소심 재판부 및 대법원은 공소사실 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를 근거로 배씨는 “문화재청의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며 이번 소송을 냈지만, 1·2심 재판부는 “형사판결이 (상주본의)소유권을 인정한 판결은 아니다”라고 봤다.

그런데 재판 과정서 재판부가 상주본의 가치와 형량이 관계가 있다면서 문화재청에 그 가치를 물으면서 ‘돈 문제’가 얽히기 시작했다. 문화재청은 재판부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의 평가액 8000억원이라는 점에 근거해 해례본 상주본의 가치를 1조원이라고 밝혔다.

당시 직지 평가액 8000억원은 직지와 관련된 이벤트, 전시, 출판 등 경제 유발 효과까지 합친 것이었다.

배씨가 해례본 상주본을 국가에 헌납할 시 1000억원을 달라고 요구한 것도 ‘1조원의 10분의 1’이라는 계산서 나온 것이다. 해례본 상주본은 배씨가 소장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 10년째 행방이 묘연하다. 문화재청은 1000억원을 주면 상주본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배씨와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2008년 이후 훼손 방지와 공개 등을 위해 문화재청은 독려·설득 중이나 배씨는 공개 및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현재까지 현장면담 42회, 문서발송 11회 등 지속적 설득작업을 벌여왔다. 또 소유권이 국가에 있으므로 국가 예산으로 보상하는 방식은 곤란하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입장이다. 

10년째 오리무중…도대체 어디 있나
대법원은 문화재청 소유 인정 결정

배씨는 상주본의 법적 소유권자인 국가가 2017년 “상주본을 넘겨주지 않으면 반환소송과 함께 문화재 은닉에 관한 범죄로 고발하겠다”고 통보하자, 국가를 상대로 ‘청구이의의 소’를 냈다. 

지난달 15일 대법원은 훈민정음 상주본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며 배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서 원심 청구 기각을 확정했다. 대법원이 문화재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와 별도로 배씨는 최근 서울에 있는 법무법인을 통해 상주본 소유권을 판단한 민사재판과 자신이 절도 혐의로 재판받을 때 증인으로 나온 3명을 검찰에 고소했다. 그는 당시 증인들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해 재판부가 상주본의 소유권을 조씨에게 있다고 판단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심을 통해 또다시 법적 소유권을 다투려는 노림수였다. 대구지검은 지난 5월 A씨 등 3명에 대해 각각 ‘공소권 없음’과 ‘혐의 없음’ 판단을 내렸다. 이에 배씨는 대구고검에 항고했지만 재판이 열릴 가능성은 낮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검찰 관계자는 “고소인(배씨) 자신도 상주본의 실물을 제시하지 않는 등 위증 혐의를 입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5년 3월에 배씨의 경북 상주시 자택서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은 화재현장 정밀감식 작업을 벌여 방 2칸과 거실 등이 소실된 것은 확인했으나 상주본 소실 여부는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7년 배씨는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면서 ‘실체를 보여준다’며 상주본을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나 공개한 훈민정음 상주본의 사진은 불에 그을린 모습이었다. 배씨는 “2015년 3월 집에서 일어난 화재 때문에 상주본 일부가 훼손됐다”고 밝혔다.

이후 상주본은 또다시 꽁꽁 숨겨져 있다. 얼만큼 불에 탔는지, 또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배씨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10년 이어온
소유권 분쟁

문화재청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유자인 배씨에게 지난달 17일 상주본 반환 거부 시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통보를 했다고 밝혔다. 

도중필 문화재청 안전기준과장과 한상진 사범단속반장은 이날 경북 상주서 배씨를 만나 상주본 반환 요청 문서를 전달하고, 조속한 반환을 요구했다. 문서에는 배씨가 제기한 강제집행 불허 청구를 대법원이 지난달 15일 기각한 만큼 훈민정음 상주본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는 사실이 재확인됐고, 문화재를 계속 은닉하고 훼손할 경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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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