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진실 물고 있는 배익기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8.05 09:36:11
  • 호수 12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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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국보급 보물인 해례본 상주본을 둘러싸고 정부와 배익기씨가 10년 넘게 씨름하고 있다. 대법원은 국가에게 상주본의 소유권이 있다고 최종 판결했다. 상주본 행방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소장자 배익기씨는 반환의 대가로 1000억원 보상을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글날을 앞두고 상주본의 향방은 여전히 오리무중 상태다. 
 

▲ 배익기씨

지난 2008년 처음 공개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소유권을 둘러싼 민사소송서 대법원은 해례본 상주본이 국가 소유라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가 “국가에 넘겨줄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1조원 이상
10분의 1만?

지난달 11일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는 배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청구의 소송 상고심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초 상주본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상주본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2008년 배씨가 자신의 집을 수리하던 중 같은 판본을 발견했다고 공개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상주본 반환은 앞으로도 지난할 것으로 보인다. 상주본을 소장하고 있는 배씨가 쉽사리 정부에게 넘겨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배씨는 상주본의 위치와 정보 공개를 거부하며 1000억원을 주면 내주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씨는 “주운 돈도 5분의 1은 찾은 사람에게 준다”며 “상주본은 가치가 1조원 이상이기 때문에 10분의 1만 받아도 1000억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엔 제3의 독지가가 배씨에게 상주본의 대가로 상당 금액을 제시했고, 돈을 받으면 상주본을 넘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문화재청은 대법원 판결을 바탕으로 금전적 보상을 통해 상주본을 회수하는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재판 결과를 배씨에게 통지해 온전하게 문화재를 반환하도록 설득할 것”이라면서도 “배씨가 계속 상주본 반환을 거부하면 강제집행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동시에 문화재 은닉 및 훼손죄로 검찰 고발 조치도 예정돼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주본의 가치로 평가된 ‘1조원설’에 대해 오도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감정 당시 8000억원으로 평가된 ‘직지심체요절’보다 상징적 의미가 있는 훈민정음의 가치가 더 높아야 된다는 의미서 1조원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장은 배씨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와 압수수색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훼손 우려 등을 이유로 회수 방안에 대해 고심 중이다. 문화재청은 상주본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서 무리한 강제집행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반환 협상이 되지 않은 상태서 압수수색을 벌이게 되면 자칫 상주본이 훼손될 수 있다”며 “(배씨와의) 반환 협상을 우선으로 하되, 강제집행을 하는 방안도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1000억원 주면 반환하겠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흥정?

배씨도 현재 대화의 가능성은 열어 놓은 상태다. 다만 배씨는 상주본 반환에 대한 대가로 1000억원을 요구한 자신의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상주본 반환 시 박물관 명예관장 자리와 여타 예우를 해주겠다는 정부 측 제안에 “소유권 무효화 소송까지 생각하고 있다. 제대로 된 진상 조사 후에 감정평가를 받겠다”며 “돈과 명예는 누구나 다 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배씨는 상주본에 엮인 10년 이상의 소송 때문에 결혼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를 물려줄 후손도 없어 양보안을 제시했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배씨는 “소송 십몇 년 하니까 결혼도 못했다. 대대로라는 말도 좀 웃기는 말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나도 모르는 자식이 어디 있을 리도 없을 것”이라며 “그렇다고 (상주본을 바로)주면 칭찬할 사람도 없이 당연히 줬다는 식으로 여겨질 것 아닌가. 그래서 양보안을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씨는 상주본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발견 당시에도 완벽한 보존 상태가 아니었던 상주본은 설상가상 2015년 3월 배씨 집에 불이 났을 때 일부가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씨는 “제가 알기로는 이게 완전한 본으로는 총 33장이다. 그런데 책장 세보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면서도 “훈민정음 간송본처럼 상주본도 어차피 다 완전한 것은 아니다”라고 현재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내비쳤다. 배씨는 줄곧 상주본이 29엽(장) 정도 남아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항간에 13엽이라는 소문이 있다’는 의혹에 “13엽은 넘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이에 대한 검증은 거절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이날 방송서 배씨가 상주본을 국가에 반환하는 대가로 국립한국박물관 명예관장 자리와 한글세계문화재단서의 적절한 예우 등을 제안했다. 안 의원은 배씨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문화재청과의 사이서 적극 중재하겠다고도 밝혔다. 상주본의 가치 판단을 위한 감정평가도 제시했다.

실제 가치는
얼마나 되나

하지만 배씨는 “소유권 무효화 소송까지 생각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이어 “(진상 조사를 해야)내가 (상주본을)소유하든지, 감정평가를 받든지, 헌납을 하든지 그게 결정이 나올 거 아닌가?”라며 감정평가는 그 이후라고 못 박았다.
 

▲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배씨가 1000억원을 요구하며 상주본 반환을 거부하면서, 국보급 보물인 상주본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어떤 것이고, 얼마나 중요한 유물이길래 정부는 한 개인을 상대로 10년 넘게 씨름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이 보물은 어디에 있다가 배씨의 소유가 된 것일까.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와 ‘해례’로 나누어져 있다.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으며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해례는 성삼문, 박팽년 등 세종을 보필하며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원리와 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글자를 만든 원리가 설명된 일종의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이 창제된 지 3년이 지난 세종 28년(1446년) 발행됐다. 당초 여러 부가 제작됐으나 일제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인 우리말과 글에 대한 탄압 정책으로 인해 대부분 소실됐다. 

1940년 경북 안동의 고가서 발견된 것을 간송 전형필 선생이 거액을 주고 사들였다. 이후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됐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전형필 선생이 보존한 간송본(간송미술관 소장)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해례본으로 알려졌다.


사건은 경북 상주시에 거주하는 배씨가 2008년 7월 간송본과 다른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냈다고 방송에 공개해 그 존재가 알려지며 시작됐다. 2008년 배씨가 자신의 집을 수리하던 중 같은 판본을 발견했다고 공개하면서 화제를 모은 것.

상주서 발견돼 상주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판본은 간송본에 비해 보존상태가 좋고, 16세기에 표제와 주석이 새롭게 더해져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몰라” 발뺌
환수 작업 돌입

배씨는 골동품업자 조용훈(2012년 사망)씨 가게서 고서적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해례본의 존재가 알려지자 두 사람은 소유권을 놓고 첨예하게 다퉜다. 조씨가 “배씨가 고서 2박스를 30만원에 구입하면서 상주본을 몰래 가져갔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소송전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소유권을 확보한 조씨는 사망하기 전인 2012년 5월 기증식까지 갖고 실체가 없는 해례본 상주본을 국가(문화재청)에 기증했다. 이로써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소유자는 국가가 됐다. 

검찰은 민사판결을 근거로 배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절도)로 구속기소했다. 그는 1심서 징역 10년형을 받았지만, 항소심 재판부 및 대법원은 공소사실 부족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를 근거로 배씨는 “문화재청의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며 이번 소송을 냈지만, 1·2심 재판부는 “형사판결이 (상주본의)소유권을 인정한 판결은 아니다”라고 봤다.

그런데 재판 과정서 재판부가 상주본의 가치와 형량이 관계가 있다면서 문화재청에 그 가치를 물으면서 ‘돈 문제’가 얽히기 시작했다. 문화재청은 재판부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의 평가액 8000억원이라는 점에 근거해 해례본 상주본의 가치를 1조원이라고 밝혔다.

당시 직지 평가액 8000억원은 직지와 관련된 이벤트, 전시, 출판 등 경제 유발 효과까지 합친 것이었다.

배씨가 해례본 상주본을 국가에 헌납할 시 1000억원을 달라고 요구한 것도 ‘1조원의 10분의 1’이라는 계산서 나온 것이다. 해례본 상주본은 배씨가 소장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 10년째 행방이 묘연하다. 문화재청은 1000억원을 주면 상주본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배씨와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2008년 이후 훼손 방지와 공개 등을 위해 문화재청은 독려·설득 중이나 배씨는 공개 및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현재까지 현장면담 42회, 문서발송 11회 등 지속적 설득작업을 벌여왔다. 또 소유권이 국가에 있으므로 국가 예산으로 보상하는 방식은 곤란하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입장이다. 

10년째 오리무중…도대체 어디 있나
대법원은 문화재청 소유 인정 결정

배씨는 상주본의 법적 소유권자인 국가가 2017년 “상주본을 넘겨주지 않으면 반환소송과 함께 문화재 은닉에 관한 범죄로 고발하겠다”고 통보하자, 국가를 상대로 ‘청구이의의 소’를 냈다. 

지난달 15일 대법원은 훈민정음 상주본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며 배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서 원심 청구 기각을 확정했다. 대법원이 문화재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와 별도로 배씨는 최근 서울에 있는 법무법인을 통해 상주본 소유권을 판단한 민사재판과 자신이 절도 혐의로 재판받을 때 증인으로 나온 3명을 검찰에 고소했다. 그는 당시 증인들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해 재판부가 상주본의 소유권을 조씨에게 있다고 판단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심을 통해 또다시 법적 소유권을 다투려는 노림수였다. 대구지검은 지난 5월 A씨 등 3명에 대해 각각 ‘공소권 없음’과 ‘혐의 없음’ 판단을 내렸다. 이에 배씨는 대구고검에 항고했지만 재판이 열릴 가능성은 낮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검찰 관계자는 “고소인(배씨) 자신도 상주본의 실물을 제시하지 않는 등 위증 혐의를 입증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5년 3월에 배씨의 경북 상주시 자택서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은 화재현장 정밀감식 작업을 벌여 방 2칸과 거실 등이 소실된 것은 확인했으나 상주본 소실 여부는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7년 배씨는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면서 ‘실체를 보여준다’며 상주본을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나 공개한 훈민정음 상주본의 사진은 불에 그을린 모습이었다. 배씨는 “2015년 3월 집에서 일어난 화재 때문에 상주본 일부가 훼손됐다”고 밝혔다.

이후 상주본은 또다시 꽁꽁 숨겨져 있다. 얼만큼 불에 탔는지, 또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배씨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10년 이어온
소유권 분쟁

문화재청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유자인 배씨에게 지난달 17일 상주본 반환 거부 시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통보를 했다고 밝혔다. 

도중필 문화재청 안전기준과장과 한상진 사범단속반장은 이날 경북 상주서 배씨를 만나 상주본 반환 요청 문서를 전달하고, 조속한 반환을 요구했다. 문서에는 배씨가 제기한 강제집행 불허 청구를 대법원이 지난달 15일 기각한 만큼 훈민정음 상주본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는 사실이 재확인됐고, 문화재를 계속 은닉하고 훼손할 경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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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