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받는’ 오세훈 등판론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8.05 09:31:23
  • 호수 12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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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새 사무실, 책사만 들락날락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가운데 ‘오세훈 등판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현재의 자유한국당 상황이 그렇다. 예상보다 빠른 위기다. 지나가는 파도일까, 모든 것을 휩쓸 쓰나미일까. <일요시사>는 한국당 내부 민심을 밀착 취재했다.
 

▲ 최근 자유한국당 황교안호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가운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등판론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황교안 체제는 지난 2월에 출범했다. 당시 득표율을 보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당원들이 황 대표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했는지 알 수 있다(황교안 50.0%·오세훈 31.1%·김진태 18.9%). 전당대회가 있기 전 <일요시사>는 복수의 당 대표 출마 희망자를 만났었다. 그들이 하는 얘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황색물결(황 대표의 기세)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지역에서 당원들의 민심을 살핀 뒤 나온 말이었다.

꺼져가는
기대감

하지만 여의도 민심은 차이가 있었다. 기대감보다는 우려가 컸다. 원외 신분의 정치 신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오랫동안 정치의 속성을 지근거리서 봐왔던 사람들은 황 대표를 냉정하게 바라봤다.

전당대회 직후 한국당 의원실 보좌진은 “당원들 사이에서는 황색물결이 대세다. 그런데 잘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의원실 보좌진은 다음과 같이 내다봤었다.


“황 대표가 총선까지 쭉 갈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벌써부터 친황(친 황교안)계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 공천 챙겨주고 전당대회 때 도와준 사람들 공천 챙겨줘야 하는데, 그러다가는 바로 역풍 맞는다. 총선 전에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기회가 열릴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당원들의 민심보다는 여의도 민심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선 후 30%대까지 회복됐던 한국당 지지율이 최근 10%대로 급락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3∼25일 전국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한국당의 지지율은 19%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황 대표의 리더십이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지지율 19%는 황 대표의 취임 직전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와 같다. 즉 당선 후 황 대표에게 쏟아졌던 기대감이 지금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는 뜻이다. 한국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자체 지지율 조사서도 당 지지율이 20% 안팎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한국당이 겪고 있는 ‘내우외환’이다. 한국당은 최근 심각한 ‘내우’를 앓고 있다.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당의 ‘친박 회귀’ 노선을 앞장서서 비판하고 나서면서 표면화됐다.

이는 ‘황교안 리더십’에 대한 불만과 맥을 같이한다. 황 대표는 최근 주요 당직과 상임위원장 등 한국당 몫의 국회 요직에 범친박계 인사들을 꽂아 넣었다. 앞서 당 사무총장 인선 과정서 비박계 이원복 의원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친박계가 들고일어나면서 결국 박맹우 의원이 낙점됐다.

지난달 5일에는 비박계 황영철 의원이 맡고 있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친박계 김재원 의원을 임명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당 지도부가 우리공화당(이하 공화당)과의 선거연대를 논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황 대표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박맹우 신임 사무총장 등이 우리공화당 홍문종 대표와 회동을 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은 내년 총선서 수도권 선거구 10석가량과 대구·경북(TK) 일부를 공화당에 양보하는, 이른바 ‘연합공천’ 등 선거연대 방안을 논의했다.

당 지도부가 해명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박 사무총장은 관련 보도가 나온 즉시 이를 부인했으나, 4시간 만에 참석 사실을 인정했다. “모임에 잠시 참석한 적은 있지만 선거연대 등에 대해선 논의한 바 없다”는 것이다. 갈지자 행보는 수많은 의구심을 낳게 했다. 

한국당과 공화당의 선거연대설은 친박계의 당직 독식과 맞물려 비박계에 큰 위기감을 줬다. 새누리당 시절의 힘을 되찾은 친박계가 공화당과 선거연대에 관한 논의를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어서다.

위기감을 느낀 비박계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개혁성향의 비박계 장제원 의원은 지난달 26일 “한국당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2016년의 새누리당으로 돌아가고 있다. 당 핵심부를 모두 장악하더니 급기야 공화당과 공천 나눠먹기를 논의했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예상 적중
여의도 민심

지난달 30일에는 “노선과 좌표가 명확하지 않으니 과거 세력들의 반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구체제의 부활이 가능할 것 같은 착각과 기이한 악재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승민계로 통하는 비박계 김세연 의원 역시 지난달 30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한국당이 도로 친박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부인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 우려되는 점들이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최근 친박계로부터 여의도연구소장직 사퇴 요구를 받은 바 있다.

최근 왕성한 활동으로 몸값을 올리고 있는 홍준표 전 대표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모두가 힘을 합쳐 (보수)빅텐트를 만들어도 좌파 연합을 이기기 어려운 판인데, 극우만 바라보면서 나날이 도로 친박당으로 쪼그라들고 있으니 국민들이 점점 외면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상황이 이쯤되자 황 대표가 진화에 나섰다. 기자간담회서 ‘친박계가 당직을 독식한다’ ‘도로 친박당이 되는 것 아니냐’ 등의 질문에 “나는 친박에 빚진 것이 없다. 나는 박근혜정부서 일을 한 것이지, 그때 정치를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내가 친박을 키워야겠다는 뜻으로 당에 온 것이 아니다”라고 적극 해명했다. 

지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선 “당을 망치는 계파적 발상과 이기적 정치 행위에 대해서는 때가 되면 반드시 그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까지 했다.

비박계 내부에선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비박계 인사는 <일요시사>에 “공화당과의 접촉이 기폭제”라며 “공화당과의 연대는 ‘TK자민련’으로 가겠다는 뜻이다. 수도권 의원들 중에 비박계가 많다. 뻔히 결과가 보이는데 좌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황교안 리더십 흔들, 지지율 10%대↓
‘내우’ 계파전쟁 ‘외환’ 친일논란


한 비박계 의원은 <노컷뉴스>와의 통화서 “9월까지도 계속 이렇게 간다면 당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결국 한데 모이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모종의 움직임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비박계 내부에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비박계 의원실 보좌진은 “총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황(교안)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졌다”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갈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오 전 시장이 전당대회서 2등을 차지했으니 훌륭한 대안”이라고 귀띔했다.

이른바 ‘오세훈 등판론’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오 전 시장은 지난 전당대회서 31.1%의 득표율을 기록, 2위를 차지했다.

최근 오 전 시장은 총선 준비에 한창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오 전 시장은 자신의 변호사사무실을 광진구 자양동으로 옮겼다. 인재 영입도 한창이다. 한국당 A 의원실서 근무했던 변호사 출신 보좌진이 약 4개월 전 오세훈 변호사사무실로 이직했다. 그는 오 전 시장의 보좌 업무와 변호사 업무를 동시에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지역의 현역 국회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추미애 전 대표다. 추 전 대표의 지역사무실은 자양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추 전 대표의 지역 사무실과 오 전 시장의 변호사사무실은 차로 1분, 도보로 5분 거리다. 
 

▲ 광진을 지역서만 내리 5선을 구가하고 있는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 때문에 일각에선 총선이 본격화되면 오 전 시장의 변호사 사무실이 캠프로 변신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최근 오 전 시장은 유튜브 촬영을 위해 해당 사무실을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선거를 3번 치러본 한 한국당 인사는 <일요시사>에 “보통 캠프는 그 지역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으로 잡는다. 오 전 시장이 사무실을 추 전 대표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잡았다는 것은 제대로 한번 붙어보겠다는 의지”라고 해석했다.

내우외환
사면초가

또 다른 한국당 인사는 “추미애 캠프와 가까운 거리라는 점을 고려하고 사무실을 구했을 것이다. 향후 캠프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오 전 시장이 험지서 살아남는다면 완전 뜨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의 현 직함은 한국당 서울 광진을 당협위원장으로 현재 자양사거리서 파라솔을 편 채 직접 당원 모집에 매진하고 있다. 

추 전 대표가 현역인 서울 광진을은 한국당 입장에선 험지로 이 지역은 항상 진보 정당이 차지해왔다. 추 전 대표는 이 지역서만 5선(15·16·18·19·20대 국회)을 한 터줏대감이다. 한국당은 이 지역을 한 번도 차지한 적이 없다.

어려운 승부가 예상되지만, 만약 오 전 시장이 승리한다면 일약 한국당의 ‘구세주’로 올라설 수 있다. 한국당의 새로운 간판이 됨은 물론, 대권주자로서의 주가도 폭등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으로 예정된 제20대 대선서 대권을 노려봄직한 위치로 올라서는 것이다.

한국당의 외환은 일본 경제보복 사태를 계기로 시작된 ‘친일’ 논란이다. 최근 여권의 ‘친일 프레임’ 공세에 한국당이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토착왜구’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한국당에 대한 친일 프레임에 대해 “지지층 결집효과는 있지만, 지지층 확대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이는 반대로 민주당 내부결속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복수의 비박 “오세훈 부상”
추미애 캠프와 단 1분 거리

친일 프레임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황 대표다. 그가 지난달 24일 ‘일본수출규제대책특별위원회’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이 정권의 친일 프레임이 의도하는 바가 분명하다. 아마 다음 달 광복절까지도 공세를 더 강화해나갈 가능성이 많다. 그 결과가 얼마나 위험할지는 아마 여기 계신 위원님들 여러분께서 더 잘 아시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 신호타이다.
 

▲ 문재인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황 대표의 발언은 사실상의 공격 신호였다. 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황 대표 발언 이후 민주당에 대해 맞불작전을 구사했다. 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문 대통령부터 친일 토착왜구라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곽 의원은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의 상속인들이 지난 1987년 제기한 상속세 취소 소송에 문 대통령이 변호인으로 참여한 점을 내세워 문 대통령이 친일 인사의 소송을 대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문 대통령이 노무현정부 민정수석이던 시절, 친일인명사전서 김지태씨를 빼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문 대통령의)부친은 일제시대에 공무원을 지내며 곡물 수탈을 도왔다는 의혹이 있고, 본인은 국가를 상대로 한 골수 친일파 김지태씨의 후손이 제기한 세금취소 소송의 변호인을 맡아 거액 승소했고, 딸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극우파 현양사가 세운 일본 국사관 대학교에 유학했다는데 이쯤 되면 그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정말 제대로 된, 번듯한 친일파 가문이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잇단 논란에 문 대통령이 직접 입을 열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최근 참모진들과 가진 회의서 당시 승소에 따른 성공 보수를 받지 않았고, 변호사 수임료까지 더해 직원들의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데 썼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한국당 측에서 제기하는 주장을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터줏대감과
정면승부

김씨 친일 논란과 관련해서는 청와대가 해명했다. 한국당 측은 문 대통령이 김씨를 친일인명사전서 제외하는 데 관여했다고 했지만, 청와대는 “김씨가 친일파로 지정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과연 황 대표의 친일 맞불작전은 성공적이었을까. 한국당은 최근 ‘북풍’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친일 맞불작전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친일 프레임을 얘기할수록 지지율은 ‘뚝뚝’ 떨어졌다. 한국당 내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는 또 다른 이유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돌고 돌아 ‘핵무장론’ 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또다시 ‘핵무장론’을 꺼내들었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단골메뉴다.

이번에는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시발점이었다. 한국당은 9·19군사합의 파기, 전술핵무기 재배치, 핵무기 탑재 잠수함 순항 가동, 한미일 핵무기 공동관리 등 사실상 자체 핵무장론에 불을 지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당 소속 국회 외통·국방·정보위원 연석회의를 열고 청와대가 ‘나토(NATO)식 핵 공유’를 적극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당 일본수출규제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정진석 의원은 회의에 참석해 “필요하다면 북한의 핵무장에 맞서서 한미일 삼국이 공동 관리하는 핵잠수함 체제를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경제보복 사태로 한국당이 ‘친일 프레임’에 갇혀 있는 와중에 터진 주장이다. 구도상 불리할 수밖에 없는 친일 논쟁서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 북풍을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당이 국회 국방위·정보위 등을 통해 ‘안보 국회’를 추진한 일도 같은 맥락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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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