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받는’ 오세훈 등판론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8.05 09:31:23
  • 호수 12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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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새 사무실, 책사만 들락날락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가운데 ‘오세훈 등판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현재의 자유한국당 상황이 그렇다. 예상보다 빠른 위기다. 지나가는 파도일까, 모든 것을 휩쓸 쓰나미일까. <일요시사>는 한국당 내부 민심을 밀착 취재했다.
 

▲ 최근 자유한국당 황교안호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가운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등판론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황교안 체제는 지난 2월에 출범했다. 당시 득표율을 보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당원들이 황 대표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했는지 알 수 있다(황교안 50.0%·오세훈 31.1%·김진태 18.9%). 전당대회가 있기 전 <일요시사>는 복수의 당 대표 출마 희망자를 만났었다. 그들이 하는 얘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황색물결(황 대표의 기세)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지역에서 당원들의 민심을 살핀 뒤 나온 말이었다.

꺼져가는
기대감

하지만 여의도 민심은 차이가 있었다. 기대감보다는 우려가 컸다. 원외 신분의 정치 신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오랫동안 정치의 속성을 지근거리서 봐왔던 사람들은 황 대표를 냉정하게 바라봤다.

전당대회 직후 한국당 의원실 보좌진은 “당원들 사이에서는 황색물결이 대세다. 그런데 잘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의원실 보좌진은 다음과 같이 내다봤었다.


“황 대표가 총선까지 쭉 갈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벌써부터 친황(친 황교안)계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 공천 챙겨주고 전당대회 때 도와준 사람들 공천 챙겨줘야 하는데, 그러다가는 바로 역풍 맞는다. 총선 전에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기회가 열릴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당원들의 민심보다는 여의도 민심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선 후 30%대까지 회복됐던 한국당 지지율이 최근 10%대로 급락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3∼25일 전국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한국당의 지지율은 19%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황 대표의 리더십이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지지율 19%는 황 대표의 취임 직전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와 같다. 즉 당선 후 황 대표에게 쏟아졌던 기대감이 지금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는 뜻이다. 한국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자체 지지율 조사서도 당 지지율이 20% 안팎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한국당이 겪고 있는 ‘내우외환’이다. 한국당은 최근 심각한 ‘내우’를 앓고 있다.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당의 ‘친박 회귀’ 노선을 앞장서서 비판하고 나서면서 표면화됐다.

이는 ‘황교안 리더십’에 대한 불만과 맥을 같이한다. 황 대표는 최근 주요 당직과 상임위원장 등 한국당 몫의 국회 요직에 범친박계 인사들을 꽂아 넣었다. 앞서 당 사무총장 인선 과정서 비박계 이원복 의원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친박계가 들고일어나면서 결국 박맹우 의원이 낙점됐다.

지난달 5일에는 비박계 황영철 의원이 맡고 있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친박계 김재원 의원을 임명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당 지도부가 우리공화당(이하 공화당)과의 선거연대를 논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황 대표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박맹우 신임 사무총장 등이 우리공화당 홍문종 대표와 회동을 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은 내년 총선서 수도권 선거구 10석가량과 대구·경북(TK) 일부를 공화당에 양보하는, 이른바 ‘연합공천’ 등 선거연대 방안을 논의했다.

당 지도부가 해명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박 사무총장은 관련 보도가 나온 즉시 이를 부인했으나, 4시간 만에 참석 사실을 인정했다. “모임에 잠시 참석한 적은 있지만 선거연대 등에 대해선 논의한 바 없다”는 것이다. 갈지자 행보는 수많은 의구심을 낳게 했다. 

한국당과 공화당의 선거연대설은 친박계의 당직 독식과 맞물려 비박계에 큰 위기감을 줬다. 새누리당 시절의 힘을 되찾은 친박계가 공화당과 선거연대에 관한 논의를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어서다.

위기감을 느낀 비박계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개혁성향의 비박계 장제원 의원은 지난달 26일 “한국당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2016년의 새누리당으로 돌아가고 있다. 당 핵심부를 모두 장악하더니 급기야 공화당과 공천 나눠먹기를 논의했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예상 적중
여의도 민심

지난달 30일에는 “노선과 좌표가 명확하지 않으니 과거 세력들의 반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구체제의 부활이 가능할 것 같은 착각과 기이한 악재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승민계로 통하는 비박계 김세연 의원 역시 지난달 30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한국당이 도로 친박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부인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 우려되는 점들이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최근 친박계로부터 여의도연구소장직 사퇴 요구를 받은 바 있다.

최근 왕성한 활동으로 몸값을 올리고 있는 홍준표 전 대표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모두가 힘을 합쳐 (보수)빅텐트를 만들어도 좌파 연합을 이기기 어려운 판인데, 극우만 바라보면서 나날이 도로 친박당으로 쪼그라들고 있으니 국민들이 점점 외면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상황이 이쯤되자 황 대표가 진화에 나섰다. 기자간담회서 ‘친박계가 당직을 독식한다’ ‘도로 친박당이 되는 것 아니냐’ 등의 질문에 “나는 친박에 빚진 것이 없다. 나는 박근혜정부서 일을 한 것이지, 그때 정치를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내가 친박을 키워야겠다는 뜻으로 당에 온 것이 아니다”라고 적극 해명했다. 

지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선 “당을 망치는 계파적 발상과 이기적 정치 행위에 대해서는 때가 되면 반드시 그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까지 했다.

비박계 내부에선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비박계 인사는 <일요시사>에 “공화당과의 접촉이 기폭제”라며 “공화당과의 연대는 ‘TK자민련’으로 가겠다는 뜻이다. 수도권 의원들 중에 비박계가 많다. 뻔히 결과가 보이는데 좌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황교안 리더십 흔들, 지지율 10%대↓
‘내우’ 계파전쟁 ‘외환’ 친일논란


한 비박계 의원은 <노컷뉴스>와의 통화서 “9월까지도 계속 이렇게 간다면 당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결국 한데 모이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모종의 움직임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비박계 내부에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비박계 의원실 보좌진은 “총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황(교안)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졌다”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갈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오 전 시장이 전당대회서 2등을 차지했으니 훌륭한 대안”이라고 귀띔했다.

이른바 ‘오세훈 등판론’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오 전 시장은 지난 전당대회서 31.1%의 득표율을 기록, 2위를 차지했다.

최근 오 전 시장은 총선 준비에 한창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오 전 시장은 자신의 변호사사무실을 광진구 자양동으로 옮겼다. 인재 영입도 한창이다. 한국당 A 의원실서 근무했던 변호사 출신 보좌진이 약 4개월 전 오세훈 변호사사무실로 이직했다. 그는 오 전 시장의 보좌 업무와 변호사 업무를 동시에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지역의 현역 국회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추미애 전 대표다. 추 전 대표의 지역사무실은 자양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추 전 대표의 지역 사무실과 오 전 시장의 변호사사무실은 차로 1분, 도보로 5분 거리다. 
 

▲ 광진을 지역서만 내리 5선을 구가하고 있는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 때문에 일각에선 총선이 본격화되면 오 전 시장의 변호사 사무실이 캠프로 변신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최근 오 전 시장은 유튜브 촬영을 위해 해당 사무실을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선거를 3번 치러본 한 한국당 인사는 <일요시사>에 “보통 캠프는 그 지역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으로 잡는다. 오 전 시장이 사무실을 추 전 대표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잡았다는 것은 제대로 한번 붙어보겠다는 의지”라고 해석했다.

내우외환
사면초가

또 다른 한국당 인사는 “추미애 캠프와 가까운 거리라는 점을 고려하고 사무실을 구했을 것이다. 향후 캠프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오 전 시장이 험지서 살아남는다면 완전 뜨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의 현 직함은 한국당 서울 광진을 당협위원장으로 현재 자양사거리서 파라솔을 편 채 직접 당원 모집에 매진하고 있다. 

추 전 대표가 현역인 서울 광진을은 한국당 입장에선 험지로 이 지역은 항상 진보 정당이 차지해왔다. 추 전 대표는 이 지역서만 5선(15·16·18·19·20대 국회)을 한 터줏대감이다. 한국당은 이 지역을 한 번도 차지한 적이 없다.

어려운 승부가 예상되지만, 만약 오 전 시장이 승리한다면 일약 한국당의 ‘구세주’로 올라설 수 있다. 한국당의 새로운 간판이 됨은 물론, 대권주자로서의 주가도 폭등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으로 예정된 제20대 대선서 대권을 노려봄직한 위치로 올라서는 것이다.

한국당의 외환은 일본 경제보복 사태를 계기로 시작된 ‘친일’ 논란이다. 최근 여권의 ‘친일 프레임’ 공세에 한국당이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토착왜구’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한국당에 대한 친일 프레임에 대해 “지지층 결집효과는 있지만, 지지층 확대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이는 반대로 민주당 내부결속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복수의 비박 “오세훈 부상”
추미애 캠프와 단 1분 거리

친일 프레임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황 대표다. 그가 지난달 24일 ‘일본수출규제대책특별위원회’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이 정권의 친일 프레임이 의도하는 바가 분명하다. 아마 다음 달 광복절까지도 공세를 더 강화해나갈 가능성이 많다. 그 결과가 얼마나 위험할지는 아마 여기 계신 위원님들 여러분께서 더 잘 아시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 신호타이다.
 

▲ 문재인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황 대표의 발언은 사실상의 공격 신호였다. 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황 대표 발언 이후 민주당에 대해 맞불작전을 구사했다. 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문 대통령부터 친일 토착왜구라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곽 의원은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의 상속인들이 지난 1987년 제기한 상속세 취소 소송에 문 대통령이 변호인으로 참여한 점을 내세워 문 대통령이 친일 인사의 소송을 대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문 대통령이 노무현정부 민정수석이던 시절, 친일인명사전서 김지태씨를 빼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문 대통령의)부친은 일제시대에 공무원을 지내며 곡물 수탈을 도왔다는 의혹이 있고, 본인은 국가를 상대로 한 골수 친일파 김지태씨의 후손이 제기한 세금취소 소송의 변호인을 맡아 거액 승소했고, 딸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극우파 현양사가 세운 일본 국사관 대학교에 유학했다는데 이쯤 되면 그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정말 제대로 된, 번듯한 친일파 가문이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잇단 논란에 문 대통령이 직접 입을 열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최근 참모진들과 가진 회의서 당시 승소에 따른 성공 보수를 받지 않았고, 변호사 수임료까지 더해 직원들의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데 썼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한국당 측에서 제기하는 주장을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터줏대감과
정면승부

김씨 친일 논란과 관련해서는 청와대가 해명했다. 한국당 측은 문 대통령이 김씨를 친일인명사전서 제외하는 데 관여했다고 했지만, 청와대는 “김씨가 친일파로 지정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과연 황 대표의 친일 맞불작전은 성공적이었을까. 한국당은 최근 ‘북풍’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친일 맞불작전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친일 프레임을 얘기할수록 지지율은 ‘뚝뚝’ 떨어졌다. 한국당 내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는 또 다른 이유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돌고 돌아 ‘핵무장론’ 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또다시 ‘핵무장론’을 꺼내들었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단골메뉴다.

이번에는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시발점이었다. 한국당은 9·19군사합의 파기, 전술핵무기 재배치, 핵무기 탑재 잠수함 순항 가동, 한미일 핵무기 공동관리 등 사실상 자체 핵무장론에 불을 지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당 소속 국회 외통·국방·정보위원 연석회의를 열고 청와대가 ‘나토(NATO)식 핵 공유’를 적극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당 일본수출규제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정진석 의원은 회의에 참석해 “필요하다면 북한의 핵무장에 맞서서 한미일 삼국이 공동 관리하는 핵잠수함 체제를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경제보복 사태로 한국당이 ‘친일 프레임’에 갇혀 있는 와중에 터진 주장이다. 구도상 불리할 수밖에 없는 친일 논쟁서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 북풍을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당이 국회 국방위·정보위 등을 통해 ‘안보 국회’를 추진한 일도 같은 맥락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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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