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받는’ 오세훈 등판론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8.05 09:31:23
  • 호수 12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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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새 사무실, 책사만 들락날락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가운데 ‘오세훈 등판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현재의 자유한국당 상황이 그렇다. 예상보다 빠른 위기다. 지나가는 파도일까, 모든 것을 휩쓸 쓰나미일까. <일요시사>는 한국당 내부 민심을 밀착 취재했다.
 

▲ 최근 자유한국당 황교안호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가운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등판론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황교안 체제는 지난 2월에 출범했다. 당시 득표율을 보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당원들이 황 대표에게 얼마나 큰 기대를 했는지 알 수 있다(황교안 50.0%·오세훈 31.1%·김진태 18.9%). 전당대회가 있기 전 <일요시사>는 복수의 당 대표 출마 희망자를 만났었다. 그들이 하는 얘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황색물결(황 대표의 기세)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지역에서 당원들의 민심을 살핀 뒤 나온 말이었다.

꺼져가는
기대감

하지만 여의도 민심은 차이가 있었다. 기대감보다는 우려가 컸다. 원외 신분의 정치 신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오랫동안 정치의 속성을 지근거리서 봐왔던 사람들은 황 대표를 냉정하게 바라봤다.

전당대회 직후 한국당 의원실 보좌진은 “당원들 사이에서는 황색물결이 대세다. 그런데 잘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다른 의원실 보좌진은 다음과 같이 내다봤었다.


“황 대표가 총선까지 쭉 갈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벌써부터 친황(친 황교안)계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 공천 챙겨주고 전당대회 때 도와준 사람들 공천 챙겨줘야 하는데, 그러다가는 바로 역풍 맞는다. 총선 전에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기회가 열릴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당원들의 민심보다는 여의도 민심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선 후 30%대까지 회복됐던 한국당 지지율이 최근 10%대로 급락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3∼25일 전국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한국당의 지지율은 19%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황 대표의 리더십이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지지율 19%는 황 대표의 취임 직전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와 같다. 즉 당선 후 황 대표에게 쏟아졌던 기대감이 지금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는 뜻이다. 한국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자체 지지율 조사서도 당 지지율이 20% 안팎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한국당이 겪고 있는 ‘내우외환’이다. 한국당은 최근 심각한 ‘내우’를 앓고 있다.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당의 ‘친박 회귀’ 노선을 앞장서서 비판하고 나서면서 표면화됐다.

이는 ‘황교안 리더십’에 대한 불만과 맥을 같이한다. 황 대표는 최근 주요 당직과 상임위원장 등 한국당 몫의 국회 요직에 범친박계 인사들을 꽂아 넣었다. 앞서 당 사무총장 인선 과정서 비박계 이원복 의원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친박계가 들고일어나면서 결국 박맹우 의원이 낙점됐다.

지난달 5일에는 비박계 황영철 의원이 맡고 있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친박계 김재원 의원을 임명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당 지도부가 우리공화당(이하 공화당)과의 선거연대를 논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황 대표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박맹우 신임 사무총장 등이 우리공화당 홍문종 대표와 회동을 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은 내년 총선서 수도권 선거구 10석가량과 대구·경북(TK) 일부를 공화당에 양보하는, 이른바 ‘연합공천’ 등 선거연대 방안을 논의했다.

당 지도부가 해명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박 사무총장은 관련 보도가 나온 즉시 이를 부인했으나, 4시간 만에 참석 사실을 인정했다. “모임에 잠시 참석한 적은 있지만 선거연대 등에 대해선 논의한 바 없다”는 것이다. 갈지자 행보는 수많은 의구심을 낳게 했다. 

한국당과 공화당의 선거연대설은 친박계의 당직 독식과 맞물려 비박계에 큰 위기감을 줬다. 새누리당 시절의 힘을 되찾은 친박계가 공화당과 선거연대에 관한 논의를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어서다.

위기감을 느낀 비박계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개혁성향의 비박계 장제원 의원은 지난달 26일 “한국당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2016년의 새누리당으로 돌아가고 있다. 당 핵심부를 모두 장악하더니 급기야 공화당과 공천 나눠먹기를 논의했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예상 적중
여의도 민심

지난달 30일에는 “노선과 좌표가 명확하지 않으니 과거 세력들의 반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구체제의 부활이 가능할 것 같은 착각과 기이한 악재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승민계로 통하는 비박계 김세연 의원 역시 지난달 30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한국당이 도로 친박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부인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 우려되는 점들이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최근 친박계로부터 여의도연구소장직 사퇴 요구를 받은 바 있다.

최근 왕성한 활동으로 몸값을 올리고 있는 홍준표 전 대표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모두가 힘을 합쳐 (보수)빅텐트를 만들어도 좌파 연합을 이기기 어려운 판인데, 극우만 바라보면서 나날이 도로 친박당으로 쪼그라들고 있으니 국민들이 점점 외면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상황이 이쯤되자 황 대표가 진화에 나섰다. 기자간담회서 ‘친박계가 당직을 독식한다’ ‘도로 친박당이 되는 것 아니냐’ 등의 질문에 “나는 친박에 빚진 것이 없다. 나는 박근혜정부서 일을 한 것이지, 그때 정치를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내가 친박을 키워야겠다는 뜻으로 당에 온 것이 아니다”라고 적극 해명했다. 

지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선 “당을 망치는 계파적 발상과 이기적 정치 행위에 대해서는 때가 되면 반드시 그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까지 했다.

비박계 내부에선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비박계 인사는 <일요시사>에 “공화당과의 접촉이 기폭제”라며 “공화당과의 연대는 ‘TK자민련’으로 가겠다는 뜻이다. 수도권 의원들 중에 비박계가 많다. 뻔히 결과가 보이는데 좌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황교안 리더십 흔들, 지지율 10%대↓
‘내우’ 계파전쟁 ‘외환’ 친일논란


한 비박계 의원은 <노컷뉴스>와의 통화서 “9월까지도 계속 이렇게 간다면 당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결국 한데 모이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모종의 움직임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비박계 내부에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비박계 의원실 보좌진은 “총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황(교안)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졌다”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갈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오 전 시장이 전당대회서 2등을 차지했으니 훌륭한 대안”이라고 귀띔했다.

이른바 ‘오세훈 등판론’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오 전 시장은 지난 전당대회서 31.1%의 득표율을 기록, 2위를 차지했다.

최근 오 전 시장은 총선 준비에 한창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오 전 시장은 자신의 변호사사무실을 광진구 자양동으로 옮겼다. 인재 영입도 한창이다. 한국당 A 의원실서 근무했던 변호사 출신 보좌진이 약 4개월 전 오세훈 변호사사무실로 이직했다. 그는 오 전 시장의 보좌 업무와 변호사 업무를 동시에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지역의 현역 국회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추미애 전 대표다. 추 전 대표의 지역사무실은 자양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추 전 대표의 지역 사무실과 오 전 시장의 변호사사무실은 차로 1분, 도보로 5분 거리다. 
 

▲ 광진을 지역서만 내리 5선을 구가하고 있는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 때문에 일각에선 총선이 본격화되면 오 전 시장의 변호사 사무실이 캠프로 변신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최근 오 전 시장은 유튜브 촬영을 위해 해당 사무실을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선거를 3번 치러본 한 한국당 인사는 <일요시사>에 “보통 캠프는 그 지역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으로 잡는다. 오 전 시장이 사무실을 추 전 대표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잡았다는 것은 제대로 한번 붙어보겠다는 의지”라고 해석했다.

내우외환
사면초가

또 다른 한국당 인사는 “추미애 캠프와 가까운 거리라는 점을 고려하고 사무실을 구했을 것이다. 향후 캠프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오 전 시장이 험지서 살아남는다면 완전 뜨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의 현 직함은 한국당 서울 광진을 당협위원장으로 현재 자양사거리서 파라솔을 편 채 직접 당원 모집에 매진하고 있다. 

추 전 대표가 현역인 서울 광진을은 한국당 입장에선 험지로 이 지역은 항상 진보 정당이 차지해왔다. 추 전 대표는 이 지역서만 5선(15·16·18·19·20대 국회)을 한 터줏대감이다. 한국당은 이 지역을 한 번도 차지한 적이 없다.

어려운 승부가 예상되지만, 만약 오 전 시장이 승리한다면 일약 한국당의 ‘구세주’로 올라설 수 있다. 한국당의 새로운 간판이 됨은 물론, 대권주자로서의 주가도 폭등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으로 예정된 제20대 대선서 대권을 노려봄직한 위치로 올라서는 것이다.

한국당의 외환은 일본 경제보복 사태를 계기로 시작된 ‘친일’ 논란이다. 최근 여권의 ‘친일 프레임’ 공세에 한국당이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토착왜구’라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한국당에 대한 친일 프레임에 대해 “지지층 결집효과는 있지만, 지지층 확대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이는 반대로 민주당 내부결속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복수의 비박 “오세훈 부상”
추미애 캠프와 단 1분 거리

친일 프레임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황 대표다. 그가 지난달 24일 ‘일본수출규제대책특별위원회’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이 정권의 친일 프레임이 의도하는 바가 분명하다. 아마 다음 달 광복절까지도 공세를 더 강화해나갈 가능성이 많다. 그 결과가 얼마나 위험할지는 아마 여기 계신 위원님들 여러분께서 더 잘 아시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 신호타이다.
 

▲ 문재인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황 대표의 발언은 사실상의 공격 신호였다. 한국당 소속 의원들은 황 대표 발언 이후 민주당에 대해 맞불작전을 구사했다. 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문 대통령부터 친일 토착왜구라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곽 의원은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의 상속인들이 지난 1987년 제기한 상속세 취소 소송에 문 대통령이 변호인으로 참여한 점을 내세워 문 대통령이 친일 인사의 소송을 대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문 대통령이 노무현정부 민정수석이던 시절, 친일인명사전서 김지태씨를 빼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문 대통령의)부친은 일제시대에 공무원을 지내며 곡물 수탈을 도왔다는 의혹이 있고, 본인은 국가를 상대로 한 골수 친일파 김지태씨의 후손이 제기한 세금취소 소송의 변호인을 맡아 거액 승소했고, 딸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극우파 현양사가 세운 일본 국사관 대학교에 유학했다는데 이쯤 되면 그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정말 제대로 된, 번듯한 친일파 가문이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잇단 논란에 문 대통령이 직접 입을 열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최근 참모진들과 가진 회의서 당시 승소에 따른 성공 보수를 받지 않았고, 변호사 수임료까지 더해 직원들의 체불임금을 지급하는 데 썼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한국당 측에서 제기하는 주장을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터줏대감과
정면승부

김씨 친일 논란과 관련해서는 청와대가 해명했다. 한국당 측은 문 대통령이 김씨를 친일인명사전서 제외하는 데 관여했다고 했지만, 청와대는 “김씨가 친일파로 지정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과연 황 대표의 친일 맞불작전은 성공적이었을까. 한국당은 최근 ‘북풍’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친일 맞불작전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이 친일 프레임을 얘기할수록 지지율은 ‘뚝뚝’ 떨어졌다. 한국당 내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는 또 다른 이유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돌고 돌아 ‘핵무장론’ 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또다시 ‘핵무장론’을 꺼내들었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단골메뉴다.

이번에는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시발점이었다. 한국당은 9·19군사합의 파기, 전술핵무기 재배치, 핵무기 탑재 잠수함 순항 가동, 한미일 핵무기 공동관리 등 사실상 자체 핵무장론에 불을 지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당 소속 국회 외통·국방·정보위원 연석회의를 열고 청와대가 ‘나토(NATO)식 핵 공유’를 적극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당 일본수출규제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정진석 의원은 회의에 참석해 “필요하다면 북한의 핵무장에 맞서서 한미일 삼국이 공동 관리하는 핵잠수함 체제를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경제보복 사태로 한국당이 ‘친일 프레임’에 갇혀 있는 와중에 터진 주장이다. 구도상 불리할 수밖에 없는 친일 논쟁서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 북풍을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당이 국회 국방위·정보위 등을 통해 ‘안보 국회’를 추진한 일도 같은 맥락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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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