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허균, 서른셋의 반란 (1)기행

폭풍우를 뚫고

허균을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시대에 흔치 않은 인물이었다. 기생과 어울리기도 했고, 당시 천대받던 불교를 신봉하기도 했다. 사고방식부터 행동거지까지 그의 행동은 조선의 모든 질서에 반(反)했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같을 수 없었던 그는 기인(奇人)이었다. 소설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허균의 기인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파격적인 삶을 표현한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그의 의지 속에 태어나는 ‘홍길동’과 무릉도원 ‘율도국’. <허균, 서른셋의 반란>은 조선시대에 21세기의 시대상을 꿈꿨던 기인의 세상을 마음껏 느껴볼 수 있는 장이 될 것이다.
 

 

“나리!”

잔뜩 겁에 질린 사내가 앞서 걷고 있는 남자를 다급하게 불렀건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거세게 내리치는 비바람에 사내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으리!”

자신의 부름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한 번 힘주어 앞서 가는 남자를 불렀다. 순간 또 다른 소리가 창공을 가르고 있었다.


벼락과의 싸움

“우르르릉… 꽝!”

동시에 두 소리가 합쳐졌다.

온 힘을 다해 부른 ‘나으리’ 소리는 하늘을 가르고 땅을 찢어버릴 듯이 내리치는 벼락소리에 고스란히 말려들어 갔다.

사내의 몸이 바로 웅크러들었다. 본능에 따른 행동처럼 보였다.

잠시 후 손을 뻗어 머리 위까지 덮어 쓴 도롱이를 양손으로 꽉 쥐어 잡은 삼복이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서는가 싶더니 급하게 앞을 막아섰다.

“나으으리!”


“이놈아, 왜 길을 막아서는 게야!”

허균의 속내를 알길 없는 삼복은 그래도 허균이 반응을 보이자, 크게 한숨을 내쉬며 바짝 다가섰다.

“나으으으리!”

삼복의 하는 양이 가관이었다.

분명히 무슨 말을 하는 듯 보이는데 아래턱이 심하게 떨리고 있어 이빨 부딪는 소리에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데다, 몸은 오금이 서로 달라붙은 듯 잔뜩 움츠러들어 차마 눈 뜨고 못 볼 지경이었다.

“못난 놈 같으니라고.”

“나으으리!”

얼굴에 모든 힘을 쏟아 간신히 말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허균이 혀를 찼다.

“무슨 일로 앞을 막았는지 똑바로 이야기해보거라!”

“저 앞에 보이는 숲… 잠시 쉬어감이 어떠할….”

바로 그 순간 하늘 저편에서 섬광과 함께 음울한 소리가 일고 있었다.

급히 고개를 돌려 그를 확인한 삼복의 얼굴빛이 다시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방금 전에 보였던 희미한 생기는 온데간데없고 다시 사시나무 떨 듯했다.

잠시 후 삼복의 행동에 일격을 가하기라도 하듯 방금 전보다 더 큰 벼락이 굉음과 함께 창공에서 대지로 내리꽂혔다.

허균의 시선은 삼복의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저 멀리 대지로 힘차게 곤두박질하고 있는 벼락으로 향했다.

“그놈, 참 고약한 놈이로고.”

벼락이 땅에 떨어진 사실을 인지한 삼복이 허균 옆으로 바싹 다가섰다.

삼복의 도롱이에 떨어진 빗방울이 허균의 발치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으리, 뭐라고 말씀하셨는지요.”

“너에게 한 이야기가 아니니 괘념치 말거라.”

말이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허균이 갑자기 갓을 벗었다.

벼락만큼이나 사납게 휘몰아치는 비가 허균의 얼굴 곳곳을 때리기 시작했다.

“고약한 놈이 여기 또 있었구먼.”

삼복이 그제야 허균의 말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잠시 저 숲에서 비 좀 피했다 가심이….”

“비를 피하자는 게야, 벼락을 피하자는 게야!”

“비도 피하고 그리고….”

몸을 비비꼬는 삼복의 상태를 확인한 허균이 다시 혀를 차고는 들고 있던 갓을 삼복에게 건넸다.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삼복이 겁에 질려 움츠린 몸으로 받아들었다.

갓을 건넨 허균이 급히 윗도리를 벗어 건네자 삼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으리!”

“이왕에 젖은 몸, 목욕이나 해야겠다.”

내리는 빗줄기에 진짜로 목욕할 심산인지 바지 고름을 잡았다.

비에 젖어 군데군데 달라붙어 있던 바지의 고름을 잡아당기자 스르르 내려가는 듯하더니 무릎 부근에 멈추고는 흉물스럽게 들러붙어 있었다.

허균이 상체를 숙여 손으로 바지를 벗어 삼복에게 건넸다.

허균의 온몸으로 거센 빗줄기가 부딪쳐왔다.

마치 그 빗줄기를 온몸으로 잡겠다는 듯이 허균이 양팔을 벌리고 얼굴을 하늘로 향했다.

“이렇게 시원한데 괜히 거추장스럽게 갓을 쓰고 있었구나!”

“나리, 이 무슨 일인지요?”

허균의 기행, 벼락을 향해 맨몸으로…
겁먹은 삼복, 허균의 기행에 용기를…

허균의 괴이한 모습을 바라보는 삼복에게 두려움은 깨끗하게 자취를 감춘 모양으로 목소리에 생기가 묻어 있었다.

“일은 무슨 일. 네 놈도 한번 해보거라. 얼마나 시원한지. 마치 창공을 날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이 세상이 모두 내 것 같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허균의 얼굴 위로 미소가 번지더니 급기야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허균의 웃음소리가 하늘로 전달된 모양이었다.

다시 섬광과 함께 음울한 소리가 일어나고 있었다.

“저런 고얀 놈 같으니라고. 어서 이리로 오거라!”

발가벗은 허균이 천둥이 일고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마치 자신의 품으로 벼락을 맞이하겠다는 기세였다.

삼복은 벼락이 내리칠 낌새를 알아채고 다시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방금 전처럼 떨지는 않았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허균을 주시할 따름이었다.

“왜, 이놈아. 벼락이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할 것 같으냐!”

삼복이 대답 대신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질타라도 하듯 다시 벼락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삼복의 표정이 담담했다. 아니, 삼복의 시선과 정신은 온통 허균의 기이한 행동에 집중돼있었다.

한참 동안 맨몸으로 비를 맞은 허균이 삼복의 손에 들려 있던 옷을 집어 들었다.

“삼복아.”

“네, 나리.”

“네 이름이 왜 삼복이냐?”

“그야 물론…. 여자 복, 재물 복, 또 오래 살라고 삼복입죠.”

말을 마친 삼복의 표정이 다시 어색하게 변해갔다.

“오래 살라고 주어진 이름으로 보아 네 놈이 그리 쉬이 죽겠느냐.”

삼복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허균의 몸에만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거세게 내리고 있는 비를 흠뻑 맞아서인지 아니면 벼락 소리에 놀라서인지 허균의 가운데가 한껏 쪼그라들어 있었다.

삼복이 시선을 급히 다른 곳으로 돌렸다.

“삼복아, 저 벼락이란 놈은 세상의 오물을 뒤집어쓴 너나 나보다 자연을 더 좋아하는 게야. 저기 네가 가리킨 곳에 있는 나무들 말이다. 이 미련한 놈아.”

삼복이 저만치 앞에 있는 숲으로 고개 돌렸다.

“꼭 이놈이 네놈과 닮았구나.”

바지를 입던 허균이 자신의 가운데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삼복의 시선 역시 함께했다.

“그나저나 여기가 어디냐?”

잠시 허균의 가운데를 주시하던 삼복이 더 이상 두려움에 떨 이유가 없음을 확실하게 알아챘는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저 앞에 갈라지는 곳이 부안현과 고부로 향하는 갈래 길이옵니다. 고부로 가자면 바로 가야 합지요.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부안현이옵구요.”

“아니, 이렇게 팔팔한 놈이 그깟 벼락이 무서워서 그리 안절부절 못했단 말이냐! 한심한 놈이로고. 그건 그렇고 네 놈의 심사는 어떠냐?”

“소인의 심사라니요?”

방금 전에 사로잡혔던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진 듯 말하는 표정이 당당했다.

“이놈아, 네가 방금 전에 쉬어가자고 하지 않았더냐?”

삼복이 슬그머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뒷덜미를 긁적였다.

“그건 그때 일이고, 지금은….”

“그래, 지금은 방금 전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으니 지체 없이 길을 가자, 이 말이냐?”

“고부까지 가려면 여기서 한가하게 시간을 죽일 겨를이 없습지요. 서둘러 가야 날이 어둡기 전에 도착할 듯싶은데요.”

말을 마친 삼복의 얼굴로 야릇한 미소가 번졌다.

“예라, 이 잡놈아!”

허균이 내뱉은 소리가 다시 벼락 속으로 감겨들었다.

삼복이 마치 허균의 말을 똑바로 알아들었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고 바짝 다가섰다.

“나리, 부안현에서 잠시 쉬었다 가셔야겠지요?”

“이놈아, 잠시가 무어냐. 네놈이 원하는 대로 비가 그칠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러야지.”

삼복의 얼굴이 능글맞게 변해갔다.

괴이한 모습

“그러면 그렇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

“이놈이!”

허균의 짤막한 일성에 삼복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부안현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될 거 아닌가요.”

“내가 다 너를 위해 양보하는 것이니 그리 알고 어서 부안현으로 길을 잡도록 해!”

잠시 쭈뼛하던 삼복이 허균의 아랫도리로 시선을 던졌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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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