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하도급업체 대표의 눈물

대기업에 치이고 공정위에 까이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하도급업체에 대한 갑질 논란은 이미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받아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갑질 병폐를 없애기 위해 여러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하도급업체의 피해 사례는 여전히 끊이질 않고 있다.
 

▲ S사 공장 기계 및 가구 등에 붙은 압류딱지

정말 절박합니다.” 지난 23일 저녁 서울 시내 한 카페서 만난 중소기업 S사의 A 대표는 연신 땀을 흘렸다. 에어컨이 가동 중인 카페는 습도가 높은 야외에 비해 시원한 편이었다. 그는 변호사,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조사관, 대기업, 협력업체 관계자에게 이미 수차례에 걸쳐 한 이야기를 다시 풀어내기 시작했다.

사업 시작
4년 만에…

사업을 시작한 건 2015년이었습니다.”

휴대전화는 배터리, 액정 등 여러 업체서 만든 부품을 조립해 완성된다. A 대표의 S사는 휴대전화 조립과정서 사용되는 자동화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한다. 201535세의 나이로 사업에 뛰어든 A 대표는 4년여 만에 파산 직전에 몰렸다. A 대표의 현 상황은 사면초가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심각했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S사는 LG전자 소재·생산기술원(이하 LG전자 생기원)의 협력업체인 풍산시스템 등으로부터 하청을 받아 부품을 생산하는 하도급업체다. 2017년 기준 2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당시 직원 수는 14명이었다.


불과 몇 년 새 자금이 말라붙으면서 사업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직원 수는 4명으로 줄었고 그마저도 월급을 챙겨주지 못한 지 오래다.

월급이 밀리면서 그만둔 직원들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다음 달 20일까지 월급을 챙겨주지 못하면 구류 처분을 받게 된다. 거래하던 업체에도 대금을 주지 못해 이제 몇 건인지 셀 수 없을 정도의 소송에 휘말린 상태다. 공장 기계는 물론 가구에도 빨간 압류 딱지가 덕지덕지 붙었다.

현재 저는 신용불량자 상태입니다. 의료보험료를 내지 못해 병원도 갈 수 없습니다. 아내가 제3금융권서 돈을 빌렸습니다. 장모님께 빌린 돈도 있습니다. 저 하나면 상관없는데 가족들도 다 엮여 있어서 막막합니다. 딸들에게도 미안하고요.”

물품 납부했지만 발주서 주지 않아
대금 밀리면서 신용불량자 신세로

A 대표에게는 다섯 살, 3개월 된 딸이 있다. A 대표의 아내는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빌린다. 50만원, 100만원씩 빌린 건 이제 셀 수도 없는 지경이다. 주변서 파산 신청을 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A 대표는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사업을 하면서 알고 지낸 분들이 아직 젊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서 한번 접으라고들 하세요. 폐업을 하고 다시 시작하라는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저를 믿고 함께해준 직원들은 어쩌고, 거래해왔던 대표님들은 어쩌겠습니까. 또 저 개인적으로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A 대표는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에는 풍산시스템의 갑질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풍산시스템은 휴대전화 조립 자동화 장비를 개발하고 만드는 업체다. S사 등에서 부품을 받아 자동화 장비를 만들어 현대케피코, LG전자 생기원 등에 납품한다. 지난해에는 LG전자 최우수협력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S사는 20168월부터 201712월까지 풍산시스템이 주문의뢰한 물품을 제작해 납품했다. A 대표는 이 과정서 풍산시스템의 거래 방식이 비정상적이었다고 주장했다. S사가 속한 업계에선 일반적이지 않은 거래방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풍산시스템을 제외하고는 해당 방법으로 거래한 업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보통 물건을 납품하거나 업체와 계약할 경우 공급받으려는 쪽에서 공급자에게 제작을 의뢰한다. 그러면 공급자가 견적서를 작성해 보내고 이를 수령한 쪽에서 발주서를 통해 금액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최우수협력사
갑질 업체?

이 과정서 정해진 공급 금액과 발주조건에 따라 납품이 이뤄지면, 공급 받은 쪽에서 일정 기간 내에 대금을 지급하는 게 일반적이다. 견적서는 공급하는 쪽에서, 발주서는 공급받는 쪽에서 보내는 문서로 A 대표에 따르면 S사가 속한 업계에선 이 두 문서가 계약서에 가까운 기능을 했다.

하지만 풍산시스템과의 거래는 달랐다. 풍산시스템이 주문의뢰를 하면 S사가 견적서를 보내는 것까지는 같다. 이때 주문의뢰는 대부분 이메일로 진행됐다. 문제는 풍산시스템서 보내야 하는 발주서가 제 날짜에 날아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S사는 발주서를 받지 못한 채 풍산시스템이 주문의뢰를 하는 과정서 정한 납기일에 맞춰 납품했다. 발주서는 납품 이후에야 S사로 넘어왔다. 이때 발주서에는 S사가 견적서에 기재한 금액보다 낮은 액수가 기재돼있었다. 실제 대금도 감액된 금액으로 지급됐다.
 

예를 들면 1월에 납품한 제품의 발주서가 7개월 뒤에 오는 식이다. 20161228일 풍산시스템은 S사에 201712일까지 제품을 보내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S사는 메일을 받은 당일 견적서를 보냈고 납품 완료 후 거래명세서도 받았다. 발주서는 그로부터 7개월 뒤인 201774S사로 넘어왔다. 당초 견적서에 기재한 가격보다 낮은 금액이 기재돼있는 상태였다.

이메일로 주문의뢰를 받을 때마다 저희는 견적서를 보냈는데, 풍산시스템은 발주서를 주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상황이면 견적금액을 계약금액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풍산시스템서도 견적금액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습니다. 만약 견적금액이 부당하다고 여겼다면 제작 단계서 발주서를 보내 금액에 대한 논의를 했으면 되는 거거든요.”

A 대표는 감액된 금액이 기재된 발주서가 납품 이후 날아오는 일이 수차례 일어나면서 6억원에 가까운 돈을 지급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20168월부터 201712월까지 거래하는 동안 풍산시스템서 S사에 지급해야 하는 돈은 266150여만원에 이르는데, 실제 S사가 받은 돈은 206180여만원에 그쳤다는 주장이다.

조사한 지 1년 6개월 ‘감감무소식’
결과 기다리다 민사소송도 스톱

A 대표는 발주서가 제품 납품 시기보다 늦게 오는 문제가 반복되는 사이에도 밀려드는 주문의뢰를 처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제품은 제작해서 납품되는데 대금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계속됐다. 먼저 직원들의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고, 거래업체와의 대금 지급 기한을 계속 어기게 됐다.

풍산시스템과 정한 대금 지급 기한은 60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120일에 제품을 납품하면 320일 이전에 대금이 들어와야 합니다. 하지만 발주서가 늦게 오다 보니, 발주서가 온 날짜에서 또 60일을 기다려야 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와 거래하는 업체들도 그 지급 기한에 맞춰 회사를 꾸리고 있는데, 저희가 계속 돈을 밀리다 보니.”


풍산시스템의 행위가 하도급법에 위반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4(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 금지)에 따르면 협조요청 등 어떤 명목으로든 일방적으로 일정 금액을 할당한 후 그 금액을 빼고 하도급대금을 결정하는 행위’ ‘원사업자가 일방적으로 낮은 단가에 의해 하도급대금을 결정하는 행위등을 부당한 하도급대금의 결정으로 보고 있다.
 

11(감액금지)에는 원사업자는 제조 등의 위탁을 할 때 정한 하도급대금을 감액해서는 안 된다고 돼있다. 특히 위탁할 때 하도급대금을 감액할 조건 등을 명시하지 않고 위탁 후 협조요청 또는 거래 상대방으로부터의 발주취소, 경제상황의 변동 등 불합리한 이유를 들어 하도급을 감액하는 행위 등을 막고 있다.

다만 정당한 사유를 입증한 경우에는 하도급대금을 감액할 수 있다. 이때도 감액사유와 기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적은 서면을 해당 수급업자에게 미리 주도록 하고 있다. 또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감액한 금액을 목적물의 등의 수령일부터 60일이 지난 후에 지급하는 경우, 그 초과기간에 대해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이 많아서 ”
바쁜 조사관

실제 공정위는 지난 51일 하도급업체들에 대금을 늦게 지급하면서 지연이자 등을 주지 않은 것으로 조사된 남해종합건설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12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남해종합건설은 201511부터 201612월까지 36개 하도급업자들에게 법정 지급기일을 최대 528일 초과해 대금을 지급하면서 지연이자 11138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A 대표는 전화나 이메일 등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풍산시스템에 대금 지급을 요구했다. 그러다 지난해 1월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하 공정거래조정원)에 사건을 접수했다. 공정거래조정원은 공정위 산하기관으로 불공정거래행위로 인한 중소기업의 피해를 당사자 간의 자율적인 조정을 통해 신속하게 해결한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공정거래조정원서 3개월 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공정위로 사건이 넘어간다. A 대표의 사건은 지난해 4월 공정위로 넘어갔다. 문제는 A 대표의 사건이 13개월째 공정위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담당자가 바뀌면서 결론이 언제쯤 날지 기약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A 대표는 답답한 상태다. 공정거래조정원에 사건을 접수하면서 함께 제기한 물품대금 청구 민사소송은 공정위 결론이 늦어지면서 진행되지 않고 있다.

A 대표의 사건을 맡고 있는 공정위 관계자는 접수된 사건 순서대로 진행하고 있다. 담당자가 바뀐 것은 통상적인 인사이동이었다. 전임자가 있었다고 해도 결론을 내고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는 후임자가 직접 사건자료를 다시 다 봐야 한다. 일부러 사건 처리를 지연한다거나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지난 2015년 만든 내부지침에는 사건 접수 뒤의 처리기간을 6개월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담당자가 사건 처리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대개 1명의 조사관이 맡고 있는 사건의 수는 15건이 넘는다. 나도 현재 16건의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 (A 대표의 사건보다)더 이전에 접수된 사건도 있다고 덧붙였다.

“월급도 못 주고 …
감옥 가게 생겼다”

A 대표가 풍산시스템과 대표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회의록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공정거래조정원에 사건을 접수하고 다음 날인가 풍산시스템서 연락이 왔습니다. 협의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직원들 급여가 밀려 있었고, 일부 거래업체로부터 물품대금 지급명령신청을 당했습니다. 거래 계좌도 압류당한 상태였습니다. 말 그대로 한 푼이 아쉬운 때였습니다.”

​​​​​​​A 대표는 2018117일 풍산시스템 관계자와 대금 지급과 관련해 논의를 진행했다. A 대표에 따르면 이날 논의서 다뤄진 부분은 20179월과 11월의 마감분 물품공급, 201711월 말일(9월분)20181월 말일(11월분) 정기결제돼야 할 금액에 대한 선지급 협조요청과 지급완료 확인, 201712월 마감분으로서 20182월 말일 정기결제 될 금액에 대한 선지급 협조요청과 풍산시스템의 조기결제 요청의 수락 등이었다.

2017년 풍산시스템이 발주 처리를 하지 않은 건에 대해 5600만원을 받기로 한 점, 상호 간 처리되지 않은 대금에 대한 협의는 이날 완료돼 추가 잔금은 없다는 점, 대금 조기 결제가 이뤄진 후 회의와 관련된 미처리 대금에 대해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점 등이 논의됐다. A 대표는 이날 회의와 관련돼 작성한 회의록에 서명했다.

회의록에 서명을 해야 대금을 지급해준다고 했습니다. 회의 때 논의된 5600만원도 실제로는 5694만원이었습니다. 풍산시스템서 94만원을 깎은 거죠. 그마저도 20182월에야 들어왔어요. 풍산시스템은 제가 서명한 회의록을 근거로 과거 거래의 대금까지 전부 지불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른 피해업체?
엄벌해 주길

풍산시스템은 저 같은 하도급업체의 납품단가를 착취해 250억원 상당의 사옥을 짓는 등 호위호식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족도 직원도 챙기지 못한 채 신용불량자로 전락했습니다. 저 말고도 아직 나서지 못하는 피해업체 관계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도급업체에 대한 갑질을 엄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강화됐으면 합니다.”

이와 관련해 풍산시스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현재 공정위 조사나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돈 안 주는 기업 손 본다’ 하도급 신고센터 운영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불공정 하도급 신고센터를 추석 연휴 전날인 911일까지 운영한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명절을 앞두고 자금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중소기업이 하도급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 자금난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지난 설 320억원 지급

지난 설 연휴 기간에도 공정위는 47일간 신고센터를 운영했다. 그 결과 총 286, 320억원이 지급 조치됐다.

불공정 하도급 신고센터는 수도권과 대전·충청권, 광주·전라권, 부산·경남권, 대구·경북권 등 전국 5개 권역에 10개소가 설치된다.

통상적인 방식과는 달리 하도급대금 조기 지급에 중점을 두고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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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