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법 무시’ 여행사이트의 두 얼굴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7.29 10:23:55
  • 호수 12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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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기엔 취소가 안 된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여행객들은 꼼꼼히 보지 않은 취소 규정 때문에 발목이 잡히곤 한다. 지나치게 비싼 수수료 때문에 난처한 상황에 빠진 여행객들은 온라인 여행 예약 사이트의 취소 규정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예약 사이트의 꼼수에 대해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불매운동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불매 운동은 단순히 상품을 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일본 여행 계약을 취소하는 등 그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 

관광부의 통계 결과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754만명이다. 일본 관광객 중 우리 국민의 비중은 24.1%로 중국(26.8%)에 소폭 뒤진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해외로 나간 국민이 3000만명에 달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해외 여행객 4명 중 1명은 일본으로 향한 셈이다.

위약금은?

최근 개그맨 오정태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일본 여행 취소 인증 사진을 올리면서 네티즌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이에 영향을 받은 네티즌들도 자신의 SNS나 카페에 여행 취소 인증샷을 올리기 시작했다.

지난 22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하나투어의 일본 여행 신규 예약자 수는 이달 8일 이후 하루 평균 500명 수준으로, 이는 평소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모두투어는 8월 이후 출발하는 일본 여행 패키지 상품 예약 건수가 평소보다 70% 급감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일본 여행객 수가 줄어드는 것이 수치로 나오고 있는 상황서 국민들은 일본 여행 취소 인증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여행 취소를 하기 위해서는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이 수수료는 항공, 숙박 등 예약을 해놓고 취소할 때 발생하는 부담금으로 남은 기간과 예약한 여행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수십만원 의상의 손해를 볼수 있는 일부 국민들은 여행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본 여행 카페 네일동에서 슈***는  취소 수수료에 내용에 관한 게시글에 “가족 5인 왕복항공권과 숙박 예약 취소할 시 200만원 넘게 손해가 난다. 200만원에 취소를 너무 창피하지만, 조용히 다녀오려고 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국내 항공사 7개(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제주항공·에어부산·이스타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의 국제선을 예로 들면, 출발일 91일 이전이면 취소 수수료가 없다. 출발일 90일 이내에는 취소 시기에 따라 수수료가 다르다. 하지만 이는 특가운임(취소 불가를 조건으로 70% 이상 할인 판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온라인 여행 예약 사이트(OTA·Online Travel Agency)의 취소·환불 규정이 취약하다.

OTA란 항공과 숙박, 렌터카 등 여행을 위한 필수상품을 한곳에서 비교하고 예약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소비자 응대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지적과 함께 예약 취소 시의 수수료 문제, 환불 불가 상품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불매운동 여파…여행사 예약 급감
예약대행 사이트 불만 1위 ‘취소’


지난달 24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의 국제거래 소비자 포털에 접수된 글로벌 숙박·항공 예약 대행 사이트 소비자 불만은 1324건으로 2017년(394건)의 3.3배를 기록했고, 올해 5월까지 306건이 접수됐다. 

2017년 이후 접수된 소비자 불만 2024건 중 80.6%(1632건)가 아고다(싱가포르), 부킹닷컴(네덜란드), 트립닷컴(중국), 고투게이트(스웨덴), 트래블제니오(스페인) 등 5개 업체에 집중됐다.

글로벌 항공·숙박 예약대행 사이트 이용과 관련해 가장 많이 제기된 소비자 불만은 취소·환급 지연 및 거부(73.0%)다. 해당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환급 불가’ 상품을 판매한 뒤,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일정을 변경하거나 취소를 할 때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환급을 거부했다.
 

호텔이나 항공편 예약에 환불 불가 조건을 걸면 공실 리스크가 줄어든다. 때문에 업체 입장서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생겨 저가에 판매가 가능하다. 행위 자체로는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남아있는 기간에 따라 위약금에 차등을 두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입장이다. 

특가상품이라는 이유로 예약 실행일로부터 남아있는 기간과 관계없이 무조건 예약금 전체를 물게 하는 건 지나치게 소비자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이다. OTA는 소비자들이 동의한 후 구매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으며, 전 세계에서 동일하게 적용하는 약관을 한국서만 문제를 삼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 전자상거래법에 따르면 ‘통신판매업자와 구매계약을 체결한 소비자는 7일 이내 청약 철회’가 가능하지만, OTA는 외국회사라 국내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게 실정이다. 

불법? 합법?

김수연 한국소비자연맹 팀장은 <시사저널e>와의 인터뷰서 “일부 OTA는 전화 연결조차 힘들다”며 “여행상품은 즉각적인 응대가 필요한데 콜센터 규모를 늘리지 않더라도 문자, 이메일 등을 통해 즉각 대응이 이뤄지도록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일본 여행 취소 이벤트

높은 수수료에도 일본 여행을 취소하는 고객들을 위해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핀콕은 여름 대체 휴가지로 베트남 나트랑을 제안하는 한편, 일본 여행 취소 고객 대상 현지투어 50%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이번 이벤트는 예약일 기준 광복절인 8월 15일까지 적용되며 예약 시, 일본 여행 구매 내역과 취소 인증 내역만 제시하면 된다.


하이원리조트는 일본 등 해외여행을 취소하고 국내로 목적지를 전환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특가 패키지를 선보였다. ‘프라이드 오브 코리아(Pride of KOREA)’라는 이름의 패키지는 하이원 그랜드호텔 메인타워스탠다드 객실 또는 하이원 콘도 1박과 함께 워터월드 종일권 2인으로 구성됐다.

안 가면 어떤 혜택?

전라남도 곡성 석곡농협도 일본 여행을 취소한 사람들에 한해 쌀 지급하는 이벤트를 개최했다. 곡성 석곡농협은 22일 “일본 여행의 계약을 해지한 분들께 쌀 10㎏씩 500포대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행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석곡농협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이번 행사에 대한 공지사항을 올렸다. ‘후쿠시마서 생산된 쌀 58만t을 일본을 찾는 관광객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내용과 ‘한국 경제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일본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쌀 지급 이벤트를 한다’는 게 골자다.

쌀 지급 대상은 1인 기준 일본 여행비가 100만원 이상인 계약을 해지한 경우다. 석곡농협 홈페이지에 접속해 일본여행 해지 관련 글과 서류를 이벤트에 올리면 된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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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