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산촌체험마을 ③철원 쉬리마을

더위 탈출 꽃강에서 ‘쉬리’

▲ 이름에 꽃 화(花) 자를 쓰는 화강의 아름다운 풍경

철원군 김화읍 쉬리마을은 물놀이하기 좋은 가족 여행지다. 강원도 계곡의 한적한 시골 마을을 떠올렸다면 선입관은 금세 깨진다. 쉬리마을은 강변 물놀이 여행지에 가깝다. 화강 옆 철원화강쉬리캠핑장과 수영장 3개, 워터슬라이드와 물썰매장, 산책로 등이 있어 계곡보다 구성이 훨씬 다채롭다. 그리고 마을에서 운영해 한층 정겹고 살갑다. 쉬리마을이라는 이름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데 한몫한다. 
 

▲ 쉬리마을을 상징하는 공공 미술

쉬리마을은 지난 2007년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사업 공모에 당선돼 조성됐다. 화강(옛 남대천) 주변에 있는 학사리와 청양리 일원을 아울렀다. ‘쉬리’라는 이름도 그때 지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토종 민물고기 쉬리와 남북 분단을 소재로 1999년 개봉한 영화 〈쉬리〉를 내포한다. 이름에 화강의 맑은 자연,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주민의 마음이 담겼다.
 

▲ 지난 2006년 이래 화강과 쉬리마을에서 열리는 철원화강다슬기축제 <사진제공: 철원군청>

다슬기 유명

쉬리마을은 쉬리 못지않게 다슬기가 유명하다. 지난 2006년 이래 화강과 쉬리마을에서 철원화강다슬기축제가 열리고 있다. 소박한 마을 축제로 시작했는데, 2016년부터 철원군이 주최할 만큼 많은 이들이 찾는다. 올해는 8월1~4일에 방문객을 맞는다. 철원화강쉬리캠핑장(이하 쉬리캠핑장)과 화강워터플라이(Water Fly), 다슬기체험장 등에서 다양한 여름 프로그램이 펼쳐질 예정이다. 군 장비 전시, 군 문화 체험 마당도 축제의 흥을 돋운다.
 

▲ 김화교에 있는 조형물 ‘어부의 노래’

화강과 김화교는 그 모두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화강(花江)은 ‘꽃강’이라는 뜻이다. 예부터 강변 경치가 꽃처럼 아름다워 그리 부른다. 
김화교는 화강 조망의 명소나 다름없다. 발아래 흐르는 화강과 주변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김화교는 쉬리캠핑장과 김화 읍내를 잇는데, 다리 위에 쉬리와 다슬기 모양 터널이 자리한다. 쉬리 모양 터널이 ‘Forever Fish Project’, 다슬기 모양 터널이 ‘Forever Festival’이다. 다슬기 모양 터널 끝에는 어부가 그물을 던지는 장면을 연출한 조형물 ‘어부의 노래’가 눈길을 끈다. 오후 8시부터 다리에 경관 조명이 켜져 밤 산책 코스로도 좋다.
 

▲ 김화교와 다슬기 모양 터널 아래 놓인 징검다리가 정겹다.

다리 아래로는 징검다리가 놓여져 있다. 징검돌을 건너면서 유년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징검다리에서 김화교의 쉬리와 다슬기 모양 터널이 또렷이 보이기에 대표적인 포토존이기도 하다. 다리 바로 밑에 평상이 있어 더위를 피해 쉬기에도 좋다. 낮 시간에 유료로 대여한다(다슬기축제 기간 제외).
 

▲ 김화교와 수변수영장을 잇는 워터슬라이드 <사진제공:철원군청>

김화교는 워터슬라이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김화교 위에서 워터슬라이드를 타면 수변수영장으로 미끄러진다. 다리에 속하는 입구 위치가 특색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쉬리캠핑장 내 수영장은 수변수영장 외에 한반도수영장과 대형수영장이 있다. 한반도수영장은 한반도 모양으로 쉬리캠핑장에서 가깝다. 그늘막이 넉넉해 유아 동반 가족이 애용한다. 바로 옆 물썰매장에서 워터슬라이드와 다른 물 미끄럼을 체험할 수 있다.
 

▲ 화강 옆에 자리한 대형수영장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 <사진제공:철원군청>

대형수영장은 수변수영장과 마찬가지로 화강 바로 옆이다. 수상레저체험장이 가까워 두루미 보트, 카누 등을 즐길 수 있다. 쉬리캠핑장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수영장은 모두 유료다. 한반도수영장은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운영하는데, 방학 시즌에는 평일과 주말, 나머지 기간에는 주말만 개방한다. 수변수영장과 대형수영장은 방학 시즌 평일과 주말에 개방한다. 전화로 미리 확인하고 방문하는 게 좋다.
 

▲ 쉬리캠핑장에서 저격능선전투전적비 쪽으로 산책할 수 있다.

쉬리캠핑장은 2014년 조성한 쉬리생태공원이 전신으로 부지가 비교적 넓다. 사이트 바닥은 모래, 잔디, 데크 등으로 조금씩 다르다. 분수대와 모래 놀이터, 야외 쉼터 등을 갖췄다. 대형수영장 쪽 화강 변은 수변캠핑장이 있어 오토캠핑이 가능하다. 

2007년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조성
다양한 여름 프로그램·철원 지역 축제

가벼운 산책을 원할 때는 화강을 낀 남쪽 장수길이나 저격능선전투전적비 쪽이 무난하다. 장수길은 그늘진 강변 절벽 옆 데크가 매력이고, 저격능선전투전적비 쪽은 한국전쟁 2대 격전지로 불리는 저격능선전투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쉬리캠핑장에서 5~6km 거리에는 DMZ생태평화공원과 ‘사라진마을 김화이야기관’이 있다. 옛 김화군의 자취를 더듬어보는 장소다.
 

▲ 두루웰숲속문화촌에는 짚라인, 외나무다리 등으로 구성된 에코어드벤처가 아이들의 모험심을 길러준다.

캠핑 대신 실내 숙박을 원한다면 신철원 쪽 두루웰숲속문화촌을 추천한다. 숲속산책로와 목재문화체험장 등을 갖췄다. 짚라인, 외나무다리 등으로 구성된 에코어드벤처도 아이들의 모험심을 길러준다. 무엇보다 올해 6월28일 에코하우스가 개장해 깔끔한 잠자리를 제공한다.
 

▲ 소이산전망대에서 백마고지, 철원역, 농산물검사소, 노동당사 등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안보 여행지는 구철원에 밀집한다. 소이산전망대는 여름 산행이 고되기는 해도 철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소이산생태숲녹색길 가운데 봉수대오름길로 정상까지 오른다. 정상 전망대에서 백마고지, 철원역, 농산물검사소, 노동당사 등이 그림처럼 펼쳐져 철원평야를 실감케 한다. DMZ 남방 한계선 아래, 철원에서 원산으로 향하는 철길을 머릿속에 그리면 새삼 뭉클하다.
 

▲ 철원 노동당사와 김현선 작가의 조형물 ‘두근두근’

철원 노동당사(등록문화재 22호) 또한 늘 감회가 새롭다. 철원이 삼팔선 이북에 위치하던 1946년 북한이 지은 건물이다. 입구 계단에 남은 미군 탱크의 캐터필러 자국, 앙상한 외벽의 총탄 흔적 등이 전쟁의 상실감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 노동당사 앞마당에 있는 김현선 작가의 조형물 ‘두근두근’이 1945년 8월15일 이후 어느덧 64만7000여시간이 훌쩍 지났다고 증언한다. 11월까지 매주 토요일에는 DMZ마켓도 열린다.
지난 6월1일에는 DMZ평화의길 철원 구간이 개방했다. 철책선 통문이 민간인에게 열린 건 처음이다. 사전 신청하면 무작위로 추첨해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각 20명이 3시간가량 탐방할 수 있다. 풍경도 아름답지만, 그 길을 걷는다는 사실이 감동적이다.
 

▲ 한탄강과 기암괴석이 진경산수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고석정
▲ 직탕폭포와 군탄교 사이를 오가는 한탄강 래프팅 <사진제공:철원군청>

구철원에서 신철원으로 가는 길에 고석정을 지난다. 고석정은 한탄강과 기암괴석이 진경산수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임꺽정의 전설, 한국전쟁 당시 철의 삼각지, 고생대 지층의 단절 등 그 자체가 철원이 간직한 연대기다. 한탄강은 래프팅 명소다. 직탕폭포와 군탄교 사이를 오가며 여름 레저 스포츠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
 

▲ 철원 땅에 숨은 사연을 품은 노동당사 콘크리트 벽에서 새 생명이 자란다.

숨은 사연

철원은 원래 삼팔선 이북에 위치했다. 한국전쟁 후 대부분 폐허가 되거나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에 포함됐다. 이를 구철원이라 부른다. 신철원은 근래에 생긴 도심 같지만, 한국전쟁 직후 철원군청이 갈말읍 신철원리에 새로 들어서며 붙은 이름이다. 
김화읍 역시 삼팔선 북쪽에 속했으나 한국전쟁을 거치며 김화읍을 포함한 일부는 남한, 나머지는 북한 땅이 됐다. 철원은 그 땅에 숨은 사연을 알고 돌아보면 여행이 한층 깊어진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물놀이 코스: 철원화강쉬리캠핑장→두루웰숲속문화촌→한탄강 래프팅
DMZ 코스: 철원화강쉬리캠핑장→고석정→소이산→철원 노동당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철원화강쉬리캠핑장→두루웰숲속문화촌→고석정
둘째 날: 한탄강 래프팅→소이산→철원 노동당사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철원화강쉬리캠핑장(영농조합법인 쉬리마을추진위원회) www.swiripark.com
- 철원군 관광 http://tour.cwg.go.kr
- 두루웰숲속문화촌 www.cwg.go.kr/site/duroowell
- DMZ평화의길 www.dmzwalk.com  

문의 전화
- 철원화강쉬리캠핑장(영농조합법인 쉬리마을추진위원회) 033)458-7200
- 철원군청 관광문화체육과 033)450-5365
- 두루웰숲속문화촌 033)450-5198
- 고석정(철원군시설물관리사업소) 033)450-5559
- 철원 노동당사(철원군시설물관리사업소) 033)450-5559
- DMZ평화의길 고객센터(방문 신청 접수) 1644-1303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철원(와수리),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44회(06:00~20:50) 운행, 약 1시간50분~2시간20분 소요. 와수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 이용, 약 5000원. 서울-학사리, 동서울종합터미널 정류장에서 경기고속 3002번 버스 50분 간격(06:00~20:30)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철원화강쉬리캠핑장까지 도보 5분. 서울-학사리, 지하철 4호선 수유역 4번 출구 앞 정류장에서 경기고속 3005번 버스 50분 간격(06:20~20:4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철원화강쉬리캠핑장까지 도보 5분.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txbus.t-money.co.kr 경기고속 02)455-2114 

자가운전
세종포천고속도로(구리-포천) 신북 IC→호국로 35km→문혜지하차도 진입→호국로 10km→만경교차로 화강 방면 우회전→철원화강쉬리캠핑장

숙박 정보
- 한탄리버스파호텔: 동송읍 태봉로, 033)455-1234, www.hantanhotel.co.kr
- 대명관광호텔: 서면 와수로181번길, 033)458-8167
- 썬레저텔: 동송읍 태봉로, 033)456-2120


식당 정보
- 평남면옥(꿩냉면): 서면 와수로, 033)458-2044
- 생수송어횟집(송어회): 근남면 하오재로, 033)458-1205
- 운정가든(한우생갈비): 동송읍 이평로, 033)455-8533, http://cityfood.co.kr/ file2/h_0115/57347/index.html

축제·행사 정보
제13회 철원화강다슬기축제: 2019년 8월1~4일, 김화읍 화강(김화생활체육공원) 일원, 033)452-3600(철원군축제위원회)

주변 볼거리
DMZ생태평화공원, 사라진마을 김화이야기관, 순담계곡, 직탕폭포, 삼부연폭포, 철원 승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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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