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정의당 박예휘 부대표

“6411번 버스 ‘투명인간’들을 위하여”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지난 13일 정의당 5기 대표단에 박예휘·김종민·임한솔 후보가 부대표로 선출됐다. 심상정 신임 대표와 함께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할 막중한 역할을 맡게 되면서 이들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박 부대표는 유일한 여성 부대표로 당의 청년 부대변인을 맡았던 인물이다. <일요시사>가 그에게 ‘정의당’에 대해 물었다.
 

▲ ▲ &lt;일요시사&gt;와 인터뷰 갖는 박예휘 정의당 부대표

“저는 속도보다 방향을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저를 더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가 없어서요. 만들어 가야겠어요(웃음).” 첫 질문인 자기소개에 의외의 답이 돌아와 함께 웃었다. 이번에 신임으로 선출된 정의당 박예휘 부대표와의 첫 만남서였다. 인터뷰가 끝나고 박 부대표가 유일하게 강조한 ‘방향’이 어쩌면 사회의 가장 소외된 곳을 정확히 향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박 부대표와의 일문일답.

-<일요시사> 독자 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 동시 당직 선거서 정의당 신임 부대표로 선출된 박예휘라고 합니다. 저는 속도보다 방향을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당대표 선거보다 부대표 선거가 치열했다는 후문이 있던데요.
▲네. 물론 당대표 선거도 치열했지만, 부대표 선거는 아무래도 세 명을 뽑는 선거에 7명의 도전자가 도전장을 내밀어서 당원분들이 ‘이 많은 부대표 중에 누구를 찍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셨을 것 같아요.

-어떤 후보들이 나왔는지요.
▲녹색 정치, 생태를 이야기하는 분도 출마하셨고요. 생태와 불평등에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는 분도 계셨고, 민생 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신 분도 계셨고, 또 당에는 전략이 필요하니 전략을 맡겠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또 말씀 안 드리면 섭섭한 사람이…. (웃음) “광장에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정치로 끌어오겠다” 이런 포부를 밝힌 후보도 나왔습니다.

-부대표님의 선거 전략은?
▲전략이라기보다는 저는 제 슬로건이 있었어요. ‘투명 인간들이 색깔을 찾는 정당’이요. 고 노회찬 대표님께서 “이 사회서 6411번 버스를 타는 수많은 투명 인간들을 향해 우리가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투명 인간이 어떤 의미인지 당내에선 공감대가 형성돼있거든요. 그런 사람(투명 인간)을 시의적으로 소비하는 기존의 정당들처럼 되지 말고, 그 사람들이 각자의 색깔로 빛날 수 있게 그들의 손을 잡아주자. 그분들이 자기의 삶과 일상을 찾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당 안에서부터 실현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당 관계자분이 부대표님을 당선 확정자로 꼽으시더군요.
▲청년 명부가 있습니다. 똑같이 선거할 때는 따로 청년 명부에 투표하는 게 아니라, 일곱 분의 후보가 다 있고 그중에서 당원이 1인1표를 던지는 방식이에요. 하지만 다득표자에 청년이 없을 경우에는 그 후순위 득표 중에 청년을 찾아서 앞에 배치하는, 제일 후순위와 교체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설계돼있어요. 입후보 등록 마감까지 다른 청년 후보가 등록하지 않아서 단선으로 치러졌습니다.

-청년, 여성을 대표해서 된 자리인 만큼 어깨가 무거울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요. 청년 할당과 청년을 대표한다는 의미는 좀 다른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청년의 표로만 당선이 됐으면 모르겠지만, 그냥 모든 당원의 표를 받아서 치른 선거기 때문에 여성과 청년을 대표한다는 게 좀 맞지 않은 측면도 있는 거 같아요.

저 한 사람으로 그분들을 다 대표한다고 볼 수도 없고, ‘왜 청년은 항상 할당으로만 당선될 수 있는가?’ ‘왜 청년들이 나와서 다득표를 얻어갈 수 없는가?’ 이런 의문이 생기죠. 청년과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청년이자 여성인 당사자의 고민일 뿐만 아니라 당 전체의 주요한 고민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년과 여성의 문제는 당 전체의 고민이다?
▲다른 후보님들에겐 ‘40대 남성을 대표해 당선되셨는데’라는 질문을 하지 않죠. 오히려 ‘안보 정책에 대해서 정의당은 어떻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와 같은 질문을 받아요. 하지만 제겐 노동이나 선거제도 개혁, 생태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아요.

이들(청년, 여성)을 대변할 차별화된 방법은 당 전체서 고민해야 할 의제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의제는 여성이 알아서 하고, 청년 의제는 청년이 알아서 하는 식으로 하면 이런 의제들은 중앙 정치서 주변화돼 축소되고 맙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하는 정치가 곧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려고 합니다.

노회찬 보고 정계 입문 결심
청년·여성은 당 전체의 고민

-원래도 정치에 꿈이 있으셨나요?
▲고 노회찬 대표님께서 돌아가신 7월 말, 8월 초 이때쯤에 직업 정치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전까지는 당에서 일하기도 하고 또 대의원으로서 지역운영위원으로 참여하는 활동도 했지만, 진로에 대해선 노무사를 생각했거든요. 물론 정치를 한다고 해서 노무사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직업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고자 한 계기가 고 노회찬 의원님이셨다고요.
▲제게 항상 "정치인이 돼라. 직업 정치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아주 친한 동료 활동가와 (노회찬 대표님이)돌아가셨을 때 이야기를 했어요. 슬픔을 주체 못 하니까 그날따라 유독 더 깊게 통화를 했었죠. 실의에 빠져 가지고….

노 대표님 돌아가시고 나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겠다고 얘기할 때 그 얘기를 다시 한 번 꺼내더라고요. “언니, 내가 계속 정치하라고 했었잖아. 진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요. 그전까지는 “아휴, 내가 무슨 정치야” 이렇게 얘기를 했었는데, 그날 한 5시간 정도 통화하면서 직업 정치인의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0%서 120%로 늘어났습니다.

-그때 심정은 어떠셨나요?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이렇게 허망하고, 헛헛하고, 절망적인 일이 찾아왔을까. 시대의 상식을 미리 앞서서 이야기했던 분인데. 호주제 폐지, 성 정체성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까지 주장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을 최초로 발의하셨던 의원님께서 왜 이렇게 세상을 살다 가셔야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깐 이 길에서 도저히 비켜서 있지 못하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어요. 아무리 거칠고 외로운 길이어도 여전히 걷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도 그 길을 같이 걸으면서 만들고자 했던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당선 소감서 ‘밥 짓는 부대표’가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집밥’하면 그리움의 정서를 대표하고 있잖아요. 국민들은 상식적인 정치를 그리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당이)상식적인 정치를 해야 유권자들에게 우리를 선택해달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려면 정의당은 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지어야 합니다. 이것이 필요한 사람들은 강남역 10번 출구에도 있고, 인천 퀴어 문화축제서 혐오세력의 폭력으로 다치고 피를 흘렸던 동인천역 북광장에도 있고…. 투명 인간들이 색깔을 찾을 수 있게 그들을 위한 밥을 짓는 정당이 되어야겠죠.

-조금 더 힘을 실어주고 싶은 분야가 있으시다면?
▲주목도가 낮은 청소년과 장애 부문이요. 당사자들은 굉장히 많은 운동을 해왔고,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치권에선 여성 의제보다 더 주목을 받지 못하고 후순위가 되고 있는 거 같아요. 물론 계류되고 있는 젠더 법안도 굉장히 많죠. 또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싶어요.

-선거제도 개혁은 계속해 아쉬운 부분이 있으실 텐데?
▲특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파행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지방선거 국면서 당시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4등까지 당선이 되면 대의제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는데요. 이것은 사실적으로 맞지 않아요.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의 사표를 줄일 수가 있고, 지지율을 대표할 수 있기 때문에 대의제 원칙에 오히려 가까워진다고 볼 수 있어요.

-민주당이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죠.
▲전국적으로 민주당의 당론에 맞게 행동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인천과 경북 등 민주당이 불리한 곳에서는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 정의당과 같이 현수막을 만들고 공동으로 4인 선거구 관철시키라고 집회를 했어요. 그런데 민주당이 유리한 곳에서는 4인 선거구를 쪼개기 위해서 밀실 합의를 감행하기도 하고, 선관위서 제안한 4인 선거구안을 조각조각 쪼깨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죠. 여기에 대해선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한 편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정의당과 민주당을 범여권으로 묶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에 심상정 대표님은 취임 기자회견서도 “우리를 더 이상 범여권으로 분류하지 말라”고 밝히셨습니다. 저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범여권으로 분류되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사실을 부정하기보다는 이렇게 분류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민주당과 차별화할 것인지, 불평등으로 찌든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근본적이고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 정당의 정책은 ‘비현실적’이라는 의견에는?
▲‘사회적 합의’가 관건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지난번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민주당의 전신이었던 정당서 이야기했던 것이고 심지어 발의한 의원까지 있는데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 여당이 되고 나서는 ‘국민의 반대 때문에 어렵다’는 수식어 뒤에 숨었죠. 저는 사회적 합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정당도 마찬가지고, 어떤 정책을 추진하는 행정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해요. 정부가 목표로 하는 국정운영 방향이 있으면, 당연히 집행하는 여러 지자체나 공무원들을 설득해나가는 작업도 분명히 있어야 할 것이고요. 마찬가지로 정당도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우리 당의 역할이라 생각하고요.

-실현 가능성에 의구심을 가지는 분들도 많은데?
▲정의당은 연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게 정말로 실현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요. 비현실적이라는 말은 ‘너무 급진적이다’ ‘너무 과도하다’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해야 더 지속 가능한 사회, 사람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냐는 문제인데, 약자를 위해서 한정된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는 게 가진 자의 입장에서 보면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죠. 가치판단이 개입됐다고 생각해요.

-가치판단이라…. 예를 들면요?
▲임대료 문제는 ‘건드릴 수 없는 문제’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자유시장에 맡겨야 하는 사유재산이라고 하잖아요. 세입자들은 분명 고통받는데 왜 가진 자의 이익은 못 건드리나요. 또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서 다치고 죽어나가는데, 왜 노동자의 생명줄은 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기업의 이익은 못 건드리면서요. 여기에 대해서 분명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약자의 편을 드는 정당은 매우 소수고 그 세력도 작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드러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를 해결할 방법이 있으시다면?
▲어느 정당서 과도하게 보이는 정책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디선가 과도하게 차별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부분을 인지한다면 어떻게 정책을 실현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 같이 생각하고 토론해보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따뜻한 밥 짓는 부대표가 되겠다”
내년 총선 진두지휘 막중한 역할

-당이 ‘약진’할 수 있는 전략이 있습니까?
▲현 정부가 긴축재정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 점에 대해 심 대표님이 “단순히 복지지출을 늘리고 환경예산 늘리는 것을 넘어서서 이렇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서 국민이 낸 세금을 정부가 어떻게든 틀어막고 있는 것은 맞지 않다. 그래서 긴축재정, 균형재정이 아닌 확대재정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셨어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저희는 경제 정당으로서 위상을 당당히 할 수 있는 경제 정책들을 펼쳐나갈 예정인데요. 한국당과 민주당이 과감하게 내놓지 못하는 구체적이고 담대한 전략을 정의당서 펴겠습니다.
 

-선거제 개혁안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다른 여야 간사나 위원께서도 수고를 해주셨지만 지금까지 심 대표님께서 정개특위 위원장으로서 수고를 많이 하셨고 위원장 자리가 넘어간 만큼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민주당이 어영부영한 세월 기다리지 말아야 하고요. (선거제 개혁안을)한국당과의 협상의 지렛대로 삼을 것이 아니라, 의지를 갖고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또 한국당서 제1소위원장을 내놓으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요. (선거제 개혁안을)주고받을 수 있는 정치적 카드로 인식하지 않고 제도 개혁에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완수하도록 저희가 옆에서 계속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의당’이란?
▲정의당은 붙잡을 수 있는 희망인 거 같아요. (국민들께) 희망이 되어야 하고, 현재 희망이고, 그래서 정의당이 더 잘해야 하고…. 저는 정치혐오로 인해 혜택을 누리는 정당은 현 상태가 계속 지속되기를 바라는 기득권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현 상태가 지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입장은 항상 소수고, 항상 힘들고, 주목받지 못하는 길을 항상 걸어요.

정의당은 그걸 알면서도 계속 남아 있는 사람들이고, 정치혐오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치를 통해서 제도와 법을 바꾸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나가려고 하는 그런 원내정당이 아닌가 싶습니다. 6411번 버스를 타고 있는 수많은 사람, 투명 인간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에게 당이 내놓은 정책으로 행복한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게 정의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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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