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영국의 위대한 삼두마차 골퍼들

영국이 골프 전성기를 맞이하던 19세기 말,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골프 3인방이 동시대에 함께 나타났다. 존 헨리 테일러, 해리 바든, 제임스 브레이드 3명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위대한 삼두마차’(THE GREAT TRIUMVIRATE)라고 불렀다. 

로마시대 케사르와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의 삼두정치처럼 이들 3명의 골퍼는 189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까지 21년간 무려 16차례의 디 오픈 우승을 번갈아 가면서 나눠 가졌다. 그중 으뜸이 해리 바든이었다.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지대한 공을 세운 그는 현대 골프의 선구자이며 ‘해리 바든 그립’으로도 불리는 오버래핑을 고안해낸 골퍼였다. 

해리 바든

21세기 현재에도 널리 사용되는 바든 그립은 왼손 검지 위에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올려놓는 형태이다. 1870년 영국과 프랑스 해협 사이의 저시섬에서 태어난 그는 20살 되던 해 골프채를 짊어지고 당시 골프의 전투장으로 불렸던 스코틀랜드로 무작정 입성했다. 1893년 디 오픈에 처녀 출전했으나 우승자와 22타나 뒤져 실망하곤 자신의 스윙을 가다듬으며 훗날을 기약한다.

존 테일러

존 테일러는 1888년 약관 17세의 나이로 프로 데뷔 첫해에 디 오픈에 출전, 34년간 스코틀랜드 골퍼가 우승한 전례를 깨고 최초의 잉글랜드 출신 우승자가 된 혜성 같은 골퍼였다. 타고난 킬러였던 그는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물리치며 영국 최고수라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895년 해리 바든과 존 테일러 두 고수는 마침내 요크셔골프장의 프로 대항전에서 마주쳤다. 팬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벌어진 맞대결에서 예상을 뒤엎는 이변이 벌어졌다. 테일러에게 5홀을 뒤지던 상황에서 바든이 마지막까지 쫓아가 동점을 만들었고, 다음 날 36홀 플레이오프에서 4타 차로 테일러를 이겨버린 것이었다. 

테일러는 바든의 스윙을 지켜보면서 그가 자신과 동시대를 함께할 최고의 골퍼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비록 프로 대항전에서는 패했지만 1894, 1895년 디 오픈에서 2연패를 하면서 바든과 숙적관계를 팽팽하게 유지했다. 1년 뒤 1896년 디 오픈 대회장. 2만여명의 갤러리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떠오르는 다크호스인 바든이 지난해 프로 대항전에서는 테일러를 이겼지만, 아직은 테일러가 우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 최고의 디 오픈에서도 바든은 예상을 깨고 우승을 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에 영국은 “잉글랜드의 섬 출신 촌놈이 우승을 했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회가 끝난 뒤 테일러는 “이제껏 나를 망신 준 유일한 골퍼가 바든이었다”고 말했다. 바든은 이후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4년을 포함, 디 오픈 6회 최다 우승으로 명성을 떨쳤다.

테일러 역시 비록 동시대에 바든이라는 복병을 만났지만, 당대 최고수답게 디 오픈에서 4차례나 우승을 거머줬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라 바든과 테일러는 미국에도 진출, 미국프로골프협회인 PGA의 탄생에도 일조했다.

제임스 브레이드

마지막 선수는 제임스 브레이드로 185센티미터의 장신에서 뿜어져나오는 장타가 당대 일품이었다. 세인트 앤드루스 출신의 정통 스코틀랜드인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골프 연습을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결국 브레이드는 골프 연습장이 아닌 런던의 목공소 견습생으로 보내졌다.


브레이드는 목공소의 조수로 일하면서 다행히 일요일에는 골프를 칠 수 있었기 때문에 독학으로 틈틈이 골프 실력을 다졌다. 

세인트 앤드루스 태생 특유의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브레이드는 16세부터 프로 수준의 실력을 보였다. 그는 24세의 늦은 나이에 프로에 입문했고 30세가 넘은 1901년에야 처음으로 디 오픈에서 우승을 한 늦깎이였지만, 10년 동안 총 5차례나 오픈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위대한 3인방 중 한 명이 됐다. 배멀미 때문에 미국 진출을 싫어한 그는 ‘최고로 성공한 골퍼’라는 칭호를 받았다.

20세기 초반 미영 양국 간 주요 교통수단은 여객선이었다. 10여년 전부터 미국을 왕래하던 해리 바든은 미국인들에게도 위대한 골퍼로 명성이 자자하던 터였다. 1912년 4월10일 유명한 타이태닉호가 영국에서 건조되어 처녀 출항을 하던 날이었다. 미국에서 열리는 초청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바든의 특실이 예약돼있었다. 

“영광입니다. 바든씨. 새로 건조된 타이태닉의 탑승객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바든씨도 그 배에 타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라고 예약 당시 친절했던 선박 직원에게 연락이 온 것은 출항 사흘 전이었다. 미국 입국을 위해서는 누구나 결핵반응검사 엑스레이를 첨부해야 하는데 해리의 병원기록카드에 결핵 소견이 나와 입국이 거부됐다는 것이다.

심한 결핵을 앓던 그는 미국 체류 중에도 치료를 지속했기에 결핵이 다 나은 줄 알았다. 하지만 2주 전 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장기간의 여행이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부득이 바든은 그해 4월에 있을 미국에서의 모든 대회를 취소해야 했고 타이태닉호의 승선도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1894~1914년 21년간 무려 16차례
‘디 오픈’ 우승 번갈아 가면서 나눠

“해리, 이것 보게 큰일 났네.” 집에 누워 있던 해리에게 골프 친구인 테일러가 헐레벌떡 찾아왔다. 타이태닉이 침몰됐다는 신문을 들고 온 것이었다. 1912년 4월14일 항해 중이던 타이태닉호가 거대한 빙상에 부딪쳐 2000여명의 승객 대부분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요란한 뱃고동 소리와 함께 전 영국인들의 자부심을 한 몸에 안은 채 처녀 출항한 타이태닉호가 승객들과 함께 바다 속으로 수장되는 20세기 최악의 침몰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에 한 차례 결핵으로 피를 조금 쏟은 해리는 머리가 빙빙 도는 현기증을 느꼈다.

타이태닉의 승선이 취소되는 바람에 20세기 영국의 전설이었던 해리 바든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의 스윙은 특이했다. 숙적 테일러는 바든의 스윙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바든의 스윙은 볼을 때릴 때 사려 깊은 포즈로 너무도 쉬운 스윙을 한다. 좁은 어드레스로 좁은 스탠스를 유지하며 고요하게, 아무런 힘의 느낌도 없이, 눈에 거슬리는 동작이 한 순간도 없이, 마치 세상을 이해하고 관대한 아량을 베푸는 것처럼, 그리고 자신이 위대한 골퍼라는 자만심은 전혀 없으면서 무의식의 세계로 가는 듯한 부드러운 스윙을 한다.” 

고향에서는 그를 ‘그레이 하운드’(GREY HOUND)라고 불렀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그를 ‘스타일리스트’(STYLIST)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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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