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영국의 위대한 삼두마차 골퍼들

영국이 골프 전성기를 맞이하던 19세기 말,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골프 3인방이 동시대에 함께 나타났다. 존 헨리 테일러, 해리 바든, 제임스 브레이드 3명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위대한 삼두마차’(THE GREAT TRIUMVIRATE)라고 불렀다. 

로마시대 케사르와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의 삼두정치처럼 이들 3명의 골퍼는 189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까지 21년간 무려 16차례의 디 오픈 우승을 번갈아 가면서 나눠 가졌다. 그중 으뜸이 해리 바든이었다.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지대한 공을 세운 그는 현대 골프의 선구자이며 ‘해리 바든 그립’으로도 불리는 오버래핑을 고안해낸 골퍼였다. 

해리 바든

21세기 현재에도 널리 사용되는 바든 그립은 왼손 검지 위에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올려놓는 형태이다. 1870년 영국과 프랑스 해협 사이의 저시섬에서 태어난 그는 20살 되던 해 골프채를 짊어지고 당시 골프의 전투장으로 불렸던 스코틀랜드로 무작정 입성했다. 1893년 디 오픈에 처녀 출전했으나 우승자와 22타나 뒤져 실망하곤 자신의 스윙을 가다듬으며 훗날을 기약한다.

존 테일러

존 테일러는 1888년 약관 17세의 나이로 프로 데뷔 첫해에 디 오픈에 출전, 34년간 스코틀랜드 골퍼가 우승한 전례를 깨고 최초의 잉글랜드 출신 우승자가 된 혜성 같은 골퍼였다. 타고난 킬러였던 그는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물리치며 영국 최고수라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895년 해리 바든과 존 테일러 두 고수는 마침내 요크셔골프장의 프로 대항전에서 마주쳤다. 팬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벌어진 맞대결에서 예상을 뒤엎는 이변이 벌어졌다. 테일러에게 5홀을 뒤지던 상황에서 바든이 마지막까지 쫓아가 동점을 만들었고, 다음 날 36홀 플레이오프에서 4타 차로 테일러를 이겨버린 것이었다. 

테일러는 바든의 스윙을 지켜보면서 그가 자신과 동시대를 함께할 최고의 골퍼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비록 프로 대항전에서는 패했지만 1894, 1895년 디 오픈에서 2연패를 하면서 바든과 숙적관계를 팽팽하게 유지했다. 1년 뒤 1896년 디 오픈 대회장. 2만여명의 갤러리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떠오르는 다크호스인 바든이 지난해 프로 대항전에서는 테일러를 이겼지만, 아직은 테일러가 우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 최고의 디 오픈에서도 바든은 예상을 깨고 우승을 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에 영국은 “잉글랜드의 섬 출신 촌놈이 우승을 했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회가 끝난 뒤 테일러는 “이제껏 나를 망신 준 유일한 골퍼가 바든이었다”고 말했다. 바든은 이후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4년을 포함, 디 오픈 6회 최다 우승으로 명성을 떨쳤다.

테일러 역시 비록 동시대에 바든이라는 복병을 만났지만, 당대 최고수답게 디 오픈에서 4차례나 우승을 거머줬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라 바든과 테일러는 미국에도 진출, 미국프로골프협회인 PGA의 탄생에도 일조했다.

제임스 브레이드

마지막 선수는 제임스 브레이드로 185센티미터의 장신에서 뿜어져나오는 장타가 당대 일품이었다. 세인트 앤드루스 출신의 정통 스코틀랜드인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골프 연습을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결국 브레이드는 골프 연습장이 아닌 런던의 목공소 견습생으로 보내졌다.


브레이드는 목공소의 조수로 일하면서 다행히 일요일에는 골프를 칠 수 있었기 때문에 독학으로 틈틈이 골프 실력을 다졌다. 

세인트 앤드루스 태생 특유의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브레이드는 16세부터 프로 수준의 실력을 보였다. 그는 24세의 늦은 나이에 프로에 입문했고 30세가 넘은 1901년에야 처음으로 디 오픈에서 우승을 한 늦깎이였지만, 10년 동안 총 5차례나 오픈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위대한 3인방 중 한 명이 됐다. 배멀미 때문에 미국 진출을 싫어한 그는 ‘최고로 성공한 골퍼’라는 칭호를 받았다.

20세기 초반 미영 양국 간 주요 교통수단은 여객선이었다. 10여년 전부터 미국을 왕래하던 해리 바든은 미국인들에게도 위대한 골퍼로 명성이 자자하던 터였다. 1912년 4월10일 유명한 타이태닉호가 영국에서 건조되어 처녀 출항을 하던 날이었다. 미국에서 열리는 초청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바든의 특실이 예약돼있었다. 

“영광입니다. 바든씨. 새로 건조된 타이태닉의 탑승객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바든씨도 그 배에 타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라고 예약 당시 친절했던 선박 직원에게 연락이 온 것은 출항 사흘 전이었다. 미국 입국을 위해서는 누구나 결핵반응검사 엑스레이를 첨부해야 하는데 해리의 병원기록카드에 결핵 소견이 나와 입국이 거부됐다는 것이다.

심한 결핵을 앓던 그는 미국 체류 중에도 치료를 지속했기에 결핵이 다 나은 줄 알았다. 하지만 2주 전 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장기간의 여행이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부득이 바든은 그해 4월에 있을 미국에서의 모든 대회를 취소해야 했고 타이태닉호의 승선도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1894~1914년 21년간 무려 16차례
‘디 오픈’ 우승 번갈아 가면서 나눠

“해리, 이것 보게 큰일 났네.” 집에 누워 있던 해리에게 골프 친구인 테일러가 헐레벌떡 찾아왔다. 타이태닉이 침몰됐다는 신문을 들고 온 것이었다. 1912년 4월14일 항해 중이던 타이태닉호가 거대한 빙상에 부딪쳐 2000여명의 승객 대부분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요란한 뱃고동 소리와 함께 전 영국인들의 자부심을 한 몸에 안은 채 처녀 출항한 타이태닉호가 승객들과 함께 바다 속으로 수장되는 20세기 최악의 침몰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침에 한 차례 결핵으로 피를 조금 쏟은 해리는 머리가 빙빙 도는 현기증을 느꼈다.

타이태닉의 승선이 취소되는 바람에 20세기 영국의 전설이었던 해리 바든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의 스윙은 특이했다. 숙적 테일러는 바든의 스윙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바든의 스윙은 볼을 때릴 때 사려 깊은 포즈로 너무도 쉬운 스윙을 한다. 좁은 어드레스로 좁은 스탠스를 유지하며 고요하게, 아무런 힘의 느낌도 없이, 눈에 거슬리는 동작이 한 순간도 없이, 마치 세상을 이해하고 관대한 아량을 베푸는 것처럼, 그리고 자신이 위대한 골퍼라는 자만심은 전혀 없으면서 무의식의 세계로 가는 듯한 부드러운 스윙을 한다.” 

고향에서는 그를 ‘그레이 하운드’(GREY HOUND)라고 불렀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그를 ‘스타일리스트’(STYLIST)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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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