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획> 현직 판·검사 25명 군면제 사유 대공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7.22 09:54:50
  • 호수 12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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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수장도 ‘신의 아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차관급 판·검사 191명 중 25명이 질병·가사사정·독자 등의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병무청이 집계한 일반인 평균 면제 비율보다 4배나 높은 수치다. <일요시사>가 병역사항공개 대상인 법원·검찰의 고위직들을 전수 조사한 결과, 서울대 법대→징병검사 연기→질병판정 병역면제→사법시험 합격 등의 패턴이 여러 차례 발견됐다. 특히 다수의 판·검사들이 근시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 일요시사는 병역 공개 사항 대상인 차관급 판검사들의 병역이행 여부를 전수 조사했다.

법조인 출신 고위공직자 병역 문제는 인사청문회의 단골메뉴다. 이번 윤석열 검찰총장의 인사청문회서도 병역면제가 도마에 올랐다. 그동안 인사청문회에서는 매번 법조인 출신 장관 후보자들의 병역 기피 의혹이 불거졌다.

100명 중
13명 통과

향후 장관급 인사에 발탁돼 인사청문회장에 설 수 있는 현직 고위직 판·검사들은 병역을 충실히 수행했을까. <일요시사>가 병역사항공개 대상인 차관급 판·검사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191명(판사 150명, 검사 41명) 중 25명(판사 21명, 검사 4명)이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최근 한 달 사이 퇴직한 고위직 판·검사 포함. 실제 법원·검찰 병역공개 대상자의 숫자는 조금 상이할 수 있음).

고위직 판·검사의 병역면제 비율은 13%다. 병무청이 집계한(2007∼2016년) 일반인 평균 면제 비율 2.8%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전체 고위공직자 병역면제 비율 8.4%(2016년 기존)를 웃돈다. 

고위직 판·검사의 병역면제 사유는 질병(17명)·독자(6명)·가사사정(2명)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으로 병역이 면제된 차관급 부장판사는 13명, 검사장은 4명이다. 주요 병명은 근시 등 시력 문제 12명(판사 9명·검사 3명), 폐결핵 2명(판사 1명·검찰 1명)이다. 이외에 고위공직자 판사 중 골수염 1명, 질병 미공개 2명이 병역을 면제받았다. 

그동안 시력 문제는 병역면제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인사청문회서 특히 율사 출신 후보자들이 근시 등으로 군대가 면제돼 병역회피 의혹을 샀다. 판사 출신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근시, 이기택 대법관이 고도근시, 권순일 대법관이 고도난시,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부동시 등으로 병역을 면제받아 인사청문회서 곤혹을 치렀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부동시로 병역이 면제돼 인사청문회장서 병역회피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8일, 윤석열 인사청문회서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은 “부동시로 운전면허 취득이나 계단 오르내리기를 못할 정도로 일상생활서 불편함이 많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부동시였는지” 등을 질의했으며 “부동시로 (병역을)면제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질타했다. 

<일요시사>가 공직자 병역사항공개 자료와 법조인 인명사전 등을 분석한 결과 질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판·검사들에게서는 일정한 패턴이 반복됐다. 대부분 서울대 법대 출신이었으며, 1차 징병검사 때 현역병 판정을 받으면 입영을 연기했다. 이후 병을 앓거나 수술을 받고 2~3차 징병검사 때 병역을 면제받은 사례가 여러 차례 발견됐다.

더불어 사법고시를 합격한 그해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경우도 더러 있었다. 

청문회 매번 병역 기피 의혹 불거져
군대 안 간 차관급 율사들 이유 보니…

다음은 질병 등으로 병역면제를 받은 고위직 판·검사들의 명단이다. 

▲김명수 대법원 대법원장(근시)= 1979년 병역판정 검사를 연기했다. 1980년 병역검사서 근시 판정을 받아 병종 전시근로역 질병 또는 심신장애 등으로 분류돼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후 김 대법원장은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사법연수원 2년을 거쳐 3년 후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1959년생, 부산고등학교(1977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1년), 제25회사법시험합격(1983년), 제15기 사법연수원 수료(1985년),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1986~1988년)

▲강동명 대구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안구진탕)= 1983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강 수석부장판사는 1985년 3급 현역병 입영 대상이었지만, 입대를 미뤘다. 2년 뒤인 1987년 안구진탕 판정을 받아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후 그는 1989년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92년 대구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1964년생, 경북사대부속고등학교(1982년), 서울대학교 사법학과(198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수료(1988년), 제31회 사법시험 합격(1989년), 제21기 사법연수원 수료(1990~1992년), 대구지법판사(1992~1995년)

조직 수뇌부
줄줄이 미필 

▲김시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근시)= 1984∼1986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김 부장판사는 1987년 병역검사서 근시 판정을 받아 5급 전시근로역 질병 또는 심신장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그해 김 부장판사는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거쳐 1990년 서울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1965년생, 서울 광성고등학교(1984년), 서울대학교 사법학과(1988년), 미국 U.C. Berkeley (LL.M.)(1998년), 제29회 사법시험합격(1987년), 제19기 사법연수원 수료(1988~1990년), 서울형사지법 판사(1990~1992년) 

▲김주호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근시)= 1984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신청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87년 근시로 5급 전시근로역 질병 또는 심신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을 면제받았다. 그는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93년 부산지법 판사가 됐다. 1965년생, 부산 낙동고등학교(1984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8년), 제32회 사법시험 합격(1990년), 제22기 사법연수원 수료(1991~1993년), 부산지법 판사(1993년)
 

▲ 판검사들의 병역면제 현황

▲강경구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질병 미공개)= 1986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강 부장판사는 1987년 5급 전시근로역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공직자 병역 사항에 따르면 강 부장판사의 질병은 미공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1995년부터 청주지법 판사로 근무했다. 1966년생, 대전 충남고등학교(1984년), 서울대학교 사법학과(1988년), 서울대학교 법학 석사(1993년), 제34회 사법시험 합격(1992년), 제24기 사법연수원 수료(1993~1995년), 청주지법 판사(1995~1999년)

▲박형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근시)= 1988∼1989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이후 1990년 근시로 전시근로역 질병 또는 심신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그는 1년 뒤 제23기 사범시험에 합격했으며, 사법연수원 2년을 거쳐 1994년 수원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1969년생, 부산진고등학교(1988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9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1998년), 제33회 사법시험 합격(1991년), 제23기 사법연수원 수료(1992~1994년), 수원지법 판사(1994~1996년)

191명 중…질병·독자·가사사정
일반인 병역면제 비율의 4배 이상 

▲이대경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무수정체)= 1978∼1979년 병역판정 검사를 연기했다. 그 다음 해 이 부장판사는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3년 제13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같은 해 그는 병역판정 검사서 안구 질환인 무수정체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이후 1983년부터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첫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1958년생, 충암고등학교(1979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1년), 제22회 사법시험합격(1980년), 제13기 사법연수원 수료(1981~1983년), 서울민사지법 판사(1983~1985년) 

▲이제정 특허법원 부장판사(부동시)= 1985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이 부장판사는 1986년 병역판정 검사를 2차 연기했다. 1987년 부동시 판정을 받아 병종 전시근로역 질병 또는 심신장애로 분류돼 병역이 면제됐다. 이후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년을 거친 뒤 그는 1995년부터 부산지법 울산지원 판사로 근무했다. 1966년생, 청주 운호고등학교(1984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1988년), 서울대학교 경영학 석사(1991년), 제34회 사법시험 합격(1992년), 제24기 사법연수원 수료(1993~1995년), 부산지법울산지원판사(1995~1997년)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근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82년 근시 판정을 받아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 부장판사는 병역면제를 받은 뒤 4년 후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9년부터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로 법관생활을 시작했다. 1962년생, 서울 인창고등학교 (1980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4년), 미국 NYU 법학(LL.M.) 석사(1997~1998년), 제28회 사법시험 합격(1986년), 제18기사법연수원수료(1987~1989년), 서울지법의정부지원판사(1989~1991년)

▲이기택 대법원 대법관(근시)= 1979년 근시 판정을 받아 병종 전시근로역 질병 또는 심신장애로 분류돼 병역이 면제됐다. 이 대법관은 대학교 3학년이던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5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1959년생, 경성고등학교(1978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2년),미국하버드Law School 국제조세과정 연수(1991년),제23회 사법시험 합격(1981년), 제14기 사법연수원 수료(1984년), 서울민사지법 판사(1985~1987년)

▲이흥구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폐결핵 활동성)= 1982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2년 뒤 이 부장판사는 폐결핵 활동성 미정으로 5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93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이 초임지다. 1963년생, 통영고등학교(1982년), 서울대학교 공법학과(1989년), 제32회 사법시험 합격(1990년), 제22기 사법연수원 수료(1991~1993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1993년) 

‘로얄 코스’
공식 통했나

▲정형식 서울회생법원 법원장(만성골수염)= 1981∼1983년 3차례 병역판정 검사를 연기했다. 정 법원장은 1984년 3급 현역병 입영 대상자로 분류됐지만 군대를 미뤘다. 1986년 5차 병역 검사서 만수골수염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정 법원장은 입영 연기를 한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사법연수원 2년을 거쳐 1988년부터 수원지법 성남지원 판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1961년생, 서울고등학교(1980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5),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1987년), 제27회 사법시험 합격(1985년), 제17기 사법연수원 수료(1986~1988년), 수원지법 성남지원 판사(1988년) 

▲최인규 광주고등법원 수석 부장판사(질병 미공개)= 1983년 5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된 최 수석 부장판사의 질병은 밝혀지지 않았다. 1989년 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4년 서울지법 서부지원 판사로 법관생활을 시작했다. 1964년생, 광주 조선대부속고등학교(1983년), 서울대학교 사법학과(1989년), 제33회 사법시험 합격(1991년), 제23기 사법연수원 수료(1992~1994년), 서울지법서부지원판사(1994~1996년) 

▲박성진 대전고등검찰청 차장검사(활동성 폐결핵)=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83년 병역판정 검사를 연기했다. 이후 1986년 병역판정 검사서 활동성 폐결핵(경도)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6년 뒤인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1995년 수원지검 검사로 임관했다. 1963년생, 부산 동성고등학교(1983년), 한양대학교 법학과(1992년), 제34회 사법시험 합격(1992년), 제24기 사법연수원 수료(1993~1995년), 수원지검 검사(1995~1996년)

입학→연기→질병→면제→사시
비슷한 코스 ‘서초동 지름길’

▲윤석열 검찰총장(부동시)= 1980∼1981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윤 후보자는 다음 해인 1982년 부동시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94년 대구지검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1960년생, 충암고등학교 (1979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1988년), 제33회 사법시험 합격(1991년), 제23기 사법연수원 수료(1992~1994년), 대구지검 검사(1994~1996년)

▲장영수 수원고등검찰청 차장검사(근시)= 1986년 병역판정 검사를 연기했다. 장 차장검사는 3년 뒤인 1989년 근시(-7.0D)로 5급 전시근로역으로 분류돼 병역을 면제받았다.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93~1995년까지 사법연수원 2년을 거쳤다. 1998년 청주지검이 첫 발령지다. 1967년생, 대원고등학교(1985년), 고려대학교 법학과(1990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졸업정보 없음, 제34회 사법시험 합격(1992년), 제24기 사법연수원 수료(1993~1995년), 청주지검 검사(1998년)

▲한찬식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근시)= 1987∼1988년 병역판정 검사를 2차례 연기했다. 이후 1989년 근시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같은 해 한 검사장은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년을 거쳐 1992년 서울지검서 첫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생, 성남고등학교(1986년), 서울대학교 사법학과(1990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법학 (LL.M.) 석사(1998년), 제31회 사법시험 합격(1989년), 제21기 사법연수원 수료(1990~1992년), 서울지검 검사(1992~1994년)

<일요시사>가 질병 등으로 병역이 면제된 법원·검찰 고위직들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 법대→징병검사연기→질병으로 병역면제→사법연수원 합격 등의 패턴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이런 패턴이 반복되는 걸까.

법조계에 따르면 1970∼1990년대 당시 사법고시를 통과하지 못한 법조인들에게 군 복무는 기피 대상이었다.

실제로 고위직 판·검사 191명 중 15명(판사 5명, 검사 10명)만 현역으로 입대해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역면제 25명을 제외한 나머지 161명가량은 군 장교 출신이거나 상근으로 병역을 마친 것으로 확인된다. 

대부분 시력
단골 의혹

전직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부분 현직 판·검사들은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법무 장교로 군 복무를 한다. 그렇지 못한 사시 준비생들에게 일반 병사로 군 복무를 하라는 건 3년을 버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더구나 서울대 법대 출신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이들이 부조리한 군생활을 어떻게 견디느냐. 당시 이들 사이서 군대를 미루고 사시에 합격한 후, 어떻게든 현역으로 가지 않으려고 애쓰던 문화가 있던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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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등장하자 보수의 심장인 대구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광폭 행보에 나선 김 전 총리를 바라보는 대구 시민들도 양가감정이 교차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1995년 민선 시장 선출 이래 대구에서 단 한 번도 시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구 민심이 심상치 않은 만큼 최초의 진보 대구시장이 탄생할지 이목이 쏠린다. 대구는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광역자치단체이다. 지난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대구에서 23.22%(37만9130표)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반면 국민의힘 대선주자였던 김문수 후보는 67.62%(110만3913표)를 기록했다. 이처럼 대구는 윤석열정부 퇴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조차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약세를 보이는 지역이었다. 적절한 타이밍 그런 대구에서 최근 국민의힘이 힘을 못 쓰고 있다. 지도부를 중심으로 당이 지리멸렬하는 사이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고, 민주당이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우위를 선점했다. 지난달 30일 김부겸 후보는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발전, 그것이 저의 마지막 소명”이라며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김 후보는 대구에 당선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2012년과 2014년 각각 제19대 총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대구광역시장)에서 낙선했으나 2016년 제20대 총선을 통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에서 당선됐다. 이후 제21대 총선에서 또다시 낙선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김 후보는 캠프 해단식에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면목이 없다”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 새로운 날들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던 바 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김 후보가 다시 대구 전면에 등장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대구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며 “굳이 이런저런 수치를 열거하지 않겠다. 대구의 정치, 한 당이 독식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후보는 “정치인이 일을 안 한다. 일 안 해도 서울에서 공천만 받으면 또 된다. 대구 시민을 표 찍어주는 기계로 취급한다”며 “요즈음 시장 공천 과정을 보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냐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지금 대구에 필요한 사람, 김부겸이다. 나를 잘 써달라. 김부겸과 함께 대구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날 김 후보는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도 공개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김부겸으로서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겠다”며 “경기도 군포 초선 시절부터 해왔던 대로 제 전화번호를 공개하겠다. 대구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의힘을 버려야 진짜 건강한 보수가 살아난다”며 “이번 선거는 대구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 발전이 제 마지막 소명이다.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보수 심장’ ‘민주당’ 없는 민주당 동진 전략 지난 3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중앙당의 만장일치로 김 후보를 대구광역시장 후보자에 선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김 후보는 광폭 행보를 보였는데, 특히 김 후보는 ‘민주당’이라는 여당 프리미엄을 전면에 세우는 대신 “김부겸을 도구로 써달라”는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김 후보는 대구·경북(TK)의 상징인 박근혜·박정희 마케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있고 대구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꼈다면 과오 논쟁을 넘어 대구의 미래를 향한 논쟁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포용의 정치를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 가능성을 열어둔 데 이어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KBS에서 김 후보의 박 전 대통령 예방에 대해 “대구 현실에 대한 판단으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측근인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이 회동의 전제 조건으로 ‘박 전 대통령의 실질적인 명예회복 방안’을 언급한 데 대해서는 “당 차원의 명예회복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조명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출마 선언문을 보면 김 후보는 민주당을 강조하는 대신 대구의 발전 방향만 이야기했다”며 “김 후보가 민주당 출신인 것을 모르는 대구 시민은 없다. 그럼에도 ‘내란’ ‘계엄’ 등 예민한 단어를 빼버림으로써 시민들은 김부겸이란 인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 김 후보는 국민의힘을 비판한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대구시장을 해 왔는데 대구가 뭐가 바뀌었냐, 그건 국민의힘이 무능해서’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준다. 절대 왼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현재 보수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분위기가 안 좋다. 그때는 TK를 제외하고 몽땅 내줬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처절하게 패배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명확하게 ‘절윤’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워낙 김 후보가 전략을 잘 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빼고 ‘경제’ 넣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참전했다. 홍 전 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대구에 도움이 된다면 당을 떠나 정치꾼이 아닌 역량 있는 행정가를 뽑아야 한다”며 김 후보를 추켜세웠다. 그는 “부산은 스윙 보터 지역이라 민주당이 가덕신공항도 해주고 해수부도 이전해 주지만, 대구는 막무가내식 투표를 하니까 민주당 정권이 도와주지도 않고 버린 자식 취급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후임 대구시장이 능력 있고, 중앙정부와 타협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김부겸 전 총리를 언급한 것”이라며 “민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김부겸을 지지했다고 봐주시면 한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의 지지율이 연일 상승하면서 안정궤도에 돌입했다는 평이 나온다. 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8~29일 대구 시민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는 차기 대구시장 적합도 49.5%를 기록해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15.9%)을 큰 격차로 앞섰다. 김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 간의 1대1 가상 대결에서도 추 의원과 맞붙을 경우 52.3% 대 36.6%로 오차범위 밖 우세를 보였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전화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김 후보는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하 방통위원장)과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컷오프되자 반발 차원에서 대구 시민이 역결집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오름세를 보이면서 이 같은 현상은 단순 역결집이 아니라 실제 보수 민심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민주당도 김 후보 지원사격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8일 대구에서 최고위원 회의를 열고 김 후보를 ‘제2의 노무현’ ‘제2의 이재명’이라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노무현이 종로 꽃길을 마다하고 부산 가시밭길에 도전했듯이 김부겸도 군포 꽃길을 마다하고 대구 가시밭길에 내려왔다”며 “김부겸도 이재명도 대구·경북 사람이고 민주당에서 비주류였다”고 말했다. 이날 정 대표는 당정 차원에서 지역 숙원사업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이 지난 대구 타운홀미팅에서 TK 신공항 건설, 취수원 문제 등 대구 숙원 사업 추진 의사를 밝혔다”며 “그 의지는 앞으로 예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팍팍 깎이는 현지 민심 TK 통합에 대해선 “국민의힘이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통합이 멈춰 섰다”며 “김 전 총리와 힘을 합쳐 통합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화답하듯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대구에 중요한 약속을 했고, 정 대표도 ‘무엇이든지 다해드림센터장’이 되겠다고 했다. 이 보증수표를 믿고 대구를 메딕시티, AI·로봇 수도, 미래 모빌리티 산업 선도 도시로 만들어 그 약속을 시민의 삶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전략은 ‘민주당’을 빼고 대신 ‘대구 발전’ ‘민생’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9일 김 후보는 후보 등록을 마친 뒤 취재진들과 만나 1호 공약을 소개하는 등 민생·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1호 공약으로 대구의 지역 경제 발전을 꼽으며 “지역의 주요 기관과 단체, 어른들께 조속히 인사를 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대구 곳곳을 마주하며 지역의 어려움과 스스로의 부족함을 동시에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최대 현안인 인구 유출 문제를 언급하며 “젊은이들이 떠나는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굳어져서는 안 되는데 이를 막지 못하는 현실에 시민들이 아픔을 느끼고 있다”며 “그만큼 책임감이 무겁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 일자리 해결과 경제 도약에 집중할 것”이라며 “대구의 절실한 요구를 예산과 법률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 핵심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안방마저 내줄 상황에 몰렸다. 김 후보가 우후죽순 치고 나가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당내 교통 정리에서조차 애를 먹으면서 표가 갈릴 위험에 처한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싸움이 일어나는 만큼 여의도에서는 ‘김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장동혁 대표’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나온다. 국민의힘을 향한 대구의 실망감은 숫자로도 나타났다. 지난 9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은 54%,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30%로 집계됐다. 특히 TK에서 여당 44%·야당 34%로 집계되면서 국민의힘에서도 위기감을 감지한 모양새다. 잘나가는 김 멍 때리는 장 대구 달서병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은 “대구 여론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며 “모두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이 대구시장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 의원은 MBC 라디오를 통해 최근 대구 민심에 대해 “그동안 국민의힘에 대한 불만으로 ‘이번에는 갈아보자’고 했지만 대안이 없어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민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에 반이재명 정서가 강했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 ‘윤석열보다는 이재명이 잘한다’, 심지어 ‘얄밉게 잘한다’는 사람도 있다”며 여기에 “김부겸이란 대안도 있어 대구 민심이 그 대안으로 옮겨가기 직전”이라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인데도 당은 ‘무난히 여섯 명(예비 후보) 중 한 명을 뽑으면 된다고 하고 있다”며 “자칫 잘못하면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으로 ‘김부겸을 통해 이익이라도 챙기자’라고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주호영, 이진숙을 다독거려서 될 문제가 아니다. 6명 중에서 뽑힌 후보가 김부겸을 이기기 힘들 만큼 대구 민심은 훨씬 더 나쁘다”며 “상황이 이렇기에 보수 기득권에 안주하는, 보수 결집으로 이기겠다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은 무소속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혔으며, 가처분이 기각된 주호영 의원은 “항고심을 지켜본 뒤 거취를 판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주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장애물은 장동혁 대표 체제 그 자체”라며 국민의힘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기까지 했다. 앞서 주 의원은 지난달 26일 법원에 컷오프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고 법원은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이후 주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장 대표를 향해 “민심을 붙잡을 대책도, 보수를 다시 세울 노선도, 국민 앞에 사과하고 변화를 약속하는 모습도 없다”며 “대신 곳곳에서 공천 작당만 벌였다는 비판만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대구 현장에서도 장 대표가 싫어 국민의힘을 못 찍겠다는 말이 적지 않다. 장 대표가 먼저 결단해야 한다”며 “비상대책위원회든 선거대책위원회든 새로운 책임 체제를 즉각 구성하라”라고 장 대표의 후퇴를 촉구했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의 변수는 시민들의 막판 결집력이다. “당장 내일 선거가 치러지면 김부겸을 찍겠다”는 이들조차 투표소에 들어가면 “그래도 보수를 찍어야지”라는 마음으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삼진 아웃? 다만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런 ’습관성 투표‘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 관계자는 “‘보수가 큰일 났다’ ‘대구가 위험하다’라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이들이 똘똘 뭉쳐 결집하고 표가 된다”며 “지금은 장 대표가 위기 그 자체다. 그래서 ‘이번에는 김부겸 한번 믿어보자’는 기대감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4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보수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가면서 보수 지역 민심도 그에 맞춰가는 것”이라며 “김 후보가 크게 실수하지 않는 이상 ‘이대로라면 대구가 민주당에 뺏긴다’라는 위기감보다 ‘그래도 보수를 먼저 살려야지’라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