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획> 현직 판·검사 25명 군면제 사유 대공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7.22 09:54:50
  • 호수 12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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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검찰 수장도 ‘신의 아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차관급 판·검사 191명 중 25명이 질병·가사사정·독자 등의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병무청이 집계한 일반인 평균 면제 비율보다 4배나 높은 수치다. <일요시사>가 병역사항공개 대상인 법원·검찰의 고위직들을 전수 조사한 결과, 서울대 법대→징병검사 연기→질병판정 병역면제→사법시험 합격 등의 패턴이 여러 차례 발견됐다. 특히 다수의 판·검사들이 근시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 일요시사는 병역 공개 사항 대상인 차관급 판검사들의 병역이행 여부를 전수 조사했다.

법조인 출신 고위공직자 병역 문제는 인사청문회의 단골메뉴다. 이번 윤석열 검찰총장의 인사청문회서도 병역면제가 도마에 올랐다. 그동안 인사청문회에서는 매번 법조인 출신 장관 후보자들의 병역 기피 의혹이 불거졌다.

100명 중
13명 통과

향후 장관급 인사에 발탁돼 인사청문회장에 설 수 있는 현직 고위직 판·검사들은 병역을 충실히 수행했을까. <일요시사>가 병역사항공개 대상인 차관급 판·검사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191명(판사 150명, 검사 41명) 중 25명(판사 21명, 검사 4명)이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최근 한 달 사이 퇴직한 고위직 판·검사 포함. 실제 법원·검찰 병역공개 대상자의 숫자는 조금 상이할 수 있음).

고위직 판·검사의 병역면제 비율은 13%다. 병무청이 집계한(2007∼2016년) 일반인 평균 면제 비율 2.8%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전체 고위공직자 병역면제 비율 8.4%(2016년 기존)를 웃돈다. 

고위직 판·검사의 병역면제 사유는 질병(17명)·독자(6명)·가사사정(2명)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으로 병역이 면제된 차관급 부장판사는 13명, 검사장은 4명이다. 주요 병명은 근시 등 시력 문제 12명(판사 9명·검사 3명), 폐결핵 2명(판사 1명·검찰 1명)이다. 이외에 고위공직자 판사 중 골수염 1명, 질병 미공개 2명이 병역을 면제받았다. 


그동안 시력 문제는 병역면제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인사청문회서 특히 율사 출신 후보자들이 근시 등으로 군대가 면제돼 병역회피 의혹을 샀다. 판사 출신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근시, 이기택 대법관이 고도근시, 권순일 대법관이 고도난시,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부동시 등으로 병역을 면제받아 인사청문회서 곤혹을 치렀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부동시로 병역이 면제돼 인사청문회장서 병역회피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8일, 윤석열 인사청문회서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은 “부동시로 운전면허 취득이나 계단 오르내리기를 못할 정도로 일상생활서 불편함이 많다고 하는데, 언제부터 부동시였는지” 등을 질의했으며 “부동시로 (병역을)면제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질타했다. 

<일요시사>가 공직자 병역사항공개 자료와 법조인 인명사전 등을 분석한 결과 질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판·검사들에게서는 일정한 패턴이 반복됐다. 대부분 서울대 법대 출신이었으며, 1차 징병검사 때 현역병 판정을 받으면 입영을 연기했다. 이후 병을 앓거나 수술을 받고 2~3차 징병검사 때 병역을 면제받은 사례가 여러 차례 발견됐다.

더불어 사법고시를 합격한 그해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경우도 더러 있었다. 

청문회 매번 병역 기피 의혹 불거져
군대 안 간 차관급 율사들 이유 보니…

다음은 질병 등으로 병역면제를 받은 고위직 판·검사들의 명단이다. 

▲김명수 대법원 대법원장(근시)= 1979년 병역판정 검사를 연기했다. 1980년 병역검사서 근시 판정을 받아 병종 전시근로역 질병 또는 심신장애 등으로 분류돼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후 김 대법원장은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사법연수원 2년을 거쳐 3년 후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1959년생, 부산고등학교(1977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1년), 제25회사법시험합격(1983년), 제15기 사법연수원 수료(1985년),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1986~1988년)


▲강동명 대구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안구진탕)= 1983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강 수석부장판사는 1985년 3급 현역병 입영 대상이었지만, 입대를 미뤘다. 2년 뒤인 1987년 안구진탕 판정을 받아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후 그는 1989년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92년 대구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1964년생, 경북사대부속고등학교(1982년), 서울대학교 사법학과(198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수료(1988년), 제31회 사법시험 합격(1989년), 제21기 사법연수원 수료(1990~1992년), 대구지법판사(1992~1995년)

조직 수뇌부
줄줄이 미필 

▲김시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근시)= 1984∼1986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김 부장판사는 1987년 병역검사서 근시 판정을 받아 5급 전시근로역 질병 또는 심신장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그해 김 부장판사는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거쳐 1990년 서울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1965년생, 서울 광성고등학교(1984년), 서울대학교 사법학과(1988년), 미국 U.C. Berkeley (LL.M.)(1998년), 제29회 사법시험합격(1987년), 제19기 사법연수원 수료(1988~1990년), 서울형사지법 판사(1990~1992년) 

▲김주호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근시)= 1984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신청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87년 근시로 5급 전시근로역 질병 또는 심신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을 면제받았다. 그는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93년 부산지법 판사가 됐다. 1965년생, 부산 낙동고등학교(1984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8년), 제32회 사법시험 합격(1990년), 제22기 사법연수원 수료(1991~1993년), 부산지법 판사(1993년)
 

▲ 판검사들의 병역면제 현황

▲강경구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질병 미공개)= 1986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강 부장판사는 1987년 5급 전시근로역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공직자 병역 사항에 따르면 강 부장판사의 질병은 미공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1995년부터 청주지법 판사로 근무했다. 1966년생, 대전 충남고등학교(1984년), 서울대학교 사법학과(1988년), 서울대학교 법학 석사(1993년), 제34회 사법시험 합격(1992년), 제24기 사법연수원 수료(1993~1995년), 청주지법 판사(1995~1999년)

▲박형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근시)= 1988∼1989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이후 1990년 근시로 전시근로역 질병 또는 심신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그는 1년 뒤 제23기 사범시험에 합격했으며, 사법연수원 2년을 거쳐 1994년 수원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1969년생, 부산진고등학교(1988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9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1998년), 제33회 사법시험 합격(1991년), 제23기 사법연수원 수료(1992~1994년), 수원지법 판사(1994~1996년)

191명 중…질병·독자·가사사정
일반인 병역면제 비율의 4배 이상 

▲이대경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무수정체)= 1978∼1979년 병역판정 검사를 연기했다. 그 다음 해 이 부장판사는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3년 제13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같은 해 그는 병역판정 검사서 안구 질환인 무수정체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이후 1983년부터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첫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1958년생, 충암고등학교(1979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1년), 제22회 사법시험합격(1980년), 제13기 사법연수원 수료(1981~1983년), 서울민사지법 판사(1983~1985년) 

▲이제정 특허법원 부장판사(부동시)= 1985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이 부장판사는 1986년 병역판정 검사를 2차 연기했다. 1987년 부동시 판정을 받아 병종 전시근로역 질병 또는 심신장애로 분류돼 병역이 면제됐다. 이후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년을 거친 뒤 그는 1995년부터 부산지법 울산지원 판사로 근무했다. 1966년생, 청주 운호고등학교(1984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1988년), 서울대학교 경영학 석사(1991년), 제34회 사법시험 합격(1992년), 제24기 사법연수원 수료(1993~1995년), 부산지법울산지원판사(1995~1997년)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근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82년 근시 판정을 받아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 부장판사는 병역면제를 받은 뒤 4년 후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9년부터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로 법관생활을 시작했다. 1962년생, 서울 인창고등학교 (1980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4년), 미국 NYU 법학(LL.M.) 석사(1997~1998년), 제28회 사법시험 합격(1986년), 제18기사법연수원수료(1987~1989년), 서울지법의정부지원판사(1989~1991년)

▲이기택 대법원 대법관(근시)= 1979년 근시 판정을 받아 병종 전시근로역 질병 또는 심신장애로 분류돼 병역이 면제됐다. 이 대법관은 대학교 3학년이던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5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1959년생, 경성고등학교(1978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2년),미국하버드Law School 국제조세과정 연수(1991년),제23회 사법시험 합격(1981년), 제14기 사법연수원 수료(1984년), 서울민사지법 판사(1985~1987년)

▲이흥구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폐결핵 활동성)= 1982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2년 뒤 이 부장판사는 폐결핵 활동성 미정으로 5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93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이 초임지다. 1963년생, 통영고등학교(1982년), 서울대학교 공법학과(1989년), 제32회 사법시험 합격(1990년), 제22기 사법연수원 수료(1991~1993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1993년) 


‘로얄 코스’
공식 통했나

▲정형식 서울회생법원 법원장(만성골수염)= 1981∼1983년 3차례 병역판정 검사를 연기했다. 정 법원장은 1984년 3급 현역병 입영 대상자로 분류됐지만 군대를 미뤘다. 1986년 5차 병역 검사서 만수골수염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정 법원장은 입영 연기를 한 19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사법연수원 2년을 거쳐 1988년부터 수원지법 성남지원 판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1961년생, 서울고등학교(1980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5),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1987년), 제27회 사법시험 합격(1985년), 제17기 사법연수원 수료(1986~1988년), 수원지법 성남지원 판사(1988년) 

▲최인규 광주고등법원 수석 부장판사(질병 미공개)= 1983년 5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된 최 수석 부장판사의 질병은 밝혀지지 않았다. 1989년 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4년 서울지법 서부지원 판사로 법관생활을 시작했다. 1964년생, 광주 조선대부속고등학교(1983년), 서울대학교 사법학과(1989년), 제33회 사법시험 합격(1991년), 제23기 사법연수원 수료(1992~1994년), 서울지법서부지원판사(1994~1996년) 

▲박성진 대전고등검찰청 차장검사(활동성 폐결핵)=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83년 병역판정 검사를 연기했다. 이후 1986년 병역판정 검사서 활동성 폐결핵(경도)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6년 뒤인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1995년 수원지검 검사로 임관했다. 1963년생, 부산 동성고등학교(1983년), 한양대학교 법학과(1992년), 제34회 사법시험 합격(1992년), 제24기 사법연수원 수료(1993~1995년), 수원지검 검사(1995~1996년)

입학→연기→질병→면제→사시
비슷한 코스 ‘서초동 지름길’

▲윤석열 검찰총장(부동시)= 1980∼1981년 병역판정 검사 연기를 했다. 윤 후보자는 다음 해인 1982년 부동시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94년 대구지검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1960년생, 충암고등학교 (1979년), 서울대학교 법학과(198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1988년), 제33회 사법시험 합격(1991년), 제23기 사법연수원 수료(1992~1994년), 대구지검 검사(1994~1996년)


▲장영수 수원고등검찰청 차장검사(근시)= 1986년 병역판정 검사를 연기했다. 장 차장검사는 3년 뒤인 1989년 근시(-7.0D)로 5급 전시근로역으로 분류돼 병역을 면제받았다.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93~1995년까지 사법연수원 2년을 거쳤다. 1998년 청주지검이 첫 발령지다. 1967년생, 대원고등학교(1985년), 고려대학교 법학과(1990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졸업정보 없음, 제34회 사법시험 합격(1992년), 제24기 사법연수원 수료(1993~1995년), 청주지검 검사(1998년)

▲한찬식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근시)= 1987∼1988년 병역판정 검사를 2차례 연기했다. 이후 1989년 근시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같은 해 한 검사장은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년을 거쳐 1992년 서울지검서 첫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생, 성남고등학교(1986년), 서울대학교 사법학과(1990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법학 (LL.M.) 석사(1998년), 제31회 사법시험 합격(1989년), 제21기 사법연수원 수료(1990~1992년), 서울지검 검사(1992~1994년)

<일요시사>가 질병 등으로 병역이 면제된 법원·검찰 고위직들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 법대→징병검사연기→질병으로 병역면제→사법연수원 합격 등의 패턴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이런 패턴이 반복되는 걸까.

법조계에 따르면 1970∼1990년대 당시 사법고시를 통과하지 못한 법조인들에게 군 복무는 기피 대상이었다.

실제로 고위직 판·검사 191명 중 15명(판사 5명, 검사 10명)만 현역으로 입대해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역면제 25명을 제외한 나머지 161명가량은 군 장교 출신이거나 상근으로 병역을 마친 것으로 확인된다. 

대부분 시력
단골 의혹

전직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부분 현직 판·검사들은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법무 장교로 군 복무를 한다. 그렇지 못한 사시 준비생들에게 일반 병사로 군 복무를 하라는 건 3년을 버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더구나 서울대 법대 출신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이들이 부조리한 군생활을 어떻게 견디느냐. 당시 이들 사이서 군대를 미루고 사시에 합격한 후, 어떻게든 현역으로 가지 않으려고 애쓰던 문화가 있던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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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설 특집 - 백운비의 천기누설] 병오년 국운 대예측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다사다난한 한 해가 지나고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불의 기운을 가진 말띠의 해다. 불처럼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에너지가 강한 해라는 의미다. 그러나 치솟는 불길이 되레 화가 될 모양이다. 올해를 둘러싼 경제 전망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중이다. 과연 국민들은 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백운비 역리원장을 만나 병오년 대한민국 국운의 흐름을 들어봤다. 대한민국의 공기는 무겁다. 정치·경제·사회 어느 한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이 동시에 눌린 듯한 느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고환율·고물가 상황은 국민들의 일상을 짓누르고 있다.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느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일터에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체념 섞인 반응이 늘어났다. 나빠지다… 치솟는 불길 백운비 원장은 최근 몇 년간 국민들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가 급격히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불과 10년 전 국운이 비교적 안정돼 있을 때만 해도 대체로 먹고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동네 구멍가게조차 유지가 가능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표현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후 약 9년간 국운이 점진적으로 나빠지는 흐름이 이어졌다고 봤다. 역리학적으로 보면 2026년은 ‘양화(陽火)’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는 해다. 불의 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열려 있을 때는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막힌 상태에서 불기운만 강해질 경우 화(禍)로 작용하기 쉽다. 백 원장은 “양화가 득세하면 좋은 것도 함께 올라가야 길한데, 지금은 차단된 상태에서 불만 위로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분노와 충돌, 사회적 마찰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화마(火魔)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충돌이 잦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백 원장은 “열은 많은데 출구가 없을 때 가장 위험하다”며 “2026년은 바로 그런 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6년 국운을 ‘사통팔달(四通八達)’이 막힌 상태’에 비유했다. 사통팔달은 사방으로 통하고 여덟 갈래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리에서는 운이 좋을 때를 사통팔달에 비유해 왔다. 길이 열려야 사람이 움직이고, 움직여야 살 길이 생긴다는 논리다. 반대로 사통팔달이 막혔다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빠져나갈 통로가 없다는 의미다. 백 원장은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는데, 산도 물가도 사람 속도 안전하지 않은 형국”이라며 “움직일수록 위험하고, 가만히 있어도 불안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운이라는 것은 원래 사통팔달이 돼야 한다”고 했다. 사방이 열려야 길이 나고, 여러 가지가 순환하며 성취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올해는 “사방이 막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헤맨다”고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감록에 등장하는 ‘인근불·산근불·수근불’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사람 속으로 가도 안 되고, 산으로 가도 안 되며, 물가로 가도 안 된다는 뜻으로, 결국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백 원장은 이를 오늘의 국운에 빗대어 출구 자체가 막혀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이 막힘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곳이 경기라고 했다. 백 원장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두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돈이 돌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경제의 본질은 순환인데, 지금은 그 순환 고리가 곳곳에서 끊어졌다는 것이다. “에너지·부동산·건설이 유일한 해법” “뛰어난 인재 등용으로 위기 관리해야” 불안이 커질수록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투자를 멈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며 경제 전체가 점점 움츠러드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경제 지표만 놓고 보면 아직 버틸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환보유액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수출 역시 완전히 꺾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데 급급하고, 직장인들은 월급날이 와도 통장이 스쳐 지나갈 뿐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청년층 역시 미래 계획보다 당장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는 상황이다. 백 원장은 이런 체감경기가 쫓기고 쫓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빚을 갚아야 하는 쪽은 쫓기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쪽도 쫓기며, 소비자는 사기 위해 애쓰고 사업자는 버티기 위해 애쓴다. 몸과 마음을 다 써도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2026년을 ‘마지막 고비’라고 표현했다. 고비가 있다는 말은 넘어설 구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넘는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백 원장이 올해를 ‘양화’로 설명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음화가 따뜻한 햇볕이나 곁불에 가까운 성격이라면, 양화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강도가 크다는 것이다. 불기운은 본래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표면적으로는 ‘올라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올라가고 산업이 살아나고 활력이 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백 원장은 지금의 국운이 이미 ‘차단’돼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즉, 불이 치솟는데 출구가 막혀 있으면 그 불은 성장의 동력이 아니라 ‘화마’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화기가 중천한다”는 표현을 쓰며, 이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사회 전반에 과열과 충돌, 갈등이 함께 치솟을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걸까? 백 원장은 “답이 없는 해는 없다”며 화와 상생하는 것이 바로 토(土)와 목(木)이라고 설명했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침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방침은 곧 정책이다. 그는 답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에너지, 부동산, 건설이다. 백 원장은 “이 세 가지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해법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이다. 국내외 산업과 수출입 구조에서 에너지 비용과 수급이 흔들리면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을 중심에 두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국가 경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통팔달 생존 급급 부동산에 대해서는 규제로 묶어두는 접근을 경계했다. 자금이 회전하지 않으면 내수가 얼어붙고 체감경기는 더 악화된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말한 부동산은 단순한 주택 거래에 국한되지 않았다. 농지, 임야, 전답 등 토지 전반과 농업 관련 규제, 지역 단위 개발과 거래 규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 같은 규제가 완화돼야 농업과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내수 회복의 여지가 생긴다는 논리다.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순기능이 더 크다면 이를 관리하면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설 분야 역시 중요한 고리로 제시됐다. 백 원장은 오행의 상생 논리를 들어 불기운이 강해지는 해에는 ‘목(木)’이 연동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자재, 설비, 인력, 금융 등 연쇄 산업이 함께 움직이는 분야다. 부동산과 건설을 동시에 움직이게 하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자산 형성의 사다리가 막히면 젊은 층의 기대가 꺾이고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책의 방향만큼이나 이를 실행할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같은 정책도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 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인의 운만으로 국운을 뒤집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때문에 그는 2026년을 두고 “성군(聖君)이 나오기 어려운 해”라고 단언했다. 국운이 나쁜 시기에는 누구든 성과를 내기 어렵고, 성군이 나오기 힘든 구조라고도 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예로 들며, 국운이 기울어진 시기에 즉위한 지도자에게는 선택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가 자리에 앉아도 비판을 받기 쉬운 환경이 형성된다고 봤다. 정치권 전반에 대해서는 국운의 분산이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힘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면 작은 사안도 쉽게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여야를 넘어 같은 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양분과 분열의 해”라고 표현했다. 양분(兩分)은 둘로 나뉜다는 뜻이지만, 현실에서는 둘로 끝나지 않는다. 둘로 갈라진 뒤 다시 갈라지고, 결국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백 원장은 “이럴 때 정치권은 합치자는 말은 많아도, 실제로는 더 쪼개지는 흐름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2026년 정치 지형에 대해선 “높이 쌓아 올린 알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국”이라고 비유했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일 수 있지만, 작은 충격에도 균열이 날 수 있다는 의미다. 권토중래 전복후괴 백 원장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을 꺼냈다. 무리 속에서 돋보이는 한 사람, 즉 뛰어난 인재를 등용해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해일수록 백 원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사(人事)’다. 국운이 나쁠 때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판단이 흐려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사람의 선택이 결과를 좌우하게 된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올해가 불안정한 만큼 ‘아첨하는 사람’이 늘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운이 나쁜 시기에는 이상하게도 권력자나 부자에게 빌붙어 아첨하는 행동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배신과 척을 지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전망도 같은 결로 이어졌다. 백 원장은 특징으로 ‘분산(分散)’을 들었다. 힘이 한 곳으로 모여야 외부 압력을 버틸 수 있는데, 올해는 국운이 흩어져 힘을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분산되면 허점이 드러나고, 허점이 드러나면 외부 공격이 들어온다는 논리다. 그는 이를 복싱에 비유했다. 복싱 선수가 가드를 올리면 상대가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런데 가드를 내리면 약점이 보이고 공격이 들어온다. 백 원장은 “우리가 튼튼하면 공격이 안 오는데 이번에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공격은 군사적 충돌만을 뜻하지 않고,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공세, 국제 갈등의 심화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읽힌다. 그는 “외교 혼동과 시행착오로 갈등이 심화되고 외부의 압력과 공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제 분야에서의 대응책은 무엇이냐고 묻자, 백 원장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철저한 방어 준비’가 필요하며, 그 방어를 위해 ‘인적 자원 파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고,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협상과 조율을 담당할 인재를 배치해 허점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이번 해는 어느 해보다 인재 발굴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운이 바닥난 것이 아니므로 “틈새가 있다”고 했고, 그 틈새를 메우고 넓히는 것이 인재라는 뜻이다. “6월 지선 대대적 물갈이” “아첨하는 사람 조심해야” 오는 6월에 시행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키워드는 권토중래(捲土重來)다. 권토중래는 “실패했던 사람,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분기해 세력을 찾는다”는 뜻이라고 풀었다. 다시 일어서고, 다시 판이 바뀌는 사례가 늘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번에 공천 못 받고 밀려났던 사람이 다시 부활하는 케이스’를 예로 들면서 “물갈이가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물갈이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백 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전복후계(前覆後戒)”의 태도를 강조했다.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뒤의 사람이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전임 대통령의 실수를 경계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장관·부처·기관·기업 대표 등 ‘조직의 책임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덕목이라고 했다. 즉, 불리한 국운의 해에는 새 일을 무리하게 벌이기보다, 전임의 실수와 실패를 분석해 같은 구멍에 다시 빠지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국민들의 삶도 우려했다. 백 원장은 지난 몇 년간 국민 갈등이 극심했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하며, 2026년에는 그 갈등이 더하다고 했다. 그는 “운이 나쁜 해에는 인심이 각박해지며 배려와 용서가 줄고, 민감하고 예민해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며 “친했던 사람끼리도 견제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에 따라 적이 되는 일이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이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로 표현하며, 각자도생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원장은 의지하는 대상이 있더라도, 무너질 수 있는 해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책임 의식을 더 가져야 한다는 취지다.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조차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혼과 결별, 인간관계 단절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경제적 불안과 심리적 피로가 겹치면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울감이나 분노 조절 문제 등 정신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2026년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자는 더 못 살게 된다”고도 전했다. “마지막 고비다” 2027년에는 회복기로 들어선다. 백 원장은 “27년부터 회복기로 들어간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곧바로 후유증을 언급했다. 병이 나아도 후유증이 남듯이, 회복이 시작되더라도 이전의 고통이 흔적으로 남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