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떠나 월북한 사람들

그들은 왜 북으로 갔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남북관계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평화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반도는 분단국가. 월북과 탈북이라는 단어에 사회가 술렁이는 것은 여전하다. 지난 6일 한 인사가 월북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일요시사>가 월북 인사들을 조명해봤다.
 

남한판 황장엽으로 불렸던 최덕신 전 외무장관의 차남 최인국씨가 월북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는 지난 7일 류미영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 선생이 공화국에 영주하기 위해 6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최덕신과 류미영은 부부 관계로 지난 1986년 월북했다.

부모 따라?
갑자기 왜?

최씨는 평양국제비행장서 발표한 도착 소감을 통해 민족의 정통성이 살아 있는 진정한 조국, 공화국의 품에 안기게 된 지금 저의 심정을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어 가문이 대대로 안겨 사는 품,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곧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언을 지켜드리는 길이고 그것이 자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기에 늦게나마 공화국에 영주할 결심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최씨의 부친 최덕신은 박정희정권서 외무장관과 서독 주재 대사로 활동했으나 박 전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류미영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한 뒤 월북했다. 최덕신은 북한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천도교청우당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고, 류미영도 남편 사망 후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직을 이어받았다.

류미영이 사망한 후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직은 비어 있는 상태다.

최씨는 2001년 이후 가족 상봉과 성묘 등의 목적으로 총 12회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다. 이전 방북 때는 정부 승인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방북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최씨의 방북 경과, 가족 동행 여부 등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 “현재 관계기관서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최씨는 천도교 교인이다. 천도교 최고지도자인 송범두 교령은 지난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씨는 교단서 큰 직책을 맡지도 않았고 열심히 교회 활동을 하지 않은 교인이었지만 대한민국 법을 어겼다는 점에서는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씨의 아버지나 그의 처가를 보면 북한에 갈 수 있는 바탕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씨 “북한서 살겠다”
부모님도 1986년 넘어가

기자간담회에 동석한 임형진 천도교 종학대학원 원장은 최인국 선생은 천도교 산하기관인 동학민족통일회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으며 누구보다 북쪽과 많이 접촉했다”며 우리 추측으로는 (청우당) 위원장을 맡을 것이다. (북한이) 위원장 자리를 주려고 한 게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임 원장은 북한에선 대를 이어 자리를 맡는데 청우당 위원장 자리가 최씨 집안 자리라며 류미영씨가 사망한 이후로 위원장 자리는 공석으로 뒀다고 그 근거를 들었다.
 

▲ 최덕신 류미영 부부 ⓒSBS

통일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월북자에 대한 통계는 따로 없다. 지난 8일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서 최씨와 같은 월북자 통계를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현실적으로 정부가 개별 국민의 소재지를 다 파악해서 일일이 확인한다거나 그러지는 않고 있다고 전햇다.

이어 헌법상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는 우리나라의 체제 특성에 따라 국민들의 행적을 추적해서 월북 여부를 확인한다든지, 통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실제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작년 같은 경우에는 북측서 두 차례에 걸쳐 불법 입북한 우리 국민 2명을 송환한 적은 있다인도주의 차원서 돌려보낸다는 취지의 언급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 때문에 월북 인사의 면면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최근 독립유공자 서훈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약산 김원봉 선생이 대표적인 월북 인사로 꼽힌다. 영화 <암살>서 배우 조승우가 김원봉 역할을 맡아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1898년 경남 밀양서 태어난 김원봉은 19193·1운동이 시작될 무렵 만주로 넘어가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했고, 이후 의열단을 만들어 단장이 됐다. 당시 의열단은 친일파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밀양경찰서 투탄사건, 조선총독부 투탄사건 등 굵직한 거사가 의열단의 작품이었다.

통계 없어
추적 안 해

김원봉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사실은 명백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분단 이후의 월북 행적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는 1945년 귀국 이후 여운형 등과 좌우 합작을 위해 힘쓰다 1948년 북한으로 넘어간다.

김원봉의 월북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친일경찰이자 악질 고문자로 알려진 노덕술에게 뺨을 맞고 모멸감을 느껴 북으로 갔다는 말도 있다.

1948년 남북협상 당시 월북한 김원봉은 그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에 됐고, 9월에는 북한 초대 내각의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6·25전쟁 당시에는 군사위원회 평북도 전권대표로 활동했다. 19525월에는 국가검열상서 노동상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는 6·25전쟁에서 공훈을 세웠다는 이유로 북한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에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정부서 고위직을 지냈으나 1958년 김일성의 옌안파 제거 때 숙청됐다. 그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돌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김원봉에 대한 논란은 지난달 6일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 때 불거졌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를 낭독하면서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며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고 언급했다.

이후 김원봉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주는 것이 맞느냐를 두고 정치권서 논란이 불거졌다.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에 따르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 및 적극 동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 수립 이후 반국가 활동을 한 경우 포상서 제외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 조항을 근거로 김원봉 선생은 서훈, 훈격 여부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잘 알려져 있는 박태원 선생도 한국전쟁 중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경위와 동기는 확실하지 않다. 프랑스 칸 영화제서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탄 봉준호 감독이 박태원의 외손자다.

190912월 서울서 태어난 박태원은 14세 보통학교 시절 소설 <입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33년에는 이태준, 김기림, 김유정 등과 함께 ‘9인회로 활동했다. 이때 쓴 작품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청춘송> <천변풍경> 등이다.

잊힌 작가들
다시 부활해

월북 이후에는 장편소설 <갑오농민전쟁> 3권 중 1권을 출판하는 등 주로 계급교양을 위주로 한 작품 활동에 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태원은 19867월 세상을 떠났다. 남한의 가족들은 1964년 사망 신고를 냈지만 실제 삶은 22년 뒤에 끝난 것이다. 1988년 이후에야 그의 소설들이 복원됐다.

박태원과 함께 활동했던 상허 이태준 선생도 대표적인 월북 작가로 꼽힌다. 1904년 강원도 철원서 태어난 이태준은 박태원과 함께 9인회로 활동했다. 1947년 북한으로 넘어간 그는 1950년대 중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태준은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자라고 불릴만큼 탁월한 문학적 성과를 낸 것으로 유명하다. 1930년대 시는 정지용, 소설은 이태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태준은 월북 이력 때문에 남한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작가였다.

그러다 2000년대 초 상허학회가 결성되면서 그의 문학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해졌고, 2004년에는 탄생 100주년 기념문학제가 열렸다. 올해 1월에는 이태준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는 평설이 발간되기도 했다.

영화인들 중에서도 해방 이후 북한으로 넘어간 인사들이 있다. 월북 영화인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은 문예봉 선생이다. 문예봉은 일제강점기 조선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다. <춘향전> <인생항로> 등에서 주연을 맡아 한국적 미모와 연기력으로 해방 직전까지 ‘3000만의 연인이라는 예명으로 불렸다.

문예봉은 해방 후 극작가인 남편 임선규와 좌익연극계에 가담했다가 1948년 월북했다.
 

▲ 김원봉

월북 이후 문예봉은 남한에선 잊혔지만 북한에선 그를 체제선전에 적극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실제 문예봉은 1949년부터 북한의 첫 극영화 <내고향><빨치산 처녀> <금강산 처녀> 등 수십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1952년 그는 북한 최초로 공훈배우가 됐다. 연극의 김선초, 무용의 최승희와 함께 북한 공연예술을 이끄는 트로이카로 이름을 날렸다. 문예봉 외에도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에 출연했던 주인규, 남궁운이 해방 후 북한으로 넘어갔다.

해방 후 작가·영화인들 월북
해금 이후 남한서 조명받아

1949년 강태무, 표무원 등은 대대 병력의 부하를 데리고 월북했다. 당시 표무원은 소령 계급으로 강원도 지역 모 사단 예하 대대장으로 복무하다 소령 강태무 등과 함께 600명의 국군 장병을 이끌고 북한으로 갔다.

표무원은 월북 후 북한군 연대장과 재북의거자 정치학교 소장, 평안북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현역 중장(남한의 소장 계급에 해당)으로 6.25전쟁 역사관 격인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활동해왔다. 그는 2006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북풍 논란을 불렀던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도 대표적인 월북 인사로 꼽힌다. 1929년생인 오씨는 1989년부터 1994년까지 24대 천도교 교령을 지냈다. 오씨는 19952월 이미 월북한 류미영 천도교 중앙위원장의 초청을 받아 북한에 있는 본처와 딸을 만나려고 했지만 방북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19976월에도 방북 허가를 받으려 했지만 무산됐다.
 

▲ 영화 암살 포스터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발기인으로 정치권에 몸담았던 오씨는 19977월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상임위원으로 위촉됐지만 한 달 후 돌연 월북했다. 당시 부인에게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 동해안인데 며칠 더 있다가 갈 테니 그렇게 알라고 말한 뒤다. 그는 19978월 김포공항서 미국 LA로 나가 북측의 안내를 받아 중국 베이징을 거쳐 열차 편으로 평양에 도착했다.

199712월 대선을 앞두고 오씨는 당시 새정치국민회 김대중 후보에게 대선 필승을 바라며 대통령이 되면 금세기 내 통일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또 대선 6일 전에는 북한 방송에 출연해 김 후보의 통일 방안이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유사하다고 말하면서 북풍 논란이 불기도 했다.

집단 월북
북풍 논란

북한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고문, 북한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으로 활동한 오씨는 201291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소식을 전한 조선중앙통신은 오씨가 평안남도 회창군 대곡리서 태어났고, 해방 후 천도교 종리원 교화부장을 지냈다고 소개했다. 이어 오익제는 (남조선)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적극 투쟁했고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이 무참히 유린당하고 파쇼 독재가 살판치는 썩고 병든 남조선 사회에 환별을 느끼고 19978월 공화국의 품에 안겼다고 전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탈북했다 다시 북한에… 납치 논란 불거져

탈북자가 재입북한 사례도 있다. 20141월 탈북한 임지현씨다. 임씨는 201612TV조선 <모란봉 클럽> 등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특히 남한 남성과 북한 여성의 가상결혼 생활을 다룬 <남남북녀>에서는 배우 김진과 가상 부부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그런데 20177월 북한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 영상에 임씨가 전혜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영상에는 한복 차림의 전혜성과 남성 1, 여성 1명이 함께 나왔다.

북한 체제 비판하다가 돌연

전혜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20141월 탈북했고 지난달 돌아왔다. 평안남도 안주시서 부모님과 살고 있다한국서 임지현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종편 등 국내 방송에 출연해 북한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해오던 임씨가 돌연 재입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러 논란이 불거졌다.

납치인지 자의적인 재입북 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당시 경찰은 임씨의 재입북이 자의적인 것으로 판단했다. <>

 

<기사 속 기사> ‘대 이어 월북’ 할아버지가 김일성 스승

최근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 최인국의 할아버지이자 최덕신 전 외무장관의 아버지인 최동오는 만주 독립운동 시절 김일성 북한 주석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최동오는 해방 이후 월북했고, 최덕신의 북한 망명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최덕신이 월북했을 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는 등 고위직을 보장받고, 사망했을 때도 북한 당국이 국가장을 치러준 배경에는 아버지 최동오의 영향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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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