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떠나 월북한 사람들

그들은 왜 북으로 갔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남북관계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평화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반도는 분단국가. 월북과 탈북이라는 단어에 사회가 술렁이는 것은 여전하다. 지난 6일 한 인사가 월북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일요시사>가 월북 인사들을 조명해봤다.
 

남한판 황장엽으로 불렸던 최덕신 전 외무장관의 차남 최인국씨가 월북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는 지난 7일 류미영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 선생이 공화국에 영주하기 위해 6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최덕신과 류미영은 부부 관계로 지난 1986년 월북했다.

부모 따라?
갑자기 왜?

최씨는 평양국제비행장서 발표한 도착 소감을 통해 민족의 정통성이 살아 있는 진정한 조국, 공화국의 품에 안기게 된 지금 저의 심정을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어 가문이 대대로 안겨 사는 품,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곧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언을 지켜드리는 길이고 그것이 자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기에 늦게나마 공화국에 영주할 결심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최씨의 부친 최덕신은 박정희정권서 외무장관과 서독 주재 대사로 활동했으나 박 전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류미영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한 뒤 월북했다. 최덕신은 북한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천도교청우당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고, 류미영도 남편 사망 후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직을 이어받았다.

류미영이 사망한 후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직은 비어 있는 상태다.

최씨는 2001년 이후 가족 상봉과 성묘 등의 목적으로 총 12회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다. 이전 방북 때는 정부 승인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방북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최씨의 방북 경과, 가족 동행 여부 등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 “현재 관계기관서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최씨는 천도교 교인이다. 천도교 최고지도자인 송범두 교령은 지난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씨는 교단서 큰 직책을 맡지도 않았고 열심히 교회 활동을 하지 않은 교인이었지만 대한민국 법을 어겼다는 점에서는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씨의 아버지나 그의 처가를 보면 북한에 갈 수 있는 바탕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씨 “북한서 살겠다”
부모님도 1986년 넘어가

기자간담회에 동석한 임형진 천도교 종학대학원 원장은 최인국 선생은 천도교 산하기관인 동학민족통일회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으며 누구보다 북쪽과 많이 접촉했다”며 우리 추측으로는 (청우당) 위원장을 맡을 것이다. (북한이) 위원장 자리를 주려고 한 게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임 원장은 북한에선 대를 이어 자리를 맡는데 청우당 위원장 자리가 최씨 집안 자리라며 류미영씨가 사망한 이후로 위원장 자리는 공석으로 뒀다고 그 근거를 들었다.
 

▲ 최덕신 류미영 부부 ⓒSBS

통일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월북자에 대한 통계는 따로 없다. 지난 8일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서 최씨와 같은 월북자 통계를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현실적으로 정부가 개별 국민의 소재지를 다 파악해서 일일이 확인한다거나 그러지는 않고 있다고 전햇다.

이어 헌법상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는 우리나라의 체제 특성에 따라 국민들의 행적을 추적해서 월북 여부를 확인한다든지, 통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실제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작년 같은 경우에는 북측서 두 차례에 걸쳐 불법 입북한 우리 국민 2명을 송환한 적은 있다인도주의 차원서 돌려보낸다는 취지의 언급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 때문에 월북 인사의 면면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최근 독립유공자 서훈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약산 김원봉 선생이 대표적인 월북 인사로 꼽힌다. 영화 <암살>서 배우 조승우가 김원봉 역할을 맡아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1898년 경남 밀양서 태어난 김원봉은 19193·1운동이 시작될 무렵 만주로 넘어가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했고, 이후 의열단을 만들어 단장이 됐다. 당시 의열단은 친일파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밀양경찰서 투탄사건, 조선총독부 투탄사건 등 굵직한 거사가 의열단의 작품이었다.

통계 없어
추적 안 해

김원봉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사실은 명백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분단 이후의 월북 행적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는 1945년 귀국 이후 여운형 등과 좌우 합작을 위해 힘쓰다 1948년 북한으로 넘어간다.

김원봉의 월북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친일경찰이자 악질 고문자로 알려진 노덕술에게 뺨을 맞고 모멸감을 느껴 북으로 갔다는 말도 있다.

1948년 남북협상 당시 월북한 김원봉은 그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에 됐고, 9월에는 북한 초대 내각의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6·25전쟁 당시에는 군사위원회 평북도 전권대표로 활동했다. 19525월에는 국가검열상서 노동상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는 6·25전쟁에서 공훈을 세웠다는 이유로 북한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에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정부서 고위직을 지냈으나 1958년 김일성의 옌안파 제거 때 숙청됐다. 그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돌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김원봉에 대한 논란은 지난달 6일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 때 불거졌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를 낭독하면서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며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고 언급했다.

이후 김원봉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주는 것이 맞느냐를 두고 정치권서 논란이 불거졌다.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에 따르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 및 적극 동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 수립 이후 반국가 활동을 한 경우 포상서 제외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 조항을 근거로 김원봉 선생은 서훈, 훈격 여부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잘 알려져 있는 박태원 선생도 한국전쟁 중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경위와 동기는 확실하지 않다. 프랑스 칸 영화제서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탄 봉준호 감독이 박태원의 외손자다.

190912월 서울서 태어난 박태원은 14세 보통학교 시절 소설 <입학>으로 주목을 받았다. 1933년에는 이태준, 김기림, 김유정 등과 함께 ‘9인회로 활동했다. 이때 쓴 작품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청춘송> <천변풍경> 등이다.

잊힌 작가들
다시 부활해

월북 이후에는 장편소설 <갑오농민전쟁> 3권 중 1권을 출판하는 등 주로 계급교양을 위주로 한 작품 활동에 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태원은 19867월 세상을 떠났다. 남한의 가족들은 1964년 사망 신고를 냈지만 실제 삶은 22년 뒤에 끝난 것이다. 1988년 이후에야 그의 소설들이 복원됐다.


박태원과 함께 활동했던 상허 이태준 선생도 대표적인 월북 작가로 꼽힌다. 1904년 강원도 철원서 태어난 이태준은 박태원과 함께 9인회로 활동했다. 1947년 북한으로 넘어간 그는 1950년대 중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태준은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자라고 불릴만큼 탁월한 문학적 성과를 낸 것으로 유명하다. 1930년대 시는 정지용, 소설은 이태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태준은 월북 이력 때문에 남한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작가였다.

그러다 2000년대 초 상허학회가 결성되면서 그의 문학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해졌고, 2004년에는 탄생 100주년 기념문학제가 열렸다. 올해 1월에는 이태준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는 평설이 발간되기도 했다.

영화인들 중에서도 해방 이후 북한으로 넘어간 인사들이 있다. 월북 영화인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이름은 문예봉 선생이다. 문예봉은 일제강점기 조선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다. <춘향전> <인생항로> 등에서 주연을 맡아 한국적 미모와 연기력으로 해방 직전까지 ‘3000만의 연인이라는 예명으로 불렸다.

문예봉은 해방 후 극작가인 남편 임선규와 좌익연극계에 가담했다가 1948년 월북했다.
 

▲ 김원봉

월북 이후 문예봉은 남한에선 잊혔지만 북한에선 그를 체제선전에 적극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실제 문예봉은 1949년부터 북한의 첫 극영화 <내고향><빨치산 처녀> <금강산 처녀> 등 수십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1952년 그는 북한 최초로 공훈배우가 됐다. 연극의 김선초, 무용의 최승희와 함께 북한 공연예술을 이끄는 트로이카로 이름을 날렸다. 문예봉 외에도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에 출연했던 주인규, 남궁운이 해방 후 북한으로 넘어갔다.

해방 후 작가·영화인들 월북
해금 이후 남한서 조명받아

1949년 강태무, 표무원 등은 대대 병력의 부하를 데리고 월북했다. 당시 표무원은 소령 계급으로 강원도 지역 모 사단 예하 대대장으로 복무하다 소령 강태무 등과 함께 600명의 국군 장병을 이끌고 북한으로 갔다.

표무원은 월북 후 북한군 연대장과 재북의거자 정치학교 소장, 평안북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현역 중장(남한의 소장 계급에 해당)으로 6.25전쟁 역사관 격인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활동해왔다. 그는 20068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북풍 논란을 불렀던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도 대표적인 월북 인사로 꼽힌다. 1929년생인 오씨는 1989년부터 1994년까지 24대 천도교 교령을 지냈다. 오씨는 19952월 이미 월북한 류미영 천도교 중앙위원장의 초청을 받아 북한에 있는 본처와 딸을 만나려고 했지만 방북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19976월에도 방북 허가를 받으려 했지만 무산됐다.
 

▲ 영화 암살 포스터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발기인으로 정치권에 몸담았던 오씨는 19977월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상임위원으로 위촉됐지만 한 달 후 돌연 월북했다. 당시 부인에게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 동해안인데 며칠 더 있다가 갈 테니 그렇게 알라고 말한 뒤다. 그는 19978월 김포공항서 미국 LA로 나가 북측의 안내를 받아 중국 베이징을 거쳐 열차 편으로 평양에 도착했다.

199712월 대선을 앞두고 오씨는 당시 새정치국민회 김대중 후보에게 대선 필승을 바라며 대통령이 되면 금세기 내 통일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또 대선 6일 전에는 북한 방송에 출연해 김 후보의 통일 방안이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유사하다고 말하면서 북풍 논란이 불기도 했다.

집단 월북
북풍 논란

북한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고문, 북한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으로 활동한 오씨는 201291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소식을 전한 조선중앙통신은 오씨가 평안남도 회창군 대곡리서 태어났고, 해방 후 천도교 종리원 교화부장을 지냈다고 소개했다. 이어 오익제는 (남조선)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적극 투쟁했고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이 무참히 유린당하고 파쇼 독재가 살판치는 썩고 병든 남조선 사회에 환별을 느끼고 19978월 공화국의 품에 안겼다고 전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탈북했다 다시 북한에… 납치 논란 불거져

탈북자가 재입북한 사례도 있다. 20141월 탈북한 임지현씨다. 임씨는 201612TV조선 <모란봉 클럽> 등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특히 남한 남성과 북한 여성의 가상결혼 생활을 다룬 <남남북녀>에서는 배우 김진과 가상 부부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그런데 20177월 북한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 영상에 임씨가 전혜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영상에는 한복 차림의 전혜성과 남성 1, 여성 1명이 함께 나왔다.

북한 체제 비판하다가 돌연

전혜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20141월 탈북했고 지난달 돌아왔다. 평안남도 안주시서 부모님과 살고 있다한국서 임지현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종편 등 국내 방송에 출연해 북한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해오던 임씨가 돌연 재입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러 논란이 불거졌다.

납치인지 자의적인 재입북 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당시 경찰은 임씨의 재입북이 자의적인 것으로 판단했다. <>

 

<기사 속 기사> ‘대 이어 월북’ 할아버지가 김일성 스승

최근 월북한 것으로 알려진 최인국의 할아버지이자 최덕신 전 외무장관의 아버지인 최동오는 만주 독립운동 시절 김일성 북한 주석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최동오는 해방 이후 월북했고, 최덕신의 북한 망명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최덕신이 월북했을 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는 등 고위직을 보장받고, 사망했을 때도 북한 당국이 국가장을 치러준 배경에는 아버지 최동오의 영향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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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