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KC수원화학공장 유해물질 배출 현장 가보니…

주민들은 죽겠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SKC수원화학공장의 유해물질 배출에 대해 말들이 많다. 화학공장의 유해물질 배출은 항상 있어 왔지만, 공장에선 공법적 규제치 이내의 수준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화학물질관리법상 유해물질로 분류된 것이 매년 배출되고 있다면, 주민들 입장에선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 배출되는 유해물질이 매년 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온 SKC수원화학공장

 

화학물질안전원서 제공하는 화학물질 배출이동량 정보공개에 따르면, SKC수원화학공장에선 2016년 한 해 동안 화학물질관리법상 유독물질인 메틸알코올(Methylalcohol) 139kg,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인자로 노출허용치로 관리되는 프로판올(Propanol) 588kg 합계 727kg을 공기(대기)를 통해 배출했다. 이는 2014년 합계 451kg, 2015년 합계 331kg보다 훨씬 증가한 수치다.

계속해서 증가
공법적 규제치?

이에 주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SKC수원화학공장 경계로부터 북쪽으로 80m 떨어진 곳에 A아파트, 남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는 B아파트, 서쪽으로 170m 떨어진 곳에는 C아파트단지가 형성돼있다.

또 동쪽으로 30m 떨어진 곳에는 주택가가 형성돼있다. 공장서 배출하는 유해물질이 수만명의 주민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것이다. 

한 주민은 “공법적 규제치 이내이라고 해서 시민들에게 유해하지 않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SKC수원공장의 북서쪽에 입지한 종전부동산 이전 부지(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이목지구, 46만㎡)를 도시로 개발하면서 SKC수원공장과 관련된 민원을 참고해 공장 근처에 공원을 배치하고 상가 및 사무실용 건물을 방어벽으로 만들어 그 뒤쪽에 4300여세대의 아파트 배치를 계획하고 있는 것은 SKC수원공장이 배출하는 악취 물질에 대한 유해성을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얼마 전 전남 여수서 있었던 유해물질 배출량 조작사건으로 인해 더욱더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다. 

2016년까지 배출량 계속 상승…현재는?
잇단 배출량 조작 사건…불안한 주민들

한 주민은 “우리 가족이 사는 곳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하다”며 “정부가 나서 더욱 더 철저한 관리와 감시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여수에서는 미세먼지 원인물질을 배출하고도 배출량 측정업체와 공모해 수치를 조작한 사업장이 적발됐다. 미세먼지가 온 국민의 관심사로 부상한 가운데 유력 대기업이 정부와 국민을 기만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안겼다.  
 

당시 환경부와 영산강유역환경청은 미세먼지 원인물질인 먼지, 황산화물 등의 배출량을 조작한 측정 대행업체 4곳과 이들에 측정 대행을 맡겨 배출량을 조작한 배출사업장 235곳을 적발해 검찰에 송치했다. 

배출량 조작 사업장 235곳 중 측정 대행업체와 공모관계가 드러난 곳은 LG화학 여수화치공장과 한화케미칼 여수1·2·3공장, 에스엔엔씨, 대한시멘트 광양태인공장, 남해환경, 쌍우아스콘 등 6곳이다. 


연이은 조작사건
전국적으로 만연

LG화학은 정우엔텍연구소와 공모해 배출농도를 허위로 보고했다. 실제 염화비닐 배출농도는 207PPM(허용 기준 120PPM)이었는데, 3.97PPM으로 결과값을 조작한 것이다. LG화학은 이외에도 2016년 7월 말부터 2018년 11월까지 측정값 총 149건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LG화학은 염화비닐을 기준치의 173배나 배출하고도 기준치 이하로 배출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한화케미칼 역시 2015년 2월 말부터 2017년 5월까지 총 16건에 대해 측정값을 조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실제 측정하지 않고 수치를 입력한 사례도 2016~2017년에만 37번이나 됐다. 
 

업체들의 이 같은 행태는 기본 부과금조차 내지 않으려는 동기서 비롯됐다. 미세먼지 유발물질인 황산화물(배출 허용 기준 25PPM)은 7.5PPM 이하 농도로 배출하면 기본 부과금이 면제되는데, 실제 배출업체는 41.36PPM을 배출하고도 6.33PPM만 배출했다고 수치를 조작했다. 

환경부는 이 같은 공모관계가 전국 모든 사업장에 만연해 있을 것으로 보고 개선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현재 SKC수원화학공장은 소음 문제로도 지역주민과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주민들은 분쟁조정서 논의되던 문제를 소송으로 확대한 SKC의 행태가 기업윤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소음도 문제
계속되는 갈등

SKC수원화학공장 인근 주민들은 SKC가 제기한 공장 소음 배상 관련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의 1심서 최근 패소한 데 이어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이 사안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이하 환조위)서 다뤘지만 SKC가 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분쟁으로 비화됐다. 

앞서 SKC수원화학공장 인근의 아파트 주민 2000여명은 공장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받고 있다며 지난 2017년 환조위에 조정을 신청했다. 주민들은 그동안 60데시벨을 오가는 소음에 제대로 된 생활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괴로움을 호소해왔다. 
 

▲ ⓒ화학물질안전원

특히 공장이 24시간 가동 중이라 수면에 불편을 겪는 주민들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주민은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365일 24시간 시끄럽다고 했으면 공짜로 줘도 입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9개월간의 환조위의 조사가 마무리되려던 무렵 SKC가 주민대표 2명을 대상으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제기했고 조정은 결론 없이 종료됐다. 더욱이 SKC는 소송을 제기하며 국내 최대의 로펌 중 하나를 선정한 것으로 알려져 주민들을 상대로 과도한 대응에 나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1년 가까이 이어진 소송에서 법원은 결국 지난 5월23일 SKC의 손을 들어줬다. 소음 측정에 대한 법원 감정이 없어 보상 의무 확인이 안 된다는 취지의 1심 판결이었다.

60데시벨 소음에… 
밤낮 괴로움 호소

재측정 기간 동안 SKC가 공장 소음을 축소해 측정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 법원의 추가 감정을 거부했던 주민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허탈해하는 모습이지만, 항소심에서는 법원의 감정을 거친 소음 측정 자료를 제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SKC는 이와 관련 주민들을 대상으로 제기한 소송은 신속한 분쟁해결을 위한 것이고, 소송과는 별개로 소음을 줄이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SKC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유사사례를 살펴본 결과 환경분쟁조정위원회서 조정으로 끝나지 않고 법정으로 가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빠르게 소송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고 재판부의 결론에 따라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라며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이외에 다른 소송을 제기할 수가 없었고, SKC에게 있는 책임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법정의 판단을 구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SKC는 앞으로도 필요한 노력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소송서 피해 여부, 보상 수준이 공정하게 결정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재판 과정서 합당한 절차와 재판부의 판단에 따를 것”이라고 부연했다.

현재 배출량은?
법정기준치 모호

SKC 측 관계자는 유해물질 배출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2016년 사용량은 2015년과 비교할 때 4분의1 수준으로 줄었다”면서 “2016년 배출량 수치가 늘어난 것은 당시 환경부에서 배포한 산정프로그램이 바뀐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2017년, 2018년 배출량은 아직 정부 검토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 먼저 공개하기 어렵지만 2016년 배출량보다 줄어들었다는 점은 확실하다”며 “해당 화학물질 배출량에는 법정기준치가 없지만 장비 개선 등 화학물질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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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